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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센] 서문, 첫 일기

admin 2019.03.25 21:55 read.36

 

  정확한 연도를 측정할 수 없는 전국시대 정확히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일본, 나는 역사의 중심이라 일컫어지는 아즈치 성에서 펜을 든다. 문 밖에서 들려오는 사람의 기척과 새소리, 맑은 공기의 향. 익숙하지 않은 장소가 혀 끝에 진득하게 달라붙어 말을 막을 때, 나는 조용히 펜을 들어 종이 위에 작고 검은 글자들을 나열한다.
  이것은 나의 여행 수기이다. 500년 전의 일본을 여행하는, 어떤 사람의 감상문.
 
  일기를 적어본 지가 너무 오래되어 이것은 편지같고, 수필같고, 때때로 소설같은 산문의 나열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적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 그래, 우선 이 일기를 적게 된 이유에 대해서 말하자. 본디 관광지의 일을 수필로 남기는 것은 취향이 아니기에, 나는 이 난세에서 펜을 들 생각이 없었다. 붓에 먹을 적셔 종이 위로 그려나가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고, 펜과 종이는 얼마 없어 만족할 만큼 적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글을 적는 속도를 손이 따라가지 못함임을 부정하지 않겠다. 그러나 나는 오늘, 글을 적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일을 겪었다.
 
  난세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인줄 아는가? 사람마다 다른 답을 내어놓을 수 있겠지. 혹자는 죽음을 말하고, 혹자는 아픔을 말한다. 누군가는 제가 힘이 없어 겪어야 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또 누군가는 문명의 부재를 이야기한다. 나는 그 속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하겠다. 죽지 않으면 죽는 곳에서 인간은 인간이길 포기해야만 한다. 저들이 인간답지 않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정의하는 인간과 저들이 정의하는 인간이 다르다 말하고 싶다.
  다테 마사무네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뭇결과 같은 머리카락에, 사파이어나 청금석도 이기지 못할 선명한 푸른색 눈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그의 푸른 눈이 아름다워, 남몰래 응시하는 일이 잦았다. 맑고 투명하게 빛나는 눈은 그 어떤 보석도 이기지 못할 반짝거림을 가져서, 그에게 호감을 품었던지도 모른다. 그건 아마 그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호감을 품고, 괜찮은 관계를 쌓아나갔다. 여행지에 오래 머무르는 관광객이 흔히 하는 일이다. 그러나 내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그는 도무지 나와 같은 사고를 할 수 없는 구석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오늘은 하늘이 끔찍히도 푸르렀다. 하늘색이 아름다워서 나는 밖을 걸었고, 도적들이 덮쳐왔다. 하필이면 구하러 온 사람이 다테 마사무네고, 하필이면 그들이 무기를 들었고, 하필이면 나를 죽이려 한 것이 문제였다. 수많은 요인이 겹쳐서, 다테 마사무네는 검을 들어 사람을 베었다. 나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처사라는 사실을 앎에도 나는.
  방금까지 이야기하고 사고하던 하나의 개체가 썩는 일 만을 기다리는 한낱 고깃덩이로 전락하는 순간을 아는가? 그러한 일을 저지르고 아직 김이 오르는 붉은 피를 뒤집어쓰고 웃는 사람을 아는가? 아니,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아름다웠다.
 
  저 드넓은 초원은 푸르게 일렁이고, 하늘은 더 없이 맑은 색으로 반짝이고, 안대를 걷어낸 다테 마사무네의 한 쪽 밖에 없는 눈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나는 그 미가 죽음 앞에서 퇴색되지 않음을 이 몸을 다해 경험했다.
  바로 이것이 내가 펜을 들게 된 이유이다.
  사람 한둘이 죽어도, 수많은 죽음이 눈 앞에 펼쳐져도, 이 거대한 세계는 변하지 않는다. 500년 전의 맑은 공기, 폐를 채우고 머리를 깨끗하게 씻어내는 청량함. 물은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르고, 시야는 더없이 깨끗하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내 시대로 돌아가면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나는 글을 써 눈물을 기록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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