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몸이 안 좋구나. 나무 위에서 눈을 뜬 네메타위는 문득 제 몸이 정상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상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리 없이 일어나 팔다리를 쭉쭉 뻗는다. 바깥에서 자는 것은 아무래도 몸에 부담이 걸리는 일이라, 바로 몸을 풀지 않으면 중요한 순간에 일이 틀어지기 마련이다. 그는 정성 들여서 온몸을 풀어내다가, 균형을 잃고 나무 아래로 휘청인다. 음, 이번엔 진짜 심한가? 빛이 들어오기 전에 눈을 가리면서 네메타위는 스스로 이마를 짚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으로 미루어보아 죽을 정도는 아니다. 급하게 식힐 정도는 아닌데……. 넋 놓고 쉴 수 있을 만큼 좋은 팔자도 아니라는 점이 문제겠구나. 네메타위는 나무 아래로 뛰어내려 주머니를 뒤진다. 괜찮은 재료를 사다가, 토트님의 주방을 점거하면 될 것이다. 요리하는 동안은 실내에 있을 테고, 음식을 드릴 때 조금 빼돌려서 먹으면 그럭저럭 괜찮겠지. 배때지나 등에 뚫린 곳도 없으니까 이 정도 열은 며칠 버티면 괜찮아질 것이다.
네메타위는 선글라스를 꺼내 끼고 싱글거린다. 결정했다면 고민하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이지.
그는 시장을 돌아 능청맞게 재료를 사 모았고, 존재하지도 않는 가족이나 시부모를 팔아서 괜찮은 물건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적당한 새댁 노릇은 언제나 시장을 누비는데 좋은 방패가 된다. 네메타위는 흔들리는 몸을 다잡아 볕 아래를 걸었다. 뒤로 묶은 머리카락이 목 뒤를 간질이는 느낌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돌아오길 반복한다. 네메타위는 경쾌한 걸음으로 돌바닥 위를 걸어 다니며 슬슬 한계가 아닌지 고민한다. 이러다가 쓰러지면 잡혀가겠지? 그는 습관처럼 입 안 어딘가의 독을 쓸어내린다. 쓰러지면 바로 삼켜야지. 무게 없는 생명이 존중이 부재하는 언어 위에서 굴러다닌다. 네메타위는 다시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토트의 집은 콘수의 것과 확연하게 다른 구석이 있었다. 네메타위는 현관 앞에 서면 언제나 자각하게 되는 차이점 앞에서 몇 번이고 몸을 가다듬었다. 문을 마주하기만 하면 떠오르는 ‘그 애’의 기억. 네메타위는 언제나 이 문 너머에서 기다리는 것이 토트가 아니라 옛 조직의 히트맨일 수 있음을 상기했다. 그가 원한다면 저는 언제고 팔려나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음을 기억했다. 이대로 도망쳐버리는 것이 편함을, 콘수를 찾아가서 호소하는 것이 더욱 빠름을 몇 번이고 떠올렸다. 그럴 때면 언제나 ‘그 애’의 시체가 떠올랐다. 머리 위쪽이 날아가 얼굴이 보이지 않고, 사후 경직이 진행되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하관. 기억나지 않는 얼굴이 떠오를 듯한 기분. 거울 앞에 서 있는듯한.
그러고 나면 문을 열었다. 열어주지 않아도 열었고, 열어줬다면 그냥 들어갔다. 오늘도 크게 다르지 않은 수순으로 일이 진행되었다. 네메타위는 저를 볼 때면 언제나 찡그린 얼굴의 토트 앞에서 싱글거렸고, 상태 이상을 들키지 않고 주방을 점거하는 데도 성공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채소를 썰었고, 적당히 익힌 고기와 끓인 액체 속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는 데 성공했다. 꽤 맛있겠다고 자부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까, 사고 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눈앞이 아득해지고 손의 감각이 사라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물을 만지면서 장갑을 낄 수 없으니 벗어둔 게 패인이었나? 날을 벼려둔 식칼은 별 어려움 없이 손바닥을 베어냈다. 그것도 까딱 잘못했다가는 손을 못 쓸 지경으로 깊게. 순식간에 도마와 냄비 위로 떨어지는 선혈. 기겁해서 손을 빼지만 크게 벌어진 상처는 어설프게 지혈해서 정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이거…… 입에 넣을 순 없겠지? 잘라서 베어 넣는 것은 몰라도 말짱한 상태의 손을 ―뭐, 칼에 베인 게 그다지 멀쩡하진 않지만― 통째로 입에 집어넣을 자신은 없었다. 일단 급한 대로 옷을 벗어서 바닥의 피를 수습하지만, 출혈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완전히 닦아낼 수도 없다. 원래 좋지도 않던 상태는 출혈과 동시에 바닥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하고, 눈가리개를 벗었는데 앞이 어둡다. 아, 어쩌지.
네메타위는 우선 발로 슥슥 피를 닦아내면서, 거실의 토트에게 머리를 내밀었다.
“토트님, 구급상자는 어디 두셨나요?”
“―――.”
아, 이명. 아득하게 멀어지는 감각이 아찔하다. 분명 대답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들었음에도 듣지 못한다. 말을 이해할 수 없고 단어를 떼어낼 수 없다. 이명 속에서 목소리는 하나의 덩어리로 뭉그러진다.
“감사합니다.”
문제라고 한다면, 다시 물어볼 수 없다는 건데. 닦이지도 않는 재질의 정장 조끼로 바닥을 문질러대던 네메타위는 시야는 말짱했으니 토트의 시선이라도 쫓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피를 어떻게 수습하고 나면―
“바로 가져가지도 않을 거면서 묻기는 왜 물은 거냐?”
“아.”
좆됐네.
네메타위는 피로 범벅된 주방에 고개를 내민 토트의 얼굴이 감정에 잠식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제 운명을 직감했다. 그러니까, 무덤이나 조직이나 고문실이나 으슥한 정육점 등의 미래 말이다. 수습, 수습해야 하는데. 네메타위는 선혈 위로 셔츠를 벗어 덮으며 속없는 웃음을 지었다.
“죽에 한 번 넣어보고 싶었거든요. 이 네메타위도 연애에 로망 정도는 가지고 있는 인간이랍니다.”
흘긋 바라본 셔츠 위로 아직 피가 떨어지는 모습과, 본 적 없을 정도로 일그러지는 얼굴 앞에서 네메타위는 진지하게 이빨을 향해서 혀를 뻗었다. 이거 지금 빼서 삼킬까?
“요즘 젊은 놈들은 요리에 인육이랑 인간 선지 섞는 게 유행인 게냐?”
“그…건 이 네메타위도 젊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이 네메타위가 젊진 않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나와. 거기서 주방 더 어지럽히지 말고.”
“옙.”
네메타위는 셔츠를 주워 손을 감싸면서 다시 혀를 제자리에 두었다. 아직 죽일 정도는 아닌 모양이다. 저대로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고민해 보겠지만, 토트가 향한 방향은 아까 시선을 던진 그쪽이다. 아직 죽일 생각은 없다는 뜻이겠지. 네메타위는 고급 카펫이나 소파 위에 피가 흐르지 않도록 적당한 바닥을 골라 앉았다. 셔츠로 몇 번 꽉 동여매도 피가 새어 나오는 꼴이 잘못하면 흉터가 늘게 생겼다. 아프기도 더럽게 아프고. 아득해진 의식에 절로 일그러지는 표정을 다잡는다. 여긴 네메타위가 주로 앓던 콘수의 집도, 콘수의 앞도 아니다.
눈을 몇 번 깜빡이는 동안 토트는 응급 키트를 들고 돌아왔다. 소파에 앉지 않은 꼴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지만 어차피 찡그린 얼굴, 티가 나지도 않는다. 네메타위는 토트님이 저러니까 콘수님보다 주름이 많으신 게 아닌지? 같은 생각을 속으로 삼키며, 얌전히 다가오는 파멸을 기다렸다. 안 아프게 해달라고 했다간 손에다가 알코올을 부어버릴 기세다. 그건, 정말, 진심으로 피하고 싶었다. 당해봤으니까 아는데 차라리 고문당하는 쪽이 버티기 쉽다.
“토트님, 피가 죽 안에 들어가진 않으셨으니까 안심하셔도 된답니다. 이 네메타위가 그 정도로 티 나는 짓을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당연한 말을. 진짜로 들어가서 맛있었다가는 마저 넣어버릴 테니 그리 알아라.”
“치우기는 직접 치울 테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루미놀 반응도 나오지 않을 만큼 깔끔하게 해둘게요.”
“직접 시약을 뿌려서 나오면 각오해야 할 게다.”
그건 좀, 하고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말을 집어삼킨다. 응급용 스테이플러에…… 지혈제도 있네. 네메타위는 손바닥의 상처 위로 가루형 지혈제를 뿌리면서 상처를 집는 건 포기한다. 아무래도 아플 것 같다는 것은 둘째치고, 이 상태로 집었다가는 엄한 상처를 늘리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눈앞이 빠르게 점멸한다. 그는 대충 거즈를 대서 붕대를 감고, 어설프게 감긴 매듭을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주방에 가서 싱크대에 물 틀고 머리라도 박으면 열이 식겠―
아.
다리에 힘이 풀린다. 제어권을 잃은 몸. 어떻게든 의지로 붙들어 두었던 근육이 가볍게 경련한다. 마지막 의식으로 머리와 얼굴을 그대로 바닥에 처박는 일은 피했지만 그뿐이다. 열감으로 가득 찬 몸은 제대로 고통을 인지하지 못하고, 다급하게 일어서려 내뻗은 손은 상처 입은 손이라 그대로 미끄러진다. 어설프게 감은 붕대가 풀려 지지대를 잃는 몸. 어떻게 줄였던 소리가 크게 울린다. 이번에는 몸이 움직이지도 않는다. 가볍게 멀어지는 의식. 주변 상황을 인지할 수 없다. 얼굴을 찌푸리며 혀라도 깨물어야 하나 고민했을 즈음에, 이마 위로 차가운 게 닿는다.
“이게 무슨, 요리하다가 냄비에 머리를 처박기라도 한 거냐? 머리를 그대로 익히기라도 할 셈이었나?”
“그, 런건 아니고.”
아, 제길. 네메타위는 그대로 의식이 끊어짐을 예감했다. 혀가 풀렸다. 열로 가득 찬 몸은 냉기 이외의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바닥과 이마의 차가움이 기분 좋다고 생각할 즈음엔 탁하고 무언가 끊어졌다. 음, 역시 일주일을 내리 숲에서 잔 건 무리였나.
꿈, 같은 걸 꾸었다. 그러니까, 미이시스나 콘수님과 지내던 시절의 꿈이나, ‘그 애’와 함께 볕 아래를 걸어 다니며 제 눈을 걱정하는 게 우습고 귀엽다고 생각할 즈음의 꿈이었다. 평소에 꿈을 꾸지 않는 네메타위로서는 의외이고, 흔치 않은 일로, 그는 제가 사랑했을, 혹은 아끼고 소중하게 여겼을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게 꿈이라고 직감했다. 돌아가지 못하고, 돌려받지 못할 날들의 편린이었다.
근데 왜, 일련의 장면 속에는 토트를 호위하던 날들이나 머리를 자르고 돌아와서 연애라도 해 달라고 부탁한 이후의 기억들이 섞여 있는 걸까.
짧은 수면, 혹은 기절 이후, 네메타위는 푹신한 침구의 감촉을 느끼며 의식을 되찾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몸이 나아지는 순간에 옆 사람의 기척이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에 강제로 각성한 것으로, 여전히 반쯤은 잠들어 있는 의식을 깨우려고 허벅지 즈음의 칼을 꺼내서 적당한 곳에 박아넣기라도 할 셈이었다.
“헛짓거리할 힘이 있으면 일어나서 먹어라.”
“네.”
토트의 기분 나쁜 듯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그는 분명 다시 사다 주는 것도 번거로운 침구를 선혈로 물들여서 진짜로 한적한 정육점의 갈고리나, 저승이나, 적당한 지하실로 보내졌을 게 틀림없다.
갈라진 목소리로 반사적인 대답을 내어놓았지만, 네메타위는 눈을 몇 번 깜빡이고 나서야 눈앞에 있는 것이 죽임을 깨닫는다. 그러니까, 요리하다가 그가 손을 베고 열에 쓰러져서 미처 완성하지 못했던 죽 말이다. 그는 기계적으로 음식을 떠 입 안에 넣었고, 맛도 느껴지지 않는 고체와 액체 사이 어딘가의 물체를 목 너머로 삼켰다. 몇 번 먹다가 당초의 목적을 떠올렸다.
네메타위는 조금 남아있는 힘을 모아서 새 숟가락을 들고 왔고, 토트에게 제 숟가락이 닿지 않은 부분을 떠서 내밀었다.
“토트님도 드세요. 이 네메타위는 제가 먹으려고 한 게 아니라 토트님에게 드리려고 했던걸요? 연애라고 말해놓고 쓰러져서 제가 받아먹으려던 게 아니었어요.”
“열 뻗치게 하지 말고 주는 대로 먹어라.”
“그치만.”
토트는 피가 들어간 죽은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대답하며 쥐고 있는 와인잔을 흔들었고, 네메타위는 불현듯 억울해졌다. 그러면 눈앞에서 드시질 마시던가요.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할 불만은 죽과 함께 억지로 씹어 삼켰다. 저도 좋아하는데, 술.
“먹고 싶고 꼬우면 낫던가.”
“예?”
네메타위는 당황스러운 기분에 고개를 들었다. 티가…… 났나? 이야말로 낭패였다. 아무리 지쳤다고 해도 긴장을 풀거나, 표정을 관리할 수 없다면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의식 바깥으로 밀려났던 생존 문제가 돌아오는 순간, 네메타위는 당황스럽게 입 안의 비상 수단들을 훑는다. 그러고 보면 신경 쓰지 않고 죽을 삼켰으니, 실수로 독도 넘겼을 가능성이 있다. 열에 들떠서 기억조차 애매한 머리로 몇 번째 이빨이 날아갔든지 고민하고 있으면, 문득 억울해진다. 그대로 밖에 내던지거나 무시했다면 스스로 수습할 수 있었을 텐데.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신경 쓰며 회복까지 해야 하는 상황은 당황스러울 따름인데.
“토트님은 혹시 츤데레세요? 그러니까…… 새침데기라던지.”
네메타위는 잠긴 목소리를 억지로 끌어올려 평소와 같은 톤을 만들어낸다. 갈라지고 버석거리는 성대를 부드럽게 굴리고, 사람의 속을 긁을법한 어조를 만들어낸다.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는 나름 노력한 공격이었으나, 토트는 잔을 기울여 보란 듯이 와인을 마실 뿐이다. 알고 저러시겠지? 그런 유치한 생각을 하고 있자니, 분노하는 것도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메타위는 그냥 제가 먹던 숟가락을 다시 집어 들어서, 그릇의 죽을 천천히 떠먹었다. 아직 식지 않았단 사실이 조금 놀라웠지만, 다시 데워 왔던 건지 아니면 제가 일찍 깨어난 건지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그냥,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죽이 토트 손에서 더 맛있다는 생각에 조금 억울했고, 빚을 만드는 것이 싫으니 다음에는 유명한 가게에서 대표 메뉴를 포장해 오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어쨌든, 죽은 맛있고 침대는 푹신했다. 그가 평소에 자던 숲이나 거리의 구석보단 나은 환경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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