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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야쿠] 삭풍의 밤

admin 2020.03.29 00:42 read.115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고 세상이 멈추고 모두가 절규해도, 저는 노래하겠죠. 태양이 뜨고 하늘이 푸르게 물들고 땅이 행복을 구가하는 그 순간에는 춤출겁니다. 마침내 저는 사라져 하나의 흔적이 되고, 흔적마저 사라져서 내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의심스러운 순간이 온다고 해도, 나는 이 세계에 존재할겁니다. 바람이 노래하고, 파도가 소리치며, 풀잎이 춤추는 동안 저는 이 세계에 맴돌겁니다. 그 누가 세계를 멈출 수 있나요? 그 누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나요? 그 누구도 불가능한 것에 의존해서, 저는 존재할겁니다.
  ……내게는 가능하다.
  그러네요, 오즈. 당신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마법사였죠. 그러겠네요. 생각해 본 적 없어요. 당신은 내가 죽고 나서도 나를 지울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요, 내가 죽고 나서도 지우지 말라고 부탁해도 되나요? 이 부탁조차 당신은 잊어버릴건가요? 나의 노래가 바람이 되듯이 나의 목소리는 당신의 어둠 속에 가라앉나요?
 
  둘시네아는 춤추기를 좋아하는 현자였다. 노래하고, 춤추며, 제 흥에 취해서 마법사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일이 잦았다. 그건 늘 모두가 잠들어있는 새벽이었고,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는 사람은 미스라가 되고는 했다. 가끔은 같이 춤추고 노래해주는 상대방을, 둘시네아는 꽤 좋아했다. 아니, 좋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말은 희미하고, 노래는 이어지고, 춤은 빙글빙글 돌며, 지나간 것은 희미하기 마련이니까. 어쨌든 둘시네아가 한 밤중에 춤추는 일이 잦았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날은 오즈가 잠들지 않은 날이었다.
  술을 마셨을까? 누군가의 이야기를 했던가? 유일한 두려움을 떠올렸을까? 오직 그만 알고 있을, 혹은 그조차 모를 이유에 의해서 오즈는 한밤중, 달이 떠오른 날에 잠들지 않고 복도를 걸었고, 천장을 걸어오는 둘시네아와 눈이 마주쳤다.
  자주 있는 일이었다. 저 현자는 자신의 특이한 체질에 의해서 중력을 잃는 일이 잦았고, 굴하지 않고 천장을 걸어 마법사를 돌아다니고는 했으니까. 그리고 그 날은, 우연찮게도,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거꾸로 뒤집힌 인간과 바로 서 있는 마법사의 시선이 얽히고, 붉은 눈과 진줏빛 눈이 꼭 닮은 모양으로 대칭되는 순간, 진줏빛 눈의 주인은 웃었다.
 
  “오즈
 
  기이한 열망에 가득 찬 목소리가 마법사를 울렸다. 복도는 신기하게도 길었고, 꽉 닫힌 문은 열어서 새로운 세계와 연결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며, 웃음에 가득 찬 목소리는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너무 멀리 나아가서 오즈에게 닿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둘시네아는, 웃음을 거두고, 휘날리는 옷자락을 모아 쥐어서, 조금 더 짧고 단단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오즈.”
 
  작게 반짝이는 빛이 넓게 퍼져서 맴돌던 홍체가, 마력이 차올라서 넘실거리는 동공이 얇게 좁아드는 듯한 착각. 오즈는 둘시네아를 응시했고, 네아는 천장을 몇 번 걷어차며 빙글 돌았다. 허공에 둥둥 뜨는 바람에 시선이 맞는 기묘한 감각. 오즈는 저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있는 네아의 눈을 바라보았고, 네아는 아직 잦아들지 않은 노래를 잘게 흥얼거리며 다시 웃었다.
  오즈는 문득 둘시네아의 머리카락 안쪽이 동공에서 넘실거리는 것과 같은 색으로 희미하게 반짝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진주, 그 자신의 아뮬렛을 닮은 색을 전신에 희미하게 휘감고는 공중에 떠 있는 현자. ‘제가 불안정해 보이면 잡아당겨 주세요. 분명 즐거워보이는 만큼 두려워하고 있을테니까.’ 오즈는 네아의 부탁을 떠올리고 그의 팔을 붙잡았다. 터무니 없을 정도로 가벼운 촉감이 손바닥에 휘감긴다.
 
  “무리를 했군.”
  “그런가봐요. 이상하지, 오늘은 정말 달을 향해 떠날 수 있을 것 같아. , 맞아. 무르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는 자각은 있어요. 그런데, 정말로, 이대로 떠올라서 달로 가버리는게 아닐까.”
  “……달에 가려고 했었나.”
  “아뇨, 아니예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제 영혼은 찢어지면 안 되니까 그러지 않아요. 제 역할은 중요하잖아요.”
  “그러면 어째서 그런 말을 하지.”
  “으응……. ? 말에 이유가 있나요? 떠오르는 것을 주워 섬길 뿐인데.”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네아의 맥은 리듬에 맞춰 맥동했고, 머리카락 속의 빛과 동공의 색은 선율에 맞춰 요동쳤다. 도무지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 모습을 하고서, ‘둘시네아는 오즈의 눈을 바라보았다. 즐거운 웃음과 무뚝뚝한 얼굴. 오즈는 그저 침묵했고, 네아의 소리는 서서히 잦아들었다. 바람이 불었고 구름이 몰려들어 달을 가렸다.
  달빛이 사라진 창문은 어딘가 공허하다. 촛불이 밝히는 복도는 다정하고 허망한 온기를 흩뿌리고, 아무도 없는 복도는 체온이 없는 공기 특유의 서늘하고 오싹한 느낌이 든다. 하늘로 떠오르려던 네아의 발이 아주 서서히 땅에 달라붙는다. 중력을 느끼고, 두려움을 지우고, 심장이 뛴다. 달이 완전히 가려지고, 바람이 잦아들고, 불길한 어둠이 창문 너머에서 혓바닥을 넘실거릴 때.
  마녀의 자손이되 마녀가 아니고, 마녀Witch는 아니라도 마녀魔女인 현자는 희미한 빛을 휘감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당신이 말한대로 이 말은 나뭇잎에 스치는 바람과 같은 것. 나의 말은 당신의 것만큼 무겁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잖아요, 오즈.”
 
  둘시네아는 다시 힘껏 웃었다. 말을 하는 순간이면 사라지는 표정은 말과 대화의 사이에 끼어들어 무언가를 숨긴다. 마치 웃기 위해서 표정을 지우는 것처럼 굴면서, 모든 몸짓을 춤으로 만든다. 끝없이 흐르는 음악을 막지 않기에 둘시네아의 모든 말은 노래가 된다.
  작게 발을 굴러 허공을 짓차고, 손을 쥐락펴락하고, 옷깃을 흔든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어디론가 달려나가고 싶어하는 얼굴에서 오즈는 아서의 어린 시절을 읽어낸다. 어리다. 약하다. 어린아이는 원래 가만히 있지 못하고 쉽게 울어젖히는 법이다. 그럴 때면 그가 어떻게 하였던가? 아서는 어떻게 해 주면 울음을 그치고 진정했지?
 
  “오즈, 오즈, 오즈. 마법사 오즈, 최강의 마법사 오즈, 일찍이 세계를 지배했던 마왕 오즈.”
 
  오즈는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둘시네아에게서 어린 아서를 찾는다. 그가 내버렸을 때의 아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다녔다. 어떻게 하면 울음을 그쳤더라. 아마도, 그래. 오즈는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실행했다. 손을 당겨 허공을 부유하는 네아를 땅으로 끌어내린다. 그의 바로 앞, 존재감이 느껴질 거리에 세워두고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오즈가 당기는대로 끌려오는 현자는, 둘시네아는, 아무런 무게가 없는 것 같았다. 아니, 무게는 존재하지만 보이는 것에 비해서 턱 없이 가볍다. 마법사가 죽어도 돌이 되기 마련인데, 이 현자는 이대로 흐려져서 사라지면 죽음이 될까. 분명 그럴 것이다. 본인이 그렇게 이야기 했으니. 누구의 것인지 모를 생각이 허공에 흩어졌으나 분명 그것은 오즈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둘시네아가 들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고, 오즈는 그러한 감상을 제대로 표현할만큼 섬세한 언어를 가지지 못했다. 그는 단지, 학습에 의한 교훈으로 둘시네아를 달랬다. 눈을 맞추고, 명확한 의사를 전달한다.
  나는 여기 있다.
  침묵이 내려앉는다. 복도를 가득 채운 음악은 여전히 소리를 지우고 제 존재감을 과시하고, 둘시네아는 뒤를 돌아보다가 오즈를 바라보기를 반복하고, 창 밖에는 바람이 분다.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움직이는 모든 것. 최소한 감각 속에 있는 모든 것이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울리는 가운데서 그는 오롯하게 홀로 존재했다. 누름돌처럼, 거대한 산과 조용히 내리는 폭설처럼. 음악의 허리를 자르고 박동의 틈을 잡아챈다.
 
  “오즈?”
 
  의아한 어조, 둘시네아의 노랫말 같은 언어. 대답을 듣지 못하면 조각조각 흩어져서 음이 되어버릴 음악. 그는 침묵하고, 네아는 노래를 멈추고, 음표의 머리는 진주처럼 사방으로 비산한다. 깨져나간 소리를 대신하는 것은 바람소리. 구름 너머로 숨어버린 달이 절규하는 듯한 바람소리가 창을 시끄럽게 두드린다.
 
  “……오즈.”
 
  가라앉은 어조. 둘시네아의 발은 땅에 달라붙었다. 네아의 머리카락은 더 이상 부유하지 않으며, 희미한 무게감이 손 안에서 느껴진다. 눈을 깜빡이고, 침묵을 어색해하고, 주변의 소리를 받아들여 제 안에 있는 음악을 몰아내고, 느릿하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제 팔을 붙잡은 오즈의 손을 더듬으면서.
  네아는 마침내 인간이 된다.
 
  “저기…….”
  “듣고 있다.”
  “이제 놓아줘도 괜찮아요. 고마워요, 신세를 졌네요.”
 
  어색한 어조, 음악이 멈춘 둘시네아는 공허를 낯설게 여기며 조심스럽게 오즈의 손을 떼어냈다. 마력 없이 자랐다면 저런 인간이 되었을까. 이 현자는 힘을 마음껏 풀어내고 나면 이상할 정도로 침착하고 미숙한 태도로 모든 상황이 생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무리했어요.”
  “…….”
  “, 그러니까. ……. 리케랑, 아이들이, 제 세계를 궁금해 했거든요. 보여주려고 했는데, 조절에 실패했어요. 그래서 그만. 해가 지기 전에는 몰랐는데 달이 뜨니까 그대로 올라오더라고요.”
  “…….”
  “아서가, 아서도 같이 궁금하다고 했거든요. 알잖아요, 아서는.”
 
  부모 앞에서 변명하는 아이처럼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던 둘시네아는, 오즈의 침묵 앞에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데록데록 눈을 굴리고, 어딘가 시선을 둘 곳을 찾으며 발 끝으로 땅을 톡톡 치다가, 오즈가 잡았던 그 자리를 제 손으로 잡아 덮는다. 오즈의 붉은 눈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고, 네아는 그 불안마저 잦아들고 나서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충고를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요.”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두렵죠. 두려워요, 이렇게 노래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만큼.”
  “어째서 우행을 반복하지.”
  “인간이니까 그렇다고 말하면, 둘러대는게 되겠죠?”
 
  문장은 의문형으로 끝낸 주제에 답을 알고 있다. ‘어차피 죽을거잖아요.’ 오즈는 언젠가 들었던 대답을 떠올린다. 그러니 이것은 답을 듣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질책을 위한 질문이었다.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네아는 더욱 초조해진다.
  입을 우물거리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오즈의 눈을 바라보았다가, 희미한 절망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오즈에게는 익숙할 자문자답을 설게 반복하다가,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침묵. 누군가 지나갈지 모르는 복도에 오랫동안 서 있다가, 서 있다가, 그들의 흥분이 지나가고 공기가 식어서 그 곳에 왜 있는지 헷갈릴 즈음이 되어서 입을 열 기분조차 사라졌다. 어둠과 밤의 바람소리에 의식이 잠겨들어간다. 자연이 말을 갉아먹는다.
  밤의 침묵 속에서 밤을 닮은 마법사가 조용히 질책을 늘어놓는다.
 
  “사명에 짓눌리지 말라고 말했을 터다.”
 
  오즈의 눈은 처음 만났을 때와 다름 없이 잔잔하다. 덤덤하고, 고요하고, 초탈하고, 탈속적이어서, 현자는 문득 이유 모를 경외에 사로잡힌다. 동시에 기이한 친근감을 느낀다.
 
  “네 영혼이 찢어져서는 안 될 이유는 현자라는 역할 말고도 있을 것이다.”
 
  저것 보아라, 저 자는 태초부터 존재하여 제 감정으로 날씨를 부리고 의지로 세상을 부리는 자다.
 
  “네가 죽으면 아서도 슬퍼하겠지.”
  “…….”
  “중앙의 마법사들 또한 그럴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할줄 아는 자다.
 
  “무리하지 마라.”
 
  내가 사랑해도 되는 대상이다.
  그러니 내가 저기……. 하고 입을 뗀 것은 불가항력이다. 당신에게 속말을 털어놓고, 부탁하고, 기이한 흥분에 사로잡혔던 것은 모두 그러한 탓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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