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그리울까 가지 않았던 무덤 앞에서, 네가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내가 더는 인간이 아님을 자각한 거야. 자기야,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내 연인, 너는 언제나 죽은 남자로만 떠오르지.
‘네메타위’라는 이름은 때때로 미친년의 대명사로 통했다. 년? 놈? 아무래도 좋았다. 그 새끼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사실은 모든 자가 공감하는 주제였고, 그 본인도 딱히 부정하지 않는 소재였다. 그 미친놈은 제 몸을 다치는 것도 신경 쓰지 않지. 등 뒤에서 칼을 박아도 급소를 피하며 팔을 휘두를 새끼. 언제나 싱글거리는 얼굴. 유쾌하고 경쾌한 목소리. 극진한 존댓말과 완벽한 착장. 그는 피에 젖어 번들거리는 얼굴을 하고도 유쾌한 웃음을 지우지 않을 줄 아는 이였다.
‘예, 무슨 말씀을 할 생각이신가요? 이 네메타위는 언제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
그리 말하던 얼굴이 색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젖어 있는 건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피를 뒤집어쓰기를 꺼리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고통을 모르는 인간.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언제나 존댓말을 사용하는 미친놈. 네메타위는 언제나 수군거림과 함께 등장해서 경악과 함께 사라지는 자였다. 단지 일을 가리지 않는 충성심이 언제나 그를 높은 자리로 이끌었다. 충실한 네미, 성실한 네미, 맹목적인 네미.
“찐빵아.”
“예, 콘수님. 이 네미는 듣고 있어요.”
“말 안 해줘도 네 애칭이 네미인건 안다. 내가 지어줬는데.”
“예.”
“생글거리면서 그러면 왜 찐빵으로 부르세요? 하는 얼굴로 봐도 너는 찐빵이야. 그 쪽이 좀 더 무해해 보이잖아.”
“예.”
“뭘 또 축 처진 목소리야.”
이러한 대화도 별로 특별한 일은 아니다. 네메타위는 언제나 똑같은 어조로 똑같은 대답을 내뱉었고, 콘수는 네메타위 자신도 모를 감정을 능숙하게 읽어냈다. 별로 신비한 일도 아니었다. 네미의 삶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은 그였고, 그의 삶에서 네메타위도 무시할 수 없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근본도 없고 이름 모를 고아를 데려와서 키워낸 사람은 콘수였다. 이미 간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주제에 수하를 키운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네메타위는 훌륭한 도구로 자랐고, 콘수가 아니라 조직에 충성했으며, 주제를 모르는 사람을 처리하는데 훌륭한 적성을 보였다. 그 과정에서 닳아간 것이 인간성이라고 한들, 이 판에서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분명 콘수에게도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단지, 때때로, 회한에 젖는 날이면 저 새끼가 행복 비슷한 감정에 젖어서 웃던 날들이 떠오르는게 문제였다.
“나는 이제 은퇴한다.”
“예……?”
“할 거라고, 은퇴. 일선에서 손 뗄거야. 내 자리는 적당한 놈이 맡겠지. 후계자는 딱히 안 정했다.”
“…….”
“널 후계자로 정했다가는 꼴이 뻔히 보이지 않냐? 딱히 욕심은 없고 높은 자리 올라가기 싫다며. 끈 떨어진 연처럼 안 보이게 잘 말 해뒀으니까 그 점은 걱정 안 해도 된다.”
“예.”
“너는 예, 말고는 할 말이 없냐?”
콘수는 허리를 숙여 네메타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한참 아래에 있어서 잘 보이지 않던 표정이 눈 앞에 훤했다. 조금 혼란스럽고, 당황스럽고, 하지만 별 생각은 없는 얼굴. 언제나 네메타위가 입버릇처럼 달고 있는 말 그대로.
“이 네미는 한낱 장기말인걸요. 가라는 곳으로 움직일 뿐이에요.”
“그 나이를 먹고도 그런 소리를 하냐.”
“하지만 콘수님도 뜻이 있어서 절 부르신 게 아닌가요?”
반들거리는 눈동자는 유리알을 닮아있다. 비어있기 때문에 사방을 온전하게 비출 수 있고, 비어있기 때문에 소름 끼치는 구석이 있다. 무언가를 알아내기 위해서 깊이 들여다보아도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이기에 느껴지는, 기이하고 기묘한 감각. 콘수는 네미의 눈 깊은 곳의 제 모습을 발견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생각이 있긴 한데, 너는 너무 편하게 살잖냐 찐빵아.”
“제가 편하게 살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는지 아시잖아요. ‘너무’라고 할 건 없어요.”
“네 나이랑 지위를 생각하면 ‘너무’ 편하게 사는 거지.”
콘수는 네미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리는 것도 제 앞이라 그렇다는 사실을 안다. 애초에 타인 앞에서 ‘네미’라고 지칭하는 일 자체가 드물다. 저를 애칭으로 지칭하며 애교스럽게 말한다고? 우습지도 않다. 네메타위는 생각보다 교활하고 교묘한 족속이고, 말단 정도는 가볍게 처리할 수 있는 작자들의 뒤를 닦아주고 편의를 봐 주며 평생을 살아온 아이다. 쉽게 약점을 드러내고 책을 잡힌다면 진즉 죽었겠지.
콘수는 제 앞에서 틈을 드러내고 긴장을 조금 풀어내는 네미의 모습이 주는 기묘한 우월감과 희미한 안타까움에 사로잡혀서, 은퇴를 결정하던 날의 회한을 떠올렸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던 시절의, 어리고 멍청하지만 순진하던 네메타위를.
“책임질 연인이라도 하나 두는 게 낫지 않겠냐?”
“제가요? 농담이 심하세요, 콘수님.”
“네 화려한 과거에 홀려서 구애하는 놈들이 어디 한둘이든?”
“제가 그런데 관심 없다는 사실도 잘 아시잖아요.”
“찐빵아.”
“예.”
순종적인 얼굴로 그의 눈을 바라보며 다음 말을 기다리는 네미는, 여전히 유리알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몇 년 전에는 이 이야기를 하면 눈이 좀 사람 같아지더니, 이제는 글렀어. 콘수는 덤덤하게 네미의 인간성이 종말을 고했다고 결론지었다. 저 새끼의 격정적인 과거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네메타위’의 화려한 연애담을 모르는 이는 많지 않았다. 아니, 그가 ‘미친놈’으로 불리기 시작한 사건을 모르는 이가 적다고 말하는 쪽이 옳다. 연인의 복수를 위해서 혈혈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든 사람. 그자들이 적대조직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는 홀로 끝을 본 새끼. 피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피를 뒤집어쓰고 옷이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상처 입어서도 보고를 위해 상사를 찾던 융통성 없는 놈. 그 꼴을 본 간부가 질린 얼굴로 나가서 씻고 치료부터 받으라며 손을 내저은 이야기는 별로 비밀스럽지도 않다.
그게 저 새끼의 마지막 연애였다.
그토록 격정적인 사랑을 하고서 연인의 무덤에도 간 적이 없다. 아니, 이제 네메타위 자신도 그 새끼들을 죽인 것이 사랑 탓인지, 복수는 ‘해야 하는’ 일이기에 수행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콘수는, 유일하게, 네미조차 잊어버린 그 날을 기억하는 사람이다.
‘콘수님, 저는 그 애의 무덤에 가지 않을 거예요.’
술에 잔뜩 취해서, 장갑을 벗고 맨 손을 콘수 쪽으로 뻗어 놓고 열에 달뜬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말. 자기 자신을 타이르기 위해서 늘어놓는 단어들. 술에 취해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와 헤실대는 입꼬리, 풀린 혀가 빚어내는 달큰한 착각.
‘그건 한심하니까?’
‘네. 저는 울면 안 되거든요. 근데 그 애의 무덤 앞에서 펑펑 울어버리면, 그건 막을 수 없잖아요. 그렇지만 울지 않을 자신도 없는걸요…….’
‘쓰잘데기 없는 걸로 고민하네. 그럴 거면 울고 복수하지 그랬냐.’
‘그러게요……. 걔가 제 앞에서 쓰러지니까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어요. 분명 콘수님이 저한테 꼭 뒤를 생각하고 움직이라고 가르쳐 주셨는데……. 그냥 저 새끼들을 찾아 죽여야 한다는 생각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어요.’
이 지랄맞은 새끼는 죽은 연인을 떠올리기만 해도 사랑에 빠진 눈을 했다. 제 앞에 있는 것이 누군지도 모르고 다정하고, 애정에 흠뻑 젖은 눈깔로 다정한 미소와 함께 꾸미지 않은 어조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그 애의 무덤에 가지 않을 거예요. 울면 안 되니까.’
‘그 말을 왜 나한테 하냐. 나보고 대신 가 달라고?’
‘아뇨. 걔, 주제도 모르고 콘수님을 질투했거든요. 우습지……. 제가 뭐라고. 제가 콘수님을 배신할 리 없는데.’
‘그런 주제에 퍽 다정하게 말한다?’
‘귀여웠단 말이에요. 사람도 죽여보고 배신도 당해 본 놈이 머리는 꽃밭인게.’
‘너는 사랑도 참 지랄 맞게 하네.’
‘그런가요? 그런가…….’
제 앞에 있는 사람이 콘수인 줄도 모르고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눈을 하던 네메타위. 그게 그가 기억하는 네미의 마지막 인간성이다. 누군가를 위해서 노력하고, 행복하다는 얼굴로 웃을 수 있으며, 제 감정이 어떻게 흐를지 몰라서 고민하던 ‘인간’의 얼굴.
그 뒤로 무시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났고, 네메타위는 살아남아 높은 지위에 오르는 일에 성공했으며, 연인을 위해서 멍청한 짓을 하지 않지만, 과연 그 날의 네미와 같은 존재일까? 모르긴 몰라도 이 지옥에서 살아남은 것이 ‘인간’은 아닐 것이다.
“너 아직도 그 새끼의 무덤에 안 가봤냐?”
“그새끼요?”
“네가 ‘그 애’라고 부르던 그 새끼.”
“그 애……. 아, 네. 가 본 적 없어요. 풀은 자라지 않았을 거예요. 주기적으로 사람을 보내니까.”
“웬만하면 한 번 가봐라.”
“…예.”
“그래, 그럼 됐고.”
네메타위는 영 내키지 않는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명령을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뭐, 시간을 지정하지 않았으니 당장 가지도 않겠지만. 이제 저 녀석도 짬이 쌓였으니 어릴 때처럼 융통성 없는 짓은 하지 않는다. 아마 미루고 미루다가, 제가 한 번 더 재촉하거나 할 짓이 없어지면 슬렁슬렁 얼굴이나 내밀겠지. 콘수는 그런 식으로 제 과거를 마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콘수님. 저는 뭘 하면 되나요?”
제멋대로 납득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콘수의 상념을 끊은 것은 네메타위의 명랑한 목소리였다.
그는 여전히 유리알같은 눈을 하고, 이미 허리를 편 콘수의 눈 즈음을 집요하게 올려다보며, 은퇴를 결심한 콘수가 마지막으로 내릴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꼴에 뭐 비장한 명령이라도 내릴 거라고 생각하나보지. 평소랑 다르게 좀 단단한 유리알이 퍽 귀여워서, 콘수는 장난같은 말을 내던졌다.
“왜, 보스 대가리를 따오라고 하면 따오게?”
“콘수님이 그런 명령을 내리시진 않겠지만, 시키시면요. 분명 그러다가 죽겠지만……. 혹시 성공하면 그걸 어디에 장식할지 고민할게요.”
“아서라, 그 흉터투성이 몸으로는 죽어.”
“딱히 흉터가 없을 때랑 다를 것도 없는데.”
“그런거 명령할 생각 없으니까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라.”
“예.”
네메타위는 그러면 이번에야말로 콘수가 진짜 명령을 내리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은퇴에 걸맞은 뭔가 대단하고 의미 있을 법한 명령을. 최소한 불가능하지 않고, 그가 노력하면 할 수 있으며, 생각 없이 수행하면 되는 그런 구체적인 명령을 말이다.
“별거 없어, 그냥 네 얼굴이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거라면 그냥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하면 되셨어요.”
“네가 또 뺀질거리면서 미루는 꼴을 보라고?”
콘수는 드물게 불만을 감추지 않는 네메타위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키득거렸다. 그래도 저 새끼가 인간은 인간이다. 연인의 이야기를 들쑤셨다고 바로 사람다운 꼴이 드러나는 모습을 보아라. 처음 주워왔던 꼬맹이 시절이 생각나서 퍽 귀엽지 않은가.
“진짜로 얼굴이나 보자고 부른거야. 나 은퇴하면 널 볼 일도 얼마 없겠다 싶어서.”
“어디 먼 곳으로 떠나실건가요?”
“아니? 그냥 집에서 쉴거다. 오래오래, 책이나 좀 읽으면서, 인간답게.”
“…….”
“너도 나중에 사람한테 뭔가를 선물 할 때는 책으로 해. 제일 무난하니까.”
“예.”
“그래, 그럼 가라 찐빵아. 잘 지내고.”
콘수는 네메타위에게 껄렁거리는 몸짓으로 손을 흔들었다. 네메타위는 ‘그럼 이 네미는 가 볼게요.’ 하고 마지막까지 제 애칭을 주장했고, 콘수는 ‘그래, 찐빵.’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게 그들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마주할 수 있었던 마지막 날이었다.
콘수의 은퇴는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큰 영향력을 가졌고, 네메타위는 콘수의 생각보다 그의 그늘에 깊숙이 들어가 있었으며, 어디에나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족속은 널렸다. 덕분에 네메타위는 제 목을 조르기 시작하는 신임 간부의 목을 따버렸으며, 일을 수습하다 그만 보스의 자리를 넘겨받았고, 문득 콘수와 그를 질투하던 멍청하고 어리석은 옛 애인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뒤는 당신이 아는 것과 같다.
네메타위는 애인의 무덤 앞에서 더 이상 제가 인간이 아님을 깨달았고, 보스의 자리는 원하지 않았음을 자각했으며, 콘수가 말한 ‘인간다운’ 삶이 궁금해졌다. 그는 생각하면 실행하는 종자였고, 신임 보스는 조직을 버리고 잠적했으며, 은퇴했던 콘수는 그런 재앙을 키워낸 책임을 지고 그를 처리하게 되었다.
네메타위는 한 쪽 다리에 총을 맞았으며, 그대로 사라져 죽은 것으로 알려졌고, 오직 콘수만이 살아있을 네미를 떠올리며 그의 마지막을 회상했다. 총을 맞고도 덤덤했던 그 얼굴이, 일그러지던 날을.
‘너는 살고 싶지도 않냐, 찐빵아.’
‘설마요, 이 네미는 늘 살고 싶어 했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폭력을 버텼겠어요? 제 손에는 늘 칼이 있었는데.’
‘그럼 지금 덤벼보던가.’
‘……이 네미가요? 콘수님을?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당신은 절 이렇게 만드신 분인데. 차라리 그 손에 죽고 말지.’
자칫 원망으로 들리는 말이 은혜를 말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저치는 원망을 내뱉지 않는 족속이니까. 단지, 콘수는, 그의 말에서 회한을 느꼈을 뿐이다. 조금씩 인간이 되어 가는 네메타위를 바라보며, 어쩌면 저 새끼는 내가 없어도 잘 살지 않았을까, 하고.
‘그래도 죽이기 껄끄러우시다면 무릎 꿇고 빌까요? 살려달라고?’
분명 콘수가 살려달라고 비는 이들을 더욱 쉽게 처치한다는 사실을 떠올려서 한 말이었겠지.
‘……살려주세요, 콘수님. 저도 콘수님이 말한 ’인간다운‘ 삶이 궁금해요.’
단지, 콘수는, 저런 말을 유언으로 남긴다면 네메타위의 인생이 너무나 불쌍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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