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creative

네가 죽었다

admin 2018.11.18 21:28 read.24

우리는 그 무엇도 기대하지 않아요. 쉽게 얻은 것은 쉬이 사라지고, 어렵게 얻은 것은 허무하게 스러지기 때문이죠. ‘우리는 포기하는 법을 배워요. 그리고, 그리고. 무엇을 배웠을까요? 셰키나 테오파네스는 그런 말을 늘어 놓으며 웃었다. 상냥하고 희미한 목소리는 늘 그 웃음과 함께했다. 셰키나는 웃음, 울음, 절규를 제외한 표정을 잃은 양 굴었다.

 

 
사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절망과 증오는 우리에게 가장 당연한 것이었기에. 같은 것을 공유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말로 내뱉는 일이 드물죠. 어떤 느낌인지 아나요?”
 
하데스 아이도네우스는 셰키나 테오파네스의 말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동시에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제가 가진 불행으로 하여금 셰키나의 깊고 어두운 체념과 절망을 이해했으나, 그 어두운 감정을 공유할 상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데스의 불행은 주변을 모두 끌어들여 진창에 처박는 종류였고, 셰키나는 유일하게 그의 진창에 빠져들지 않은 사람이므로. 하데스는 셰키나 테오파네스와 함께 하는 순간, 보통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대답을 종용하는 때가 있었다.
셰키나 테오파네스의 눈은 늘 희미하게 움직이고 있다. 눈동자 위에서 희미하게 막을 형성하는 금빛을 밀어내며, 남빛으로도 보이는 진한 푸른색이 꿈틀거린다. 보통 머리카락을 내려 한 쪽 눈을 가리고 있을 때가 많지만, 이런 식으로 별을 보는 날이면 머리를 걷었다. 그런 날 셰키나의 눈은 별빛과 같이 희미한 빛을 뿌렸다. 시선에 궤적이 남는 느낌이다. 하데스는 그리 생각했다.
오늘의 궤적은 하데스의 눈에 머물러 있다.
 
하데스씨는, 아나요?”
 
셰키나는 때때로 저런 말을 내던졌다. 너는 죽음을, 불행을 알지? 하고 느릿하게 찌르는 날카로운 말. 망가지고 상처입은 인간이, 동족을 찾기 위해서 너도 그렇지? 하고 물어보는 말.
 
질릴 정도로, 잘 알고 있다.”
 
하데스는 이제 저 말이 건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긍정의 대답을 내어 놓는다. 짝사랑이라는 물건이 그랬다.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라면서도 이기적이라, ‘우리라는 말에 목숨을 건다. 그는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로 영생의 몸을 얻은 자임에도, 죽지 않는 목숨이라도 걸어보였다. 이 모형정원에서 셰키나 테오파네스의 죽음에, 불행에, 저 처절함에 공감을 표할 수 있는 신은 오직 하데스 아이도네우스 뿐이다. 그 사실 하나가 그에게 벅차올라서, 그는 가시투성이의 희망을 움켜쥐는 것처럼 내뱉었다.
 
불행의 처절함이라면, 죽음만큼이나 잘 알고 있어.”
그렇죠? 하데스라면, 그렇게 말할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당신이 행복하기를, 늘 바라고 있어요. 셰키나 테오파네스는 덤덤한 어조로 이야기하며 짧은 웃음을 흘렸다. 금빛 시선의 궤적이 느릿하게 하늘을 향한다. 하데스는 붉은 시선의 궤적을 셰키나 테오파네스의 희고 말끔한 볼로 돌렸다. 저 볼에 닿는다면, 따스할까? 부드러울까? 무의식적으로 들어올린 손에 닿은 피부는, 차갑게 식은 겉 안에 따스한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대로 손이 녹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부드러웠다.
 
? 할 말이 있나요?”
 
하늘을 향하던 시선이 그의 눈을 향하는 것이, 유성우와 겹쳤다. 유성우의 밤, 셰키나 테오파네스의 시선을 몇 번이나 끌어당기며 소원을 빌었다. 행복을, 행복을, 행복해지기를. 그의 행복에 셰키나 테오파네스의 행복이 있으니, 우리는 같이 행복해지기를 몇 번이고 빌었다.
유성이 비처럼 쏟아지던 밤, 불행하고 상처받은 삶속에서 그리 빌었다.
 
그러나 우리는 셰키나의 말과 같이, 끊임없이 잃는 것을 경계해야한다.
 
어째서, , 왜 하필!! 절규가 하늘을 찢었다.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드러낸 신격에 억지로 끼워맞춘 세계가 삐걱거린다. 누구하나 가리지 않고 감정을 드러낸다. 쿠사나기 유이를 뺀 모두가 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니 셰키나 테오파네스의 시체가 이질적이다. 쿠사나기와 함께, 오직 인간이다. 살아있는 인간과 죽은 인간. ‘대표라는 말에 걸맞게, 겹친 구석 하나 없는 두 사람.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던 소녀는, 그 모습 그대로 죽음에 빠져들었다.
저승을 지배하는 신이 여럿 있는 곳이다. 그들은 제 세계에서, 각자의 저울로 망자를 심판하고 지배했다. 제 저승에 있다면,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 그저 육신을 잃고 춥고 어두운 곳에 떨어질 뿐인 새 시작. 금간 그릇 사이로 새어나오는 빛이라도 셰키나 테오파네스라면 능히 이겨낼 수 있는 시련이었다. 그리, 그리 생각했다. 허나 인간의 몸이라도 셰키나 테오파네스는 의 좌를 가지고 태어나 신으로 자라난 자였다. 인간의 몸은 죽지만 신의 영혼은 사라진다. 그대로, 종교 없는 인간이 생각하는, 죽음을 맞이했다.
어째서 셰키나 테오파네스였지?
하데스는 숨조차 쉬지 못하고 조용히 떠올렸다. 제가 떠올린 생각이 역겨워 차마 말이 나오지 않음에도, 쿠사나기 유이를 아끼는 마음이 강함에도, 그저 사랑이 지독해서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셰키나 테오파네스, 네가 죽으면 안 되지. 행복을 위해서 누구보다 노력했다. 꿈을, 희망을, 행복을 노래했다. 오직 죽기위해서 그랬다. 그러나 죄책감에 짓눌려 어느 것 하나 평범하게 누릴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렇게 죽어버렸다. 비틀리고, 불행하고, 허망하고, 손을 뻗고 싶던 그대로.
한 번도 제대로 행복해 본 적 없는 셰키나 테오파네스. 너는 사라졌으니 이제 영영 그대로겠지.
하데스는 자괴감에 몸을 떨면서도, 토트의 멱살을 잡아 올리는 로키를 보면서도, 주변인이 셰키나의 상실을 고통스럽게, 서서히 인정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끊임 없이 생각했다. 네가 그렇게 가 버리면 안 되잖아. 너는, 어째서, 그렇게 늘 아무렇지 않게.
 
소녀는 마지막까지 웃고 있었다. 하데스는 죽은이의 입술에 대고 몇 번이나 물었다. 다른 표정은 정녕, 잃어버렸냐고.

 

 

 

2018.09.07

27 마지막 기회 2020.05.19 2020.05.19 44
26 외로움 2019.08.19 2020.06.05 129
25 고독의 이름 2019.06.23 2019.06.23 36
24 파도 소리 2019.05.28 2019.05.28 112
23 떠난이의 사랑이 산 자를 살게 한다는 것은 늘 처참하다 2019.05.18 2019.05.18 26
22 인정받는 일 2019.05.18 2019.05.18 11
21 세네트 2019.05.18 2019.05.18 7
20 켄과 켄 2019.05.18 2019.05.18 11
19 어느 방과 후 2019.05.18 2019.05.18 10
> 네가 죽었다 2018.11.18 2018.11.18 24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