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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reative

인정받는 일

admin 2019.05.18 22:26 read.11

 

  신과 인간의 간극이란 원래 좁힐 수 없게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토트 카도케우스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었다. 본디 지식이라는 것이 그의 관할이고, 이 세계가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그는 지혜를 관장하는 창조신임에, 창세 이후의 모든 것을 기억하였다. 그런 말을 듣고, 한 인간은 말하였다.
  ‘, 그거 조금, 힘들지 않나요? 기억에 깔릴 것 같은데.’
  그가 누구인가. 그는 본질적으로 인간과 달랐다. 기억에 짓눌리는 일 따위 없다. 그의 자아는 그 정도로 연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인간은 이야기했다.
 
  “짓눌리지 않아도 말이에요, 기억 속에서 외로워 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도 가끔 그런데, 저보다 긴 시간을 살아온 선생님이라면 제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기억이잖아요. 그러면 외로워 질 수도 있죠. 신이라고 해도, 일단 자아가 있잖아요. , 아닌가? 하지만 제가 만난 신들은 다 외로워 했으니까요, 선생님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웃기지마라.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나.”
  “, 글쎄요. 늘 입이 험하고 가끔 상냥하고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는 선생님? 아니면 제가 늘 귀찮게 하는데 안 쫓아내는 상냥한 제후티님, 정도.”
 
  그것 말고는 뭐가 있겠어요? 라며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별난 것, 하고 타박하면 그 인간은 그저 하하 웃으며 보세요, 지금도 쫓아내지는 않으셨잖아요? 하고 즐거운 듯 말했다. 저 인간은 늘 그랬다. 가볍게, 마치 물컹이는 것처럼 굴며 토트의 모든 말에 상처받지 않은 양 이야기했다. 무슨 말을 하여도 웃으면서, 그의 옆에서 책을 펼쳐놓고, 이야기했다.
  애초에 그는 인간, 이라는 족속에 대해서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지 못했다. 그는 저승의 신이다. 죄를 짓고도 제 죄에 대해서 감흥을 가지지 못하는 자들, 심장을 먹히면서도 제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을 몇이고 봐 왔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은 무엇인가. 제가 만들어 놓고도 언젠가 지워버릴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시험하고, 선별할 존재였다. 암흑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빚어낸 존재였다.
  저 인간, 야나기 켄이라 말하며 본명을 언급하지 않은 저 자는 인간 대표였다.
  모형 정원, 신들에게 인간을 가르치는 학원이라는 계획에 대해서 토트라는 신은 그리 호의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제우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도 없다. 세계의 멸망은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이 세계의 가치를 판별하여 존속여부를 정해야 하는 존재.
  귀찮은 것은 딱 질색이다. 적당히 하겠다. 그리 선을 그으며 시작한 선생질이었다.
  인간 대표는 이례적으로 둘이었다. 예정대로 흘러가는 것은 드물었다. 귀찮은 것은 질색이다. 어린아이를 돌보는 것은 아누비스로 충분하다. 그렇기에 끈질기게 달라붙는 것을 좋을대로 하라며 놓아 둔 것이다. 토트, 그 뒤에 카도케우스라는 성을 붙이면서도 그는 저 자신이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당연했다. 그가 살아온 시간은 인간이 모르는 시간을 포함하여 몇 억, 몇 백억을 헤아린다. 기나긴 시간을 지내온 그는 그저 일 따름이다.
 
  앞서 언급하였으나, 인간 대표는 이례적으로 둘이었다. 한 명은 본디 예정되었던 자. 쿠사나기 유이. 그리고 한 명은, 이례적으로 선택된 자였다. 또 다른 신검에게 선택받은 자. 기후도, 문화도 비슷하지만 다른 곳에서 불려온 소녀는 쿠사나기 유이와 확연하게 달랐다.
  어째서 저 자가 불려왔는가 확실하지 않았다. 그저, 또다른 신의 의지가 개입하였으리라 짐작한다. 토트는 귀찮음에 얼굴을 찌푸렸고, 또 다른 인간 대표는 제우스에게 소리를 질렀다. 저 자신의 인생이 뒤바뀌면 어쩔 것이냐며 화를 냈고, 1년 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에 어이없어 하였다.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로, 온 신이 들을 수 있게 소리쳤다. 기묘하게 힘이 실린 목소리였다.
  ‘돌아갈 것이라면 왜 우리를 쓰죠? 저희는 소모품인가요? , 위대하신 바람둥이 눈에는 인간 따위, 원하면 가지고 필요하면 쓸 수 있는 장기말에 불과한 모양입니다. , 인간을 그렇게 보니까 신이 이렇게 된 겁니다. 인간을 불러 가르쳐야 할 정도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겁니다! 그 자는 금방이라도 제우스에게 달려들 것 같이 굴었다. 쿠사나기 유이는 그 자의 팔을 붙잡았고, 그 자는 놓아보라며 제 손에 들려 있던 책을 내던졌다. 협박에 비릿하게 웃으며 어디 죽여보시던가요, 인간 대표를 죽인 신이라. 그러면 학원 꼴이 아주 우습게 돌아가겠습니다?’ 라고 대응하며 제우스에게 당당하게 맞섰다. 그 당돌함에, 토트는 심기가 불편하면서도 어느정도 감탄한 것이다.
  본디 그는 인간을 시험하는 신. 시험받기에 충분한 자가 나타났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강렬한 첫인상과 다르게 그 자는 퍽 유하고 호의적으로 굴었다. 제 이름을 일러주는 목소리는 침착했고, 발음하지 못한다 하여도 화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현, 이라는 이름을 몇 번 발음하던 신들이 실패하는 것을 본 인간은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야나기 켄이라고 불러주세요. 제 이름을 일본식으로 읽으면 그렇게 되니까요. 하고.
  쿠사나기 유이가 그 인간에게 그것이 본명이냐 물었고, 야나기 켄이라고 자청한 인간은 이야기했다. , 대충 그래요. 하고. 토트는 그 과정을 귀찮음을 가지고 지켜볼 따름이었다. 귀찮았다. 그는 그저 제 도서관으로 돌아가, 책이라도 한 줄 더 읽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켄이라는 인간은, 환하게 웃었다.
 
  맹목적인 호감이었다. 야나기 켄, 이라고 자청한 인간은 신에게 인간의 성을 붙여주는 일에 의미를 모르겠다고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제가 가진 지식을 모두 꺼내어 늘어 놓았다. 성을 물건으로 하는건 좀 그렇지 않아요? 하고 질색하면서도 그에게 카도케우스의 성을 붙여주고는 환하게 웃었다.
  야나기 켄이라는 인간은, 끝없이 토트의 옆으로 찾아들었다.
  처음은 분명 책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이야기하였다. 그 인간은 신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당연하게도 지고한 이집트 신화를 가장 좋아한다고 이야기하였다. 이제 우리나라 말로는 없었거든요! , 이 서가가 싹 신화인가요? 어쩌지, 나 울 것 같아. 아뇨, 그 설레서요! , 읽어도 될까요? 방정맞은 어조로 이야기하는 인간은 진실로 울고 있었다. 그저 순수한 환희, 지식에 대한 환희였다. 눈을 빛내며 당장이라도 책 속으로 빠져들고 싶어 참지 못하는 얼굴. 물론, 지혜를 관장하는 신으로서 그런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그 이후로 보였던 반응은 귀찮기 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야나기 켄은 끝없이 책을 읽었다. 수업에 성실하게 임하지는 않았다. 졸고, 체력적 한계에 부딪혀 쓰러지고, 참여해야만 하는 활동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물론 간단했다. 식사 시간을 줄이고 수면 시간을 줄여가면서도 끝없이 책을 읽었다. 제가 읽지 않으면 책이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그 자신이 책을 읽기 위해 존재하기라도 하는 양 탐하고, 탐하고, 욕심내었다. 저 자신이 망가져가는 것을 알면서도 지혜에 취해 모든 것을 내던졌다.
  인간의 본성이 원래 그렇다며, 토트 카도케우스는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비웃으면서도, 인간에게 책을 건네주었다.
  켄의 존재는 귀찮아도 참아줄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 자는 토트와 언제나 조심스러운 거리를 유지했고, 어색한 웃음과 예의로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조심스러운 시선이 그에게 따라붙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켄은 아주 조심스럽게 그에게 말을 걸었다. 평소에는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던 주제에, 결연한 표정을 한 것이 퍽 흥미로워 적당히 상대해 주었다. 환한 표정으로 평소 쓰지 않던 공책까지 꺼내어 편 켄은 몇 가지 물어봐도 되냐며 들뜬 얼굴을 했고, 토트는 그 인간을 상처주어 떨어뜨릴 작정이었다.
  순수한 호의로 가득 찬 눈이었다. 그의 대답은 날카롭고, 인간을 기만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어리석음을 비웃고, 무의미한 탐구를 멸시하였다. 그 모든 말에 인간은 분명히 상처 입었다. 고통스럽고 무시당한 것이 괴로운 얼굴을 잠시 드러내보였음에도, 분명히 그에게 실망하고 증오가 고개를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야기했다.
 
  “, 그게 선생님 의견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확실히 제가 찾아보는 쪽이 좋겠죠. 제가 성급했네요.”
 
  감사했습니다.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어가며 이야기 한 인간은 제 짐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섰다. 평소보다 이른 귀환. 토트는 시선 한 조각 주지 않았고,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 토트 카도케우스는 아누비스에게 켄이라고 하는 인간이 도서관 밖에서 한참 울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아누비스는 인간은 싫다며 넌더리를 냈고, 인간에게 달라 붙어 위로하고 있는 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며 화냈다. 달라 붙어 있는 신은 여럿이나, 하데스 아이도네우스, 그리스 저승의 신이 유난히 켄을 싸고 돌고 있다 하였다. 귀찮은 일을. 토트는 야나기 켄이라는 적당히 울다가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실로 안일한 생각이었다.
  야나기 켄은 얼굴을 씻고 돌아와 서가 앞에 앉아 책을 훑기 시작했다. 그와 같이 빠른 속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 중에서는 압도적인 속도였다. 야나기 켄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책을 집어삼키듯 읽어 나가며, 그에게 질문하였던 것의 답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첫 날, 둘째 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야나기 켄은 제가 들 수 있는 가장 많은 양의 책을 빌려 나갔고, 다음 날이면 돌려 놓고 같은 양의 책을 가져갔다. 수업을 마치고 나가는 순간, 쉬는 시간마다 어김없이 책상에 쓰러져 잠드는 주제에, 독서량은 줄이지 않는다. 음식을 섭취하는 대신, 어쩔 수 없이 취해야 하는 최소한의 휴식을 제외하고, 저 자신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시간을 탐구에 쏟아붓는다. 토트는 그야말로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생각하였다. 그 자의 몸이 망가져 가는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수업시간에 대답을 위해 일어서다 쓰러진 것이 몇 번이다. 그는 야나기 켄이라는 인간의 노력을 비웃었다. 그럼에도, 노력하는 인간을 지켜보는 것은 그의 사명과 같은 일이다. 이제 그 누구도 도전하지 않는 일이라 할지언정, 자격을 가진 인간에게 지식을 주는 것은 그의 신생 전부를 통틀어 반복하던 일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열흘이 흘러, 야나기 켄은 당당한 얼굴로 토트 카도케우스의 앞에 섰다. 손으로 정성스럽게 쓴 종이 몇 장을 당당하게 내 보이며,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해 왔습니다! 직접 찾았습니다! 열흘 만에 말입니다! 어때요! 대단하죠!”
 
  칭찬을 바라는 어린아이 같은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켄은, 언젠가 토트의 시험을 받던 인간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의 시험을 당당하게 통과해 보이고, 어떠냐 묻던 자들을 떠올렸다.
  토트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호오, 내게 내 보일 정도로 완벽한 물건이라는 뜻인가?”
 
  야나기 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핫, 하는 소리를 내었다. 우물쭈물 종이를 품에 안아들며, 어색한 어조로 어물어물 말을 돌렸다.
 
  “, , 그런건 아니고……. 그런 것 보다는, 해 냈다는 뜻이죠. 정말로 열흘동안 500권이 넘는 책을 다 훑었다고요. 정리도 했고. 이 정도면 그렇게 비웃으실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하고…….”
  “두고가라. 확인해주지.”
  “, 아뇨!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반항할 셈인가?”
  “아닙니다……. 두고 가겠습니다…….”
 
  도서관 문 밖으로 나선 야나기 켄이 아누비스에게 우는 소리를 하는 것은 토트에게 싫을 정도로 잘 들렸다. 열흘간 뺀질나게 드나들며 친해지기라도 한 것인가. 그녀가 우는 것을 보고 짜증내던 아누비스는, 토트는 나쁜 신이 아니라며 웃고 있었다. 상냥하고 잘 챙겨주는 사람이니까, 분명 칭찬해 줘! 아누비스가 즐겁게 꺼내는 말은 분명 인간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임에도, 켄은 제대로 대화하고 있었다.
  토트 카도케우스는 야나기 켄의 레포트를 집어들었다. 글씨체는 신경썼다고 하여도 삐뚤거리는 면이 있고, 일본어 대신 켄의 모국어로 쓰여있고, 상형문자를 베껴쓴 곳은 못 봐줄 정도의 악필이기는 했지만.
  열흘만에 만들어 낸 것 치고는 괜찮은 보고서였다.
 
  아누비스는 토트에게 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늘었다. 속이 뻔히 보이는 일이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이 친해져서 같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들. 아누비스의 사고방식은 그런 단순한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좋은 것과 좋은 것은 더했을 때 무조건 좋을 것이라는 사고방식. 토트는 그런 단순한 사고방식에 넌덜머리를 내는 편이었으나, 아누비스가 떠드는 것은 시끄럽긴 해도 방해되지는 않았기에, 그의 말을 막지 않았다. 그렇게 아누비스는 매일 켄에 대한 것들을 조금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집트 신화를 좋아한다는 이야기, 미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 의외로 인간들도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 맛있는 것을 만들어 주었다는 이야기. 즐거움과 반짝이는 감정으로 이야기 뒤에는 늘 무언가 따라 붙어 있었다. 이집트 신화에 대해서 잘 안다는 이야기 뒤에는 가장 좋아하는 신은 토트라고 말했다고 하였고, 무언가 맛있는 것을 만들어 주었다는 말 뒤에는 그가 옥수수로 만든 것 밖에 먹지 않는다고 하여 준비했다는 편지와 함께 팝콘과 콘치즈 따위가 들어 있었다. 인간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며 보여준 것은 켄이 직접 만들고 대부분 채워넣은 이야기 책과 같은 것이었고, 그 외에도, 수많은 것들이. 책장 옆, 늘 토트가 앉는 자리 옆에 쌓여갔다.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갔다.
 
  모형정원의 신들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분명 쿠사나기 유이와 야나기 켄이 있었다. 그 둘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방법을 만들어서, 어떻게든 길을 안내해 나갔다. 분명 바쁘다는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잠을 줄인 것이 분명한 얼굴을 하고도, 켄은 늘 도서관에 와서 종이 칠 때 까지 앉아 있었다. 천문부의 일이 있어도 늘 얼굴을 비추고, 책을 빌렸다. 문득, 토트의 옆 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달싹이는 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켄은 머뭇거리며 토트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 오늘은 독서 안 하시는 것 같아서 그런데, 혹시 괜찮으시면 말을 걸어도 될까요?”
  “안 된다.”
  “, 그런가요.”
 
  그렇다면 실례했습니다. 하고 어딘가 부끄럽다는 얼굴로 볼을 긁적이던 야나기 켄의 얼굴을 보고, 토트는 순간의 변덕으로 입을 열었다.
 
  “용건이 있다면 당장 이야기해라.”
  “, , 혹시, 괜찮으시면 말입니다. 종이 치고 나서도 책을 읽으러 와도 될까요? 문단속은 제대로 할테니까. 안 되면 여기서 자겠습니다. , 빌려가는건 너무 양이 적어서…….”
 
  천문부 일을 하면서 읽자니까 너무 시간이 없어서요.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서툴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어설픈 웃음과, 꿈지럭거리는 손은 긴장했음을 여실하게 드러냈다. 문득, 토트는 우스워졌다. 제우스 앞에서도 당당하게 소리를 치던 저 인간은, 꼭 그의 앞에서 더 없이 긴장했다. 마치 그가 무언가 자신에게 해를 끼치기라도 할 것처럼, 그에게 죄를 짓기라도 한 양 긴장하고, 고개를 숙이고, 저자세를 유지했다.
  그래서 토트는 더욱 싸늘한 목소리를 내었는지도 모른다.
 
  “안 된다.”
  “역시 그런가요…….”
 
  눈에 띄게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인간은 도서관 밖으로 걸어 나갔다. 축 늘어진 어깨가 눈에 거슬려, 토트는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읽을 책은 산더미다. 그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날 저녁, 토트는 아누비스에게 영문 모를 비난을 들어야 했다. 말 없는 시위. 뚱한 얼굴로 한참동안 바라보는 아누비스가 신경쓰여 토트는 한숨을 내쉬고 말을 걸었다.
 
  “아누비스, 도대체 무슨 일이냐.”
 
  뚱한 표정을 풀지 않은 아누비스는, 평소와 다른 어조로 이야기했다.
 
  “토토는, 켄이 싫어?”
  “하아?”
  “켄은 토토가 좋댔어.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앞에서는 긴장해서 말이 안 나온다고. 오늘은 켄이 울었어! 토토가 역시 켄을 싫어한다고. 켄은 좋은 인간. 아누비스는 켄이 좋아. 그런데 토토는 켄이 싫어?”
 
  맥락 없는 말이지만 필요한 정보를 읽어내기에는 부족함 없는 말이었다. 아무래도 켄이라는 인간은 아누비스를 단단히 사로잡은 모양이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토트는 좋아한다고 말했다는 문장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다. 그의 앞에서 주눅든 것은, 그저 어떻게 친해져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현이라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화를 내는 아누비스를 풀어주는 쪽이 귀찮지 않겠다는 생각에, 토트는 대답했다.
 
  “싫어하지 않는다.”
  “그럼 좋아해?”
  
  실로 단순한 질문이었다. 그럼에도, 토트는 대답 대신 책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누비스는 몇 번이고 좋아해? 좋아하는거지? 좋아하는구나! 하고 말을 걸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쓸모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보는 책장은 오래도록 넘어가지 않았다.
  다음 날, 켄은 이상할 정도로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눈을 마주치기는커녕 그를 보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도서관에도 오지 않았다. 그런 이상 행동은 며칠이고 지속되었고, 토트는 날로 기분이 저조해졌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가?
  켄이 도서관에 돌아 온 것은 일주일 후, 빌린 책이 연체되지 않기 위해 반납하러 온 것이었다.
 
  “, .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 날씨가 참 좋죠?”
  “비가 오고 번개가 치는 날을 네놈은 좋다고 하나 보군.”
  “아 맞다, 망할. , 이게 아니라. , , 이런 날은 책 읽기 좋죠! 아니, 원래 책 읽기 나쁜 날이라는게 없긴 하지만, 그래도 뭐라고 해야할까, 이렇게 비가 오면 도서관이 유난히 아늑다하고 할까.”
  “하고 싶은 말을 해라, 네놈에게 할애할 시간은 많지 않아.”
 
  쓸데 없는 말을 하는 입을 다물게 하지 위해서 꺼낸 말에, 켄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굳어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정말 어색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 요 며칠동안, 대놓고 피한 건 정말 죄송했습니다. 아누비스가 제가, , 선생님을 좋아해서 어색해했다는 것도 전하고, 절 싫어하냐고 묻기까지 했다고 하니까 선생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어서…….”
  “할 말은 그것뿐인가.”
  “, 아뇨! , 제가 피하는게 티가 나서 기분이 상하셨을 거라고 하데스가 말했거든요. 그래서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영 용기가 안 나서 요 며칠간 정말 실례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 선생님을 좋아하는 건 맞지만 정말로 신경 안 쓰셔도 돼요. 혹시 제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불편하시다면 다시는 도서관에 오지 않겠습니다…….”
 
  우물거리면서 말하는 주제에 목소리가 떨린다. 도서관에 오지 않는다, 고 말하는 것은 그 자신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겠지. 토트는 그 말이 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기에, 책으로 눈을 돌리며 이야기했다.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네놈이 어떤 감정을 가지든, 나랑은 상관 없는 일이다.”
 
  분명 파아앗, 하고 소리가 났을 것이다. 그 정도로 빠르게 밝아진 켄은, 환한 얼굴로 밝게 소리쳤다.
 
  “감사합니다!”
 
  물론 그러고는 부끄러운 듯 빠르게 종종걸음으로 뛰쳐 나갔지만, 도서관 문 너머에서 야호! 허락 받았다! 이제 저는 자유로운 켄이에요! 하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토트 카도케우스는, 여전히 방정맞은 놈이라고 생각했다.

 

 

 

2018.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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