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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admin 2019.08.19 02:38 read.129

  선생님, 선생님은 알고 계신가요? 인간이라는 족속은 때때로 이별한 자신이 그리워 외로워진답니다. 나아가기 위해서 포기해야 했던, 자라나기 위하여 멀어져야 했던 그 모든 것이 그리워 외로워지는 밤이 있어요. 달에는 츠키토가 살고, 당신이 있어요. 그러면 제가 떠나보낸 그 모두는 어디로 갈까요? 모든 환상이 깨져나간 이후에, 저의 낭만은 어디서 울고 있을까요?

 

 

  인간의 부질없는 희망 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이해자에 대한 기대가 아닐까. 책을 집어 드는 그 짧은 사색의 시간, 문득 생각했다.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늘 헛된 희망 속에서 살아간다. 이해자를 갈구하는 건 자신이 옳다고 증명하기 위함인가, 그저 외로움인가.

 

  욕망의 이유를 안다고 지워낼 수 없으니 이건 무의미한 사색이다.

 

  손끝에 스치는 종이의 촉감은 매끄럽다. 내 인생도 이렇게 매끄럽게 굴러갔다면 좀 더 인간 대표처럼 평범하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저 자신의 특별함을 자랑으로 삼을지언정 한 번도 아쉬워한 적이 없기에 이는 더욱 뼈아픈 가정이다. 이건 전적으로 당신들 신의 탓이다. 인간 이외의 지성체를 상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화초처럼 자라온 인간을 가져다가 너희들이 인간 대표이니 신들에게 인간을 가르치라니. 내가 대표이니 나를 기준으로 인간을 판단하겠다 선언하는 건 과하다. 그 어떤 인간이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가? 저토록 오만하니 기어코 제 숭배자와 멀어지고 만 게지.

 

  서서히 노을이 지는 도서관은 적막하기 짝이 없다. 제우스에게 부탁해 학생의 환상을 도서관에서 쫓아낸 탓이다. 부활동이며 학생회가 겹쳐있는 오늘은 그 누구도 없는 도서관을 독점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창문을 타고 넘는 온도 없는 볕이 책 위로 쏟아지고, 홀로 된 정적 속에서 심장소리가 들리는 착각에 빠져든다. 이 느낌을 알고 있다. 악몽을 꾸고 일어난 밤, 나를 영원히 떠나보낸 순간에 느껴지던 정적이다.

 

  두려움을 닮은 외로움이 심장을 파고든다.

 

  오직 인간만이 외로워한다. 그렇게 믿고 살아왔다. 허나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 무시하는 동물도 제 짝과 떨어지면 외로움을 느끼고 상심하여 죽어버린다. 그러면 세상 만물, 감정 가진 것은 모두 사랑하고, 애착을 품고, 외로워한다. 그렇다면 당신도 외로워하는가? 만물을 굽어보고 우리를 하찮다고 말하는 당신도 우리와 같은 외로움을 느끼는가?

 

  문득 침묵이 목을 조른다. 호기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곳에 발을 들인 느낌이 든다. 과한 외로움은 인간을 어둠 속으로 이끈다. 저 짙은 어둠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저 속에는 내 동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헛된 기대를 품고야 만다. 나는 기꺼이 어리석음에 몸을 내던진다. 짙은 노을이 길게 늘어지는 도서관, 책을 모두 읽고 책장으로 다가가는 당신의 등 뒤로 목소리를 높인다.

 

 

  

  “선생님, 선생님도 외로워하나요?”

  “헛소리를.”

  “하지만 대답해 주세요, 신도 외로움을 느끼잖아요. 선생님도 외로움을 느끼나요? 고독을 아는것이 아니라 이해하고있나요?”

 

 

 

  대답이 들려야 할 순간, 하교 시간을 알리는 종이 길게 울린다. 모두의 공간이 되어 마땅한 도서관은 이 순간 저 신의 개인적인 공간으로 변하고, 나는 이 사적인 공간에 들어앉아서 가장 내밀한 감정을 묻고 있다. 외로워하나요? 당신도 우리와 같은 약함을 가지고 있나요?

 

  토트 카두케우스는 책을 꽂아 넣는다. 그 우아한 몸짓에서 완벽을 읽어낸다. 그래, 저 자는 그토록 완벽한 신이다. 홀로 오롯하게 존재할 수 있는 자. 저 깊은 신화 속에서 근원을 찾을 수 없는, 가장 오래된 신의 반열에 속하는 자. 동시에 나는 그가 책장을 쓸어내리는 손길에서 즐거움이 묻어나던 것을 기억하고, 아직 읽지 않은 책으로 책장을 가득 채워 넣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 기억에 갇혀있을 동안 대답이 돌아왔다.

 

 

 

  “네놈은 어떻지?”

 

 

 

그는 푸른 눈동자를 들어 내게 물었다.

 

 

 

  “네놈의 고독을 내게 투영하고 있던 게 아닌가? 네놈의 감상을 먼저 말해라, 야나기. 네놈은 외로움을 이해하고 있나?”

  “, . .”

 

 

 

  떨떠름한 대답이 공허하게 허공을 가로지른다. 어떻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나는 나를 쌓아 올리는 몇 안 되는 기억을 끄집어내어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흉터가 울긋불긋 꽃 핀 마음의 가장자리에서 오래된 욱신거림이 꾸물거린다. 상념을 눈 깜빡임 한 번에 떨쳐낸다. 찰나의 어둠이 머리를 정리한다.

 

 

 

  “외로움도, 비참함도, 고립감도 우스울 만큼 잘 알고 있어요. 극복했으니까요.”  

  “호오, 건방진 말을 하는군. 누구나 인생을 살아갈 때는 홀로 태어나 홀로 떠나게 된다. 이해 따위는 환상에 불과한 세계에서, 누구나 허상을 좇아 타인을 이해했다는 착각에 빠져 이방인의 이해를 구한다. 네놈은 그것을 극복했다고?”

  “. 때때로 찾아드는 외로움이야 어쩔 수 없지만, 저는 외로움을 극복했어요. 타인 없이도 홀로된 기분을 느끼지 않는 방법을 찾아냈으니까요.”

 

 

 

  눅진하게 말라붙은 진물의 냄새가 올라온다. 동시에 그것을 긁어내는 칼의 서늘한 감촉과, 오래된 흉터 위에서 느껴지는 매끄러움이 손가락을 간지럽힌다. 처절하고, 광기 어린 발악이었다. 오직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혼자 살아남기 위해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내게 안겨준 과실이었다.

 

 

 

  “선생님은, 무언가를 사랑해 본 적 있으신가요?”

 

 

 

  야나기 켄은, 현은 작게 웃음 지었다.

 

 

  “‘극복이라는 건 그것과 작별하는 게 아니에요. 언제 마주해도 아무렇지 않게, 나의 삶과 이상에 위협이 되지 않는 순간이 되어서야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잖아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외로움을 극복했어요.”

 

 

  단정하고 나긋한 목소리 위에서 번들거리는 피의 색. 죽어가는 노을이 느릿하게 창 너머에서 기어든다. 온도를 가지지 않은 빛이 야나기 켄의 위로 내려앉아 모든 색채를 한 가지로 물들이고, 야나기는 핏빛인지, 금빛인지, 붉은빛인지 모를 광채 속에서 다정하고 나긋한 어조로 단어를 늘어놓는다.

 

 

 

  “사랑하면 되는 문제였어요. 저는 그 무엇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고 있었으니, 그 무엇이나 다 사랑하면 돼요. 신을, 인간을, 나를, 나의 가족과 친구, 해가 지는 시간의 노을이 비추어내는 아름다움과 푸른 하늘의 맑음. 음악과 풍경과 감정. 선명하고 아름다운 것에서 흐릿하고 추상적인 것까지 모두.”

 

 

 

  온통 황금빛으로 가득 찬 공기 속에서 처절함은 의미를 잃는다. 느릿느릿 지평선 너머로 기어가는 햇볕 아래서 모든 발악은 과거의 잔재로 변해간다. 야나기 켄은 지금 이곳에서 상처를 보여주고 속말을 쏟아내고 있지만, 동시에 과거의 폐허가 제대로 기능하는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다. 하여 이미 아물어버린 흉터에서 피가 흐르고, 웃으며 대화 주제로 삼을 상처에서 진물이 흐른다.

 

  현실감이 사라진다.

 

  신의 눈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던 붉은 땅의 환상이 반짝이고, 과거의 광채 속에서 야나기의 머리카락과 눈은 반짝이는 금빛을 뒤집어쓴다. 토트는 야나기의 고백에 고해를 닮았다는 낙인을 내려찍었다. 자랑스럽게 내어 보이는 것이 비틀려있고, 말하는 자는 제가 미쳐있다는 사실을 숙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야나기는, 토트에게 저 자신을 내어 보이기로 결정했다. 얇은 종이로 덮어놓은 겉치레를 떨어뜨리고, 여전히 금가고 망가진 를 드러내 보인다. 이는 하나의 호소이며, 호의였다.

 

 

 

  “저는 선생님도 사랑해요.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사랑해요. 저의 삶은 그러해요.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사랑하고, 밀어내도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고. 사랑의 대상을 선택하는 건 어렵지만, 한 번 마음먹으면 완전히 불타 사라질 때까지 물러서지 않아요.”

  “마치 성자와 같이 말하는군, 야나기. 네놈의 사랑은 결국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모순에 지나지 않아. 타인을 삶의 도구로 이용하는, 이기적인 일일 뿐이다. 그것을 네놈의 사랑이라고 말할 셈인가?”

 

 

 

  태양신 라의 배가 지저로 내려가고, 헬리오스의 마차가 내려앉고, 까마귀들이 세상 끝의 나무로 돌아갈 때. 숨 가진 모든 것이 저마다 하루의 끝을 향하며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순간, 인간 대표는 웃었다. 한 번도 평범해 본 적이 없고, 그 누구의 애정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저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가능했던 인간은 비난 앞에서 해사한 웃음을 자랑스럽게 내걸었다.

 

 

 

  “. 하지만 사랑인걸요. 그 누구나 숭고하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감정. 삶의 이유로 삼기에는 어울리지 않나요. 이유가 어찌 되어도 좋아요, 결국 이유는 사라지고 감정이 끝에 남으니까요. 신을 모시는 일과 같잖아요.”

 

 

 

  인간은 창조신의 앞에서 뻔뻔하게 신앙의 근원을 이야기한다. 번개를 설명하기 위해 제우스와 토르를 만들고, 저 위대한 나일이 몇 명의 신으로 분화한 일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를 닮은 인격체를 내세우고 그들을 경배하던 일과, 당신들이 우리에게 부여했던 감정을 농담거리 삼는다.

 

 

 

  “이유가 아무래도 좋아요, 시간이 지나면 동기는 사라져요. 절 보세요, 이제 그저 사랑할 뿐이잖아요. 만물을, 어설프게나마 나 자신을, 신과 자연을, 그리고 당신을요, 제후티님.”

  “대단한 듯 입을 놀려대는군.”

  “제게는 대단한 일이니까요.”

  “사랑은 마냥 아름다운 감정이 아니다, 네놈은 사랑이 오직 부드럽고 다정한 일이라고 생각하나? 삶의 의미를 찾는 만큼 잃게 만들고, 사람을 죽이게 만드는 것 또한 사랑이다. 잘난 듯이 떠들어대고 있지만, 야나기, 네놈 또한 사랑이 완전하지 않음을 알고 있지 않나? 네놈이 사랑하는 것이 네놈에게 무언가 보답을 쥐여준다고 장담할 수 있나?”

 

 

 

  토트의 말이 끝나고, 야나기는 기묘한 표정으로 침묵했다. 그건 마치 무언가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발악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동정과도 같았으며, 동시에 괴로운 일을 선고해야 하는 자의 고뇌와도 닮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덮고 가장 크게 드러나는 것은, 희열이다. 결국, 숨기고 숨겨온 일을 고백하듯이. 오랜 짝사랑을 고백하고 끝내기로 마음먹은 사람의 후련함과 닮은 감정.

 

 

 

  “하지만 선생님, 저는 저를 싫어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걸요.”

 

 

 

  저는 눈이 좋으니까요, 게다가 보답이 필요하지도 않고. 하고 덧붙이는 야나기는 지는 해 속에서 유난히도 얼굴의 음영이 두드러졌다. 오물오물 움직이는 입술은 빛을 삼키는 듯 보였고, 혀끝에서 노을의 단맛이 맴돌았다. 달큰하고, 어딘가 주눅 들어버린 목소리로 해사한 기쁨을 담아서 야나기는 중얼거렸다.

 

 

 

  “제가 사랑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사랑하지 못한 건 저뿐이었어요. 이미 떠나보낸, 어딘가에서 죽고 시체조차 수습하지 못했을 저.”

 

 

 

  토트 카두케우스는 기묘한 기분 속에서, 거슬리는 것을 제외하고 납득했다. 저자는 지금 제가 저를 사랑하지 못했다. 감당할 수 없으니 잊어버리기로 결심했다 말한다. 이를 위대한 업적이라도 되는 양 만족스럽게 자랑한다. 한 점 의심도 없는 눈동자가 그를 올려다보고 있을 때, 그는 무어라 대답해야 했던가?

 

  토트가 타고 있어야 할 태양선은 항해를 멈추지 않고, 세트는 라를 지키기 위해 전투를 준비하며, 결국 해가 완전히 서산 너머로 사라진다. 빛을 받고 선 야나기의 얼굴이 서서히 흐릿하게 변한다. 인간은 이깟 어둠에 시야가 가려지는 존재이고, 그는 인간의 몸에 갇혀 이 학원에 존재한다. 야나기 켄의 얼굴은 어둠 속에 묻혀있고, 희미한 달빛이 반대편의 창에서 야나기의 등을 비췄다.

 

 

 

  “이제 제 질문에 대답해 주세요. 선생님은 사랑을 해 본 적 있나요? 외로움을 느끼나요?”

 

 

 

  토트의 귓가에서 우리를 이해하나요? 하고 겹쳐 들리는 목소리는 환청이 아니다. 의자에 앉아 올려다보는 야나기의 얼굴은 희미한 달빛 속에서 표정을 분별할 수 없는 형체로 변한다. 그의 시간, 콘수와 세네트를 두어 그의 것으로 삼고 신위를 빼앗은 달빛 속에서 위대한 여섯 신이 탄생했다. 허나 이 탄생의 시간에도 믿음은 태어나지 못한다. 토트의 침묵이 하여금 대답이 되고, 야나기는 그가 이 모든 감정을 저와 온전히 공유할 수 없음을 고통스럽게 깨닫는다. 이는 야나기가 살아갈 세계에서 유일하게 그를 온전히 이해할 가능성을 지녔던 이가 내미는 부정이다. 그의 고독은 영원하리라 선고하는 상황 앞에서, 야나기는 전지전능하지 않은 토트 카두게우스를, 케메누의 군주이며 위대한 따오기이고 하늘 아래 모든 것을 측정하였으며 해가 없을 때도 시간의 흐름을 증명하던 세 배 대단하고 또 대단한 신을 원망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당신이 관장하는 영지英智속에 우리는 없나봐요.”

 

 

 

  야나기 켄은 큭큭거리는 웃음으로 책을 덮었다. 또 하나의 깨달음, 또 하나 사라진 낭만. 앎은 때때로 기대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그러니 모든 것을 알고 앞으로 태어나는 정보를 모두 저 머릿속에 담아야 할 신은 그 무엇 하나 기대하지 않는다. 믿고 기대하는 일은 어리석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기대하고 싶었다. 나는 무지하므로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당신이 우리와 다르고, 모든 것을 알기에 나를 알 수 있다고.

 

  허나, 보아라. 이 거대한 모순을.

 

 

 

  “무얼 기대했지?”

  “말한들 달라지지 않을걸요.”

 

 

 

  토트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하여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없다. 그는 나를 이해할 수 없고,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 허나 이해받기 위해서는 외로워야 하는가? 타인과 함께하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 고독해야 하는가? 보아, 완전히 생각이 헛돌고 있잖아.

 

 

 

  “그냥, 선생님. 이것만 들어주세요. 당신도 저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며 기대해 보는 건 어떨까요? 당신이 알지 못하는 저 티끌만 한 무지의 너머에, 당신을 이해할 당신의 동반자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야나기 켄은 텅 빈 속으로 숨을 채워 넣었다. 차갑기만 한 공기가 폐부의 부피를 느끼게 만들어서 괴로웠다. 눈 안쪽이 타오르고, 목이 꺼끌꺼끌하지만 야나기는 웃었다.

 

 

 

  “? 나쁘진 않잖아요.”

 

 

 

  당신이나 나나 이해할 자 아무도 없다는 소리를 하며 우는 것보단 웃는게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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