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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과 켄

admin 2019.05.18 22:17 read.11

  야나기 켄, 이라고 하는 인간은 특이한 족속이었다. 수많은 인간 중에서 대표로 뽑혀 왔으니 분명 인간군상의 표본이 되어야 할 터인데, 그 자신은 저를 이상한 놈이라 칭하며 부디 제게서 인간을 찾지 말아달라는 말을 하였다. 하데스 아이도네우스에게 존재하지 않은 부인의 이야기를 하며 환히 웃었고, 아누비스 마아트의 성을 들으며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대부분 밝게 웃었고, 있는 힘껏 신들을 도왔다. 쿠사나기 유이가 밝고 환한 웃음을 주는 자였다면, 켄은 언제든 기대도 된다고 웃는 자였다. 아마, 그랬다.
  토트 카도케우스는 야나기 켄이 유난히 따르는 신이었다. 본인의 입을 빌려 이르건데, ‘같은 반의 신은 챙겨줘야 할 것 같지만, 토트님은 선생님이잖아요?’ 라는 간단한 이유로 켄은 그를 졸졸 따라다니고는 했다. 대놓고 싫은 기색을 보여도 선을 넘지 않고 뒤에서 하하 웃었으며, 그가 모멸감을 느끼게 하면 분노하다가 어느 순간 다시 뒤쫓아 오는 족속이었다. 신화를 공부하며 그가 작은 이야기라도 해 준다면 눈을 반짝이며 경청하였고, 도서관에서 귀찮게 구는 작자가 있으면 제가 나서 처리하였다. 토트는 억겁의 시간을 존재하며 수많은 인간을 보아 왔으나, 야나기 켄이라고 하는 족속은 확실히 특이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켄의 가장 큰 특성이라고 한다면, 제 국적에 있었다. 쿠사나기 유이와 크게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은 분명 그 탓이었다. 쿠사나기 유이는 일본에서 데려온 고등학생. 본디 그녀 홀로 인간 대표가 될 예정이었기에 모형정원은 일본의 고등학교에 맞춰져 있었다. 그 시스템 속에서, 한국 출신인 켄은 상당히 헤매고는 했다. 수많은 점에서 그랬다. 책을 탐하였고, 어찌 교복을 치마만 입고 생활해야 하냐며 목소리를 높혔으며, 장난을 주도하여 나무를 타고 건물에서 뛰어내리고는 하였다. 쿠사나기 유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인간. 토트는 야나기 켄을 밝고, 부산스럽고, 제멋대로라고 짐작했다.
  분명 치명적인 판단 실수였다.
 
  어느 날, 날이 흐리기 짝이 없던 날이었다. 본디 모형정원의 날씨는 제우스의 기분에 따라, 주사위가 구르는 것에 따라 변덕스럽게 바뀌기 마련이었다. 덕에 그 누구도 날씨를 신경쓰지 않았다. 유일하게 켄이, 불길하다며 창가에 앉아 있는 하데스와 자리를 바꿨다.
  아마 신과 인간의 차이였을 것이다. 쿠사나기 유이와 야나기 켄의 차이는 살아온 방식보다 사고 방식의 차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날이 그들에게 있어서 야나기 켄을 다시 보게 만들었음은, 그 날 하데스의 불행이 기어코 일을 냈기 때문이다.
  요컨대, 켄은 자주 하데스를 끌고 수업을 빠지거나 어디론가 훌쩍 사라지고는 했다. 하데스 아이도네우스라는 신은 꽤 오랫동안 외롭게 살았고, 켄이 저는 불행에 휘말리지 않는다 호언장담하며 멀쩡했기에 켄과 기꺼이 어울렸다. 그렇기에 모형정원의 모두는, 야나기 켄이 지독하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 날은 달랐다.
 
  토트는 켄을 불러 앞에서 발표 시켰다. 아마 졸고 있는 것에 대한 징벌의 의미가 강했을 것이다. 켄은 유난히 힘 없는 몸짓으로 걸어나와 잠긴 목소리로 제 의견을 늘어 놓으며 사례를 줄줄 읊어대기 시작했고, 이내,
  창밖을 바라보고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흐린 하늘과, 유리창이 있었을 뿐. 그러나 켄은 분명히 실질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고, 당황하여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빠르게 뛰어 하데스의 의자를 걷어차고 책상을 창문 쪽으로 돌렸다.
  창문의 유리가 깨져 조각이 쏟아지는 것은 바로 그 다음 순간에 일어났다.
  켄은 책상 뒤에 서서, 쏟아지는 유리조각에 베인 얼굴로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들리는 듯 귀를 막다가, 결국 눈을 뜨고 호통쳤다. 어딜 죽은자가 산 자를 위협하느냐. 네놈들은 신이 받아주니 진실로 힘을 가진줄 아느냐. 썩 자리에서 꺼지지 못할까. 위협을 하며 꺼내들어 휘두른 것은 신검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공기가 변했다.
  정적, 모두의 시선이 몰린 가운데 몇 번 숨을 헐떡이던 켄은, 줄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그런 그녀를 안아 올린 것은 의자 째로 넘어가 뒤에 있던 하데스 아이도네우스였다. 그 누구도 상황을 짐작하지 못했다. 단지 베인 것을 걱정하였고, 어찌 된 일인지 술렁였다. 아폴론은 소리 높혀 켄의 안부를 물었고, 발데르는 병문안을 가는 것이 어떠냐 물었다. 하데스는 침묵하였고, 토트는 수업을 중단하였다.
  켄은 다음 날 밤이되어서야 제대로 정신을 차렸다.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난 켄은, 비척이며 방으로 돌아가다가 토트와 마주쳤다. 물에 빠진 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토트와 마주하고는, 몇 번 눈을 깜빡이고 나서야 이게 꿈이 아님을 자각한 모양이었다. 그러고도, 왜 이곳에 그가 서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 얼굴을 하다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 하고 신음을 흘린다.
 
  “일어난건가.”
  “, 아마도. 꿈이 아니라면, 그렇겠죠.”
  
  야나기 켄은 토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양 웃었다. 그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웃음이라, 토트는 문득 그의 앞에서 짓던 웃음이 모두 저런 식으로 꾸며낸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상은 알 수 없다. 야나기 켄은, 평소와 같이 부산을 떨지 않고 그저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기묘한 정적, 토트는 문득 인간의 습성 중에 거짓말을 빼 놓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켄은 무언가 말하고 싶은 얼굴을 내비추다가, 이내 눈을 깜빡인다. 토트는 켄이 그런 방식으로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는 것은 생각을 정리하고 단념하기 위함임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토트는 이유 없이, 괜한 변덕으로 야나기 켄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라면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그를 확인하였을 학생은 아무런 말 없이 걸어가다가, 복도에서 멈춰선다. 서성거리며 고민하는 시간. 그리고, 켄은 뒤를 돌아보는 대신 앞으로 걸어나갔고, 옆으로 몸을 던졌다. 동시에 켄이 내딛어야 했을 곳은 무너져 내렸다.
  기묘한 정적, 돌조각이 부스러지는 소리만 가득 한 가운데, 토트는 켄쪽으로 다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부서질 리가 없는 곳이 부서졌으니 지혜의 신이라도 필시 당황했으리라. 몸을 날린 켄은 발목을 삐었는지 연신 욕을 중얼거리다가, 토트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안에 가득 차 있는 것은 두려움이었다. 켄은 모든 것을 더없이 두려워하는 눈으로 토트를 바라보고는, 충동적으로 그에게 손을 뻗으려고 했다.
  내뻗어지던 손은 중간에 멈췄다. 동시에 켄의 눈에는 다른 두려움이 덧씌워졌다. 몇 번 입술을 뻐끔거리다가, 켄은 손을 내리고, 발목을 주무르며,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저기 선생님, , 죄송하지만, 기숙사까지 데려다 주실 수 있을까요? 그게, 별 뜻이 있는게 아니라, 매일 도서관에서 재워달라고 이야기했던 주제에 이렇게 부탁하면 죄송하지만, , 뭐라고 해야할까.”
 
  중얼거리던 목소리는 이내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듣지 못할만큼 작아져서, 낮게 울렸다.
 
  “혼자 걸어가면 도중에 죽을 것 같아서 무서워요…….”
 
  토트는 제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켄을 처음 접했기에, 미묘한 기분이 되었다. 그가 판단하고 기억하는 속에 있는 야나기 켄은 분명히 부산스럽고 시끄러운 족속이었다. 그가 아무리 매몰차게 이야기해도 삼일이면 회복하고 다시 그에게 말을 걸어오는,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고 회복이 빠른 인간. 토트에게 있어 켄은 과도하게 뻔뻔해서 대하기 쉬운 인간이었고, 그렇기에 그런 식으로 다가오는 조심스러운 말은 충분히 충격이었다. 도대체 야나기 켄은 무슨 생각으로 그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말인가?
 
  “데려다주지.”
 
  토트는 입을 열어 질문하는 대신 켄을 일으켜세웠다. 켄은 그의 손에 의지하여 일어서다가 발목이 아픈지 몇 번 휘청였다. 필사적으로 그에게 체중을 넘기지 않게 노력하면서 일어선 켄은 자연스럽게 그의 손을 놓고 절뚝절뚝 걷기 시작했다. 토트는 굳이 그녀에게 손을 뻗는 대신, 제가 앞장서 걸었다. 그렇게 달밤의 기묘한 동행이 시작되었다.
  꽤 오랫동안 걸었다. 토트는 새삼스럽게, 학교에서 기숙사까지 그렇게 멀었던가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켄은 뒤처지지 않고 그의 바로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토트의 걸음은 꽤 빠른 편이었으니, 다친 다리로 절뚝이는 켄이 따라가기는 상당히 버거웠을 것이 분명하다. 평소라면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나,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켄이 조용한 것이 신경쓰여 뒤돌아 본 토트는 의외의 장면을 목격했다.
  켄은 금방이라도 그의 코트자락을 붙잡고 싶은 얼굴로, 하얗게 질려 두려워하고 있었다.
  토트가 저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황급히 표정을 수습하려는 기색을 보였으나, 이미 늦었다. 토트의 어깨 너머 무언가에 초점을 맞추고는, 다급하게 손을 뻗으려고 하였다. 그것이 토트의 품 안에 뛰어드는 일이 됨을 자각하지 못한 것인지, 켄은 토트의 목에 얼굴을 박고 나도 손을 뻗어 무언가를 휘저었다. 토트의 어깨 위에 걸쳐진 코트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고,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양 켄은 손을 내렸다. 몇 초의 정적.
 
  “어이, 떨어져라.”
 
  토트는 제 몸에 붙어 있는 켄이 화들짝 놀라 뒤로 넘어지는 것을 한심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목소리에 놀란 모양인지 왼쪽 귀를 만지작 거리고 있는 꼴이 우습기는 하였으나, 아까부터 이상하게 행동하는 이유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아까부터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이지?”
 
  토트는 내심 그가 물어보면 켄이 바로 대답할 것이라 생각하였던 것이 틀림없다. 그렇기에 켄이 바로 대답하는 대신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의 눈을 올려다보는 것을 보고 미미한 불쾌감을 느꼈다. 침묵, 또 침묵이 이어진다. 토트는 완연히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그가 무언가 말을 꺼내려고 한 순간 켄이 목소리를 냈다.
 
  “, 듣고 아무에게도 말씀하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일본어로 떠들던 실없는 소리와 완연히 다른 톤을 가진, 켄의 모국어였다.
 
  “별건 아닙니다. , 하데스에 관한 일인데. 뭐라고 해야하지, , 뭐냐. 아무래도 남의 이야기를, 그것도 힘들어 하는 것을 제가 이야기하는 건 조금 그래서요. 선생님이라면 벌써 알고 계실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횡설수설에 가깝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켄은, 제 목소리가 퍽 어색한 양 입가를 만지작거리다가, 정말로 느릿하게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 하데스는 죽음의 신이라서 죽은 자들에게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그건 본인에게만 적용되는게 아니라서, 주변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그리고 저는, 그 불행과 저주가 보이는지라, 아무래도 피할 수 있어서, 하데스를 데리고 피해다녔거든요. 그랬더니 제게 화가 난 모양이라, 죽이려고 굴어서…….”
 
  아까부터 뒤에서 달려들거나, 환청을 들려줘서. 무서워서. 켄은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제 목소리가 어색한 양 굴었던건 저래서인가. 토트는 문득 제가 알고 있는 켄과는 이질적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켄이라면, 저런 식으로 반응하는 대신 하데스에게 위험하다는 말을 하거나 데리고 가며 그 이유를 설명할 족속이 아니었던가?
 
  “, 미리 말하지 않았지?”
 
  토트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에게 있어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분명 그녀의 평소 성정이나 입버릇으로 보건데, 두렵다며 그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도 남았을 인간이다. 오히려 그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옆에 있게 해 달라고 하였을지도 모르는 인간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켄은 조금 더, 자기 중심적이고, 뻔뻔하고, 타인을 신경쓰지 않는.
 
  “하지만, 괜한 이야기니까요. 딱히, 타인에게 떠들만한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학교 생활하고도 별로 상관없으니까. 저 혼자 입 다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정말 죽을 것 같아서, 무서웠지만. 그런 말을 웅얼거리는 켄이 하고 싶은 말은 실로 명백했다. 딱히 말한다고 무언가를 해 주지도 않을 것 같았으니, 알아서 해결하려고 했다. .
 
  “그냥, 오늘 방에 데려다 주신 다음에 잊어 주시면 안 될까요.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게 조심할테니까.”
 
  켄은 어설프게 웃으며 토트에게 그런 말을 했다. 아무렇지 않게, 저 하나쯤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얼굴로.
 
  “인간 대표잖아요. 다른 저승에 이런 게 없다면 굳이 말해서 인간에 대한 이미지를 나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켄의 입에서 나오리라 생각하지 않았던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기에, 토트는 문득 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누군지 의심하게 되었다. 읽기 쉬운 녀석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는.
  켄이라는 인간의 이면을 본 기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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