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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삼생가약

admin 2026.05.31 00:29 read.19

예로부터 혼인의 연분은 삼생가약이라, 전생과 현생, 다음 생에 걸쳐 끊어지지 않는 인연이라 한다. 말 그대로, 아름답고 깊은 인연을 묘사하는 말. 그러나 결혼이라는 게,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다. 상대를 잘 알고 한다고 생각해도, 사람의 모습은 관계와 조건에 따라서 바뀌기 마련이니까. 나의 개인적인 지론으로는, 현생도 버겁다. 다음 생은 모르겠고, 전생에 맺어졌으면 죽을 때는 원수만 아니었어도 다행이다. 모르긴 몰라도, 다음 생에도 이 자식이랑 함께하라고 하면 짜증부터 나리라고 확신할 수 있다. 내가 한 번 해봤는데, 이거, 진짜 난감하니까…….

 

 

 

평범이라는 건 아무래도 허상에 가깝다. 삼천 명의 인간이 있으면 삼천 개의 인생이 있는데, 그들의 생활이라는 게 다 정규분포를 따르지 않겠나? 정규분포를 기준으로 상위 몇 퍼센트 보편, 하위 몇 퍼센트 보편 정도로 나누는 게 옳다. 그런 의미에서, 내 인생은 아마 하위 0.1% 정도의 보편성에 속한다. 대학원에 다니고, 우울증으로 과거의 기억이 별로 없고, 가정사가 다이나믹하고, 뭐 그런 점은 감안할 수 있다. 세상에 찾아보면 이런 놈이 한둘이겠나? 사람이 자기 불행을 너무 특별하게 만들면 자기만 고통스러운 줄 알고 미치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 점은 괜찮다. 나의 보편성을 하위로 처박은 건, 일주일 간의 꿈이다.

 

장주몽접, 호접지몽, 남가일몽. 뭐 아무렇게나 불러도 좋다. 꿈속에서 다른 세계의 인간이 되고, 그 세계 속에서 다시 다른 생의 꿈을 꾸는 경험은 부를 말도 딱히 없다. 구운몽이라고 할까? 어떤 종류의 꿈이든, 사람이 일반적으로 꾸는 건 아니다. 요즘은 혼수 상태에서 뇌가 가상 인생을 만들어내는 경험이 좀 가시화 되었으니 이것도 좀 보편성 지수를 높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집에서 이 글을 쓰는 내내 째려보는 저 남자가 보편성 지수를 바닥으로 끌고 간다.

 

그렇다. 슬슬 짐작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 꿈속에서, 두 번의 삶을 함께한 남편이 있다. 그리고 뒤에서 째려보면서, 이번 생에서 결혼식은 언제 올릴거냐고 재촉 중이다. 나는 현실 도피를 위해서, 과제한다고 구라치고, 이렇게 열심히 노트북을 두드린다. 제발. 논문 쓴다고 개구라 친걸 안 들키길 간절히 빈다.

 

 

 

대학원에 다니는 건 과로를 천명하고 사생활을 포기한 채 교수와 연구실의 5분 대기조가 되겠다고 스스로 사인하고 등록금도 내는 행위다. 나는 장담할 수 있다. 절대 내가 석사 4학기 차인데 디펜스 준비도 덜 되어서 5학기차 되는 비극을 앞두고 있는 건 아니다. 아무튼, 그러니 대학원에 다닌다는 건 과로사의 위협을 늘 곁에 두고 동반자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각 학과에 따라서 현실은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다니는 코딩 관련 학과는 이렇다. 그러니 나는 4학기에 걸쳐서 과로로 몸을 말아먹었고, 결국 연휴에 한 번 쓰러졌다. 진짜 병원에 가서 입원할 정도로 몸이 망가졌으면 차라리 낫지, 애매하게 몸이 괜찮아서, 하루에 15시간 씩 자면서 겨우 재택근무로 필요한 일만 해냈다. 그 시기, 나는 조실부모한 17세의 고등학생이 되는 꿈을 꿨다.

 

무엇을 숨기랴, 나는 정신 건강이 나락에 갔다. 현대에서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 천연기념물 취급 받아야 한다고는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그 안에서도 좀 더 낮은 곳에 갔다. 그러니, 꿈속에서, 내가 라는 정체성을 유지한 채, 가족과 친지라는 닻도 없는 존재가 되었을 때, 나는 미쳤다. 말 그대로, 미쳤다. 사람이 너무 기력이 없으면 죽겠다고 시도도 못한다. 인간은 쉽게 죽지 않고, 의외로 작정하고 즉사를 노리면 할 만한 시도도 별로 없다. 현대 사회는 제법 안전하다. 교통사고 같은 건 노릴 만 한데, 내가 미쳐서 죽자고 남의 일생의 트라우마 및 범죄이력 만들어 주는 건 또 못할 짓 아닌가. 그러니 정말로 죽지 못해서살아가는 삶이었고, 그 와중에 꿈속에서도 몸이 안 좋아서 비실거렸다.

 

꿈 속의 세계는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전생 비슷한? 그러니까, 구운몽의 세계처럼, 모르는 중국풍의 과거에서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사신이 실존하면서 찾아와서 낙인을 찍고, 피안으로 데려가면, 현실에서도 죽게 되는 구조였다. 몽중몽으로도 복잡한데, 몽중몽중몽이 된 것이다. (몽중몽중몽은 거꾸로 읽어도 몽중몽중몽) 그 세계의 상세한 일면은 생략한다. 웹소설로 쓰면 장장 800화 가량의 장대한 모험을 하고, 삽화도 9장 정도 넣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슬프게도 작가가 아니라 석사가 되어서 먹고 살겠다고 결심했으므로 쓸 시간이 없다. 생략하고, 중요한 장면만 쓰자면, 난 미쳐서, 외로워서, 사람이 하면 안 되는 선택 1위를 세 개나 했다. 그 그랜드 슬램은 다음과 같다: 전혀 모르는 남의 사정 듣고 이타심으로 대신 죽기, 그 와중에 외로워서 같이 다니는 사람에게 사랑을 쏟아내기, 쏟은 걸로 만족하지 또 외롭다고 판단력 떨어져서 결혼하기. 글만 봐도 얼마나 미쳤던 건지 감이 오지 않는가? 이래서 사람이 적절한 정신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정신병이 가져오는 인지 왜곡과 사고력 저하는 인생에 전혀, 조금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가꿔서 치료한 고급 정신인데, 이런 미친 짓으로 인생을 뒤틀었단 말인가!

 

이게 평범한 꿈이었다면, 일어나서 소설 한 편 갈기고, 대박 치면 드디어 내 인생에도 빛이 드는구나! 커미션 말고 웹소설 작가가 되어서 돈을 벌자! 하고 끝날 일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는 이 글의 첫머리로 돌아가야 한다. 삼생가약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 세계가 진짜 내 전생인지, 현생인지, 패러렐 월드인지, 다른 세계의 나인지, 도플갱어인지는 모르겠는데 내 전생전전생으로 판정받았다. 도대체 왜? 나는 환생하면 남이라는 주의다. 기억이 없으니까. 근데 이건 꿈이니까 기억이 있잖아? 정체성이 유지 됐잖아? 그러니, 나는, 기억이 없다고 거짓말도 못하고, 그냥,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외로워서 미친 채 한 결혼을 26세에 책임지게 됐다고.

 

 

 

말이 되는가? 도대체 누가 재학 중에, 그것도 논문과 학위의 향방이 걸린 4학기 차에 결혼을 하는가? 사신과 하면 모른다. 아니, 이 말은 옳지 않다. 꿈 속의 나도 나라고 증명하듯이, 똑같은 소리 했다. ‘죽음은 사신과의 결혼이라고 하는데, 저를 피안으로 데려가는 사신은 당신이니, 저는 당신과 결혼하는 셈이지요?’ 하고. 미친 건가? 끼워 맞추기를 논문에서 하다가 인생의 중요한 선택도 대충 끼워맞추고 싶어진 건가? 인생의 잘못된 선택 스택이 대학원 입학으로 모자랐던 것인가? 과거의 나는 아무튼, 그런 말을 했다. 그러면 상식적으로 안 통해야 하는 거 아닌가? 도대체 왜 그 말이 통해서 또 결혼을…….

 

 

 

잘나신 네 논리대로 나도 외로워서 미쳤던 모양이지. 좋으시겠어? 미친 사신을 꼬셔서 삼생을 코꿰어 놓았으니. 그런 주제에 혼례도 안 올리겠다고 뻗대면서, 서방 귀한 줄을 모르고…….”

 

! ! 아악! 홍염! 논문 쓴다고 했잖아요!!”

 

논문? 네가 논문인지 뭔지 종이 쪼가리 쓴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제대로 작업한 적이 있어? 그렇게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면 모를래도 모를 수가 있나.”

 

, 못된 말. 고소해야겠다.”

 

어디 하려고? 받아주는 데는 있고? 가정 법원이라도 가시게?”

 

만능 혼인주의 그만 두면 안되나요? 내가 지금, 디펜스를 몇 달 앞두고, 결혼식장을 잡을 수는 없는데? 아니, 애초에, 애인부터 시작하자고! 요즘 누가, 아니, 눈 치워요. 정정할게. 대학원생 누가! 26세에 결혼을 해요!”

 

.”

 

나 안 한다고!”

 

 

 

한참 노트북을 쳐다보며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다시 말싸움이 붙었다. 그렇다. 이게 불쌍한 내 삶이다. 26, 류 현, 대학원생. 꿈속의 가명은 류가현. 삼생가약에 묶여서, 자칭 서방 타칭 남친 보유자…….

 

 

 

뭐가 모자라서 망설여? 돈 있고, 집 있고, 서로 의사 있고.”

 

의사 없는데요. 동의 의사 없는데요.”

 

먼저 꼬신 건 너야. 그러니 네 의사는 안 물어도 돼.”

 

뭐지? 이 불쾌한 감각?”

 

 

 

전생에는 키도 작더니, 현생에는 머리 하나는 커진 이 남자, 홍염이 내 남편이다. 독백 속에서도 남편이라고 안 부르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눈빛이 불손하다? 방금 이혼 계획 짰어?’ 하고 물어보니까, 머릿 속에서도 남편이라고 불러줘야 한다.

 

 

 

찔리는 게 있으니 불쾌한거지. 그러게 누가 순진하고 외로워서 미친 사신을 꼬시래? 네가 먼저 한 말이야. 그러니 책임 져.”

 

새침하게 말하면 다 되는 줄 알아요?! 세상에는 절차라는 게 있잖아요, 절차가. 갑자기 부모님에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8세 연상의 남자를 결혼하겠다고 데려가 봐요. 우리가 속도위반 사고친 줄 알지!”

 

쳤잖아?”

 

전생에 결혼한 걸 그렇게 부르지 말아줄래요? 언어의 사회성을 존중해 줘요. 보통 속도 위반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머리를 박박 쥐어뜯고 있으면 기분 좋다는 듯 킥킥거리는 저 웬수. 뜻대로 일이 흐르지 않아서 기분이 나쁘니까 이렇게 놀려대면서 장난을 친다. 이럴 때 WWE를 잘 해줘야 한다. 머리를 쥐어뜯고 충분히 휘말려서 휘둘리지 않으면 또 심통이 나서 진짜 내 폰을 훔쳐다가 어머니 번호를 가져간다. ‘장모님 연락처는 알아둬야지.’ 하면서.

 

 

 

내가 안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잖아요. 시간을 달라고요, 시간을.”

 

“34년을 기다렸는데 시간? ? 충분히 기다렸어. 네가 빨리 태어나지도 않고, 기억을 떠올리지도 못해서, 네가 날 잊은 건 아닌지 생각하느라 몇 번을 신에게 기도한 줄 알아?”

 

경건하게 말하지 말아요. 저번에 그거, 기도하면서 옥황상제님에게 짜증낸 거라고 실토했잖아요?”

 

지금 그게 중요해?”

 

그럼 다른 뭐가 중요한데요?!”

 

 

 

언제 떼왔는지 모를 혼인신고서 양식을 내미는 홍염에게서 필사적으로 시선을 피한다. 키도 커서 부피도 크네. 안 보이도 힘든…….

 

 

 

눈 똑바로 안 떠? 네 눈 앞에 친~절히 들이대주고 있잖아. 글 몰라?”

 

“Sorry. I can’t speak Korean.”

 

네가 방금까지 떠든 건 어느 나라 말 같아? 자꾸 말같지도 않은 소리로 신경 긁을래? 제대로 진지한 이야기 하고 싶어?”

 

죄송합니다.”

 

 

 

분명, 감동적인 이야기다. 어째서인지 이번 생에서도 고아였던 홍염은, 열심히 공부하고 익혀서 의류 회사의 사장이다. 6세 즈음에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고, 전생에 내가 말해준 대로, 2025년이 되어서 내가 기억이 생겨서 그를 떠올리길 기다렸다고 한다. 그 동안, 서방이 아내를 먹여살리지 못하는 건 체면의 문제라고 의류 회사를 차려서 돈도 벌고, 집도 사고, 결혼 준비도 하고……. 분명 로맨스 소설이라면 아름다운 전개다. 에필로그에서 그가 내 연구실에 만나러 오는 장면이 나오면서, 내가, ‘어째서일까? 저 사람은, 꿈에서 본 그 사람과 똑같이 생겼어…….’ 하고 독백하면서 끝날 만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누가 그랬던가. 현실은 소설보다 늘 다이나믹하다고.

 

 

 

삼불거라고 했어. 네 부모는 아니라도 네 상도 치러줬고, 오래 기다려주기도 했어. 넌 날 버릴 수 없고, 그러니, 책임져.”

 

 

 

서방인데 마누라고, 가부장인데 바가지도 긁고. 혼자서 다하는 아주 욕심쟁이 인간을 보고 있으면, 이게 로맨스가 아니라는 확신이 아주 무럭무럭 샘솟는다. 이딴게 로맨스 소설? 카테고리에서 쫓겨난다.

 

 

 

졸업하고 책임지겠다니까요…….”

 

계약서 써. 공증 받게.”

 

아니이……. 그건 좀……. 결혼을 계약서로 하는 건 로맨스가 없달까…….”

 

로맨스 소설 아니라며?”

 

그거랑 이건 좀 다르지…….”

 

   

 

그러니 이건 카테고리를 나눌 수 없는 이야기다. 고통과 외로움밖에 없는 삶 속에서 서로를 붉은 실로 묶어서 탈출하고, 현실에 정착하는 이야기라도, 늘 아름답거나, 서사적으로 완벽하거나, 사람들이 으레 기대하는 모습일 수는 없다.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정규분포로 보았을 때, 보편성 하위 0.01%라고.

 

 

 

그래도, ? 오늘 저녁은 내가 수제비 끓여줄게요. 화 풀어요, 홍염.”

 

저번처럼 다시다랑 후추맛 수제비?”

 

대학원생의 최선을 그렇게 말하다니! 그래도 오늘은 육수 한알 사왔어요. 저번보다 나아요.”

 

지켜보겠어. 감자 깎다가 손 깎아먹지 말고.”

 

 

 

 

 

그래도, 보편적이지 않은 삶도 나름대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3천 명이 있으면, 3천 개의 삶이 있으니까. 나 하나의 삶만 보면 특이해도, 3천 개 속에 섞어놓으면 별 문제 없지 않겠나? 세상은 그렇게 굴러간다. 오늘도, 평화롭게. 인생 전선, 이상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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