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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admin 2018.11.18 21:53 read.12

  "사랑은 늘 사람을 파멸로 몰아가죠. 그렇지 않나요, 카뮤?"

 

  "태평한 소리를 하는 군. 네놈도 벗어날 수 없는 이야기다."
  "하하, 저는 인간이 아니니까 괜찮아요. 우스운 소리를 하네요."
 
  거대한 날개를 편 소녀는 나른하게 늘어져 그리 일렀다. 백의의 기사에게 주어진 가장 아름다운 신수는 느직하게 날개짓 하며 웃음지었다.
 
  "제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어디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나요?"
 
  옳은 말이라 기사는 입을 다문다. 확실히, 그녀의 사랑은 전쟁에 있어서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 자명한 사실이요, 굳이 언급하는 자체가 그를 놀리기 위함이 확실하다. 그러나 곱게 휘어지는 눈초리가 우습도록 아름다워, 카뮤는 입을 다문다. 거대한 날개, 아름다운 소녀의 몸. 일그러진 눈동자와 아름다운 외향. 여왕의 기사에게만 하사되는 아름다운 짐승. 하사받음이 신뢰를 의미하기에 카뮤는 그 짐승을 퍽 아끼는 편이었으나, 오늘은 달랐다.
 
  "오늘따라 말이 없네요, 백의의 기사님. 예전처럼 저를 짐승취급이라도 할 생각인가요? 아쉬워라."
 
  이런 말에 발끈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나이. 그럼에도 카뮤는 목 끝까지 올라오는 호통을 참아내야 했다. 네놈은, 짐승이 아니라고. 참으로 우스운 이야기다. 신이 직접 하사하였다고 하여 짐승이 짐승이 아니게 되던가? 저 것은 인간이 아니다. 아름다운 겉가죽은 그저 인간을 속이기 위함. 저 본질은 짐승이요, 아주 흉악한 맹수다.
 
  "아니면, 제가 인간으로 보이기라도 하시는걸까요?"
 
  눈동자의 푸른빛이 번득인다. 그 순간 카뮤는 또다시 깨닫는다. 저는, 그 긍지높은 기사는 저 작은 신수를 사랑하고야 말았다고. 백색의 날개를 펼치고, 핏빛의 전장에서 그의 백의를 지키는 저 짐승이, 언젠가부터 짐승으로 보이지 않는다.
 
  "실없는 소리. 전투를 준비해라. 적의 매복이다."
  "아아, 재미없어. 조금 쯤은 반응해 줘요. 나의 기사님."
 
  의미 없이 온갖 소리를 늘어놓는 짐승, 소녀, 파르바네, 그의 사랑. 카뮤는 검을 들었다. 전장의 한복판에서 사랑을 논하기에 그는 너무 오랫동안 무인이었다. 죽이고, 유린한다. 낭랑한 웃음소리와 함께 살육하는 그의 짐승을 바라본다. 바로 저것이 그의 긍지의 상징이다. 충성의 상징이요, 그의 일생을 바쳐야 할 모든 것의 상징이다.
  사랑의 운명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정녕 그의 실책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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