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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 없음

admin 2018.11.18 21:50 read.14

죽기 전에 단 한번 물어보리

 

그대 혹시 나와 같았는지를
| 상사, 김남조
 
 
 
  본디 기대감이라는 족속은 전쟁에서 가장 쓸모 없는 감정에 들어간다. 이처럼 세상이 끝을 맞이한 이후에 드는 기대감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허나, 기대감 없이 살아가는 인생에 어찌 빛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만들어진 자. 유일하게 여왕을 베어낼 순교자. 오직 죽기 위해 태어나 저 자신을 죽이는 길을 걸어가야 할 악신의 사도. 어둠의 근원인 내가, 유일하고 온전한 빛인 당신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세계는 비틀려있다. 악을 상대하기 위해 악을 몸에 품어야하고, 선을 맞이하기 위해 선을 상처입혀야한다. 모든 사도라 불리는 자들은 우리를 집어삼키기 위해 태어난 괴물일 뿐이고, 그들의 피를 품고 죽여나가는 우리는 죄악의 순교자. 순교자를 정화하고 죄악을 씻어내는 피를 가진 자들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
  메시아.
  가장 강하고 아름다운 메시아. 고귀한 이름을 받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홀연히 나타난 자. 존재를 버리고 기사의 이름을 받아 아름답게 선 자가, 내 사랑이다.
 
  카뮤. 
 
  입 속에서 달디 달게 굴러가는 이름. 광기에 휩싸인 나는 웃는다. 한 없이 웃는다. 어찌 웃지 아니할 수 있단 말인가! 강하게 끓어오르는 피는 죄악. 붉은 피는 검은 죄악에 먹힌다. 전투의 광기는 죽음을 부추긴다. 근본이 같은 사도. 순교자에게 힘을 주는 죄악. 우리는 유일하게 그들을 베어낼 수 있다. 오직 우리만이, 어둠에 발을 담그고 죽어갈 우리만이 죄악을 멸할 수 있는 것이다.
  멸해야 할 죄악에 우리가 들어간다고 하여도,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 더러운 세계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
  우스운 소리를 짓껄이는 새끼들은 이미 다 사도가 되거나, 한 줌 핏물이 되었다. 생명? 희망? 다 엿이나 처먹으라고 그래.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그저 미래. 우리가 죽고나서 찾아올 그 밝고 아름다운 미래 뿐이다. 내가 살아있는 이상, 밝고 희망찬 것은 하나도 없어.
 
  사랑이 생의 이유는 되지 않는다. 사랑이 죽음의 이유도 되지 않는다. 사랑은 그저, 살아가는 순간의 빛이 될 뿐이다. 비틀리고 이지러진 빛이라도, 죄악 위를 비추고 어딘가 한 부분을 사람으로 유지시켜주는 빛이란 말이다. 허니 어찌 나를 비난할 수 있지? 메시아에게 사랑을 느끼는 순교자가 어디 나 하나던가? 사랑으로 하여금 파멸해가는 순교자가 흔하지 않은가. 죄악을 품고 살아가는 주제에 가릴 것이 무엇 있는가. 원하면 취하고, 바라면 이룰 뿐이다.
  내 사랑은 소유에 있지 않음에, 당신은 내 사랑을 내치지 않는다. 그저 경멸할 뿐.
  손목 위에서 펄떡이는 혈관에 입을 대고, 검게 물들어가는 죄악을 붉은 피로 씻어내리는 순간이면, 당신의 차가운 눈동자는 나를 아프게 찔러온다. 팔이 날아가고 뼈가 보여도 아프지 않던 몸에 유일하게 고통을 새긴다. 내 유일한 고통이요, 양심의 증거여. 고귀한 피를 타고난 유일하고 오롯한 신의 사도. 
  내 죽음은 당신을 영웅으로 세울 것이다. 당신의 경멸을 받아 마땅한 순교자는 광기에 휩싸여 적의 수장을 베어내고, 제 몸을 지탱하는 죄악과 함께 영영 생명을 잃을 운명이다. 나는 생명을 얻음과 동시에 그리 정해졌다.
 
  현이라는 본명은 이미 파르바네에게 먹혀버린지 오래. 죄악의 나비는 날개짓하며 죽음을 향해 날아갈 뿐이다. 내 죽음이 하여금 당신에게 구원이 될 것이 확실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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