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없는 죽음보다 더 심한 벌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 되는걸까. 그렇게 중얼거리는 입술이 몇 번이고 소리 없는 여닫힘을 반복했다. 태어날 때부터 예정된 목표와, 틀에 맞춰져 자라난 몸, 맞춰져 자라난 의식. 그 모두를 부정당하고, 부숴지고나서 남는게 하나도 없는 그 죽음보다 더 심한게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 조용히 되묻는동안, 여전히 죽음과 같은 타르는 몸을 타고 흐른다. 온 몸을 태우는 고통, 떨어져 나가고 흐릿해지는 이성. 인간성. 오로지 죽이고 파괴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남지 않은 지금에, 더 심한게 있다면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자문한다. 답을 영영 찾지 못한다고 하여도, 그저 집중할 거리가 필요하였다. 죽이기 위한 도구로, 죽기위해 살아왔다면 그 안에 죽어있을 인간성의 조각을 찾고 싶었다.
구원자와 같은 메시아, 죽여야만 하는 사도. 그 둘중 어느 쪽이 제 동족이겠나. 저는 순교자이다. 순수한 목표로, 죽기 위해 살아가는 순교자이다. 신의 부활을 위해, 또 다른 신을 죽여야만하는 순교자. 그들의 신의 사도와, 우리들 신의 메시아는 어디가 차이가 있는걸까. 의미없는 물음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맴 돈다. 다친다면 저희는 검붉은 피를 흘린다. 순수하게 붉은 피를 흘리지 못한다. 온 몸의 피가 모두 검게 물들면, 그러면 저는 사도가 되겠지. 그를 막기 위해 메시아의 피를 마시는게 아니었나. 허나, 허나 말이다. 제가 이미 사도에 가깝다면, 어찌하여 그들의 신에게 충성심을 느끼지 못할까.
그들의 신을 죽여야 할 이유가 제게는 없다. 그저 태어날 때 부터, 그 때부터 주어진 칼이 제게 그리 명령했을 뿐이다.
201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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