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creative

자장가

admin 2019.11.26 00:36 read.61

 

  공기도 차갑게 얼어붙은 밤이었다. 하늘의 별은 화려하게 빛나고 벽의 촛불은 느리게 타올랐다. 하늘이 얼음처럼 차갑고 투명하게 반짝이던 밤. 파르바네는 자정이 조금 지나 눈을 떴다. 과하게 이른 기상이었다.
  아주, 오래 된 감정을 짓씹은 느낌이 났다. 아니면 자주 꾸던 악몽일까? 희미해진 기억과 현실감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흐리고 공명하게 기억을 앗아간다. 그저, 외로웠다. 아주 지독하게 외로웠다. 척추를 따라서 냉기가 달리고 온 품이 허전할 정도로 외로웠다. 짙은 청색의 눈은 혼란스럽게 흔들렸고, 문득 방 안이 지독하게 춥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확실히, 선배는 난방을 좋아하지 않았지. 난방은 싫어하는 주제에 목욕 수건으로 온 몸을 돌돌 말고 자는 잘생긴 동거인을 생각하자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최소한, 이 집은 나 혼자 있지 않다는 뜻이니까.
  따스한 주황색 어둠은 방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서 폐 속으로 가득 들어찬다. 파르바네는 멍하니 흔들리는 촛불을 바라보았다. 참 고풍스러운 취향이다. 수정으로 만든 샹들리에, 방을 밝히는 벽의 촛불. 은식기와 테이블보. 그는 가끔 제가 만들어서 내어놓던 저녁을 떠올렸다. 선배, 그렇게 먹으면 맛이 느껴져요? 그는 내가 맛을 모른다는 태도로 웃었고, 나는 꿀에 절인 고기를 구워 내놓은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도 진짜 먹을 줄 몰랐다는 얼굴을 했지. , 분명히 그 때는 사랑도 악몽도 노래도 음악도 그 무엇도 없었다. 그저, 선배가 웃었다. 꽤 기분이 좋아보였다. 웃었지. 오만한 하늘색의 눈동자가.
  선배가 보고 싶어졌다.
  파르바네는 카뮤가 자고 있을 위층을 올려다보았다. 보이는 것은 천장밖에 없지만 왠지 그곳에서 카뮤가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느릿하게, 멍하고 뿌연 머릿속에서 생각했다. , 어쩌면 선배의 외로움이 나를 깨웠는지도 몰라. 어쩐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머리 위에서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이 냉기는, 외로움이 틀림없다고.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몸은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무거웠다. 문고리를 잡기도 벅찰 만큼 흐느적거리는 손은 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연약했고, 파르바네는 초점이 흐려지길 반복하는 눈을 몇 번이고 깜빡였다. 희미한 촛불이 밝히고 있는 계단은 고요했다. 고요하기 짝이 없어서, 파르바네는 몇 번이고 제 숨소리와 심장소리를 확인했다. 누군가의 악몽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내 것이 아닌 공포와 적막이 심장에 파고든다. 두려움을 닮은 기이한 감각. 파르바네는 특유의 종잡을 수 없는 사고로, 이것이 카뮤의 악몽이라 짐작했다. 사실 그 집에 살고 있는 것은 카뮤와 파르바네, 그리고 알렉산더뿐이었으니 타당한 사고이기도 하였다.
  층계를 밟는 발은 신발을 까먹었기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발가락 끝이 곱아들고 감각이 사라지는 와중에 파르바네는 희미한 온기를 느꼈다. 극과 극이 맞닿는다는 건 이런 느낌일까? 어째서 극도로 외로울 때에는 충족감이 찾아들지 않는 걸까? 물음표가 다음 질문을 갈고리로 낚아챈다. 나는 구슬들을 손에 굴리며 답이 없는 질문을 반복한다. 층계 하나에 질문 하나. 한 걸음에 하나씩. 두 층밖에 안 되는 계단은 금세 끝나고, 카뮤의 방문은 굳게 닫힌 채 눈앞에서 위용을 뽐낸다.
  파르바네는 몸을 빼고 싶어 하는 충동이 고개를 들기 전에 문고리를 돌렸다. 흔한 끼익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열리는 문은 주인이 얼마나 섬세하게 관리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선명하게 들이치는 냉기. 카뮤의 방은 유독 냉기가 흘렀고, 파르바네는 한 순간 숨을 멈췄다. 움직임을 멈춘 몸이 정물처럼 방의 일부로 녹아든다.
 
  이불 속에서 피부가 조금도 드러나지 않게 누워 있는 카뮤는 장례식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썩지 않게 보존한 시체, 사후의 영생을 기원하며 신성한 의식을 치른 미라. 파르바네는 서서히 숨이 막히고 사고가 흐려지는 동안 카뮤를 미동 없이 쳐다보았다. 눈이 아프고 코끝이 아리다, 눈물이 흐른다. 생리적인 눈물은 장례식에서 서럽게 통곡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만든다. 당신의 수면은 왜 그토록 경건해 보이는가, 당신의 휴식은 왜 늘 다른 것을 떠올리게 만드는가. 파르바네는 애써 떠오르는 생각을 무시했다. 무덤 속에서는 시체와 어둠만 보이는 법이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느릿하게 숨을 들이마셨을 때, 희미하게 신음소리가 들렸다.
  파르바네는 일순 그 신음소리가 자신의 것인지 고민했다. 아니다. 그것은 카뮤의 신음소리였다. 파르바네의 것과 다르게 훨씬 깊고, 오래되고, 나아진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였다. 악몽을, 꾸고 있는 걸까? 깊게 잠들어 움직이지 않는 카뮤의 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카펫 위에서 맨발은 소리를 흘리지 않고, 파르바네는 맹수의 둥지에 숨어드는 어린 생물처럼 눈을 빛낸다. 깊은 심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카뮤는 끝없이 신음을 흘렸다. 뒤척이지 않고 곧게 누워 자는 몸에서 흐르는 소리는 기이하고, 이질적이었다. 죽어가는 짐승같이. 파르바네는 동물의 것과 다름없는 생각을 떠올리며, 조용히 머리를 카뮤의 가슴 위에 누였다. , 쿵하고 느릿한 심장소리가 울렸다. 살아있구나, 살려고 노력하는 중이구나.
  파르바네는 입술을 열어서 작게 허밍 했다. 자장가, 자장가를 불러주자. 그는 제가 악몽을 꾸던 밤이면 울리던 음악을 기억했다. 다정한 잠으로 저를 이끌던 목소리를 기억했다. 타인을 부르는 노래, 잠을 위로하는 노래. 즉석에서 생각해낸 소리는 성대를 울리고, 악보 없는 노래는 제멋대로인 가사를 타고 조용한 방을 수놓는다.
 
  “태양이 얼어붙는 곳, 모든 바람 몸을 누이는 곳에. 늑대가 노래할 때. 어서 오렴 아이야. 잠들 시간이란다.”
 
  파르바네는 포장을 벗기는 아이처럼 카뮤의 수건을 벗겨내고 이불을 정리한다. 그의 숨소리가 깊고 거칠다는 사실을 알면서 느긋하게 노래한다. 음은 이어지고, 이어진 음은 실이 되고, 실을 엮어 천을 짠다. 음악의 천으로 카뮤를 덮고, 그의 위안이 되길 기도한다. 노래한다. 긴 밤의 어둠을 덮는 자장가를 자아낸다.
 
  “조심하렴, 아이야. 여신의 옷자락이 흔들릴 때, 어둠은 찾아든단다. 조심하렴, 아이야. 눈보라가 반짝일 때, 어둠은 찾아든단다. , 이리오렴. 따스한 품에 몸을 맡기고 온기에 목을 축이렴.”
 
  냉기가 가득하던 밤에 차가운 온기가 들어찬다. 넓은 방을 채우기에 모자란 촛불의 불꽃이 어지럽게 흔들리고, 흘러넘치는 음악이 공기 속을 휘돈다. 파르바네의 손가락은 꽉 쥔 카뮤의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고, 찡그린 미간 위를 누른다. 차갑기 짝이 없는 몸이다. 온기라고는 조각도 찾아볼 수 없는 몸이다. 파르바네는 제 온기가 카뮤에게 스며들기를 바라며 노래한다. 입술 밖으로 흘러나온 노래가 귀를 타고 온 몸을 휘돌고, 노래가 휘도는 몸은 악기가 되어 음악을 연주한다. 촛불의 불꽃이 어지럽게 흔들리며 그림자를 늘린다. 그림자가 춤추는 방, 음악이 흐르는 방.
 
  “이리로 와, 아이야. 여기 내가 널 기다리는 곳에. 이리로 와, 아이야. 여기 네가 쉴 곳에. 괜찮아, 안심해. 이곳은 서늘해. 괜찮아, 안심하렴. 겨울은 다정하단다.”
 
  촛불 아래서 카뮤의 코가 그림자를 만든다. 백짓장처럼 창백한 안색이 서서히 붉어진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 풀어지고 식은땀이 잦아드는 모습을 보며 파르바네는 노래의 끝을 잡아당겼다. 카뮤를 감싸 안았을 끝을 잡아당기며 파르바네는 눈을 감았다.
 
  “괜찮아, 어서와. 이곳엔 아무도 없어. 괜찮아, 어서와. 이곳은 푸른빛이 비쳐든단다. 노을조차 푸르게 물드는 곳이란다.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여, 돌아오렴. 내가 널 기다리는 이곳에.”
 
  파르바네는 카뮤의 두려움을 본다. 그의 악몽을 본다. 10살 어름의 작은 소년을 보고, 끝없는 어둠을 본다. 노래한다. 음악의 천은 푸른빛을 내며 부드럽게 흩날리고, 끝없는 어둠 위로 오로라가 춤추며 그곳은 설원이 된다. 내가 나를 묻은 그 겨울이 된다.
  후렴구를 웅얼거린다. 반복한다. 어서와, 돌아오렴. 내가 널 기다리는 이곳에. 소년이 서 있는 곳에 닿을 때까지, 소년의 머리 위에서 오로라가 춤출 때까지 노래한다. 나는 잠들어 있는 네 이마위에 내 이마를 대고, 네 심장위에 손을 올려 토닥인다. 나의 심장과 당신의 심장이 동시에 뛰길 기다리며 내 심장에 맞춰 노래한다.
  어서와, 돌아오렴. 괜찮아, 여기는 푸른빛이 비쳐든단다. 파르바네는 오로라가 서서히 단단하게 굳어가는 모습을 본다. 여러 색으로 빛나는 천이 하나로 굳어 유리가 되어가는 모습을 천천히 지켜본다. 카뮤의 세계 위로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들어서고, 빛이 비쳐든다. 어둠 속을 낱낱이 비추는 빛이 소년을 비춘다. 그는 푸른 빛 너머로 녹아든다.
  노을과 여명은 닮아있다. 푸른빛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든다. 유리 너머로 비쳐드는 빛 속에서 너는 울 것처럼 보였고, 단단하게 보였고, 창백해 보였고, 생기 넘쳐 보였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고, 태산같이 거대해보였고, 강인했고, 연약했으며, 이름을 가지지 못한 것 같았다. 소년의 눈은 푸른 빛 속에서 유난히 투명했다. 차갑고 단단한 눈을 바라보며 파르바네는 노래했다. 괜찮아, 어서와. 이곳엔 아무도 없어. 괜찮아, 어서와. 이곳은 푸른빛이 비쳐든단다.
  그리고, 카뮤가 눈을 떴다.
 
  “네놈, 무슨 속셈이지?”
 
  파르바네는 바로 앞에 보이는 푸르고 아름다운 수정을 닮은 눈을 무감정하게 응시했다. 그의 눈은 꿈속의 소년을 닮았다. 노래가 자아내는 환상을 닮아있다. 그러면, 그 스테인드글라스는 그의 세계일까? 그의 어둠에도 눈이 녹아있을까? 눈이 모든 소리를 집어삼키고 침묵하고 있을까?
 
  “무슨 속셈이냐고 묻고 있다.”
 
  숫제 으르렁거리기 시작하는 카뮤를 바라보며 파르바네는 나직한 목소리로 의문을 던졌다.
 
  “선배, 무슨 꿈을 꾼 거예요? 답지 않게.”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보다, 먼저 질문에 답을 해.”
  “악몽이에요? 선배의 고독이 절 깨웠어요. 위층에서 쏟아져 내리는 외로움이 악몽을 만들었어요. 선배, 악몽이에요?”
 
  파르바네는 허리를 들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뮤의 심장은 일전보다 빠르게 뛰고 있다. 또 파르바네와 속도가 맞지 않는다. 그는 무언가 화를 내기 위해서 얼굴을 찡그리는 카뮤를 바라보다가, 그에게서 벗겨낸 수건을 들고 그가 늘 그러하듯이 꼼꼼하게 감싸기 시작했다.
 
  “네놈, 무슨 짓을! 놓는 것이
  “선배, 또 악몽을 꿀 것 같아요. 침실에 들어온 걸 화내는 거라면, 다음에는 악몽을 꾸지 말아요.”
  “무슨, 말이 되지 않는 소리를 하고 있나!”
  “화내지 말아요, 잠이 달아나잖아요.”
  “네놈이 꺼지면 될 문제다!”
  “그러면 또 고독이 찾아들 거예요, 악몽을 꿀 거예요.”
  
  카뮤는 도통 말이 통하지 않는 파르바네를 수건 너머로 째려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도통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이럴 때의 파르바네는 그의 후배인 세실보다도 귀찮은 족속이 된다. 음악이 영혼을 휘감고, 이성보다 본능으로 움직이는 순간이다. 저 작은 계집 하나를 힘으로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나, 카뮤는 문득 저 치와 다투는 것도 우아하지 못하다 여겨 몸에 힘을 뺐다. 저런 상태의 파르바네는 짐승 취급하면 되는 문제이다. 실제로도 상식과 이성이 모자란 상태이니 짐승과 진배없다. 카뮤는 내일 아침이 되면 단단히 일러놓을 것이라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파르바네의 기척은 그의 침대 옆에 털썩 주저앉는다. 이불을 꼼꼼하게 덮고, 드러난 살결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가볍게 그를 토닥이기 시작한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자고…….”
  “뭘 할 셈이냐.”
  “……? 선배 재우잖아요. 자장가 부르면서.”
 
  별 이상한 것을 다 묻는다는 어조로 대답하는 파르바네는, 진심으로 그가 왜 자신의 행동을 물어보는지 궁금해 하는 태도였다. 카뮤는 보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고, 파르바네는 그저 덤덤하게 그를 토닥인다. 일어나려고 몸을 비트는 그의 어깨를 누르면서,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가사를 이어간다.
 
  “한 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촛불을 닮은 온기가 묻어나는 목소리는 방금 카뮤의 잠을 깨운 것을 닮아있다. 어릴 적의 악몽을 반복하던 어둠 속에 오로라를 수놓던 목소리와 닮아있다. 카뮤는 희미하게, 저 건방진 후배가 그를 깨우기 위해서 노래했던가 생각한다. 밀려오는 수마가 생각을 모음과 자음으로 분리한다.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카뮤는 우스운 짓을 한다고 비웃으며 어둠 속으로 잠겨든다. 부드러운 수마가 그를 찾아들고, 큰 방에 켜놓은 촛불과 같이 희미하고 불쾌하지 않은 온기가 다정하게 그의 눈을 감긴다.
  꿈조차 찾아들지 않는 편안한 밤이었다.
40 춤을 춰요 2021.09.04 2021.09.04 114
> 자장가 2019.11.26 2019.11.26 61
38 노래가 끝나면 2019.11.10 2019.11.10 58
37 애정결핍 2019.06.20 2019.06.20 23
36 장미꽃 한 다발 2019.05.14 2019.05.14 20
35 사랑이란 2018.11.18 2018.11.18 12
34 부질 없음 2018.11.18 2018.11.18 14
33 조각글 2018.11.18 2018.11.18 8
32 죽음보다 더한 것이 있다면 2018.11.18 2018.11.18 14
31 순교자의 길 2018.11.18 2018.11.18 15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