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춰요, 선배. 그 무엇도 생각하지 않고 춤춰요. 세상 만물이 우리를 욕하고, 만생의 생명이 손가락질한들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던가요? 그저 즐거우면 되어요. 흐르는 음악에 몸을 맡기고, 무엇도 생각하지 않으면 그만이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카뮤, 카뮤 선배. 눈이며 얼음이고, 고독이며 어둠인 나의 사랑. 춤을 시작해요. 손을 뻗어 공기를 가르고, 차갑게 얼어붙은 정적을 밟아 부숴요. 오직 음악과 선율만이 우리를 이끄니, 두려워할 게 무어 있나요?
어리석은 계집. 이 내가 두려워한다고?
네. 두려워하고 있잖아요, 선배. 절, ‘그런’ 눈으로 바라보고 계시잖아요. 제가 틀렸나요? 그 사실을, 제게 증명해 보일 수 있으시겠어요? 불가능하시잖아요. 그렇다면 제게 당신은 언제까지나, 미지 앞에서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겠지요. 춤춰요, 선배. 춤을 춰요.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광대놀음으로 행복한 삶을 구가해요. 당신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고, 제게는 영원히 연주할 능력이 있죠. 어떤가요? 이제 조금쯤은, 제가 매력적으로 보이시나요?
카뮤는 요즈음 부쩍, 파르바네가 겁 많은 종자라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 짐승 같은 ―고등 사고를 하고 있으나 파르바네가 내보이는 그 욕구의 기저는 짐승과 그리 다르지 않다.― 후배의 사고방식을 꽤 이해할 수 있게 된 참이다. 예를 들어 단 음식을 앞에 놓으면 미미하게 얼굴을 찌푸리며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으려고 한다거나, 홍차에 설탕을 넣는 모습을 응시하는 시간이 평소보다 조금 길어지곤 한다거나 하는 사실들은 불호의 표현이다. 그 자신은 ‘호불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마는, 파르바네는 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배 이상으로 까다로운 종자였다. 꽤 알아보기 어려운 형태를 하고 있으나, 파르바네는 제 의견이 확고했다. 다만 앞서 언급한 대로, 그 자신이 이를 자각하지 못하기에 귀찮았다. 물론 어린 계집 하나 통제하지 못해서 곤란에 빠질 그가 아니었으나 상황이 좋지 않았다.
본국의 상황은 나아지는 일 없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그가 옳다고 굳게 믿어 온 길은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녹아내리기 시작한 눈은 진창이 된다. 그는 경애해 마잖는 여왕께서 말씀하신 대로, 남쪽의 따뜻한 나라에 너무 오래 체류하여 그대로 녹아버리고야 만 것이 아닌가? 싹튼 의문을 짓밟는 일은 지루하고 지난한 일이다. 잡초와 같은 풀뿌리는 아무리 죽여도 다시 고개를 들이밀고, 그는 하찮은 풀뿌리 하나에 소모할 시간과 여력이 없는 탓이다. 그는 의심을 무시하고 나아가는 길을 택하고, 오직 본국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제 집에 동거하는 외부인은 방해요소가 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그는 이성적인 사고의 결과에 따라 마땅히, 파르바네에게 호텔로 돌아가라 을러야만 했다.
을러야 했다, 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카뮤는 파르바네에게 아직 축객령을 내리지 않았다. 신출귀몰한 계집은 오늘도 그의 아침을 어설프게 차려두고, 그의 입맛에 맞춰보겠다는 당치도 않은 짓거리로 팬케이크를 시럽에 거의 절여버렸다. ―물론 파르바네가 직접 만든 시럽이기에 부담스러운 단맛은 느껴지지 않았으나― 당혹스러움을 표하는 순간 파르바네의 시선은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카뮤는 이제 그 시선이 불안임을, 그가 거절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다.
“음. 나쁘지 않군.”
“그럼 이것도 드세요, 선배.”
“너는 먹지 않을 건가?”
“딱히……. 만드는 동안 몇 개 주워 먹었고…….”
“군것질이라니, 버릇이 나쁘군.”
“그 정도로 먹진 않았어요.”
미묘하게 일그러진 미간과 약간 내려간 입꼬리는 인형 같은 파르바네가 불쾌함을 표시하는 몇 되지 않는 표정이다. 카뮤는 ‘장난이다.’ 하고 피식 웃어 분위기를 풀었으나, 파르바네는 기분이 틀어진 모양인지 카뮤가 먹는 내내 그의 포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짐작하기로는, ‘저럴 거면 먹지나 말든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겠지. 카뮤는 처음 만났을 시절의 건방진 파르바네를 떠올리고, 다시 입꼬리가 풀렸다. 같이 지낸 시간이 날짜로 따지면 세자릿수를 넘어간다. 파르바네는 보이는 것과 달리 짐승에 가깝게 사고한다. 낯을 심하게, 아주 심하게 가린다는 뜻이다. 그는 개나, 말을 길들인 것과 비슷한 감각으로 저 어리고 제멋대로인 후배를 대했다.
“오늘은 밖에서 저녁을 해결할 예정이다.”
“후식도?”
“당연한 일을 묻지 마라. 기다리지 말라고 말하고 있지 않나.”
“저는 어차피 늦게 자는데요, 선배.”
“컨디션 관리 또한 프로의 소양이라고 몇 번이나 말하고 있다.”
“별로……. 제가 그 정도로 실력이 떨어질 인간으로 보이나요? 선배야말로, 저를 무시하고 계신 것 같은데.”
파르바네는 완전히 기분이 상한 모양인지 얼굴을 찌푸린다. 귀찮은 녀석, 카뮤는 가볍게 혀를 차고는 ‘돌아올 때 적당한 간식을 사다 줄 터이니 진정하라.’고 달랬다. 알렉산더를 대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 태도였으니 당연하게도 파르바네는 ‘저는 뭘 잘 먹지 않아요.’라며 반발했고, 카뮤가 팬케이크를 모두 먹어 치웠으므로 대화는 중단되었다.
“아, 선배. 주세요. 주방에 가져다 둘게요.”
“됐다. 내가 하지.”
“선배가?”
“적어도 너보다는 능숙하다.”
“…….”
파르바네는 무언가 말하고 싶은 얼굴을 하다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뮤는 어렵지 않게 파르바네가 다시 수마에 쫓기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저 후배의 특징이었다. 하루의 태반을 잠으로 보내며, 불규칙한 생활을 반복한다. 카뮤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치태였으나, 파르바네가 내어놓는 결과물은 언제나 이견을 허락하지 않는 마스터피스였기에 카뮤의 의견은 파르바네를 스쳐 지날 뿐이었다. 그가 호통치면 파르바네는 언제나 기묘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알아서 할게요, 선배.’란 말로 상황을 넘기기 일쑤였다. 카뮤는 몇 번 정도 더 화를 냈으나, 결국 파르바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방치하게 되었다.
한동안 내버려 두었던 버릇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 건, 본국으로 귀환하는 일정이 확정된 이후였다. 그가 실크팔레스로 돌아가게 된다면 파르바네와 재회하게 되는 일은 없다. 파르바네가 아무리 대단한 영향력을 가졌다고 해도 결국 외부의 인간. 쇄국 정책을 펼치며 외부와 극도로 제한적인 교류를 이어가는 실크팔레스에 그 영향력이 미치는 일은 없다. 그러니, 그가 지금 파르바네와 보내는 시간 이후로, 파르바네의 소식을 알게 될 일은 없으리라.
카뮤는 어렵지 않게 저 어리고 제멋대로에 어리숙한 후배가 어딘가에 쓰러지는 꼴을 상상할 수 있었다. 기실, 몇 번 정도 보아 온 일이었다. 가만히 앉아있다가 악상이 떠올랐다며 갑자기 뛰쳐나간 기세 그대로, 계단에서 구를 뻔한 파르바네를 잡아 준 것도 이미 한 손가락을 넘긴다. 카뮤가 소리를 지르고 꾸짖어도 듣는 척조차 하지 않고 악보를 휘갈겨대는 꼴을 보고 있으면, 그는 언제나 혀를 찼다. 음악에 모든 걸 바치고 살아가는 작자들의 행태는 언제나 저러했다. 몸이 소중한 줄도, 명분과 대의도 신경 쓰지 않고 선율에 휘둘려 음을 좇는다. 뒤조차 돌아보지 않고 오락에 심취하는 자들.
카뮤는 파르바네를 마주 보고 있어도, 파르바네가 남긴 잔상이나 뒷모습을 보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지금도 그렇다. 파르바네는 졸음과 각성의 경계에서 무언가 잡아챈 얼굴로, 혀를 차서 언어가 되지 못한 음을 자아낸다. 녹음기를 켜는 행위가 파르바네의 마지막 이성이다. 라, 라라. 파르바네는 순식간에 현실에서 유리되어, 저 혼자 알고 있는 음악 속에 사로잡힌다. 손을 뻗고 발을 굴러 리듬을 맞추고, 손뼉을 쳐서 강조점을 잡는다. 의자에서 일어서 발을 미끄러뜨리고, 옷자락을 휘날려 무대를 그려낸다. 평소보다 강하고 길게 뻗는 수족은 카뮤를 떠올리고 있는 탓이다. 카뮤는 파르바네가 떠올리고 다듬는 저 곡이 저를 위해, 그가 마지막으로 노래할 무대가 될 가요제를 위함임을 알고 있다. 한 곡을 돌아보는 일이 없는 파르바네가 벌써 몇 달을 잡고 있으니 지독한 집념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동시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스럽다. 저들 족속들은 왜 그토록 충동적인가?
카뮤는 연예계에 몸담은 사람치고는, 음악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은 일에 지나지 않는다. 사적인 감정을 담는 순간 전문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없는 순간이 생긴다. 더군다나, 그가 경애해 마잖는 여왕님은 첼로에서 위로를 찾았으나, 결국 나뭇조각이 빚어내는 선율은 그분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없었다. 카뮤는 그 꼴을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누구보다 오래 보아왔다. 그런 사람에게 음악의 대단함을 설파하고자 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니던가? 직속 후배는 음악의 아름다움이니, 뮤즈의 대단함 따위를 입이 아프고 귀가 따가울 정도로 떠들어대지만, 그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는 오직 그의 신념을, 그 신념의 토대가 된 여왕님을 믿기로 결정했다. 아주 오래전에 결정하여 얼음 위에 새겨넣고 영구동토의 영원을 맹세했다. 그의 영원은 건재하다. 그러니, 그는 음악에 흔들리는 일 따위 없다.
루, 루루, 라, 라. 가벼운 음을 끊어 흥얼거리는 파르바네의 목소리를 들어도 느껴지는 것은 없다. 얼간이 같다는 가벼운 감상과, 세계를 제패했다고 을러 줄 정도로 아름다운 음색이라는 느낌은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아이지마 세실이 느꼈던 경이로움도, 관객이 느끼는 위압도 그에겐 와닿지 않는다. 파르바네의 손가락이 길게 뻗어 허공을 부여잡는 순간에도, 그의 눈동자를 바라볼 때 검고 푸른 눈동자가 경계를 짓뭉게며 뒤섞이는 착각이 들어도, 그는 그저 냉정했다.
곡이 끝나고 무대가 잦아든다. 파르바네는 발을 세 번 굴러 종지부를 찍는 일로 즉흥적인 작곡을 마무리한다. 카뮤는 파르바네가 의자에 주저앉아 녹음을 종료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가방을 든다. 회의 약속까진 시간이 좀 남아 있으나, 일찍 나서서 나쁠 일은 없다.
“작업에 몰두하는 것도 작작 하도록. 침식寢食을 잊고 작품을 만드는 일을 미담이라 소비하는 건 어리석은 우민의 낭만에 지나지 않아. 결국 네놈의 어깨에 걸려있는 사람의 무게와 책임을 생각해라.”
“……선배는,”
“뭐지.”
“이상해요.”
파르바네는 문득, 음을 흥얼거리던 그대로, 어조에 선율을 붙여 말을 걸어온다.
“이상해요, 선배. 제 노래가 싫나요? 아니면, 노래 자체가 싫은 건가요?”
“헛소리하는군.”
“하지만, 하지만 선배. 그렇잖아요. 선배는, 언제나.”
파르바네는, 카뮤에게 손을 뻗어, 무게와 압력도 느껴지지 않는 손으로 그의 팔을 붙잡는다.
“제가 노래하기 시작하면 어디론가 도망치는걸요.”
아, 카뮤는 끔찍하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파르바네는 제정신을 차렸던 모습이 무색하게 광인의 면모를 드러낸다. 제 목소리에 제가 취하고, 팔을 뻗고 혀를 움직이는 감각이, 발성의 순간이 파르바네를 어딘가 먼 곳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순간의 파르바네는, 마치, 말을 하되 하지 않는 존재로 보인다. 파르바네의 말은 그 무엇도 ‘자신’의 것이 없다. 그저 직감. 인지와 사고 너머의 무언가를 받아 그대로 읊는 사람. 파르바네의 재능은 결국 그렇다. 그 자신조차 어떻게 노래하고 어떻게 곡을 쓰고 어떻게 연주하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최고의 작품을 빚어내는 끔찍할 정도로 거대한 재능.
그렇기에 지독하게 아름답다.
“방금까진, 절 혼내고 있었잖아요. 하지만 선배, 제가 노래하기 시작하니까 기분이 나빠졌어요. 제 노래를, 싫어할 리가 없는데. 같이 노래하셨을 땐 그러지 않았잖아요. 선배, 이상해요. 이상한, 그러게. 선배, 무엇이 두려운가요?”
파르바네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맹금류의 사냥을 떠올리게 만드는 움직임. 파르바네는 아? 음? 같은 짧은 음절을 반복하며 몸을, 고개를 움직인다. 마치 카뮤의 위치를 확인하듯. 카뮤가 어디에 서 있고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듯이. 카뮤는 치솟는 불쾌함에 거스르지 않았다.
“적당히 해라, 파르바네.”
“하지만 선배.”
“호오, 반항하는 건가?”
“이상한 말을 하는 건 선배예요.”
“꽤나 건방져졌구나, 현.”
“카뮤.”
짧은 대치는, 결국 흐름을 빼앗긴 카뮤의 패배로 이어진다. 파르바네는 좀처럼 부르지 않는 카뮤의 이름을 부르며, 환상처럼 느껴지는 몸을 그에게 기댄다. 이토록 가까이 있건만 체중도, 온기도, 호흡도,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파르바네를 바라보는 시야는 ‘사람’을 찾아내지 못한 채, 아름다운 예술품을 감상하는 관중의 그것으로 전락한다. 카뮤는 문득, 초점이 사라졌다는 기분이 든다. 분명히 파르바네를 보고 있건만 그 너머의, 벽과 바닥을 보고 있는 기분. 그의 앞에 존재하는 파르바네가 존재하지 않고,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모두 환상이라 믿게 하는 감각. 파르바네에게 초점을 맞출 수 없다. 그의 시선은, 파르바네를 통과하고 있다.
“음악이 두려워요?”
“어리석은 말을!”
“아. 그렇구나. 음악에 휩쓸리는 게 두려워요?”
파르바네의 시선은, 이미 카뮤를 보고 있지 않다. 아니, 카뮤를 보고 있다 한들, 좀 더 깊숙한 곳의 ‘무언가’를 보고 있다. 아마 카뮤 자신도 깨닫고 있지 못할 두려움, 갈망, 생각들. 감정적이지 않지만 다분히 내밀하고, 사고방식을 반추하면 알아낼 수 있지만 타인의 입으로 듣지 않는 이상 자각할 수 없는 욕망들. 파르바네는 혓바닥을 놀려 검고 내밀한 밤을 억지로 끌어낸다. 분명 해가 뜬 지 오래된, 눈이 내린 숲이건만, 카뮤는 아주 오래된 첼로 소리를 떠올린다. 밤과 정적. 정적이 내려 별조차 뜨지 않은 평원을 달리는, 아. 그가 본 적도 없는 순백의 늑대가!
“무얼 그리 두려워해요, 선배. 당신이 짐 하나 내려놓은 들, 거대한 흐름은 변하지 않아요. 죄책감을 던져요. 당신이 할 수 있는 게 무어 있었다고 그리 다 제 책임으로 돌려요? 당신의 탓이 아니에요. 아닌가? 당신이, 어떻게 할 수 있었던 일이 아니에요. 당신의 탓으로 돌린들, 당신 혼자서 이걸 바꿀 수 없어요. 내 탓이라면, 그래. 당신이 무언가 제대로 행동했다면 이 흐름이, 이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겠죠. 근데 선배 탓이 아니잖아요. 선배가 무얼 해도 이 사건은 일어났어요. 시기의 문제는……. 뭐, 있겠지만.”
“닥쳐라.”
“자해는 사죄가 되지 않아요. 당신이 홀로 고민하고, 아파하고, 자신을 구석으로 밀어 넣어도, 당신이 걱정하는 그 일이 바뀌지 않아요. 그러니 선배, 오락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감정을 거부하지 말고, 즐거움에서 도망치지 말아요.”
“닥치라고 말하고 있다.”
“아. 설마. 제 노래를 좋아하시나요?”
“닥치라고 말하는 게 들리지 않나!!!”
파르바네는 카뮤의 노성에 웃었다. 큰 소리에 얼굴을 찌푸리고, 눈치를 보고, 그가 다시 소리를 지를까 두려워 하루는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으려고 들던 후배는 없다. ‘지금’ ‘이 순간’의 파르바네는 그가 아는 짐승 같은, 어리석고, 어리숙하고, 모자라며, 그를 사랑한다는 헛소리를 지껄여대는 후배가 아니다. 그가 아는 파르바네가, 현이 아니라, 조금 더 다른. 무언가를 연기하는.
무대의 막이 오른다. 거대한 샹들리에가 조명이 되었다. 볕은 광채를 잃고, 저 멀리서 첼로 선율이 왈츠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느리고 무거운 음률이다. 서정적이고, 격정적이고, 급진적이다. 왈츠는 3/4박자. 첼로와, 두 번째 첼로와, 바이올린과, 실크팔레스 특유의 바람 소리가 카뮤의 귓가에서 왈츠를, 미뉴에트를, 춤곡을 빚어낸다. 파르바네도 똑같은 곡을 듣고 있다. 카뮤는 그 기이한 확신에 사로잡혀 파르바네의 눈에서 시선을 돌릴 수 없다. 그는 무대를 거부할 수 없다. 그가 연예계에 몸담은 사람인 탓이다.
고― 고― 길게 늘어지는 바람 소리.
강, 약, 약. 왈츠는 돌고 도는 론도.
구우웅 소리를 내며 울리는 첼로의 울림을, 그의 몸은 기억한다.
파르바네는 느릿하게, 아주 느릿하게 그의 팔을 놓고 뒤로 세 걸음 멀어진다. 쿵, 짝, 짝. 허공에서 울리지 않는 음악에 맞춰서 환상처럼.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환각처럼. 옷자락이 휘날리고, 양 눈을 드러낸 머리카락이 흐트러진다. 귓가에 꽂아둔 단발이 흘러내려 왼쪽 눈을 가린다. 반밖에 보이지 않는 얼굴이, 느릿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들리죠, 선배. 음악이 우리를 부르고 있어요. 선배의 귀에도 분명히, 들리고 있잖아요?”
카뮤는 광인의 말을 무시하기로 결심했다.
“춤을 춰요, 선배. 그 무엇도 생각하지 않고 춤춰요.”
파르바네는 왈츠의 리듬에 맞춰, 왈츠 아닌 춤을 추며 움직인다. 발끝을 세우고, 바닥을 찍고, 손을 휘두르고, 치맛자락을 휘날린다. 퐁실퐁실 부풀어 오른 소맷자락이 팔을 휘두르는 방향에 맞춰 몸에 달라붙는다. 파르바네는 이런 순간이면, 터무니없이 얇은 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가 손을 뻗으면, 꽉 잡으면, 팔을 휘두르면 그대로 날아가고, 부러지고, 엉망진창으로 소리를 낼 것 같은 존재. 카뮤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광인의 헛소리에 장단을 맞출 필요는 없다. 파르바네의 광증, 재능에서 비롯된 발작에 가까운 저 단막극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도 파르바네를 본 지 꽤 되었으니, 휘말리지 않는 법을 몸에 익혔다.
“세상 만물이 우리를 욕하고, 만생의 생명이 손가락질한들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던가요? 그저 즐거우면 되어요. 흐르는 음악에 몸을 맡기고, 무엇도 생각하지 않으면 그만이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다만 그가 견딜 수 없는 것이 단 한가지 있다.
“카뮤, 카뮤 선배. 눈이며 얼음이고, 고독이며 어둠인 나의 사랑. 춤을 시작해요. 손을 뻗어 공기를 가르고, 차갑게 얼어붙은 정적을 밟아 부숴요.”
저 광증을, 그를 위해 내보이고 있다고 파르바네가 온 힘을 다해서 호소할 때.
파르바네는 조절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일을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사람이다. ‘저리’ 음악에 휘둘리는 모습을 타인에게 내보이는 일은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일보다 수치스럽다고 이야기했던 순간의, 건조한 무표정 너머에서 토라진 얼굴이나, 자존심 상한다는 치기어린 얼굴을 보여줬던 순간이 저 어리고 아름다운, 끔찍하게 사람같지 않은 후배와 겹쳐지는 순간.
“오직 음악과 선율만이 우리를 이끄니, 두려워할 게 무어 있나요?”
카뮤의 뇌리에 사랑이라는 말이 스쳐 지날 때, 그는 견딜 수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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