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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합작

admin 2018.11.18 21:21 read.15

 

 

  "저 연약하기 짝이 없는 것들. 야 아이돌 조건에 마법소녀 넣으면 안 되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아니 근데 내가 왜 자습도 빼고 여기 앉아서 쟤네 보디가드나 하고 있어야 하냐고."
 
  짜증스러운 목소리는 낭랑하게 울려퍼진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사방. 거대한 무대는 이름하여 '샤이닝 스테이지'. 샤이닝 사무소의 아이돌이 총 출동하는 거대한 무대 기획이다. 물론 노래가 있는 곳에 '그들'이 찾아오지 않을리 없지. 그래서 그들을 막기 위해서 고용한게-
 
  "우리란 소리지. 아니 근데 내가 진짜 이렇게 불려다닐 위치냐?"
  "니가 최강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왔잖아. 아니면 이 대형 무대를 우리 둘이서 커버할 수 있겠어?"
  "알긴 아는데, 그래도 기분이 나쁘잖아. 귀찮다고."
  "나도 너랑 같이 휴가중이었거든? 잔 말 말고 준비나 해. 우리 소개할 시간이다."
 
  어느날 부터 나타난 '어둠'. 그들은 재능있는 사람들의 음악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나타나 사방을 헤집어 놓기 일쑤였다. 한동안 인간에게서 음악이 사라져가고 있던 그 때, 음악의 신 '뮤즈'가 계시를 내렸다. 그러니까, 우습지도 않은 '마법'을 등장시켜서 어둠을 물리치게 했다는 소리다. 뭐 마법 소녀라고는 하는데 딱히 성별이나 나이에 구애받지는 않는다. 애초에 이건 그냥 재능의 문제니까. 음악에 대한 재능을 비롯하여 어딘가 뛰어난 재능이 있는 사람은 사춘기 즈음에 모두 마법을 쓸 수 있도록 선택받는다. 그리고 제 재능의 한계까지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놀랍게도 일곱살 때 선택받았다. 그 때부터 우습지도 않은 광대 놀음을 계속했고, 열여섯이 된 현재, 
  나는 세계 최강의 타이틀을 거머 쥔 마법소녀다.
 
  아니 시발, 일곱살 꿈에 잘생긴 남자가 나와서 '네 꿈은 뭐니?' 하면 어린 아이가 뭘 안다는 말인가. 저는 꿈이 없어요! 했다가 그럼 네 꿈을 내가 정해줄게. 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저는 종신 마법소녀가 되었습니다. 젠장, 이 세계는 분명 나한테 너무하다.
  다행이라고 할 점은 괜찮은 파트너를 만났다는 점이다. 그래, 이 빌어먹을 마법소녀 직은 파트너가 꼭 필요한데, 최소한 두 명은 페어로 활동해야 하고, 많으면 열세 명도 보았다. 뭐, 애초에 걔네는 아이돌로 활동을 하긴 했지만. 
  제 파트너는 어릴 때 부터 주구장창 봐왔던 친구놈, '진'이다. 사실 쟤에게는 미안한 감이 없잖아 있는데, 신이 너는 너무 강해서 파트너를 다른 사람에게서 고를 수 없겠구나. 제일 친한 사람이 누구니? 할 때 순진하게 '진이요!' 하고 대답했다가 쟤도 마법소녀가 됐다. 나중에 그걸 밝히고 나서는 개패듯이 얻어맞았지. 내가 마법소녀인지 북어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니까.
  뭐 잡담은 이 쯤하고, 소개할 시간이다.
 
  [그럼 오늘의 샤이닝 스테이지를 지켜줄 사람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유명하신 분들이죠. 최강의 소녀들! 현, 그리고 진입니다-!]
 
  엿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누가 최강의 소녀야. 작게 중얼거리면서 스포트라이트 아래로 뛰어내린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함성. 평범하게 제복을 입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불만. 아 그럼 어둠도 없는데 그 쪽팔리게 나풀나풀한 의상을 입고 있으란 말인가. 게다가 그거 변신할 때 대사 오글거려서 죽고 싶다고. 하지 못할 말을 속으로 삼켜가며 영업 스마일을 만면에 띄운다.
 
  "잘 부탁드립니다, 현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진입니다!"
 
  마이크를 통하지 않고도 온 회장을 울리는 목소리. 딱히 소리를 지르진 않았다. 이건 그냥 '능력'의 일부. 변신을 하지 않고도 능력을 쓸 수 있는 것은 소수의 선택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이게 가능하면 2차 각성이 가능하다고들 하는데, 딱히 도전한 적은 없다. 애초에 지금 힘만 가지고도 세계 최강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는데, 더 노력할 필요가 있나?
 
  [네, 두 분이 있으니까 오늘 라이브도 걱정 없겠네요. 그럼, 그 대단원의 막을 열어보겠습니다!]
 
  스포트라이트가 돌아간 사이 훌쩍 뛰어 다시 무대의 조명 근처에 앉는다.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이 자리가 보통 지정석이다. 사실 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도 괜찮긴 한데, 딱히 그러고 싶지는 않아서. 일단 휴가 중에 끌려나온 만큼 의욕적으로 움직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가 있는 것 만으로도 웬만한 어둠은 발도 못 붙이기 마련이니까. 결계도 쳐 놓았고. 사실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니라면 내가 나서지 않아도 괜찮다.
 
  "첫 무대가 누구였지?"
  "스타리시. 이번에 데뷔한 사람들 중에서 마스터코스 인원만 모아서 만든 그룹이라는데? 이번을 위한 특별 기획."
  "샤이닝이 콰르텟 나잇으로 재미 좀 봤나보네. 보통 이 소속사는 솔로 데뷔 지망이잖아."
  "뭐, 그렇지. 무대 시작한다."
 
  확실히 괜찮은 노래였다. 이 노래의 작곡가가 누구지? 샤이닝 사무소에도 뮤즈의 작곡가가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아마 그녀의 곡일 터다. 나나미, 하루카? 괜찮은 곡이네. 
  딱히 크게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애초에 나한테 감동을 줄 수 있는 곡이 많지도 않고. 웬만큼 강한 파동을 일으키지 않고서는 그 곡을 살리지도 못한다. 제일 중요한 건, 나한테 감동을 줄 곡이면 아예 마왕급 어둠을 소환할 수 있다는 소리다. 제발 그딴 개같은 일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는데.
 
  [자, 그럼 모두가 기다리던 그들! 밤의 사중주, QUARTET NIGHT!]
 
  "오, 쟤네가 그 유명한 콰르텟 나잇이야?"
  "아마? 나도 처음 봐서."
  "잘생겼-"
 
  [아가씨들을 만나 영광입니다. 이 카뮤, 오늘도 최고의 곡을 통해 최고의 밤을 선사하겠습니다.]
 
  "아, 미친."
  "왜?"
  "저, 저, 저 인간 말이야. 그, 지금 말하는, '카뮤'?"
  "왜, 반했냐?"
  "조금 그런 것 같아."
 
  말이 끝나고 찾아온 공백이 싸하다. 진이는 지금 제 귀를 믿기 어려운 모양인지 몇 번 후비적 거렸고, 그러고도 변하지 않는 표정을 보더니 정말 조심스럽게 한 마디 내뱉는다.
 
  "정말?"
  "어."
  "미친."
 
  아니 아, 이럴 순 없는데. 머릿속이 어지럽게 섞인다. 조명 아래서 빛나는 백금발이나, 전광판에 비친 하늘색 눈동자라던지, 저 완벽하게 취향인 목소리! 젠장할, 내가 왜 여기서 아이돌에 치이고 앉아 있지? 짙은 불길함이 느껴졌다. 분명 저런 인간이라면 노래도 죽여주게 잘하겠지. 그러면 파동도 크게 일어나겠지? 날 뒤흔들 정도면 아주 큰 놈으로 어둠이 기어들어올테고, 
  젠장.
 
  "야, 변신할 준비해라."
  "말 안해도 그러고 있었어."
 
  허공에 손을 뻗으면 빛무리가 모여든다. 한번 가볍게 그러쥐면 그 손에 잡히는 것은 예쁘게 장식된 검. 의례용 검과 같이 화려한 그 것은 날이 시퍼렇게 서 있다. 아마 저번에 모르고 손을 댄 사람의 손가락이 날아갔으니 평범한 예기는 아니겠지? 시답잖은 생각을 집어 삼키면서 촉을 세웠다. 벌써 전주가 끝나가고 있다. 
  첫 소절과 동시에 밀려드는 강한 파동. 비정상적인 파동이 공간을 흔든다. 이건 평범한 인간이 혼자서 낼 수 있는 크기가 아니야.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의미. 다른 이유가 있다.
  젠장, 아무래도 저 카뮤라는 인간이 나랑 공명한 것 같은데.
  아무리 멍청이라도 느낄 수 있을 만큼 거대한 파동이다. 결계가 깨어져 나간다. 미치겠네, 쟤가 날 뒤흔들면 어쩌자는 거야. 공간의 균열, 거대한 흐름. 어둠이 뭉글뭉글 밀려드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어디지? 목적지는-
  무대 위.
  조명이 깨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뛰어내린다. 레이피어로 공간을 찢어 놓으며 외치는 영창.
 
  "흐르는 선율을 가르고 이탈한 음이여!"
  "제 자리로 돌려보내기 위한 조율자가 여기 당도하였으니,"
  ""이제 그만 눈을 감아라!""
 
  젠장, 이거 오글거려!
  눈이 부실 정도로 터져나가는 빛. 제복은 빛에 감싸여 나풀거리는 미니 드레스가 된다. 손에 든 검에서는 길게 리본이 뻗어나와 팔을 휘감고, 정장을 닮은 옷에는 화려한 장식이 걸린다.
 
  "뭐, 소개 대사는 생략하도록 할까."
  "지랄 맞은 소리 그만하고 가자."
  "수습은 내가 할게."
  "OK. 그럼 쟤는 내가 조진다."
 
  우왕좌왕하는 관계자들부터 뒤로 빼낸다. 등 뒤는 진이가 알아서 해 주겠지.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은 저 엿같은 새끼들을 도력내는 것 뿐이다.
  화려하게 휘날리는 꽃잎. 알 수 없는 리듬을 따라서 검무를 춘다. 빛의 조각은 휘날리며 그들을 베어내고, 공기에 남아있는 파동의 잔해는 힘이 되어 어둠을 몰아낸다. 사람도 많고, 길게 끌지 않기로 할까. 가볍게 잡고 있던 검을 양손으로 잡고 길게 그어내린다. 정적, 길게 베어진 공간.
  꽃으로 화하여 휘날리는 어둠. 
  거대한 환호성이 허공을 뒤흔든다.
 
  "우와- 대단해-! 레이쨩, 깜짝 놀라 버렸어!"
 
  어색해진 분위기를 수습하는 건 고토부키 레이지. 제일 연륜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니 당황이 없다. 아니, 정확하게는 제 감정을 누르고 수습하는데 능한 것이겠지. 아직 변신의 여파가 가시기 않아 가볍게 고개만 끄덕인다. 허나 그는 그런 사소한 사실에 굴하지 않는 듯 친근하게 말을 붙여온다.
 
  "모두와 My Girl들을 지켜준 것에 대해서, 이 고토부키 레이지가 대표로 감사함을 표할게! 고마워!"
  "모두를 지켜줘서, 고마워."
  "아, 고맙다."
  "마찬가지로, 아가씨에게 감사를 표할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네 명이 차례로 내뱉는 감사의 말은 분위기를 고양시켰고, 저는 카뮤가 손등에 키스하는 것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을 마지막으로 무대 위에서 벗어났다. 사회자의 능숙한 진행 덕분에 스테이지는 재개 되었고, 그렇게 해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다.
 

 
  내가 요즘 귀가 먹었나? 어색하게 귀를 몇 번 후비적 거리고는 진이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서, 샤이닝 쪽에서 전속 계약 체결을 제안했다고?"
  "그래."
  "왜?"
  "저번에 콰르텟 나잇 봤지? 걔네 호위."
  "미쳤어? 내 몸값이 얼만데."
  "그 쪽에서 어둠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진행되었다고 하더라. 너랑 카뮤랑 파장 맞았잖아."
  "젠장. 그 잘생긴 새끼 얼굴만 잘 생겼지 도움 되는 일이 없네."
 
   거친 말이 튀어나오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짓눌렀다. 젠장할, 진짜 그 잘생긴 새끼 얼굴만 잘생겼어. 내가 왜 그를 피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니까 일의 시작은 그 빌어처먹을 '샤이닝 스테이지'였다. 그 빌어먹을 사건의 이유는 역시나 '공명'. 한 세대에 한 커플만 태어나도 경악을 일으키는 공명이 어째서 나랑 그 인간 사이에서 일어났는지 아직도 모르는 일이다. 덕분에 그랑 저는 만나지 않는게 최선인 관계가 되었다. 같이 있을 때 노래라도 했다가는 파동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커져서 감당할 수 없을만한 어둠이 나올게 자명하니까. 뭐, 사실 내가 처리하지 못할 어둠은 없다고 자신하지만, 굳이 귀찮은 일을 자처하는 취미는 없다.
  그러니까 나는 희생이라도 하는 기분이라도 되어서 그의 노래를 듣는 일도 지양하고 있었단 말이다. 그런데 전속 계약이라니, 그게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혹시 샤이닝 그 인간 꿈이 세계 정복이래?"
  "설마."
  "아니면 날 데려다가 걔랑 붙여놓고 뭘 하겠냐고. 어둠이라도 소환해서 실험하려고?"
  "어, 실험 할 때 사람 데려다 놓으면 그거 말고 또 쓰는 방법이 있어?"
  "오, 인력 낭비의 정점을 찍는군."
 
  정말 놀라운 인력 낭비다. 애초에 나는 혼자서 도시 두 셋은 커버할 수 있는 능력잔데, 그걸 겨우 어둠을 불러낼 때 도움이 된다고 부르겠다고? 차라리 세계 정복을 하라고 하면 납득이라도 할 수 있지. 헛웃음이 나온다. 여기서 가장 짜증나는 점은, 나한테 말이 들어올 정도면 이미 이야기가 끝났을 게 확실하다는 사실. 여기서 내가 뭐라고 떠들든 벌써 윗선에서 계약이 끝났겠지.
  정말 파업이라도 한 번 해 줘야 정신을 차릴 셈인가. 내가 언제까지 그들의 손에 목줄을 쥐어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언제 오라고 했는데?"
  "시간 되는 때 바로. 오늘 안이면 상관 없다고 했어."
 
  심지어 바쁜 사람 보고 오라가라 난리도 쳐 두었다. 이 쯤 되면 나랑 전속 계약을 맺자는 소린지 시비를 걸려는 수작인지 알 수도 없다. 젠장, 아마 이건 시비털려는 고도의 수작이 아닐까? 어쨌든 대면하고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럼 가자."
  "지금?"
 
  대답대신 역수로 쥔 레이피어를 허공에 박아넣었다. 주욱 그어내리며 베어내는 공간. 허공이 갈라져 아가리를 벌린다. 어둠이 넘실 댈 것 처럼 보이는 공간은 사실 실제로도 비슷하다. 어둠이 이동하는 방식이랑 별반 다를 바 없는 이동이니까.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또 못할 건 아니다. 거리랑 비례해서 힘이 들어가니까 한국에서 일본 정도는 우습고. 
 
  "하여튼 새끼, 재능은 넘친다니까."
  "비행기를 타면 귀찮잖아?"
 
  짜증을 억지로 감춰가며 시답잖은 농담을 던진다.
  자연스럽게 뛰어드는 공간의 틈. 몇 번 시야가 흔들리고 나서는 아예 다른 나라에 서 있다.
 
  "그럼 누가 샤이닝한테 가 볼래? 같이 가는건 시간 낭비 아냐."
  "내가 갔다 올게, 넌 카뮤랑 이야기나 하고 있던가. 어차피 네가 전담 될 것 같은데."
  "눈은 호강하겠네."
 
  일본에 도착해서는 자연스럽게 서로 갈라졌다. 어차피 이런 종류의 계약을 한두 번 맺어 보는 것도 아니고, 역할을 분담하는 건 익숙한 일이다. 게다가 제가 싸우는 동안 뒷 수습을 진이에게 맡기는 경우도 잦아서 진이가 이런 일에 더 익숙하기도 하고. 
  사실 그 사람을 만나러 간다는 점에서 어느정도 기대하고 있는 면이 없잖아 있었다. 일단 무대에서 들었던 노래는 단 한 소절이지만 상당히 취향이었고, 자신을 소개하던 목소리만 들어도 제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가 아니었는가. 객관적으로 따져도, 주관적으로 따져도 아름다운 얼굴은 분명 사람을 매료시키기에 적당했다.
  성격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저 얼굴이면 웬만큼 참아줄 순 있겠지.
 

 
  "늦었다, 우민."
  "그럼 바쁜 사람을 갑자기 불러놓고 얼마나 빨리 올거라고 기대한 겁니까?"
 
  진짜 저 카뮤라는 인간은 얼굴과 목소리 빼고는 나랑 맞는 점이 하나도 없다. 내 손목을 걸고 장담하지.
  진이를 보내놓고 그를 찾으러 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파장이 맞는 사람이라고 하면 운명의 상대라는 뜻이다. 어떤 의미로든 서로 엮이게 되어있고, 기운을 쫓아가면 멀리서 GPS 좌표도 찍을 수 있다. 어쨌든, 그래서 그를 만나러 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짧은 망설임을 극복하고 미팅룸에 들어섰을 때, 감았던 눈을 뜨더니 시린 눈으로 저를 훑어보고는 하는 말이 저 꼬라지다. 뭐, 늦었어? 바빠서 한 나라에 붙어있기도 어려운 사람을 불러놓고 한다는 소리가 아주 가관이다. 나는 지금 자기 때문에 몇 개의 일정을 취소하고 왔는데, 늦었다고? 지랄하고 있네. 시간이나 알려주던가.
  그런 생각들이 어지럽게 돌아다니지만, 정말 예상했던 대로 저 얼굴을 보니까 꽤 참을만 해 졌다. 그러니까 아슬아슬할 정도로. 
 
  "뭐, 좋다. 어차피 네놈들에게 기대는 하지 않았어. 발목이나 잡지 마라."
  "자신감 넘치는 말이네요. 오히려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저 자신을 지킬 힘도 없어서 저희에게 의존해야 하는 분이, 입만 살았군요."
  "헛소리 하지 마라. 나는 네놈들의 보호가 필요 없어."
  "뭐, 당신이 마법이라도 쓸 수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다."
 
  뭐라고?
  순간 머리가 그의 말을 받아 들이는 것을 거부한다. 그러니까 지금, 그도, 마법을 쓸 수 있다고 말한게 맞지? 분명 그에게서 선택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는다. 선택 받은 인간이라며 내가 알아보지 못할리가 없다. 그가, 나보다 강하기라도 하단 말인가? 우스운 소리. 애초에 나는 계약부터 최강을 약속받은 사람이다. 그가 나보다 강할 수는 없어.
  그럼 무엇이란 말인가?
 
  "당신에게서 '선택'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선택'받은 분은 여왕 폐햐시다. 나는 그분의 힘을 빌려 쓸 뿐. 허나 그 힘으로도 일신의 안위를 보존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러니까, 감히 빌려 쓴 힘 주제에 저랑 비슷하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놈은 지금 여왕폐햐의 힘을 무시하는 건가?"
  "제게 있는 타이틀을 잊으셨습니까? 저는 '최강'의 이름을 받았습니다. 저보다 강한자는 존재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네놈은, 지금 제 프라이드를 무시한겁니다."
  "흥, 우습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군."
 
  우습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건 네놈인데. 지금까지 한 번도 의심받지 않았던 사실을 의심당하니까 기분이 아주 개같다. 신조차도 내가 최강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는데, 뭐? 한낱 인간, 그 중에서도 힘을 빌려쓰는 인간 주제에 제 능력을 의심하고 앉아있다. 진짜, 저 새끼 얼굴만 아니었으면 진즉 깽판을 놓아도 크게 놓았는데. 
  망할. 저 새끼는 관상용으로 구경만 하면 안 되나.
 
  "일단 소개는 생략하고, 앞으로 당신은 제가 전담으로 마크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자-알 부탁 드리겠습니다."
  "이쪽이 할 말이다."
 
  이렇게 제대로 된 첫 대면은 아주 개같이 끝났다.
 

  그와 제가 파트너로 지낸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놀랍게도 그 동안 저번과 같은 큰 건은 없었다. 애초에 그가 노래 할 즈음에는 제가 귀마개를 끼고 있었고, 그는 진심으로 감정이 들어간 곡을 부르는 일이 잘 없었으니까. 자잘한 것들은 굳이 변신을 하지 않아도 손 몇 번 휘저으면 끝나는 일이다. 뭐, 평화롭다는 사실이 좋긴 한데, 
  그에게 제 힘을 제대로 보여주질 않으니 저 인간이 계속 저를 무시하고 있다.
 
  "그럼 오늘 스케줄도 끝입니까?"
  "그렇다. 오늘도 네놈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군."
  "누가 할 말을 하고 있습니까. 제가 오늘 쳐낸 어둠만 몇인지 아십니까?"
  "나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간단한 일에 생색이라니, 네놈도 알 만하군."
  "오늘 그 말만 몇 번 했는지 압니까? 좀 더 참신한 레파토리를 생각해 오세요."
 
  처음에는 얼굴 보고 참아줬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다. 4주의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아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이렇게 싸우는 사이까지 되어있다. 참, 이걸 특별하다고 해야 하는건가? 진이하고도 이렇게 자주 싸우지는 않았다. 젠장, 진짜 저 인간 짜증나 죽겠네.
 
  "아하하... 뮤-쨩이랑 현쨩? 이제 그만-"
  "싫습니다."
  "시끄럽다, 고토부키."
 
  아, 망할. 타이밍 겹쳤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말을 꺼낸 덕분에 목소리가 겹친다. 그래놓고 저를 노려보는 꼴이, 아주 지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태도다. 저걸 어둠 소굴에다가 한 시간 정도 던져두고 구하러 가면 쟤가 내 힘을 인정할까? 내가 원래 이런 비도덕적인 생각은 잘 하지 않는 사람인데, 꽤 매력적인 생각으로 들린다. 저 인간이 나한테 시비만 그만 턴다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요즈음 콰르텟 나잇 넷이 같이 활동하는 일이 잘 없어 얼굴을 보지 못한 진이가 보고 싶어졌다. 젠장, 왜 여기 내 편은 하나도 없지.
 

  힘을 증명할 시간은 생각보다 이르게 찾아왔다.
  일전의 에피소드가 있고나서 2주 후. 콰르텟 나잇 넷 전부가 하는 라이브 일정이 잡혔다. 분명 그 곳에는 저도 있어야 했고, 그럼 의심할 바 없이 샤이닝 스테이지와 같은 상황이 연출 될 것이다. 그래서 저는 차라리 제가 노래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대기하고, 진이가 그 곳에 있으며 라이브를 지킬 것을 권했다. 허나 그 쪽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NoNoNo! Me에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Da!"
  "예?"
  "그건 말입니다-"
 
  그렇게 쓸데없이 시끄러운 텐션으로 그가 떠든 소리는 이랬다. 어차피 어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야 하니까, 나올 것을 전제로 하고 라이브를 준비하자고. 그들은 제 힘이 공명해서 나오는 어둠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었고, 제가 아무리 설명해도 들어먹질 않았다. 카뮤도 그렇고, 저 샤이닝이라는 사장도 그렇고, 도대체 왜 '최강'의 의미를 허투루 본단 말인가? 저러다 단체로 어둠에게 집어삼켜져야 정신이라도 차릴 모양이다.
  허나 그들의 제안을 내내 거절하는 것도 귀찮은 일이니, 저 치들이 한 번 데여 보아야 정신을 차릴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어둠을 끌어내는 것이나 다름 없는 라이브를 참관하기로 하였다.
 
  [자, 준비 되셨습니까?]
 
  와아아! 하는 함성이 온 회장을 뒤흔든다. 저 사이에 끼어있었으면 귀 나갔겠네. 부루퉁한 생각을 하면서 느긋하게 몸을 벽에 기댔다. 여기는 무대의 빛이 닿지 않는 구석. 허나 무대를 모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라 여차하면 바로 튀어 나갈 수 있다. 
 
  "표정 풀어."
  "그게 마음대로 되냐. 쟤네가 날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애초에 저 인간들이 어둠이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 구경만 했지 겪어 봤겠냐?"
  "그래도. 걱정해서 하는 소리를 왜 들어 처먹질 않아."
  "데여보면 알겠지."
 
  진이의 말을 이해는 하지만 받아들이는 건 별개의 문제다. 내가 이래서 이런 일을 싫어하는데. 애초에 저는 '선택'받은 자다. 그런 이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마음먹고 사람을 해치는 것. 적이라 규정하지 않은 자를 해침에 있어서 저는 본능과도 같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정말 하기 싫다고.
  지금이라도 저 치들을 쫓아내고 싶어 드릉거리는 손을 억지로 감아쥐었다. 전주가, 또다시 전주가 흐르고 있다. 첫 소절부터 저를 뒤흔들 것이 자명한 노래를 견뎌내려면 제가 의연해야만 했다.
 
  분명 카뮤는 저의 영혼이요, 제 인생의 반쪽이 틀림 없다.
  하이라이트로 치닫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한 번도 겪거나 생각하지 못했던 감정이 어지럽게 저를 들쑤신다. 자신 없다는 생각은 제가 해 본적이 없는 종류인데. 이 노래가 하이라이트를 지나고 나서도 어둠을 불러내지 않을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젠장, 저 인간 진짜 내가 모르고 있던걸 장난아니게 선물하네. 
  순식간에 하이라이트로 치솟아 오르는 음. 드물게 진심을 담아서 노래하는 카뮤. 본능적으로 제가 손을 뻗어 검을 쥔 순간, 무음의 절규가 울려퍼진다. 다급하게 고개를 돌리면 마주하는 시선. 진이가 소리친다.
 
  "말 안해도 알아!"
 
  무대 위로 뛰어나간다.
 
  "흐르는 선율을 가르고 이탈한 음에게 심판을!"
  "조율자의 손을 벗어난 악기에게 안식을!"
 
  허공에서 등장한 어둠은 쏟아져 내린다. 사방을 잠식하는 어둠은 인간에게 기어가기 시작하고, 다급하게 휘두른 검에 쓸려 나가는 것들은 일부일 뿐이다. 젠장, 제대로 된 기술을 쓸 시간이 없어. 
  처음 삼켜진 자는 사회자였다.
  목소리를 얻은 어둠이 노래하기 시작한다. 진혼곡, 진혼곡! 머리를 아프게 만드는 찢어지는 음. 사방에서 들리는 비명. 이럴 순 없어. 누군가를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젠장, 다급하게 굴러다니는 시선이 아직 무대 위에 있는 카뮤를 향한다. 분명, 공명이 가능하다면
  도박을 걸어 보는 수 밖에.
 
  "카뮤!!"
 
  눈이 마주친다. 짧은 시간동안 오가는 감정.
 
  "노래해줘요!"
 
  대답대신 끊어진 곡의 반주가 이어진다.
 
  확실히 반을 되찾은 영혼의 힘은 강력하기 짝이 없다. 지금까지 제가 해 왔던 모든 전투가, 단련이 의미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 덕에 제어가 어려워진다. 제 멋대로 날뛰는 검은 어둠만을 베어내지 않고, 사람에게로 기어가는 어둠을 소멸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다. 허나, 못할 일은 아니지.
  그의 노래에 맞춰서 검무를 춘다. 뻗고, 거두어 들이고, 날아오르고, 내리친다. 둥글게 돌아가는 궤적. 돌고 돌아서-
  내리친다.
 
  정신을 차려보면 노래는 끝나있고, 저희는 승리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환호. 능숙한 걸음으로 다가온 카뮤가 제 손 위에 입을 맞춘다. 달아오른 머리와 광기를 이겨내지 못하는 저는 이전처럼 입을 다문다.
 
  "최강의 이름은, 인정 해 주지."
 
  그래도 그 말을 듣고는 미소지었던 것 같다.
 

  확실히 그 날 샤이닝은 제가 무모했다며 사과의 말을 건네왔다. 뭐, 받아주진 않았다. 미쳤다고 그걸 받아준단 말인가. 그런 인간은 상종하지 않는게 제일인데. 어쩌다가 엮였는지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었지만 일단 이 정도로 일은 일단락 되었다.
  별 것 아닌 헤프닝으로 끝날 일이 이토록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것은, 카뮤와의 관계가 상당히 진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예전처럼 싸우는 건 싸우는 거지만, 서로를 조금이나마 인정하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저는 아직도 카뮤를 그리 좋아하지 않고, 그의 강함에 의문을 품고 있다. 허나 그렇다고 하여서 그를 마냥 무시해도 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그 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했던 대화가 아마 무언가를 크게 바꿨을 것이다. 아직도 그의 목소리는 선명하다. 그 빌어처먹게 낮은 목소리로, 듣기 좋게.
 
  '어이, 네놈.'
  '하아? 구해줬는데도 호칭이 그 꼴입니까?'
  '감사하도록하지.'
 
  사실 그 때 어둡지 않았으면 붉어진 얼굴을 다 내보였을 것이다.
  젠장. 몇 번의 시도가 반복되고 나서는 저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그는. 
  본디 영혼의 반쪽이란 로맨틱해 보이면서도 결국은 그저 인연일 뿐이다. 잘 맞는다면 친구요, 맞지 않는다면 지독한 악연이 되기 마련이란 뜻이다. 사실 저 또한 그가 좋게 보면 친구가 될 것이고, 심하면 이대로 틀어져 악연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데.
  그가 제게 있어서 연인의 의미로 이어질 인연일줄은 꿈에도 몰랐다.
  시발. 다시 생각해도 욕이 나오는 일이다. 저 차갑고 재수없는 치를 연인의 의미로 좋아한다고? 제 인생에 있어서 누군가를 이성적으로 좋아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 그 첫 사랑이 저 망할 인간이란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아깝다. 허나 어쩌란 말인가. 저 목소리를 듣거나, 얼굴을 보는 일 만으로도, 
  귓가에 심장소리가 울리는데.
 
  저는 부정하는 일을 할 지언정 멍청이는 아니었다. 
  허나 이 사랑이 이어지리라 확신하지는 않았다. 긴 인연은, 여러가지 형태가 있기 마련이니까. 아마 이건 평생을 이어질 짝사랑이 아닐까, 정도로 생각했다.
 

  인간에게 자만이 얼마나 큰 해악이 되는가.
 

  "오늘도 라이브, 기대하겠습니다."
  "아아, 네놈을 믿도록하지."
 
 
  이제 일상이 되어버린 대화. 별로 큰 의미를 담지 않는 대화에서 설렘을 찾는 것은 나 혼자 뿐이다. 허나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역시 중증인가? 빌어먹게 취향인 얼굴이랑 목소리를 보고 있으면 이 정도 짝사랑은 납득하고야 만다. 제가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 누군가의 허락을 구할 이유도 없으니, 이 정도 온도는 품고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허나 일상이 이리도 크게 뒤틀릴줄 어찌 알았는가.
 
  평소처럼 뛰어든 전투, 평소처럼 쳐내는 어둠. 그러나 그가 노래 하는 것은 어둠을 또다시 끌여들였고, 두 번째 전투라고 느긋하게 달려든 대가는-
  카뮤의 부상.
 
  "어이, 무사한가."
  "저는 당연히 무사하죠! 씨발, 네가 제 대신 다치지 않았습니까!"
 
  그 누구도 지켜줄 필요가 없는 저를, 지키고자 달려든 건 저 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다.
 

   그에게 흉터는 남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저는 그를 치료했고, 그 날 달려든 어둠의 근원마저 뿌리 뽑아 버렸으니까. 부상을 지켜본 사람도 없다. 어둠이 사방을 가렸기 때문에, 그에게 스캔들은 터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이럴 필요는 없는데.
  빛이 들지 않는 방에서 양 손에 얼굴을 묻었다.
  끼이익,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진이가 들어왔다.
 
  "또 청승이냐?"
  "씨발, 내가 조금만 더 강했어도. 내가, 내가 안일하게 대처하지만 않았어도."
  "끝난 일이야."
  "하지만."
  "지랄 그만하고, 이제 나와. 걱정하더라."
 
  순식간에 정신이 돌아왔다. 카뮤가, 날 걱정해? 그렇다면 그는 다음에도 또 나를 지키기 위해서 달려 들 것이다. 나 때문에 상처입을 것이다.
  그건 안 돼.
 
  "야, 진아."
  "아, 또 왜."
  "2차 각성, 하러 가자."
  "이제야 그 소릴 하냐."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 처럼 대답하는 진이에게, 저는 희미하게 웃어주었다.
 

  이 세계에 단 하나 존재한다는 뮤즈의 신전. 어울리지 않게도 그리스의 양식으로 지어진 신전은 말만 신전인 폐허가 아니라 실제로 신을 모시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뮤즈의 힘이 직접적으로 깃들어 있는 이 곳은 시련을 내리고, 협동을 배워서 새로운 힘을 얻게 만든다. 
  그렇기에 이 곳은 최소한 한 달을 기다리며 다른 사람과 함께 격파해 나가야 하는 곳이다.
  물론 제게는 의미 없는 말이지만. 
 
  "갈까?"
  "참, 너도 대단하다. 최소 100명은 가야 하는 곳을 둘이서 뚫자고?"
  "못할 것도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한숨을 내쉬는 진이에게 마지막처럼 부탁했다. 마지못해 납득한 그녀를 이끌고 들어서면 존재하는 것은 한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는 어둠. 지체할 시간은 없다. 내가 없는 동안 또다시 카뮤가 다치기라도 하면-
  다급하게 몸을 날린다.
 

  "어이, 네놈. 어딜 다녀온 것이냐."
  "어, 잠시 2차 각성하러?"
  "하아?"
 
  만신창이가 되어서 돌아온 저를 반긴 것은 카뮤의 퉁명스러운 말이었다. 허나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은 걱정이라서, 어설프게 배시시 웃어보였다. 이제 더 이상 당신을 다치게 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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