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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admin 2018.11.18 21:20 read.6

  "네놈은, 네놈은, 결국, 그렇게나 가벼운 언동으로, 나를 떠날게 아닌가!"

 

 
  처음이었다. 당신이 내게 그렇게 소리지른건. 늘 다급하게 말하면서도 언성을 높히지 않았던 당신인데, 지금은. 저를 붙잡고 간절하게 소리치고 있다. 상처받은 눈으로, 울면서,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눈으로 울면서. 
  나는 당신에게 잘못한 것을 알 수 없어 그저 바라보기만 하였다. 잠시, 생각이 멈춘다.
 

  현은 늘 그랬다. 어디론가 떠날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면서, 마치 죽을 사람처럼 행동했다. 당장 사라져 죽어도 상관없는 표정으로, 죽음을 입에 담고는 하였다. 그는 그게 싫었다. 그래서 그녀를 더욱 옭아맸고, 옆에 두고자 하였다.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주어, 행복을 알게 만들고자 하였다. 그게 그의 사랑이었다. 허나, 그의 사랑 속에서,
  그녀가 행복했던가?
 
  그녀는 늘 자잘한 죽음을 입에 담았다. 이유는 다양하기도 하였다. 수치스러워서, 제가 너무 좋아서, 죽고 싶어서, 그냥. 살기 귀찮아서.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카뮤의 심장 속에 흘러들어갔다. 심장이 뛰는 순간 순간 상처를 입히며 고통을 준다. 그럼에도 그는 그저 웃었다. 제 연인이 너무 사랑스러워 웃었고 구원이 너무나도 반가워 웃었고, 그저. 사랑에 빠졌기에 웃었다.
  그 이유 중 그녀가 제 웃는 모습을 보면 늘 얼굴을 붉히며 죽고싶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 없다고 말 할 수는 없다.
 
  쉬이 질리는 어린 아가씨. 그녀는 보통 그렇게 보인다. 그 속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녀가 그렇게 보였고, 그렇게 보이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그녀는 늘 제멋대로인 어린 아가씨였다. 쉬이 질리고, 빠르게 익숙해지고, 오직 쾌락과 재미를 추구하고.
  카뮤는 그녀에게 있어서 최고의 재미였고, 쾌락이었고, 아름다움이었다. 그 사실 하나가 카뮤를 지탱했다. 그를 뛰어넘는 가치가 그녀에게 있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게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렇게 여겼다. 그녀가 말하는 사랑이, 장난감에 대한 것인지, 인간에 대한 것인지, 아이돌 '카뮤'에 대한 것인지 그가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상처입고 감내하는 일은 아주 어릴 적 부터 익숙하다. 육체적인 상처라 한다면 쉽다. 아주, 아주 쉬운 일이다. 그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조차 상처를 입고 복수를 다짐하는 일이다. 분노를 삼키고, 제 분수를 파악하여 때를 기다리는 일은 그에게 있어 익숙하였다.
  마음의 상처로 이야기하자면, 그는 제가 상처입었다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다. 상처가 그에게 있어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고통이 당연하여 감정이 나약함의 상징인줄로만 알고 살아왔다. 그러니 어찌 마음의 상처를 두려워 한다는 말인가? 당장 죽지도 않는 그 마음의 상처가.
 
  허나 그 상처가 이제 그를 죽이려 하고 있다. 사랑으로 가득차 녹아내린 심장에 구멍을 뚫어서, 행복을 모두 저 불안 속으로 던져버렸다.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면 그녀도 그게 아무렇지 않은 줄 안다. 제 상처를 기민하게 알아차리고 울던 현은 제가 주는 상처에 무심했다. 아니, 제가 그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그 사실이, 더욱, 
  그는 이 감정을 형용할 수 있는 보드라운 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녀는 저를 쉬이 아래에 둔다. 카뮤의 아래에, 다른 사람의 아래에, 누군가의 아래에. 저 자신이 뛰어남은 알고 있으면서, 제가 누군가에게 가치를 가진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저 자신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타인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모두 제 손위에 올려놓고자 하며,
  마치 극 속을 살고 있는 인간과 같아.
 
  사랑스러운 것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과도 같다. 겨울 속에서 유일하게 찾아낸 온기를 붙잡지 않을 방법을 그는 알지 못한다. 허나, 그 온기가 날카롭게 그를 저며낼 때, 어찌 대처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 그는 그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바로 제 가장 보드라운 부분을 내어주어 이것조차 네가 저며내라 말하는 것이다. 그 저민 살을 그녀의 입에 넣어주고 이것조차 내 사랑이다 말하는 것이다.
  비로소 그녀가 그를 떠나지 않게. 그의 사랑을 알고 고통을 모른채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그의 곁에서 행복을 알 수 있도록.
  마침내 그 행복속에서 안정을 찾아 그를 떠나지 않게.
 
  그는 저를 바쳐 사랑하는 법 밖에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였다.
 

  "현."
 
  붉게 변한 얼굴과 잔뜩 당황한 얼굴이 즐거웠다. 제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습이, 그가 가진 무게를 증명하여 사랑스러웠다. 
 
  "사랑한다."
 
  허나 이 말에 그녀의 반응이 무뎌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녀가 만약 이 상황에조차 적응한다면, 마침내 그의 모습에 질려버려서 저 멀리 떠난다면.
  어머니가 그를 증오하게 만들고 아버지의 후계자임을 증명하게 만들었던 얼굴이다. 혈족의 증명 이상으로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외견이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마지막 구명줄은 이 것이다.
  한 번도 가치를 둔 적 없는 외모와, 목소리. 그는 이 하나에 기대 그녀의 사랑을 맹세 받았다. 그의 사랑은 영원하리라 쉬이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녀의 사랑이 영원하리라 어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나도 사랑해요, 카뮤!"
 
  저리도 빛나는 사람인데. 겉치레로 가득 차 공허하기만 한 그에게는 너무나도 과분한 사람인데.
 
 

  사랑조차 그에게는 화상으로 다가왔다. 온기를 모르고 살아온 자의 최후가 그렇다. 동상으로 얼룩진 몸 위에 갑자기 내리부어진 온기는 고통이고, 화상으로 남았다.
  그 얼룩이 그를 바꿨다.
 

  어느 날의 일이었다. 그녀가 아주 늦게 들어 온 날이고, 며칠 정도 연락을 길게 하지 못한 날이었다. 탁상 위에 있는 쪽지 하나가 그에게 상황을 설명한다. 
 
  '잠시 나갈게요.'
 
  돌아온다는 말은 없다. 없다.
  없다.
  그에게 돌아올 생각이 없는가?
  그는 그녀를 붙잡을 자격이 있는가.
  없다.
 
  처참한 기분이다. 그는 또다시 공허하게 변해버린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겨울의 끝을 모르고 살아왔을 때에는 버틸 수 있었던 냉기인데, 한 번 달콤함을 맛본 몸은 그 온기를 기억하고 있다. 
  어째서, 그가 무엇을 잘못했던가. 그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었을 터인데, 어째서 그녀는 그를 떠났는가. 
  부족함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이렇게나 힘들다. 카뮤는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인데, 그녀는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래서 더욱 괴롭고, 괴로워서. 
  그는 양 손에 얼굴을 묻었다. 허벅지 위로 머리를 올리는 애완견만이 그를 위로한다. 등을 덮었던 자그마한 온기가 사라진 지금, 그는 날개를 잃은 기분이 되었다.
 
  "나 왔어요."
 
  그러니 그에게 내려온 구원이, 기다림의 기억을 그저 상처로 만들었음에 놀라지 않아도 괜찮다. 그는 그 상처가 있기에 행복을 알게 되었으니.
 

  "아, 정말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심정이네요."
 
  그는 덜컥 목을 막는 불안에 한 박자 늦게 대답하고 말았다.
 
  "...그런가."
 
  끝끝내 같이 가자는 말은 하지 않는다. 
 
 

  아주 사소한 다툼의 기억이다. 그는 이제 그 싸움의 시작을 기억하지도 못한다. 그저 참지 못하고 화를 낸 제가 잘못했었겠거니, 막연하게 생각할 뿐이다. 제가 모자라 그녀에게 그리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왜 그렇게 불안해 하는 거예요, 카뮤. 나는 여기 있는데!"
  "그 사실이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하나!"
  "그럼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네놈은, 네놈은, 결국, 그렇게나 가벼운 언동으로, 나를 떠날게 아닌가!"
 
  그 말을 듣고 상처입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서야, 카뮤는 제가 더 인내할 것을 그랬다며 후회했다. 그녀가, 상처입으면,
  그가 없던 때를 더 행복했다 여긴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카뮤의 표정을 보고서야 또다시 현은 제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지금까지와 다른 형태였으나, 상처가 되고야 말았다. 제 눈이 멀어, 지금까지 카뮤를 덮고 있던 상처를 보지 못했다. 이 쓸모없는 눈은, 결국 흥미 외의 것을 보지 못했다.
 
  "카뮤...?"
  "아니, 아니다. 잊어라. 내가 잘못했다. 그저 헛소리야."
  "크리스자드,"
  "실언을 했을 뿐,"
  "미안해요."
 
  여기서 울 사람은 제가 아닌데, 울음이 터졌다. 당신의 상처가 너무나도 아파서, 울지 못하고 그저 흔들리기만 하는 눈동자가 너무나도 괴로워서 저는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아, 내가 여기서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울 상황이 아닌데. 그런데, 그런데. 당신이 그렇게, 그렇게나 아파하면.
  제가 뿌린 상처조각들이 박혀서 그를 괴롭게 하고 있다. 그를, 죽이고 있었다. 
 
  "내가 미안해요, 크리스자드. 어쩌면 좋아. 내가, 내가 당신을 불안하게 만들었나요?"
  "..."
  "나는 떠나지 않아요, 나는 여기 있을 거에요. 계속. 떠나더라도 당신과 함께예요."
  "진심인가."
  "물론이예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또다시 당신을,"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이 터져나온다. 흐느낌 속에서 선명하게 짙어지는 것은 자기혐오. 이러고 싶지 않았다. 저 사람을 나로 만들지 않고도,잘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나는 당신이 늘 웃기에 괜찮은 줄 알았다.
  모든 사람이 나는 아니기에, 나와 같이 가치를 두지 않음을 알면서 또다시 이렇게 해 버렸다.
 
  내 모든 순간이, 언동이 당신에게 상처가 되어버렸다면 내가 그 상처를 어찌 배상할 수 있겠는가? 내가 어떻게 당신의 불안을 덜어 줄 수 있겠는가. 나는 바보같이 당신에게 구원이 되었다고 자만했다. 오만하게 당신의 구원이 나이기에 옆에 있는 것 만으로 괜찮을 줄 알았다.
  제 것 하나 손에 넣어보지 못한 어린아이가 겨우 얻은 것을 빼앗길까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몰랐다. 당신을 빼곡하게 덮은 상처가, 상처 입어도 상처가 늘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게 만드는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부정당하고, 오직 최고일 때만 인정받았던 사람. 내가 당신에게 확신을 주지 못해서, 그래서 이렇게 되어버렸다. 내 잘못이야.
 
  "크리스자드, 나는 당신에게 있어서 가벼웠던 적이 없어요."
  "그렇게 생각한 적 없다."
  "거짓말."
  "......"
  "믿음을 주지 못해 미안해요. 미안해요, 내가 방법을 몰라요. 내가, 내가 모자라서."
  "네 잘못이 아니다."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말에 울컥하고 말았다. 나를 탓해도 괜찮은데, 당신은 또다시 당신에게 책임을 돌린다. 당신이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당신에게 확신을 주지 못하였을 뿐이지 당신은 끊임없이 나를 믿고자 하였는데.
 
  "아니, 내 잘못이에요."
 
  허나 나는 이리 저질러 놓고도 당신에게 사과하는 법을 모른다. 미안하다는 말이 안심이 되지 않고, 이 것을 계기로 저를 떠날까 고민하는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을 모른다.
  그저 상처를 가린 천을 뜯어내며, 그 위에 말라붙었던 피고름을 치울 뿐이다.
 

  눈물 흘리는 소녀 앞에서 카뮤는 또다시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를 위로하는지, 저를 위로하는지 알 수 없다.
  그는 또다시 그녀를 통해 운다.
 

  어설픈 연인의 밤이 저문다. 여명이 또다시 안식의 시간을 빼앗기 위해 잔인하게 다가온다. 그 여명아래 선명하게 드러나는 상처.
  현은 닿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는다. 흉터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 카뮤의 심장께에 손을 올리고 저 심장에 제 온기가 닿기를 기도한다.
 

  어리고 어설픈 연인은 몰랐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 드러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결국 그들이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들은 행복할 것이다. 언젠가, 모든 동화처럼 Happy Ever After로 끝낼 수 있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니까.
  왕자가 아니라 백작, 공주가 아니라 기사. 허나 백마를 타고 달려올 수 있고, 안식을 줄 수 있다면 괜찮다. 현실은 동화가 아니라 상처가 나고, 피가 흐르지만 괜찮다. 현실이기에 가질 수 있는 행복이 있으니까.

 

 

2017.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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