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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admin 2018.11.18 01:20 read.5

  기실, 이런 마지막은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였다. 그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그에게 숙명으로 주어진 마지막. 죽음. 그의 죽음은 늘 이런 형태라고, 그는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생각해 왔다. 그러니, 그는 새삼스럽게 미련이 생기지도 않았다.

  라고 말하면 거짓이다. 그는 우습게도, 그 명령의 앞에서 제 연인을 생각했다. 그는 감히 제게 드리워진 사슬 앞에서, 제 긍지 앞에서, 사랑을 떠올리고야 말았다.

  이 얼마나 우스운 타락인가.

 

 

  사적인 감정이 연관된 일은 망쳐진다. 그게 그의 목숨을 버리는 일이라고 해도, 그는 결국 임무를 실패시키고 나서도 살아남고자 할 것이다. 이런 약함은, 이미 버리지 않았나. 푸른 빛 속에 모두 녹여 없에버리지 않았던가.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베어낼 수 있는 냉기뿐이건만.

  이렇기에 그는 그녀의 따스함을 두려워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녀가 그를 이렇게 녹여서, 그의 인생 전체를 부정하고서라도 사랑에 목숨을 걸게 할까봐. 그가 그녀를 지키고 의연하게 사라지지 못할까봐. 그는 그녀의 온기를 지독히도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이미 삼킨 독이다. 그 어떤 단맛보다 달콤하여, 그를 홀리고야 말았던 독이다.

 

 

  “네, 알겠습니다. 모든 것은 여왕님의 뜻대로.”

 

 

  제 검을 버려야만 했던 제 주군의 심중을 헤아려, 그는 떠나야만 했다. 비죽 머리를 내미는 감정과 후회를 차갑게 얼려 깨뜨린다. 사방으로 비산하며 상처를 만드는 얼음조각을 그는 다시 깨부순다. 그에게 남아야 하는 것은 오직 차가운 이성과 충성심. 그리고 허락된다면,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 살고 싶다는 마음을 버려서 마지막까지 사랑을 간직하는 것이다.

  머리를 숙이면 머리카락이 흘러내린다. 그는 언젠가의 그녀가 제 머리카락에 대해서 예찬론을 펼쳤던 사실을 떠올리고는, 웃어버렸다. 허나 그 웃음은 결국 울 수 없기에 대신 튀어나온 웃음일 뿐이다.

 

 

  떠난다. 아주 멀리 떠나간다. 그녀에게 전할 유서는 이미 남겨두었다. 알렉산더는, 잘 살 것이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겨 두었다. 저를 잊고라도 행복하게 살아주었으면 한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그녀가 맡아 주겠지. 그러면 그는 안심할 수 있다. 사실 그는 그런 마지막을 바랬다.

  감히. 그는 제가 없다는 사실이 제 연인에게 조금의 불행이 되기를 염원하고야 말았다.

  그의 구원, 처음으로 다가온 온기, 애정,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 연인. 그를 찾게 만들고 그 스테인드 글라스 아래서 잠들어 있던, 울고 있던 그를 깨워 보듬어 안은 사람. 그는 그녀에게 받은 것이 많아 외롭지 않았다. 단지, 조금 추울 뿐이다.

 

 

  그리고 그는 제 무덤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몸은 썩어 문드러지고 백골만이 자리를 지켜야 할, 제 무덤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가문의 무덤에 묻히지도 못하겠지. 허나 이 또한 여왕의 뜻이다.

  실로, 여왕의 검 카뮤다운 마지막이 아닌가.

 

 

  “우와, 확실히 여긴 좀 외지네요.”

 

 

  그러니 그의 뒤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서는 안 되었다. 그가 모두 내치고 온 사랑이 그의 뒤에 다시 나타나서는 안 된다. 그가, 어째서.

 

 

  “귀신이라도 본 표정이네요. 저 맞아요. 설마 제가 당신을 못 따라왔겠어요?”

 

 

  평소처럼 그를 보고 풀어지는 표정. 다를 바 없는 얼굴. 지독히도 흰 피부와 그에 대비되는 검은 머리카락. 거의 쇄골께에나 겨우 오는 작은 몸. 그리고, 그 모두를 압도하는 특유의 분위기.

  그는 이곳에서 그 모습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제 무덤에 그녀가 같이 누워서는 안 되었단 말이다. 어째서 그가 멀리 떠나야 했는가, 그녀가 그를 따를까 이리 하였는데!

 

 

  “어째서 네놈이 이곳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어서,”

  “이미 늦었어요. 비행기 돌려보냈거든요.”

  “어째서 네놈은!”

 

 

  그는 제 죽음을 선고 받았을 때에도 이리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 이는 당황이 아니라 슬픔에 가까웠다. 그는 필사적이었다. 그녀를, 그녀를 살려야했다. 이곳에서 그와 함께 죽기에 그녀는 너무나 빛나서, 너무나 빛나는 꿈을 가진 사람이라. 아무것도 아닌 그와 함께 가기에는 너무나,

  그는 그녀의 웃음 앞에서 또다시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야, 당신이 혼자 죽으려고 했잖아요. 카뮤.”

  “그것이 충성이다! 내게 주어진 운명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걸 거부하라 하지 않았잖아요. 제가 함께 갈게요. 카뮤, 당신이 죽을 때 크리스자드도 죽어요. 그리고 그는 저와 함께 하겠다 맹세했잖아요.”

 

 

  울컥. 올라오는 말이 막혔다. 그녀와 있을 때는 이렇게 목구멍에 감정이 걸려 말을 내뱉지 못하게 되는 일이 너무 잦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에게 감당할 수 없는 빛을 내린다.

 

 

  “죽음이 무섭다고 하지 않았나! 네놈 하나라면 내가 어떻게든 돌려보낼 수 있다. 당장이라도,”

  “무서워요, 카뮤. 죽어가면서 아플 게 무서워요. 그런데 말이에요, 나는 당신이 혼자 죽을 거라는 사실이 더 무서워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죽음을 각오한 그의 앞에서, 당신이 혼자 죽는 것이 내게 더 큰 두려움이 되노라고. 아무렇지 않게, 내일의 점심 메뉴를 이야기 하듯. 그렇게 이야기했다.

 

 

  “네놈은…….”

  “자, 안 갈 거예요? 임무라면서요.”

 

 

  어서 가요.

  그 웃음이 그에게 또다시 구원이 되었다. 죽음 앞에서, 너는 절대 혼자가 아니리라 안심하게 만드는 그녀의 웃음이 또다시 그에게 구원이 되었다. 그는 결국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제 손과 달라서, 손 끝 말고는 굳은살이 느껴지지 않는다. 허나 그의 손은 어땠던가. 검을 다루며 굳은살이 박히고 거칠어진 손. 흉터는 오직 겉에만 사라졌을 뿐인.

  그는 또다시 손 안의 온기에 매달리고야 말았다. 그들의 사랑이 그랬다.

 

2016.10.08 첫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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