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모를 그의 팬이 ‘입주 메이드’를 자처한 지도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 카뮤는 문득 저녁 메뉴를 무얼로 할지 묻는 문자 앞에서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빵은 좀 질리니까 스테이크로 할까요? 괜찮은 고기를 샀어요. 이걸로 뭘 만들지는 카뮤상의 자유로.’ 덧붙인 사진엔 생고기의 사진과 알렉산더의 코가 찍혀 있다. 잠시만, 알렉산더! 하고 소리치는 그 녀석의 목소리가 귀에 선하다. 아마 이 사진을 찍고 알렉산더랑 한바탕 말다툼을 벌였겠지. 알렉산더는 똑똑한 개이니 사람의 음식에 간섭하지 않지만, 당황스럽게 소리치며 달래는 그녀석의 목소리가 퍽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스테이크로 해라.’ 카뮤는 짧은 답신을 보내고 퍽 만족스러운 기분이 되었다. 그 녀석은 요리를 그럭저럭하는 편이었지만, 고기 요리는 웬만한 식당 못지않은 솜씨를 뽐냈다. 비록 옆에 있는 가니쉬는 모자란 구석이 꽤 있었지만, 채소를 입에 대지도 않는 주제에 감으로 구워냈음을 고려하면 놀라운 솜씨였다. 저녁은 기대할 만한 음식이 나올 모양이다.
“카뮤,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어?”
“알 바 아니다.”
“그렇다면 상관없지만. 회의에 집중해줘.”
미카제가 낌새를 챈 듯 물어왔지만, 카뮤는 표정을 지우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확실히 회의 중 메신저를 확인한 건 예의 있는 행동이라 할 수 없으니, 그는 휴대전화를 집어넣고 자료를 마저 확인했다. 앞으로 QUARTET NIGHT의 활동 방안에 대한 자료로, 반수 이상이 그의 집에서 지금쯤 고기를 꺼내서 냉기를 빼고 있을 사람의 제안이었다. 평소엔 시비만 걸더니……. 쿠로사키놈이 조용히 중얼거리는 소리가 조용한 회의실에 울렸다. 다른 이들의 생각도 그리 다르지 않으리라.
확실히, 설득력 있는 계획이었다.
‘그’ 샤이닝 사오토메가 승인한 계획이니 허점이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구멍이 없다는 수준의 평가로는 모자란 계획이었다. ‘현재로선 크게 수정할 점이 안 보이네.’ 미카제 아이가 가볍게 평가하면 다른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제안자 본인이 와서 소개해야 할 계획이었지만 급하게 잡힌 회의에 본인은 참석하지 못한 모양이다. 아니, 귀찮다고 오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나.
현은 카뮤에게 날을 세운 적이 없지만, 샤이닝 앞에서도 굽히지 않는 태도로는 알아주었다. 타인이 말린다고 한들 코웃음 한 번과 함께 제 할 말을 해대는 배짱은 휴우가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 카뮤의 앞에서 어쩔 줄 몰라 금세 눈물을 터뜨리는 모습을 생각하면 딱히 믿을만한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했으나, QUARTET NIGHT의 회의에서도 쿠로사키놈과 싸우는 모습을 보면 그리 틀린 정보는 아니리라. 그의 수첩 속에 적을 정도로 비밀스러운 것을 숨기고 있진 않았으나, 카뮤는 ‘현’이 그에게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직접’ 만나자마자 이야기 했던 ‘그 사실’을 감안했을 때, 묻어두고 믿을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은 확실했다. 뭐, 무엇을 숨겼든 이 동거 생활 동안 그의 손으로 밝혀내면 될 일이다.
회의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계획이 완성되자마자 통보하기 위한 자리에 가까웠던 만큼, 그들이 무리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지적하면 되는 짧은 모임이었다. 물론 무리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현의 제안은 사람을 한계까지 몰아가는 구석이 있었으나, 아슬아슬하게 한계에 걸쳐 있어 ‘무리’라고 딱 끊어 말할 구석은 나오지 않았다.
“그럼 여기까지?”
“그렇게 되겠군.”
“아― 레이쨩 지쳤다―! 저기, 모두들 이 뒤로 일정 비었어? 다 같이 모여서 저녁이라도―.”
“일이 있다.”
“네가 사는 거냐?”
“나는 사양할게.”
“에에―?! 너무해!”
소란스러운 회의실. 카뮤는 가장 먼저 제안을 깔끔하게 거절하고 자리를 떴다. 오늘은 택시를 타고 조금 일찍 귀환할 예정이다. 딱히 저녁이 기대되는 건 아니었다만, 일 관련으로 얻은 과자가 있었다. 아무리 미지근해도 겨울이니 그리 빠르게 녹지야 않겠으나, 집에 들어가 느긋하게 홍차와 함께 음미하고 싶은 것도 사실 아니었던가. ‘그 녀석’은 집안일은 다 어설픈 편이었으나, 홍차를 우리는 솜씨 하나는 그에게 뒤지지 않았다. 물론 디저트는 여전히 수정할 부분이 많았으나, 한 달 안에 그 정도 실력을 갖춘 것은 인정해 줄 만하지. 그는 집에 있는 티 세트 중 무엇을 쓸지 고민하며 대기시켜 둔 택시에 올라탔다.
굳이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열리는 문이라는 건 편리하다. 그러고 보면 ‘그 녀석’은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지 카뮤를 위해서 문을 열어주려고 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지. 열리는 문에 맞을 뻔 해서 두 걸음 뒤로 물러나는 일을 여러 번 반복하고 나서야 얌전히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법을 익혔다. 나, 참. 알렉산더도 그보단 빠르게 훈련 내용을 익혔다만, 정신없는 녀석이다. 카뮤는 오늘 받아 온 과자 중에 솔트 카라멜이 있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그 녀석이 유달리 좋아하는 거였지. 더 받고 싶은 맛이 있냐고 했을 때 솔트 카라멜을 더 받아 온 건 그 녀석이 많이 먹으니 그의 몫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먹지 말라고 한다면 손조차 대지 않겠지만― 귀족이 되어서 사용인에게 꼬장꼬장하게 굴었다가는 명예가 떨어지는 법이다.
저물어가는 해는 빠르게 사라진다.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길을 달리는 택시는 빠르게 움직이고, 카뮤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이른 시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 가까운 곳까지 차를 대고, 적당히 위치가 들키지 않을 곳에서 내린 카뮤는 느긋하게 현관의 잠금을 풀고, 신발을 벗으며 들어섰다. 날이 ―일본의 기준으로―제법 추워졌다만 집 안은 바깥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 녀석은 외출했나? 카뮤는 가벼운 의문과 함께 계단을 올랐다. 현은 유난히 기척이 옅었다. 의도적으로 발소리를 숨기는 연습을 한 그와 비견될 정도라, 집 안에 있다고 한들 바로 알아차리긴 어려웠다. 카뮤의 감각에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몸놀림은 제대로 배웠다면 꽤 괜찮은 실력을 뽐낼 수 있었을 법도 하지만― 본인은 별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레키―! 내 방에서 장 봐온 봉지 좀 가져다줄 수 있어?”
주방에서 경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꽤 다급한 꼴로 보아서는 요리 도중에 무슨 재료를 놓아두고 온 모양이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방에서 튀어나온 알렉산더가 카뮤를 발견하고 꼬리를 흔들며 뛰어왔다. 애초에 그 녀석의 부탁이 아니라 그의 귀환을 알아차리고 밖으로 나온 모양이다.
“이봐, 그렇게 날뛰지 마라.”
카뮤는 계단에서 완전히 올라서며 가볍게 알렉산더를 밀어냈다. 알렉산더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다가 두 번째 거절이 되어서야 제대로 알아듣고 조금 시무룩해졌다. 물론 카뮤의 손에 들린 봉지를 보곤 반갑게 달려들어 냄새를 맡았으나, 그것마저 제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곤 완전히 실망한 모양이다.
“네 간식은 다음에 준비해 주마. 어차피 그 녀석이 적당한 간식을 만들어 주지 않았나?”
끼잉 소리를 내며 움츠러드는 모습에는 퍽 마음이 아팠으나, 귀족의 개 되는 몸으로 자제를 가르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신 카뮤는 거실의 테이블 위에 잠시 짐을 내려두고, 알렉산더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손에 부드럽게 감겨 오는 털결을 보아서는 오늘도 그 녀석이 낮에 산책을 시키고 브러싱까지 마친 모양이다. 어차피 브러싱은 소통의 시간을 겸하니 카뮤의 손으로 다시 하게 되겠지만 반려견이 타인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은 그리 나쁜 기분이 아니다. 카뮤는 괜히 부드러운 털을 몇 번 더 만져 주고는 허리를 폈다.
“자, 맡은 일이 있지 않던가?”
알렉산더는 왕! 한 번 짖고는 빠르게 달려 그 녀석의 방문을 열었다. 얼핏 열린 방문 틈으로 보이는 방의 책상 위엔 작업하다 만 악보인지 모를 종이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신곡인가? 카뮤는 문득 치밀어오른 호기심을 잠시 눌렀다. 그는 예의와 사생활을 아는 귀족이니 굳이 녀석의 방을 엿보지 않는다. 다만 잠시 기다려도 알렉산더가 나오지 않았고, 난처하게 낑낑대는 소리가 짧게 들려와서 돕고자 팔을 뻗었을 뿐이다.
딱히 쓰지도 않던 방이지만 사람이 들어가 사는 티를 내는지 문은 부드럽게 열렸다. 다만 그 안으로 보이는 광경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아니, 가볍다고 말하면 가벼운가. 사람이 그럭저럭 기간을 두고 살았던 방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살풍경했다. 개인의 짐이라고 부를 만한 건 책상 위에 있는 종이와 펜. 그리고 그런 종이들을 정리해 둘 파일과 노트북이 전부. 옷은 밖에 꺼내둔 것도 많지 않아 구석의 가방 위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알렉산더에게 가져오라 말했던 봉지는 침대 위에 올려져 있었으나, 베개 위에 올라가 있어 알렉산더가 망설였던 모양이다. 침대 위에는 올라가지 말라 가르쳤으니, 카뮤가 있는 상황에 제가 올라가도 되는지 고민했겠지. 카뮤는 저를 바라보는 알렉산더에게 고개를 끄덕여주며 검은 봉지를 집어 들었다. 가볍게 달그락 소리가 나는 것을 보면 소스 병 따위를 사 온 모양이다.
카뮤는 별로 무게가 나가지도 않는 봉지와 함께 방을 나서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두 달이 지났고, 앞으로 몇 달을 더 그와 지낼지 모르는 일인데 지나치게 흔적이 남지 않은 방이다. 물론 그는 현에게 노동에 응당 어울리는 급료를 지불하고 있지만, ―그 녀석은 받을 생각도 없었고 딱히 주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하루를 내리 사양했다. 이미 사양이 아니라 거절에 가까운 반응이었던지라, 카뮤는 결국 제 명예를 더럽힐 셈이냐는 말로 설득해야 했다. 그 한마디에 바로 끄덕이는 꼴을 보고 좀 어이없었다.― 카뮤가 일본에 체재하는 기간 내내 지낼지도 모르는 방인데 이토록 조심스레 쓸 필요가 있던가. 그가 지급하는 급료에는 그 녀석이 여기서 지내는 데 드는 비용을 제하고 있으니 ―그는 생각지 않았으나 현이 극성스럽게 주장했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만 철저한 녀석이다.
“레키―? 아, 카뮤상! 돌아오셨으면 말을 해 주시지 그러셨어요. 저녁 준비도 거의 끝낸 참인데.”
“아, 방금 돌아온 참이다.”
“어서 오세요. 레키, 카뮤상이 왔으면 알려 주지 그랬어.”
알렉산더는 새침하게 콧바람을 불고 말았다. 아마 ‘네가 시킨 일이 있지 않았더냐.’ 정도의 반응이겠지. 그 녀석은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그래도 우선순위라는 게 있잖아. 집주인이 왔으면 세입자가 눈치가 보이는데.”라며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핀잔을 주고 있었다. 평소라면 유난히 예의를 차린다며 코웃음을 치고 말았을 발언이다만, 제 물건 하나 없는 방을 보고 나서는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그를 집주인으로 여겨서 저 정도로 깔끔하게 지내고 있었던 건가? 그렇게 엄하게 대한 기억은 없다만……. 카뮤는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감각 ―그 자신은 모르지만, 서운함과 배신감에 가까웠다.― 속에서 문득 알렉산더와 현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정도로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다. 네놈에게 방을 내어 준 것은 계약 조건에 있었고, 지금은 네가 가사에 기여하는 부분도 적지 않아.”
굳이 ‘지금은’이라 말을 붙인 이유는 처음의 저 녀석은 정말로 봐주지 못할 정도로 불안했기 때문이다. 메이드 따위를 당당하게 이야기하기에 경험이라도 있을 줄 알았건만, 무엇이든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물론 성과는 나름대로 나오고 있었고 저 녀석을 곁에 두고 살펴볼 이유가 있었기에 내버려 두었다만, 보는 사람이 다 불안할 정도로 어설픈 몸짓이었다. 칼을 들면 제 손에 가까운 곳에서 어설프게 재료를 썰어대지 않나, 제 몸보다 큰 시트를 간신히 들고 접어대지 않나. 갠다기보다는 ‘접는다’에 가깝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그가 직접 가르쳐야 할지 고민할 정도였다. 다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속도로 익숙해져 금세 가만히 놓아두어도 상관없을 실력을 쌓았기에 신뢰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게 이 주차의 일이었으니, 이제는 눈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는 일을 처리한다. 저러니 사오토메 학원에 기반 없이 들어가 한 학기 내내 수석을 차지했겠지. 카뮤는 새삼스럽게 녀석이 꽤 근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생각하던 말을 마무리했다.
“그러니― 방의 벽에 무언가를 붙이거나, 새 가구를 들이는 정도로는 입을 대지 않는다. 오히려, 뭔가 좀 부족하지 않은가? 서랍장이라던가, 옷을 넣어 둘 옷장 따위를 이번 주 주말에 들이는 쪽이―.”
“아, 아! 그건 필요 없어요! 괜찮아요!”
녀석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급하게 거절의 말을 내뱉어 왔다.
“가진 짐이 그리 많지도 않고……. 뭘 여기저기 놓아 두었다가는 돌아갈 때 잊어버릴 것 같거든요.”
그리 오래 있을 것도 아니잖아요. 난처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이는 현은 “그렇게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하고 어설픈 웃음을 지어 보였다. 카뮤는 “그런가. 네놈이 그리 말한다면 상관없다만.” 하고 대답하면서도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모처럼 그가 호의를 내밀었으니 당연히 팔짝팔짝 뛰면서 기뻐하리라 생각했다만, 아니었던가. 현은, 그의 입으로 말하는 것도 뭣하다만, 그를 상당히 좋아하고 있던 게 아니었나.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황급히 눈을 피하면서 얼굴을 붉혀대니 당연히 이런 제안에 기뻐할 줄 알았다. 무엇보다 카뮤가 직접 마음에 드는 가구 공방에 가서 옷장과 서랍장을 주문해 줄 생각이 아니었던가.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 주었으니 그 보상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아, 그 봉지! 주세요. 마침 스테이크를 플레이팅 하고 있던 참이었으니까. 옷 갈아입으시고 오시면 시간이 적당하게 맞을 거예요. 저번에 말했던 홍차, 이번에 발매한다길래 사 왔으니까. 식후의 티는 그걸로 할게요. 장미 모양 각설탕을 특주 가능하다고 하길래 주문시켜 뒀던 것도 오늘 도착했어요. 오늘의 각설탕은 그걸로 해 보시겠어요?”
카뮤는 제 손에서 장 봐온 소스를 뺏어가며 빠르게 쏟아지는 질문에 떨떠름하게 끄덕였다. 아마 녀석이 말하는 ‘저번에 말했던 홍차’는 저번 달에 지나가듯 언급했던 블랜딩에 단맛을 섞어 넣은 홍차를 이르고 있겠지. ‘모양이 있는 설탕’은 칼럼의 준비 도중 알게 되어 주문할 수 있는지 잠깐 알아보았던 것을 이야기하고 있으리라.
카뮤는 별로 무겁지도 않았던 무게가 사라진 손으로 가볍게 알렉산더를 쓰다듬어 주며, 아직 문이 열려 있는 방을 돌아보았다. 다시 보아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책상 위에는 짐이 가지런히 쌓여 있고, 작업 중인 종이와 노트북만이 펼쳐져 있었고, 침대는 단정하게 이불을 정리해 두었다. 옷은 모두 가방에 넣어 두거나, 그 위에 올려져 바로 넣을 수 있도록 준비해 둔 방.
마치 당장 나가라는 말을 들어도 즉시 움직일 수 있도록 대비해 둔 것 같지 않은가?
카뮤는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에 희미하게 귀를 움직이는 알렉산더를 내려다보며 무언가 아직도, 그가 알아차리지 못한 게 있지 않은지 고민했다. 그가 녀석과 함께 먹기 위해서 들고 온 과자 상자는 여전히 탁자 위에 올려져 있다. 식후의 다과에 쓰라며 내놓을 생각이었으나, 녀석의 방을 보고 나서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당연하게, 과자에 제가 좋아하는 맛이 많이 섞여 있는 모습을 보면 녀석이 기뻐하며 그에게 감사를 표하리라 생각했으나, 그러지 않을지도 모르지 않던가?
방은 사람을 그대로 나타낸다고 한다. 그러면 녀석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서 장소를 바꾸지 않도록 노력하고, 언제 사라져도 문제없도록 준비하고 있는 사람은? 변화를 거부하고 타인에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고 있는 게 아닌가? 카뮤는 저도 과격한 생각을 한다는 자각이 있었다. 타인이 그에게 이런 말을 했다면 사고의 비약이 심하다고 비웃어 줄 용의도 있었다. 다만, 정말로. 녀석의 방을 보고 나서는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왕!
카뮤는 제 손 아래서 가볍게 짖는 알렉산더의 목소리로 정신을 차렸다. 알렉산더는 그의 손 아래서 의아한 시선을 보내며 코로 탁자 위의 상자를 가리켰다.
“아, 그래. 녀석에게 가져다 주지 않으면 준비할 수 없겠지.”
왕!
“그래. 환복을 서두르지 않으면 음식이 식는다며 녀석이 안절부절못하며 부르러 올 거다.”
끼이잉…….
“녀석에게 휘둘리는 건 아냐. 다만, 사용인의 일을 쓸데없이 늘리는 것도 좋은 주인의 태도라고 할 수 없겠지.”
카뮤는 알렉산더의 머리를 다시 한번 쓰다듬어 주고 침실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현이 그의 생각과 다른 구석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지 않던가? 그 ‘다른’ 점을 제대로 밝혀내기 위해서 모르는 계집을 집에 들여가며 되지도 않는 자리를 만들어 안겨주었던 참이다. 그러니 ‘앞으로’ 알아가면 된다. 카뮤는 제가 옷을 다 갈아입자 계단 아래서 초조하고 소심하게 “카뮤상―? 고기 식으면 맛없어요―.”하고 불러대는 현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생각했다.
어차피 저 녀석을 알기 위해서 시작한 동거 생활이다. 그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도 ‘앞으로’ 알아가면 된다. 앞으로, 그가 녀석에 대해서 파헤치고, 간자라면 설득하며, 아니라면 좀 더 단단하게 붙잡아 둘 방법을 생각하면 될 문제다. 그래. 내일 당장 녀석이 떠난다고 결정된 일도 아니지 않던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었다. 그는 “카뮤상―?” 하고 다시 부르는 목소리에 “내려간다.” 대답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쓸모없는 생각이었다.
시간은, 아직 남아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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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다시 읽어도 좋네요
시간은 남아있을 터였다
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공략법(?)을 모르는 한 결국 실패하게 되는 굴레에 빠지는 이 여자와의 관계를 사정알고있는 독자만 은근하게 주시하고 있는 전능한 짜릿함과 아슬아슬한 오싹함이.. 과한 과격한 생각이 사실 과하지 않고 정답에근접한 직감력에 ㅠ 이미 한쪽은 감겨가면서 아쉬움을 느끼고 달라지길 원하는데 한쪽은 그저 처음과 지금이 전혀 다를바 없이그리고 변화가 없다면 미래에도 불변한채로 시간이 흘러 남은 모래가 전부 떨어질것이라는게 ㅠㅠ
일상의 한 에피소드에서 전체적인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는점이 특히 짜릿하네요 ㅠㅠ.. 좋은 글 다시 감상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