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제기랄, 아, 이대로는 싫어! 화약의 초연처럼 흩어지는 생명이라도 제가 하고 싶은 것이 있기 마련이고 우리의 삶은 시작조차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데 어찌하여 끝은 이토록 허망하게 찾아온단 말인가! 쉴새 없이 달려 꺾여대는 무릎은 태풍을 맞아 부러지는 잔가지처럼 허약하기 짝이 없고 온 사방에서 퍼부어대는 총탄 세례 속에서 치솟는 붉은 색 폭포는 우스울 정도로 작위적이다. 그래, 작위적이기 짝이 없다고!!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절규가 머릿속을 탕탕 울려대고 총성은 텅텅 소리를 내면서 온 사방에서 교향곡처럼 터져 나오고 나는 이 모든 것을 레퀴엠 삼아서 죽을 곳을 찾아 달린다. 한 번 태어나서 한 번 가는 삶. 그러지 못하는 존재들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세계, 아직 내 ‘온전한 죽음’을 보장하는 심장이 아플 정도로 뛰어댄다. 행진곡의 북소리마냥 머릿속에서 쿵쿵 울려댄다고.
귓가에서 터져 나오는 폭음은 어느 날의 총성을 떠올리게 만들고, 날 위해서 하늘에 총을 쏴주던 사랑해 마지않는 동거인의 얼굴은 오뉴월의 푸른 하늘만큼 선명하고 청명하게 시야를 채운다.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시야는 그의 선 굵고 고집스러운 얼굴과, 비단길을 깔아도 저것보다 거칠 것 같았던 머리카락과, 온갖 보석을 가져다가 박아넣어도 따라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푸른 눈동자를 선명하게 떠올리고 동시에 지워버린다. 나는 당신의 허상을 떠올려 울컥하고, 내가 없어도 괜찮을 것이란 사실에 안심하고, 동시에 서러워하고, 아, 젠장!!
귓가를 스치는 총알이 열상을 남긴다. 흥분한 몸은 고통 대신 뜨거움을 느낀다. 귓가가 빌어먹게 뜨겁다. 제기랄, 제길, 젠장할!
아주 당황한 상황에서 시야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이 사실을 굳이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고대 철학자들처럼 전율을 느끼고 있는 빌어 처먹을 정도로 고고하고 위대한 정신이여! 어찌하야 이런 빌어먹을 몸뚱이에 갇혀서 속세의 슬픔에 가장 중요한 심부를 내어주고 말았는가. 이를 까득 깨무는 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날카롭게 박힌다. 이를 실제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고요한 곳에 있지 않으니 이 또한 가상의 청각이 기능했으리라. 냉정하지 못한 판단이 도처로 날아드는 유탄과 다를 바 없다. 목적지를 정하지 못하고 빠르게 가속할 뿐인 사고는 제멋대로 돌아 탈선하는 모터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도 아니라면 열사병마냥 찾아들어서 푸르른 초원을 사막으로 바꾼 이후에야 초원이나 사막이나 비가 오지 않는 건 똑같다고 깨닫게 만드는 사랑이던지!
‘틈’을 향해서 몸을 날린다. 그래, 틈을 찾아내는 건 내가 잘하는 일이지. 사람이든, 상황이든, 흐름이든 어디에나 틈이 있기 마련이다. 다시 없을 현자를 얼간이로 만들고, 성군의 씨앗을 폭군으로 길러내고, 본디 행복해야 했을 고행자를 지옥의 나락 끄트머리까지 밀어 넣는 그 틈!!
손을 짚어 머리를 보호하고 다리로 땅을 박찬다. 구른다. 몸의 자잘한 부속지가 제멋대로 휘날리며 나뭇가지와 다를 바 없는 감각을 전해준다. 이미 못 쓰게 된 건 아니지? 일말의 불안은 머리카락 끝에서 시작되어 바늘처럼 날카롭게 벼려진다. 무엇이든 가장 날카로운 것은 가장 작은 것이지. 그런 의미에서 저격용 총의 총알이 권총보다 작다는 사실은 조금 이해할 만 했다. 뭐, 구경 이야기지만. 쓸모없는 잡식을 이어붙여서 사고를 유지한다. 가속을 반복하는 사고는 이미 통제를 벗어났다. 고장 난 비디오처럼 몇 번이고 반복하는 것은 아름다운 시절의 기억, 아주 아름다워서 비현실적이던 사랑의 체험, 당신에게 사랑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였을 때 일그러지던 표정이 주는 유쾌함. 탈선하기 직전의 모터를 붙잡는 방법은 생각의 벨트를 꽉 조여 매는 것뿐이다. 최소한, 끊어지기 전까지는 기능하겠지. 괜찮다, 이게 끊어지는 순간은 내 명줄 또한 끊어질 테니까.
봄날 새송이마냥 부드러운 몸을 단련해야 한다는 생각은 언제고 해왔다. 당신도 분명 비슷한 말을 했을 것이다. 아니, 생각이라도 했겠지. 우리는 우스울 정도로 닮아있고, 근본이라고 할 만한 뿌리를 공유했으며, 그렇기에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하지 못했다. 우습지? 우스울 것이다. 최소한 우스웠으면 한다. 그야, 그러지 않는다면, 당신은 내 죽음에 무언가 의미를 부여할지도 모르잖아! 이 죽음은 온전히 내 것이다. 당신이 의미를 부여하게 둘 수 없다. 하지만, 하지만, 당신이 내게 의미를 부여한다면.
살고 싶어질지도 모르잖아.
아플 정도로 악문 입을 벌려서 턱 관절을 움직인다. 아직 움직인다. 몸은 아직 살아있다. 그래, 이거면 됐어. 기능하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인다. 상상하는 것은 기계. 은퇴를 앞둔 기계는 ‘기능하면’ 끝이다. 아직 기능한다. 사고할 수 있다. 아아, 그렇다면 충분해. 사물 그림자에 몸을 밀어 넣고 숨을 몰아쉰다. 심장이 아프다. 아파, 다른 아픔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주제에 오직 이 자그마한 아픔이 생을 증명하며 흉곽 속에서 발악한다. 웃음이 터져 나온다. 울음은 나오지 않는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사람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이럴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실감하게 만든다. 아, 그래, 나는 두려움을 사랑으로 이기겠다 마음 먹은 사람이었지.
녹음의 초원이 떠오른다. 풀잎 하나하나 너무 선명해서 이상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꿈에서 맞던 바람을 기억한다. 향이 날아간다며 질색하는 당신에게 바람의 향을 느끼라며 소리치던 내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높아서 나조차 놀랐고, 당신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 말라며 한숨을 내쉬었으며, 나는 날 사랑한다면 참아달라며 되지도 않는 소리를 진심마냥 지껄여댔다. 당신은 진심이 아니겠지만 내 사랑은 진심이라며 호소하던 목소리가 장난이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장난조차 진심인 사람이라며 웃었는데, 웃었는데, 아아, 그래, 웃기만 했어!!
웃음 소리를 닮아 있던 푸른 하늘이 손에 잡힐 것 같다. 동거인의 얼굴로 가득 채워졌던 그 가상의 시야가 하늘로 뒤덮힌다. 아아, 아. 그곳에서 당신은 싫다는 얼굴을 숨기지 않았잖아. 그래서 나는 꿈을 반으로 가르자고 말했지. 12월의 겨울 하늘처럼 별이 가득 찬 밤과 6월의 초여름처럼 높기만 한 낮이 정확하게 우리 사이를 가르는 경계선이었잖아. 나는 어둠 속에 숨어서 암약하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시간이지만 나도 좋아한다고 속삭였고 당신은 그러면 이쪽으로 오라고 얼굴을 찌푸렸지. 낮은 도저히 좋아할 수 없어, 그런 짜증스러운 시간을 좋아한다니, 너도 어떻게 되어있는게 분명하다, 아가씨. 운율을 붙여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목소리와 께느른한 표정 앞에서 나는, 나는, 어쨌더라? 아, 분명 뭐라고 했을 텐데.
초조함이 사고를 좀먹는다. 안 돼. 끝이 다가왔다. 사고를 유지할 수 없다. 앞으로, 조금. 아주 조금만 더 있으면 나는 미쳐버려. 그 전에 당신을, 그대를, 내 사랑, 보스, 찾아야 하는데.
더럽히지 못한 흰색 옷자락이 코앞에 휘날린다. 아, 블러드. 블러드 = 듀프레.
“루시.”
“아, 보스. 다행이다, 찾고 있었어.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는데, 아니, 알았던가. 아무래도 좋아. 당신을 찾고 있었다는게 중요하니까. 나, 당신에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진정해라, 루시. 정신 차려.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는 것에 집중해.”
그의 뒤에 서 있는 사람의 입에서 ‘보기 힘든 상처야…….’ 하고 중얼거리는 음성이 흐른다. 아, 그래, 흐르는 게 내 피였지. 말과 같이 흘려내는 피, 생명, 당신과 다른 것이 내 온몸으로 보내고 나를 살게 만들며 나에게서 빠져나와 주변을 당신 취향의 색으로 물들이고 결국 죽게 만드는 그 액체가. 나는 산소를 잃고 있는데 숨을 쉬어서 뭐하겠어. 그런 말을 하기 위해서 입을 벌렸지만 내장을 토할 듯 격렬한 기침이 튄다. 상처가 벌어진다. 끔찍한 고통이 퍼져나간다. 괜찮아, 나는 환희에 가득 차서 웃는다. 입을 가득 채운 붉은 피가 입술을 타고 흐르고, 간질거리는 감촉에서 손가락을 떠올리고, 끈적이는 질감에서 초콜릿을 떠올리며 송곳니에 걸린 광기를 짓씹어 웃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할 말만 하면 돼. 보스, 블러드 듀프레,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알지. 그리고 당신을 믿는 것도. 나,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
“얼마든지 들어줄 테니까 진정해라, 루시! 입을 열수록 출혈이 심해질 뿐이다. 알지 못하는 것도 아닐 터인데!”
“알지, 나는 그보다 확실한 것도 알아, 보스. 나는 죽어. 이 총격전이 시작할 때 깨달았지. 총알이 관통한 곳이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 그래서 이렇게 당신을 찾아 헤맨 거야.”
사형선고는 당신의 입을 닥치게 만드는데 충분했던 모양이다. 그래, 충분해야지. 그렇지 않다면 나는 당신을 덮쳐 눌러 입을 막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루시 윌로우.”
“진정할 생각 없어, 내 말부터 들어. 내가 죽으면 내 심장은 당신이 가져. 먹든, 전시하든, 태우든 뭘 하든 당신 자유야. 몸은……. 유리우스가 있다면 넘겨주라고 했을 텐데. 여기는 없었지, 그러면 당신 마음대로 해도 좋아.”
“닥치고 진정해라, 멋대로 유언을 남기지 마. 죽게 내버려 둘 것 같나?! 네 의사 따위 아무래도 좋아. 강제로라도 살려주지. 오래도록 다회의 놀림거리로 삼아주겠다.”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
“멋대로 죽음을 결정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멋대로라니, 우스운 소리 하지 마!”
“죽겠다는 확신도 없지 않나!”
“나도 확신하기 싫어! 하지만, 죽음이 바로 내 뒤에 있는데!”
날카롭게 내지른 음성의 끄트머리, 귓가에 남아 마땅한 소리 대신 이명이 울린다. 끝이다. 의식의 끄트머리에 걸어두고 아슬아슬하게 밀어두었던 죽음이 나를 데려간다. 빌어먹을 새끼, 이름을 부르기가 무섭게 팔을 벌리네. 그래, 갈게, 가겠다고 웬수새끼야. 어차피 너랑 한 번은 데이트하기로 마음먹었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약혼자 같은 거잖아? 사고가 느려지고 있다. 추워, 지독한 외로움이 억지로 덮어둔 천막을 열고 기어 나온다. 아아, 무대를 망치고 있잖아. 유언 대신 남기겠다고 생각한 말이 모두 지워진다. 사랑, 한다고. 말해야 했는데. 다정한 죽음이 눈을 가린다. 신사적인 몸짓으로 목을 누른다. 숨이, 숨이.
심장의 아픔이 무뎌지는 동안, 아직 내가 ‘나’일 수 있을 때. 고깃덩어리로 돌아가기 전. 나는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당신 탓이 아니니까, 그냥, 내 심장으로 당신의 의미만 취해. 잊어도 좋으니까…….”
암전. 희미하게 느껴지는 소란과 비통한 분위기. 이야기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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