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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사랑하는 일

admin 2022.04.24 21:59 read.108

  가본 적 없는 곳을 사랑하게 되는 기분을 아느냐? 나는 네가 태어나 자란 바다에 가본 적 없음에도 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생각한다. 너는 정확한 묘사에 재주가 없어 언제나 가장 강렬한 심상을 제외하면 제대로 설명하는 일이 없다. 나는 바다에 가본 적이 없으며, 간 적이 있다 한들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니 네가 그리는 그 아름다운 바다를 나는 모른다. 언제나 흐릿한 상상으로 멈추어야 하는 너의 그 바다가, 내게는 이 우주에서, 혹은 내 숨 붙어있는 한 가볼 수 있는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이는 분명 네 목소리와 표정 탓이다. ‘고향을 떠드는 네가 온몸으로 환희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낙원을 찬양하래도 그보다 열정적일 수 없을 어조로 아름다움을 논하며, 이상향을 말해도 그보다 다정할 수 없을 표정으로 안정을 말한다.

 

  ‘네가 그리 말한다면, 필시 아름다운 곳이겠구나.’ 칭찬이라도 하는 날이면 제게 향한 칭찬보다 기뻐하며, 피는 꽃보다 해사하게 웃는다. 꽃이 아름답다 알고 있음은 사람으로 태어난 탓에 당연하게 느꼈으나, 네가 아름답다 자각하는 것은 세상의 이치에 다가선 듯 찬란하다. 그리 칭찬하는 날이면 너는 언제나, 제가 같은 말을 하는 줄도 모르고, 몇 번이고 반복한 약속을 되풀이한다. ‘언젠가 당신께 꼭, 내 고향을 보여드릴게요.’ 평어라고 하기엔 날 부르는 어조가 극진하고, 존대라고 하기엔 자신을 높이는 그 말투가, 이리도 기껍게 느껴지는 것은, 네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너는 누구보다 행복하게 웃을 줄 알고, 무엇보다 솔직하게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니, 너를 길러낸 고향은 아름다운 곳이리라. 허나 내게 너의 고향이 가닿지 못한 종착지로 느껴짐은, 네 약속이다. 몇 번이고 반복하며 너는 반복하는 줄 모르는 그 약속이 네 고향을 사랑하도록 만든다. 언젠가 네가 말하는 대로 볕이 화창하여 뜨거운 날에, 하이얗게 빛이 부서지는 백색 모래 위에서 뜨겁게 달아오른 모래 위를 신을 벗고 걷는 날이 오리라 상상하게 만든다. 너는 자주 휘청인다고 말하였으니 서로 손을 맞잡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발걸음을 옮기는 날이면, 나는 빛이 기껍다고 여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네가 빛이 되어 나를 볕 아래로 인도하고, 나의 어둠을 걷어내고, 어쩌면, 빛 아래를 걷도록 만들지도 모른다. 그래, 그날이 온다면, 나는 네게 네가 말한 대로, 네 고향은 아름다운 곳이구나.’ 속삭이리라. 너는 웃을 것이다. 내 앞에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맹세하고 약속할 때 보였던 그 해사한 웃음으로, 볕 아래서 반짝이며 부서지는 윤슬보다 찬란하게 소리치리라.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그 상상만으로도 네 고향은 아름다운 곳이다. 아무리 삭막하고 살풍경한 곳이라도, 얼음이 얼고 사람이 절규하는 곳이어도, 나의 어둠과 같이 공허하고 외로운 곳이라도, 네가 있다면 아름다울 것이다.

 

 

 

 

 

  달빛이 밝은 날은 부담스럽다. 강렬한 빛은 짙은 그림자를 낳는다고 하지만, 희미한 달빛은 그저 어둠을 들추어 사람을 빛 아래로 끌어낼 뿐이다. 어울리지 않는 빛은 괴롭다. 하물며 네가 발하는 빛은 어떤가. 루카. 빛을 이름으로 가지는 소녀. 네 목소리는 오랫동안 어둠에 잠겨 기뻐하는 법조차 잊어버린 내게도 설렘이라는 감정을 떠올리게 만들지 않던가. 어린 새는 순진하게 삶을 기뻐한다. 어린 동물은 제 앞에 펼쳐진 세상이 얼마나 잔혹한 줄도 모르고 나아갈 삶을 기대한다. 이는 태어나 삶을 받고, 젖을 물며 어미의 목소리를 듣는 새끼가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클라비스님?”

 

 

 

 

 

  너는 나를 그런 젖먹이 새끼쯤으로 여기거나, 그리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

 

 

 

 

 

 

  깊은 어둠은 사람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사람은 언제나 미지에서 공포를 찾으며, 언젠가 찾아올 안식을 그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하물며, 이 우주의 모든 어둠의 조종祖宗이라 부를 수 있는 그마저도. 그의 기억 가장 끝에서부터 함께한 어둠은 증오스러울 정도로 깊어서, 그는 제 어둠을 헤매는 일마저 그만두었다. 질리고 지쳐서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제가 할 수 없는 일을 이상이라고 떠들어대는 꼴이 우습지 않던가? 그는 자연스럽게 이어져 여상스럽게 늘어지는 퇴폐적인 사고를 제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조차도 절망하고 포기한 일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그 자신조차 들여다보지 않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아 자수정과 제비꽃의 색을 찾아내는 사람은, 오직 그의 눈앞에 있는, 빛의 이름을 지닌, 그의 삶에 빛을 안고 뛰어든 소녀뿐이었다. 너는 나를 바라보며, 의아함에 눈을 깜빡인다. 눈꺼풀 뒤로 사라졌다 드러나기를 반복하는 눈동자는 선명할 정도로 희고 눈부실 정도로 밝은 금빛이라, 네 양쪽 눈에 일월日月이 모두 담겨있다. 너는 내 세계의 모든 빛을 담고 그리 고개를 기울인다.

 

 

 

 

 

  “……. 피곤하신가요?”

  “아니.”

  “그럼 다행이지만. 저 혼자 너무 떠들어서 피곤하신가 생각했어요.”

 

 

 

 

 

  네 이야기를 듣는 일이 피곤할 리 없음에도, 너는 언제나 내 반응과 기색을 살펴 나를 걱정한다. , 나를.

 

 

 

 

 

  “아니, 괜찮다. 날 걱정하는 건 너 정도구나.”

  “그건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무심한 게 아닐까요?”

 

 

 

 

 

  작게 터뜨리는 웃음. 종소리처럼 울리는 목소리.

 

  우스운 일이다. 네가 웃으면 이 어두운 방이 밝아지는 기분이 든다. 무엇하나 대접할 것 없는 삭막한 방이, 네가 있다는 사실 하나로 달라진다. 열린 창 너머로 부드럽게 커튼을 부풀려 불어 드는 바람은 상쾌하고, 네모난 창을 통과하여 바닥에 길게 달라붙는 달빛은 상냥하다. 언제나 지독할 정도로 느려 멈춰버린 것이 아닌가, 그를 놓아두고 시간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들던 늘어난 순간들이, 제 길이를 되찾아 움직인다. 네 숨이, 네 시선이, 네 목소리와 네 존재가 세상을 제 자리에 돌려놓는다.

 

  이게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난 끝에 느끼는 즐거움이던가?

 

 

 

 

 

  “뭐였더라, 할 말이 있었는데.”

 

 

 

 

 

  너는 턱을 괴고 잠시 고민하더니, 종알종알 일상을 이야기한다. 새의 지저귐과 닮은 목소리는 끊기는 일 없이, 네게 있었던 일을 이 어두운 방 안에 재현한다. 바뀌는 일 없고, 소리가 울리는 일 없고, 그저 존재할 뿐인 어둠 속에 세계를 불어넣고, 너를 새겨넣고, 이윽고 네가 없는 시간의 허전함을 깨닫게 만든다.

 

  이런 순간이면, 네가 내게 순진하게 삶을 기뻐하는 법을 가르치고, 나아가 네 기쁨으로 나를 먹이고 싶어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고요에 손을 뻗어 제멋대로 휘젓고, 정적 속에서 노래를 불러 수백, 수천, 수만 개의 조각으로 깨뜨린다. 너는 내게 무엇을 하고 싶나? 그저 떠올릴 뿐인 질문은 내 속에서 그 몸집을 부풀려, 이제는 정처 없이 떠돌며 무언가를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는 괴물이 되었다. 네가 내게 웃어주는 순간에, 손을 뻗어 뺨을 쓸어내리고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쥐여주며 웃는 순간에, 일상을 떠들고 잠들기 전에 인사를 남기는 순간에, 내게 좋은 꿈을 꾸라고 다정하고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 모든 순간과 찰나에, 괴물은 입을 댄다. 기억의 파편을 제 배 속에 집어넣고서 제 존재감을 과시한다. 너는 내게 무엇을 바라나?

 

끔찍할 정도로 길게 늘어져 이제는 나를 버리고 나아간다 생각하게 만들던 시간이 제대로 흐르는 환희. 내일을, 다음 순간을, 떠오르는 해와 밤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 꿈에도 바라 마지않았으나 영원히 이룰 수 없었기에 절망하게 만드는 그 꿈. 필부의 삶을 상상하게 만드는 너의 일상. 네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는 만족감. 우스운 이야기를 해 볼까, 루카? 네게는 하지 않을 말이나,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서 이 기나긴 삶을 비참하고 구차하게 연장해왔다 생각했다. 그러고도 너를 만날 수 있다면, 이 기나긴 절망을 다시 걸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 무게를 네가 알 수 있겠느냐? 알지 못하여도 좋다. 네게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다. 이리 말한다면 너는 섭섭하다 입을 삐죽 내밀거나, 진지한 얼굴을 하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그럼에도 당신을 알고 싶고, 나아가 무지에서 기인한 말로 당신을 상처입히고 싶지 않기에 말씀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하겠지. 그러니 나는 네게 말하지 않는다. 그리 말할 것을 알고 있으니. 다만, 루카. 나는 너를 만날 수 있다면, 이 끝에 네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내가 살아왔던 그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몇 번이고 다시 걸을 수 있다. 네가, 네가 그 끝에 있기에.

 

  이제는 네가 없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겠지.

 

 

 

 

 

  종알대던 목소리가 끝난다. 너는 내 심중을 읽기라도 한 듯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바라본다. 그 누구도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사람은, 너 정도다. 정말로, 공포가 무엇인지 모르는 계집이다.

 

 

 

 

 

  “?”

 

 

 

 

 

  너는 이야기의 틈 속에서 고개를 옆으로 갸웃, 꺾는다.  

 

 

 

 

 

  “역시 오늘, 무슨 일 있으셨나요?”

 

 

 

 

 

  너는 이렇게 때때로, 네가 두른 분위기 모두를 지우고 오직 시선만 남은 존재가 될 때가 있다. 네 모든 특징이 색과 의미를 잃고, 시선이 힘을 얻어 나를 꿰뚫고자 하는 순간이다. 너는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구도자가 되어서 내 어둠 속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오직 네가 나를 올곧게 응시하며, 나조차 잊어버린 를 찾고자 애쓴다. 이미 어둠 속에서 썩어 문드러졌을 , 오직 네가.

 

 

 

 

 

  제 착각이라면 실례했지만, 뭐랄까. 그으역시, 무언가 심란해 보이셔요. 생각이, 많다고 해야 하나……. 말씀하기 싫으시면 어쩔 수 없지만, 뭔가 일이 있었다면…… 말씀해 주시면 듣는 정도는 할 수 있어요. 해결책은 장담할 수 없지만.”

  “……딱히 이렇다고 할 일은 없었다만.”

  “그런가요? 이상하네…….”

 

 

 

 

 

  그러고 너는 말을 고르는 몸짓을 몇 가지 보인다. 입술 위로 손가락을 올려 얇은 피부 아래의 부드러운 살점을 누르고 뭉그러뜨린다. 너는 작고, 네 손은 더욱 작으며, 그 아래서 형을 무너뜨리는 입술은 더욱 작아서, 나는 문득 네가 그 몸으로 어떻게 세상에 대항하고 싸우며 나아가는지 신비하다고 생각한다.

 

  네 입으로 말했던 삶의 방식, 나아가는 방법. 내게는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이런 방식도 있다며 덧붙여 말하던 네 삶의 궤적. 너는 바다를 고향으로 둔다고 하였다. 바닷가에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파도치는 해변을 심장에 품고, 바다로 돌아가야 고향을 느낀다 말하였다. 네 어조는, 내 어둠의 너머를 들여다보도록 만든다. 희미해져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져서, 이제 내 상상인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인지 구별할 수조차 없는 과거 속에서 반짝이는 편린을 건졌다 착각하게 만든다. 아마 아주 오래전, 이제는 떠올리는 일조차 무의미한 세월이 지난 과거 속에서, 나는 네가 말하는 드넓은 평면을 본 적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바다를 품은 사람이라고 뭉뚱그려 말하나, 너는 언제나 오롯하고 유일하다. 바다가 행성 대부분을 뒤덮은 곳에서 나고 자라 수호성이 된 류미엘도 너와는 다르다. 너는 그 누구와도 다르다. 수호성으로서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적지 않은 사람의 삶과 죽음을 보아온 내 인생에, 너와 같은 사람이 처음이라는 사실은 무언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구석마저 있다. 역시 루카 너는 모를 것이다. 말하지 않았기에 모르기도 하겠으나, 너는 너무나 아름답고 찬란하기에 어둠에 무심한 구석이 있어서 모를 것이다. 너는 우수하고, 아름다우며, 세상의 즐거움과 환희를 온통 뭉쳐놓은 것처럼 경이롭지만, 많은 경우에 무심하고 무지하다. 그 무지 속에서 내보이는 자그마한 몸짓이, 그토록.

 

 

 

 

 

  “뭔가, , ‘여왕 시험이라는 게 끝나고 있어서 그러신가, 하고 생각했거든요.”

 

 

 

 

 

  다만 때때로 그 자그마한 몸과 짧은 삶 속에도 불구하고 내보이는 기이한 직관은, 그조차도 놀라움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호오.”

  “틀렸나요?”

  “어째서 그리 생각했지?”

  “? 어째서, 는 모르겠네요. 그냥 감이죠.”

 

 

 

 

 

  너는 이런 순간이면 숨 쉬는 법을 질문받은 생물처럼 군다.

 

 

 

 

 

  “뭐라고 하지…… …… 공기가 가득 찼다고 해야 하나? 공간이 생기로 흘러넘쳐서 꿈틀거리고 있다고 하나? 그런 느낌. 좀 있으면 끝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에요.”

 

 

 

 

 

  헤에, 그러게.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낭랑한 목소리로 천진하게 되물으며, 다시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갸웃, 몸짓을 보인다. 그러고 더 할 수 있는 말을 고민하다가, 대답할 말이 마땅치 않을 때 으레 보이는 웃음으로 하지 않은 말을 갈음하여 주제를 돌린다.

 

  밤이면 우는 나이팅게일처럼, 너는 다시 웃으며 말을 잇는다.

 

  지칠 줄 모르고 이어지는 말은 평소의 그라면 시끄럽다 느꼈을 법하건만, 저 말을 끊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을 보아서 그는 이미 무언가 망가졌을지도 모른다. 끊이지 않는 어둠 속의 절망도, 다시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리라 맹세했던 밤도, 상처받고 기대하는 일에도 모두 지쳐서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다 바랐던 순간도, 그 모든 일에 지쳐서 느끼고 반응하기 싫었던 나날들이 그의 안에 남아있다. 이 모두를 겪고도 같은 일을 반복하고자 하는 사람을 어리석고 우둔하다고 부른다면, 그는 이 우주에서 가장 어리석고 우둔하다. 누구보다 어둠을 알고, 버려지는 순간은 한 번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던 주제에, 그를 언젠가 떠나가게 될, 붙잡을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한다. 그의 여생을 모두 어둠 속에 처박아 다시는 사람을 사랑하게 될 수 없을 것이 자명함에도, 너를 마음에 품고 어여삐 여기는 이 순간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

 

 

 

 

 

  그러니 웃음을 흘린 것은, 억누르고 다듬은 감정이 이 거대한 어둠에도 모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던 탓이다.

 

 

 

 

 

  지칠 줄 모르고 이어지던 목소리는 멈춘다. 루카는 웃음 뒤로 말을 잇지 않는다. 이리 웃는 것이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하긴 했다만, 내 웃음이 그 정도로 어색하였나? 갑작스레 찾아든 정적이 귓속을 가득 채워, 소리가 없는 어둠의 감각을 상기시킬 때, 네 얼굴을 바라보기 두렵다고 느꼈다. 허나 나는 이미 너를 바라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되었던 모양이다. 내 앞에 네가 있으니 시선을 떼어낼 수 없어 네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 나는, .

 

  네가 사랑스러움을 이토록 강렬하게 알게 될 줄이야.

 

  너는 심장을 통째로 쥐어 잡힌 작은 동물과 같은 표정을 하고서 나를 바라본다. 이는 경악이나, 네가 기뻐하는 순간이면 으레 보이고는 하던 경악이다. 꽃다발을 선물했던 날, 그가 꽃밭에 데려갔던 날, 혹은 속내를 밝히었던 날이면 보이고는 했던 표정. 아직, 내게도 희망이 남아있는 모양이군. 그는 자조하지 않고서야 버틸 수 없었다.

 

 

 

 

 

  루카의 모든 감정과 생각이 손에 쥐어 잡을 수 있을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그의 웃음소리를 인지하는 순간에, 강렬하게 밀고 들어온 감정에 놀라 작은 짐승처럼 굳어버린 표정. 제가 무엇을 들었는지 확신하는 순간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움직이다가 결국 서로 깍지껴서 고정하는 손. 언제나 그의 어깨 너머를 바라보고, 하고자 하는 말이 있거나 그에게해야만 하는 말이 있을 때 강렬하게 다가와 꽂히던, 혹은 그의 안색을 살피던 시선이 초점을 잡지 못하고 그저 전경으로서 그를 담아내는 광경. 그리고, .

 

  봄의 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볕 아래서 물방울이 부서지며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어미를 애타게 찾던 아이가 마침내 제 어미를 발견하고, 오랫동안 바라 마지않던 것을 마침내 손에 쥐고, 제 안에서 샘솟는 기쁨의 정수에 휩쓸리는 것과 같이 너는 웃는다. 너는 내 세계를 온통 네 웃음으로 채워서 이 세상에 너와 나만 남은 기분이 들도록 만든다. 순진하고 천진하며, 온전하여 상처받지 않은 듯한 웃음. 언젠가 봄볓 아래서 수호성이 되기 전에 그가 새로운 곳을 발견했을 때 지었을지도 모르는, 아주 먼 곳에 두고 와서 그가 잊어버린 것을 떠올리게 만드는 저 찬란하고 아름다운, 속절없이 사랑에 빠져 손 쓸 수 없도록 만드는 웃음.

 

  너는 네 안에서 흐르는 감정을 어찌 다룰 줄 모르는 얼굴로 웃고, 깍지 낀 손을 풀어 제 입을 가리고, 그러고도 다 가려내지 못한 찬란한 기쁨을 내게 나눠준다. 결국 나도 새어 나오는 웃음을 지우지 못한다.

 

 

 

 

 

  “내 웃는 얼굴이 그렇게 이상한가?”

 

 

 

 

 

  내 목소리가 우스울 정도로 들떠 있음을 안다. 네 대답 또한 알고 있다.

 

 

 

 

 

  “아뇨, .”

 

 

 

 

 

  너는 장난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저 가장 맑은 물을 퍼 올리는 요정처럼 청량한 목소리로 이 어두운 방을 가득 채운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 클라비스님이 웃으셨다는 게 기뻐서.”

 

 

 

 

 

  너는 내가 기대한 답을 그대로 돌려주며 손을 내려 다시 깍지낀다. 나는 잠시 네 손 사이로 내 손을 밀어 넣어, 한 손에 모두 쥘 수 있을 네 두 손을 잡고 온기를 약탈하는 상상에 빠져든다. 어둠의 수호성의 기쁨에 저토록 순진하게 기뻐하는 사람이라니, 이상한 녀석이구나. 그리 말할까 고민하는 순간에 너는 잔웃음을 숨기려 피했던 시선을 들어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달빛을 등진 얼굴의 윤곽에서 솜털이 희게 은빛으로 반짝인다고 생각했을 때, 너는 기쁨의 정수같은 얼굴로 다시 웃으며 말했다.

 

 

 

 

   엄청, 잘 어울리셔요. 그 웃는 얼굴.”

 

 

 

 

 

 

  정말로, 네게는 이길 수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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