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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admin 2025.05.05 21:47 read.7

  오직 아름답기 위해서 존재하는 환경이란, 무엇을 위해서 태어나나요? 그래요, 사람은 태어나는데 이유가 없지요. 그러나 ‘도구’는 탄생의 이유가 존재합니다. 그러면, 클라비스님. ‘수호성’은 무엇을 위해서 태어나는 걸까요? 당신이 계속 그 이유를 고민하며 살아오신 것은, 당신이 스스로를 ‘도구’로 여기기 때문이셨나요?

 

  클라비스님, 당신은 무엇을 바라서 살아가시나요? 이 고단하고, 괴롭고, 때로는 목을 죄어 오는 생을, 살아가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제발, 대답해 주세요, 클라비스님. 저희는 무엇이 달라서, 당신은 여전히 생을 구가하시고, 저는 그저 죽지 못해서 살아가게 되었을까요?

 

  이런 나약한 소리, 듣기 싫으시죠?

 

 

 

 

  ‘솔리테어’가 사라진 날이었다. 아니,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운 말로 해볼까? ‘수호성’의 ‘한’을 풀어준 날이었다. 그들이 과거에 버려두고 와야만 했던 감정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심장을 갉아먹어서 잘라내야 했던 어떤 순간들. 혹은, ‘올곧고 바른’ 수호성이기 위해서 포기해야 했던 어느 인간적인 면을, 직면하고 받아들여, 돌려보낸 날이었다. 지독한 피로가 몰려드는 날이었고, 허탈한 성취감이 맴도는 날이었다. 한을 풀었다고 바뀌는게 무어 있겠나. 현실이 바뀌지 않는데. 때로는 삶이라는 것이 그렇다. 마음을 바꿔 먹는다는 게 그저 체제에 순응하는 일이고, 자라나기 위해서 스스로를 깎고 다듬어야 한다. 깎여나간 것들이 ‘어디로’ 가는지, 확인할 수 있었지. 수호성이 깎아낸 부분이라는 건, ‘솔리테어’가 되었다. 고독, 절망……. 정말로 직관적인 이름이 아닌가? 

 

  루카는 침대에 누워서 생각을 데굴데굴 굴렸다. 지친 날이면, 이렇게 생각이 많아진다. 클라비스의 과거, 쥴리어스의 과거, 수호성의 가장 어두운 면모……. 바라지 않았으나 보았고, 그들이 원하지 않았으나 강제로 해소해야 했던 모든 일. 마른 웃음이 입가로 샌다. 누구던 미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여긴. 

 

 

 

 

  그러니 우주는, 언제나 명랑하여라. 

 

 

 

 

  불온의 뒤에는 언제나 명랑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밝게 빛나는 것은 어두운 그림자를 품고, 작열하는 태양은 무언가를 불태워야 빛나니, 열과 빛, 안온과 기쁨 뒤에는 마땅히 공허와 냉기, 어둠과 불행이 따라붙어 마땅하다. 아니, 이건 내 사고방식이 아니다. 머릿속에서 계속 함께했던 불행, 수호성이 내버렸던 감정의 조각이 남기고 간 방식이다. 그러니 생각을 멈추고 잠들어서, 이 모든 흔적을 지워야 마땅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그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흉터로나마 남겨두고 싶었다. 아, 그래. 이건, 클라비스님의 흔적이구나.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나 많은 생각과 감정을 품고 살아가는 걸까. 

 

  루카의 삶이라는 건, 언제나 단순하다. 단순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들의 ‘고통’을 보고 난 뒤에, 홀로 남으니 떠올리는 건 내 ‘고통’뿐이다. 그러니, 나는 자연스럽게 사고한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불행을, 고통을, 생각을, 감정을 안고 살아가는 걸까? 왜, 그분은 죽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는걸까? 나는 이토록 강렬하게, 죽음과 어둠에 매혹당한 채로 살아가는데, 어째서 그분은 공허한 채로 그것을 등지고 공존할 수 있는 걸까? 그래서 수호성이 되나? 나는, 그렇게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하긴, 그 누가 살 수 있겠나. 그러니 우주야, 너는 참 냉정하다. 사람을 사람아닌 ‘도구’로 만들어서 평화를 얻었으니, 너는 냉정할 수 밖에 없다. 

 

  이곳은 ‘신조’의 우주. 의지가 실존하고, 그 의지에는 인격이 있으며, 대화조차 가능한 곳. 그러니 이곳의 불행이란, 이렇게 ‘우주적인’ 불행이란, 명확하게 원망할 대상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곳 우주의 ‘도구’들은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건, 강인하고 온순한 영혼을 골라서 도구로 삼기 때문일까? 그러면, 그들의 온순함과 강인함은 미덕이 맞을까? 아아, 이것 봐. 또 어두운 생각만 하잖아. 

 

 

 

 

  냉소는 무엇도 바꾸지 못한다. 비관주의는 삶을 망쳐놓을 뿐이고, 부정적인 생각은 반복해봤자 ‘지금 당장 죽어야 한다.’라는 결론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감정에 집중하지 않는다. 어설프게 삶을 이어나가는 대신, 무감각함으로 채워 체력이 돌아오길 기다린다. 당신과 다르다. 당신께서 살아가는 방식과 다르다. 당신과 나는 다르다. 

 

  클라비스님,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없어요. 

 

  루카는 문득 일어나 비척비척 아래로 내려간다. 이런 밤이면, 늘 감이 좋아진다. ‘해야하는’ 일을 알 수 있다. 운명은 수레바퀴와 같아서 정해진 길을 데굴데굴 굴러가고, 우리는 그 바큇살이 되어서 빙글빙글 돌아간다. 바큇살의 역할이란, 바퀴를 유지하는 것. 운명을 유지하는 것. 우리에게 반항은 의미가 없다. 운명이 부서진 곳에서 닥쳐오는 불행은, 운명 속에서 겪는 것보다 언제나 끔찍하니까. 그러니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운명을 따른다. 그래, 세상은 우리를 고통과 채찍으로 길들였다.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꺾어주고, 나머지 생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이것도 내 생각이 아니다. 내 상념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건, 그래. 당신이다. 

 

 

 

 

  “……클라비스님.”

 

 

 

 

  문 앞에 서서,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는, 당신이다. 

 

 

 

 

  “음……. 들어와서, 축배라도 들까요? 술을 즐기시던가요?”

 

 

 

 

  현관문 앞에서 내려다보는 당신의 시선은 어두워서, 그 속을 들여다 볼 수 없다. 하긴, 언제 들여다볼 수 있었나. 나는 언제나 당신의 속을 알 수 없다. 우리는 그만큼이나 달랐다.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요. 아니면, 뭐. 당신과 술잔을 기울인 적은 없기도 하고. 걱정끼쳐 드린 게 죄송하기도 하고……. 사실, 이유는 아무래도 좋잖아요. 한 번 쯤은, 괜찮을텐데.”

 

 

 

 

  나는 몸을 비켜 집을 보여준다. 오랜 어둠이 들어오기를 허락하듯이, 바깥에 가득 차서 일렁이는 어두운 타르가 흘러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 듯이. 당신께서는 언제나 속을 알 수 없어, 나는 당신을 늘 어떠한 자연현상과 같이 대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당신은 나와 정반대의 극점에서 살아가는 분이다. 나는 감정을 모두 잘라내어 이성으로 살아간다면, 당신은 이성의 가치를 하찮게 여긴 채, 감정을 중하게 여기는 분이다. 

 

 

 

 

  “네?”

 

 

 

 

  그러니 우리는 서로 가장 하찮게 여기는 것을 이유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영혼은 다른 색을 품고, 하나가 될 수 없다. 어째서 그것이 이토록 머릿속에 틀어박혀 떠나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 오늘, 솔리테어가 떠나기 전에는 이유를 알았는데. 이제는 모르겠다. 하긴, 내가 아는게 뭐 얼마나 있었나. 심란하게 속이, 뱃가죽 속이 일렁이는 날이면 생각하지 않고 자는게 최선인데. 

 

 

 

 

  “……술은 됐다. ……초대는 받아들이마.”

 

 

 

 

  클라비스는 어둠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은 낮은 목소리로 말헀다. 당신의 목소리는 늘 그렇다. 부드럽고, 냉소적이며, 언제나 헐떡인다. 이제는 안다. 당신은 말의 무게에, 말에 담긴 감정의 무게에 헐떡인다. 이 얼마나, 섬세하신 분인지.

 

 

 

 

  “……실례하지.”

 

 

 

 

  클라비스님, 아시나요? 나는 섬세한 사람이 싫어요. 나의 곁에 닿으면 상처입고 부서지는 사람이 싫어요. 그런데 어째서 당신을 이렇게 사랑하는걸까요? 어째서 나는 당신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이토록 바라보게 되는 걸까요?

 

 

 

 

  “네, 클라비스님. 그러면, 차를 마셔요.”

 

 

 

 

  나는 해사하게 웃는다. 기쁘다. 그러나 이 기쁨은 왜 날카로울까? 나는 왜 울고 싶어지는 걸까?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어떤 차가 좋으세요?”

 

 

 

 

  그래, 내가 아는게 뭐 있다고. 그냥, 늘 하던대로, 생각하지 않고 살면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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