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쿠요미 리쿄는 식은땀에 젖어 몸을 일으켰다. 제 머릿속에서 잠기운을 찾아 구석구석 뒤져대지만, 잠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어두운 밤에 어울리지 않게 맑은 정신이 괴로울 정도로 선명하게 느껴진다. 아아, 그는 신음성을 흘리며 오열했다. 울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다.
이 달 밝은 밤, 츠쿠요미 리쿄는 야나기 켄의 죽음을 보았다.
그냥 학교에 가지 않으면 어떨까. 그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계속 맴돈다. 츠쿠요미 리쿄는 셔츠의 단추를 잠그며, 목걸이를 걸며, 교복에 겉옷을 고정하며 몇 번이고 생각했다. 그가 꿈을 꾼 건 아닐까, 그저 재수없는 꿈을 꾼게 아닐까.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평범을 간절하게 바란다. 아아, 어째서 그의 꿈은 그저 악몽이라고 넘길 수 없는가. 그저 꿈이라고 웃을 수 있다면, 그를 만나서 나쁜 꿈을 꾸었어 하고 웃다가, 일그러지는 얼굴을 그대로 내보이고, 위로받을 수 있다면. 몇 번이고 바란다. 해가 뜨는 모습을 바라보며, 등굣길로 비쳐드는 저 빛이 켄의 인생에서 어둠을 걷어주길 간절하게 빌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제일 잘 알지 않는가. 운명은 바꿀 수 없다.
리쿄는 부러 학교에서 켄을 피했다. 평소라면 우연히 마주칠 길을, 알고 있는 우연을 모두 피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바란다. 차라리 마주치길. 그가 보았던 미래를 비틀었을 때, 그것마저 비틀어서 켄이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증명해주길 간절하게 빈다. 아니, 사실 머릿속이 엉망진창이라 얼굴을 보고 싶다. 그 웃음이나, 아무렇지 않게 운명 같은 건 바꾸면 그만이라고 경쾌하게 소리치던 목소리가 그립다.
우습게도, 원래 간절하게 바라는건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다.
야나기 켄은, 켄쨩이라고 자주 불리던 그 아이는, 츠쿠요미 리쿄가 본 그곳에 서 있었다. 그가 본 만남의 장면 그대로, 학교에 길게 노을이 늘어지고 있었다. 기이할 정도로 차가운 노을 속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마치 무언가를 직감한 양 가만히 서서 지나다니는 학생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 아래에서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손을 흔든다. 리쿄는 저 아래에서 켄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이 와카사 이쿠토라는 사실을 안다. 야나기 켄이 그에게 고백했다는 사실도, 연심을 감출 생각이 없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알기 싫어도 알게 되는 일이다.
노을진 복도, 2학년 교실이 가득찬 층. 타박거리는 발소리에 켄이 흘긋 눈만 굴려 상대를 확인한다. 그의 겉옷이 펄럭이는 모습을 보고는 의아한 얼굴로 몸을 돌린다. 노을에 비친 눈동자가 평소보다 색이 짙다. 그 짙은 색이, 우습게도 인간처럼 보여 두려워졌다. 차라리 인간 같지 않은 그 색이 그리웠다. 운명따위 우습다고 말할 때 보았던 그 선명하고 흐린 금빛.
“츠쿠요미 선배?”
“켄.”
“무슨 일이에요, 이름을 다 부르고.”
“뭐어, 그런 일도 있지.”
아무렇지 않은 대화를 가장한다. 동요를 숨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굴며, 제 얼굴이 제대로 움직이길 빈다. 기실, 츠쿠요미 리쿄가 미래를 본다고 하여도, 가까운 이의 죽음에 익숙해 질 수는 없다. 아니, 그러한 종류의 것은 죽어서도 익숙해지지 못하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 절대 죽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덧없이 스러지는 것을 마치 앞에서 보는 양 알아차리는 것.
봄과 동시에 이것은 바꿀 수 없다 확신하는 순간.
결국 무표정이 무너진다. 얼굴 위를 가린 은은한 미소가 일그러진다. 뜨거워진 눈시울이나 찡하게 아려오는 코 끝을 알아차리고, 깊게 숨을 들이쉬는 순간, 켄이 한 걸음 성큼 다가온다. 켄의 체향이 훅 끼친다. 노을과 어울리지 않는 싸하고 차가운 향기. 사람을 어딘가 침착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향.
“선배, 무슨 일 있어요? 괜찮아요?”
“나는……. 그것보다, 너는 괜찮니?”
“뭐, 저는 늘 괜찮죠.”
데굴, 하고 눈을 굴리는 순간. 어색하게 굳은 입가. 츠쿠요미 리쿄는 직감한다. 제가 미래를 보기 한참 전부터, 켄은 알고 있었다. 이미 정해진 일이었다. 그가 보지 못하였어도, 이 이별은, 갑작스럽게 닥쳐왔을 것이다.
“정말로 괜찮니?”
“으응, 뭐…….”
말을 돌리려는 듯 눈을 굴리며 옆으로 살짝 고개를 꺾는 켄의 머리카락이 사락이며 쏟아진다. 얼굴 위로 흘러내린 앞머리를 치우려는 것처럼 손을 들어올리다가, 문득 무언가를 자각하고 다급하게 시선을 맞춘다. 아니지? 설마. 왜 당신이. 입 속으로, 눈 속으로 지나가는 말을 읽어낸다. 츠쿠요미 리쿄는 실소한다.
“봤어요?”
“무엇을 말이니?”
“제발, 이제와서 뭘. 리쿄, 나는 지금 묻고 있어요. 내가 숨기려던걸, 봤어요?”
츠쿠요미 리쿄는 울 수 없어서 웃는다.
“켄, 네 죽음을 봤어.”
켄은 세상이 무너진 얼굴을 하고는 뒷걸음질친다. 하교시간을 알리는 챠임이 길게 울린다. 목소리를 집어삼킨 거대한 음악소리 덕분에, 켄의 움직임은 무성영화처럼 보인다. 주황색으로 타오르는 세계속에서 켄의 눈동자가 하얗게 질린다. 왜, 당신이, 잘 하려고 했는데. 몇 마디 중얼거리다가, 켄은 문득 핏기가 완전히 가신 얼굴을 한다. 벨이 끝나가고, 켄이 빠르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왜 저 사람은 또 더 오랫동안 고통스러워야하지? 아니, 봤다는 지점에서 내가 죽는건 피할 수 없다는 뜻이잖아. 아아, 진짜구나. 그냥, 감이 아니었어. 켄은 반복한다. 아, 감이 아니었어. 태엽이 모두 풀린 인형처럼 멈춰선다. 켄의 얼굴은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리쿄는 제 얼굴도 그러리라 직감한다.
“말하지 않을 생각이니?”
“미리 말해서 뭐해요, 이기적인 말이지만 저는 더 이상 죽은 사람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아요.”
“그들에게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
“그래서요? 내가 죽을 걸 아니까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걸 받아줘야 하나요? 내 얼마 남지 않은 삶을, 곧 죽을 것이라는 이유로 헌신하라고요? 그러고 싶지 않아요. 나는 내 후회를 남기지 않는데 집중하고 싶어요.”
켄은 정신없이 말을 쏟아낸다. 나, 라는 단어가 몇 번이고 반복되며 질척하게 녹는다. 끈적끈적해진 단어는 혀 위로 깊게 달라붙어서, 켄은 몇 번이고 반복했다. 저私는, 내俺, 나僕는, 아무리 바꿔도 제대로 달라붙지 않는다. 아아, ‘나’는. 리쿄는 켄의 그 모든 혼란을 동시에 느낀다. 켄의 감정이 기이할 정도로 확실하게 느껴진다. 켄은 정신없이 고개를 흔들다가, 어느 순간 그의 눈을 들여다본다. 리쿄는 켄의 눈 속에서 자신을 본다. 동시에 자신의 눈 속에 비친 켄을 본다. 안다, 알 수 있다.
“리쿄, 비밀로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 말이, 후회에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안다.
“날 배려하지 않아도 돼요. 나는 이기적으로 굴 거니까, 당신도 이기적으로 굴어도 돼요.”
켄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심호흡처럼 내뱉는다.
“나는 죽어요.”
텅 빈 복도에, 켄의 말이 울린다. 한 걸음 앞으로 나선다. 빛 아래 드러난 켄의 얼굴이 눈물에 젖어 엉망진창이다. 그가 본 것 중에 가장 인간적이고 형편없이 일그러진 얼굴로, 켄은 제 목소리의 울림을 감상하며 이야기한다.
“나는 죽어요, 죽어요, 죽는다구요! 알고 있었어요! 피하고 싶어도 찾아오는 죽음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싫을 정도로 알고 있었어! 그러니까, 나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비명소리 같은 말이 울린다. 저 뒤에서 달려오는 사람이 보인다. 츠쿠요미 리쿄는, 뛰어나가서, 바닥에 웅크려 무언가를 토해내듯 소리지르며 우는 켄의 등을 덮듯이 끌어안았다. 바닥에 떨어진 눈물이 누구의 것인지 모르겠다. 저 너머에서 누가 죽는 것이냐며 묻는 목소리도, 시끄러운 소리에 달려오는 사람들도, 켄이 원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저 그들로부터 켄을 가리듯 끌어안았다.
홀로 죽음을 감내해야 할 친구에게 해 줄 수 있는건 그것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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