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으으, 잔뜩 굳은 몸을 쭉 펴니 뚝뚝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손목이나 허리를 돌려서 뼈를 맞추고 있으면, 머리가 멍하게 울린다. 이걸로 오늘 마감은 끝. 행사 준비랑 겹쳐서 불안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맞췄다.
“벌써 12시냐…….”
집에 들어와서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으니 못해도 여섯 시간은 움직이지 않고 작업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머리가 아프지. 둔하게 울려대는 두통에 머리를 붙잡고 있으면, 문득 속이 쓰리다. 당 떨어졌나? 중간 중간 초콜릿을 씹긴 했는데, 아무래도 그걸론 모자랐나봐.
‘뭐 괜찮은게 남아 있던가…….’
없다. 하나도 없다. 냉장고에 남아 있는건 손질하지 않은 재료랑, 저번에 본가에서 가져온 양념장이랑……. 라면도 다 먹어서 보내달라고 말 해뒀으니까, 정말로 뭘 먹으려면 만들어야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들어올 때 뭐라도 사올걸. 뒤늦게 후회하며 밖을 내다보지만 이미 해가 졌다. 이럴 때 밖에 혼자 나가는 것도 좀 그렇고, 뭐라도 만들까.
막상 만들 생각을 하니 귀찮다. 나 혼자 먹는데 굳이 재료를 꺼내고 다듬고 신경쓰는 과정이 귀찮다. 그냥 거를까. 다른 사람에게 신나게 잔소리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게 조금 우습기는 한데, 뭐 혼자 살면 원래 이렇지. 이러기 싫어서 매일 사람을 불러서 저녁을 먹었는데. 진짜 하숙이라도 놓아야 할까.
천장을 올려다보며 실행하지도 않을 생각들을 가만히 헤아려본다. 대학은 시험기간에, 서준이는 영화 촬영에 들어갔지. 시험이 끝나면 다같이 모여서 먹고 마시기로 했지만, 그 사이의 간격이 유난히 외로운 순간이 있다. 당연히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곳에 없다는 사실이 조금 사무치는 날이 있다.
됐다, 밥이나 먹자. 배고파서 이런 생각을 하지.
따뜻한 국물이 당기니까 국수를 만들자. 머리를 고쳐묶고 평소엔 먹지도 않는 야채를 늘어놓는다. 사놓고 한 번도 입지 않은 앞치마를 꺼내 두르고, 소매를 걷어올려 조용히 흙을 씻기 시작한다. 물이 흐르는 소리, 야채에 묻은 흙이 떨어져나가는 광경. 호다카가 직접 키워서 준 야채는 신선한 만큼 손질해야 할 곳도 많다. 보통 손질 된 야채를 사다 쓰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는 손을 움직이는게 좋으니까.
손질해둔 멸치를 꺼내서 덖고, 다시마를 축축한 키친타올로 닦는다. 가위집을 내고, 물에 넣어 약불에 우리기 시작한다. 이제 뭘 해야 하더라. 국물이 우러나는 동안 시간이 있으니, 같이 먹을 양념장이나 만들까.
그때,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기울인다. 지금 찾아 올 사람이 있나? 시간이 벌써 12시 반이다. 이 시간에 아무렇지 않게 집을 찾아 올 정도로 친한 사람은 얼마 없는데. 예지랑 예은이는 오늘 시험이랬고, 성호랑 성태는 과제 마감이 방금까지라고 했다. 영화를 찍고 있는 서준이가 지금 일본에 있을리도 없고. 그러면 열쇠를 준 사람이 또 누구 있더라.
느긋하게 손에서 물을 닦아내고 거실로 나선다. 혼자 있는 느낌이 싫어서 불을 켜 둔 집은, 사람이 모자란 만큼 조용하고 서늘하다. 정말로 하숙을 들여야지. 하지도 않을 생각으로 툴툴거리며 앞치마를 풀어내며 고개를 들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서 있다.
“와카센? 무슨 일인가요, 이 늦은 시간에.”
심야.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연락 없이 찾아오기엔 조금 무례한 시간. 아닌 척 예의를 지키던 사람이 했다기엔 의외인 행동. 저 사람, 저러는 일이 잘 없었는데. 들어오지도 않고 가만히 현관에 서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조금 어색하다. 답지 않다. 대답도 없고 어디 아픈가? 문득 치밀어 오른 걱정에 조심스럽게 다가서면, 술냄새가 확 풍긴다. 묘하게 멍해 보이는 얼굴에 잠깐 그의 소매를 잡아 당기고, 스위치가 들어간 것처럼 눈에 초점이 돌아온다.
“켄쨩……? 어째서 여기에…….”
“예? 그야 제 집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와카센이야 말로 이 밤에 무슨 일입니까.”
“켄쨩의……? 이상하네, 나, 집에 갈 생각이었는데.”
“그럼 왜 여기로 온 거예요, 제 집은 와카센의 집이 아닙니다……. 취했어요?”
“취했을……지도. 왠지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잔뜩 마셨으니까……. 켄쨩도 있지않아……? 그런 날.”
“뭐, 있긴 합니다만. 어쨌든 들어오세요. 현관에 서 있을 겁니까?”
묘하게 이상하다 했더니 취했던가. 제가 어째서 여기 왔는지도 모른다는 얼굴에 맥이 탁 풀려버렸다. 내심 무슨 헛소리를 하려나 조금 기대했건만, 취한 사람 상대로 대화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그럼 실례할게…….”
“아, 코트는 거기 걸어두세요. 마침 국수를 만들던 참입니다. 같이 먹겠습니까?”
“헤에, 나한테 그런걸 말하는거야……? 별로 먹는 일에 흥미는 없지만……, 켄쨩의 수제요리라면 조금 관심이 갈지도.”
“그러면 조금 먹어 보세요. 아직 간을 안 했으니까, 와카센 입맛에 맞춰서 조금 싱겁게 하겠습니다.”
“거기까지 신경 써 주는거야……?”
묘하게 기쁜 기색이 묻어나는 말투에, 낮게 가라앉은 기분이 조금 울렁인다. 그냥, 아직 안 했으니까 소금을 좀 빼고 넣으려던 재료를 넣지 않으면 그만인 일인데. 저렇게까지 기뻐하니까.
“뭐, 그렇죠.”
눈을 데굴 굴리면서 긍정해버린다. 저 움직이는 곳도 모를 정도로 취한 사람하고 기싸움을 해서 무엇하나. 대충 맞춰주면 그만인 일인데. 매듭을 풀어버린 앞치마를 다시 묶고, 국물을 우리던 재료를 건져낸다. 국수를 삶으며 끓여둔 물을 컵에 따른다.
“자, 여기. 물입니다. 취한 것 같으니까, 좀 마셔요.”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와카사 이쿠토가 어색하다. 익숙한 풍경 속에서 묘하게 거슬리는 부분이 있는데, 어딘지 모르겠다. 술에 취한 사람이라 저리 보이는지, 그냥 내가 오늘따라 기분이 가라앉았는지. 알 수 없는 기분이 어색해서, 물을 마시느라 보이지 않는 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문득, 컵을 내려놓는 그와 눈이 마주친다.
“그렇게나 빤히 바라보고……, 반해 버렸어……?”
“글쎄요, 어떨까요. 반할거라면 진즉 반했겠죠. 와카센, 오늘 이상하구나─ 하고 보고 있었습니다.”
“이상하다니……, 어떤?”
“어떤, 이라고 해도.”
아, 물 끓는다. 끓는 물 위에 찬 물을 부어가며 적당히 익도록 조절하고, 계란을 풀어 얇게 부쳐내기 시작한다. 찢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말아 지단을 부치고, 도마위에 올려 식힌다.
“잘 모르겠네요. 저도 지금 그리 상태가 좋진 않아서.”
양념장을 만들 재료를 꺼내서 섞고, 그동안 잘 식은 계란을 말아서 얇게 채썬다. 이상한 점, 이상한 점. 그래, 어디가 이상한걸까. 묘하게 눈에 익지 않아서 거슬린다는 말을, 어떻게 돌려야 예쁘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잘 우러난 국물을 조금 싱겁게 간하고, 면 위로 붓는다. 장식용으로 썰어두었던 야채들을 예쁘게 올리면 끝. 사실 무언가를 썰고 싶어서 준비했던 거라서, 이런 식으로 누가 먹게 될 줄은 몰랐다.
“자, 여기.”
“고마워.”
“뭘요. 아까도 말했지만 간을 약하게 했으니 먹을만 할겁니다.”
수저를 챙겨주고, 물을 따라 자리에 앉는다. 단 둘이서 먹으면서 나란히 앉는것도 좀 우스우니 마주보는 자리. 거실에 상을 차려서 먹는 일이 더 잦으니까 식탁 의자를 쓰는 건 좀 오랜만이다. 역시 어색하네.
계란 고명과 면만 들어간 국수를 나름 뿌듯하게 보고 있자면, 여전히 맥빠지게 만드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런 식으로 켄쨩이 요리하는 걸 보고, 같은 식탁에 앉아 있다면 말이야……, 우리들, 뭔가 부부같다고 생각하지 않아……?”
“예, 않습니다.”
“켄쨩, 너무하네……. 차가워…….”
“너무한건 취해서 새벽에 찾아온 와카센이 더 너무해요.”
가볍게 간을 보지만 역시 싱겁다. 저렇게 간이 약한걸 양념도 넣지 않고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좀, 질린다. 향이나 맛이 강한 음식을 못 먹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생각했지만, 역시 나랑 입맛이 정 반대. 국물이 붉어지고 칼칼한 맛이 날 때까지 양념을 넣어서 잘 섞는다.
그 뒤로는 숨소리와 간간히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만 주방에 울린다.
그러고 보니까, 일본에서는 국수를 소리내어서 먹는게 예의라고 하지 않았던가? 대충 반 정도 먹었을 무렵,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저야 소리가 싫으니 조용히 먹는다고 하지만, 저 사람은?
고개를 들면 반 조금 넘게 남은 그릇과 저를 빤히 보는 눈이 있다. 귀에 소음의 잔재가 남아있지 않은 걸 보면 꽤 오래 보고 있었을텐데, 안 먹고 그냥 보고 있었던건가?
“입에 맞지않습니까?”
“응……? 그런 건 아니야……. 이거, 내 입맛에 맞고 맛있어……?”
“……? 그럼 왜 안 먹고 사람을 빤히 보고 있어요?”
“왜 일까……. 뭔가,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
아까부터 생각했지만, 역시 저 사람은 지금 이상하다. 술을 먹어서 그런건지, 그냥 이상한 상태를 숨기려고 술을 먹은건지 알 수 없지만. 묘하게 위태롭고, 눈을 뗼 수 없다는 건 변함이 없다. 저런 식으로 말하는 것도 올해 들어서는 잘 없었는데.
“뭔가 고민이 있으면 말해요, 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런 일 아니야……? 별로, 켄쨩이 신경 쓸 일은 아니고.”
“뭔가 있긴 있는거네요.”
먹지 않으면 국수, 불어버립니다. 그런 말을 덧붙이고 몇 가닥 남지 않은 국수를 먹는다. 우물우물 면을 씹으며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골라낸다. 그냥 신경끄고 넘어가면 될 일을, 일일이 파헤치는 나도 참 우스워.
“위로가 되었으면 하고 꺼내는 말입니다만.”
젓가락을 내려 놓으며 눈을 마주친다.
“와카센이 했던 말 기억합니까? 언제나 제 편이라고 했던 거.”
“아…… 그거……? 물론 기억하고 있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와카센이 제 편인만큼, 저도 와카센 편입니다. 웬만한 일이라면 제가 수습할 수도 있고, 일단 사람은 누군가에게 털어 놓는 것만으로 편해진다고 하잖아요? 같이 해결방법을 고민 해 줄테니까, 이야기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저는 꽤 좋은 청자입니다. 하고 작게 덧붙이면 묘하게 멍한 표정을 하고 있다. 외로워서 술을 마셨다고 했으니, 뭐. 저 사람도 나랑 다르지 않게 기분이 가라앉는 날이겠지.
“물론, 말하고 싶지 않다면 묻지 않겠습니다. 일단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세요. 방이라면 얼마든지 비어 있으니까.”
그러면 저는 와카센이 잘 방을 정리하러 가겠습니다. 하고 그릇을 개수대에 넣는다. 대충 친구들이 놀러와서 쓰던 방을 정리 해 주면 되겠지. 정리라고 해도, 이불을 꺼내고 배게를 두는 정도라서 별다를 것도 없지만─
아.
문득 갈아입을 옷을 줄테니까 샤워 하라는 말을 하는 걸 까먹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거실에서 주방으로 다급히 돌아가면.
붉어진 얼굴을 쓸어 내리고 있는 와카사 이쿠토가 있다.
보아서는 안 될 풍경을 보았다는 느낌이 조금 강하게 든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훔쳐보는 듯한, 묘하게 간질거리고 부끄러운 느낌. 사랑에 빠진 사람의 연서와 일기장을 훔쳐보는 설렘과 배덕감. 못 본걸로 하자. 누굴 생각하며 저렇게 구는지는 모르겠지만, 취한 사람을 상대로 약점을 잡는 것도 우습다. 침구에 술냄새 배면 다시 사지 뭐.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걸음을 돌린다.
달도 뜨지 않는 조용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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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존나 너무 달달하네요 제가 이거 읽을려고 일어난듯 둘이 썸타는거 관음 하는거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