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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가 타는 향

admin 2018.11.25 02:57 read.122

  한 번도 밝은 빛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아는가? 깊은 어둠과 옅은 어둠을 반복하는 사람은 제가 어두운 곳에 떨어져 있는 줄도 모른다. 옅은 빛이 하여금 속박이 되어, 어둠을 구별하며 제가 제대로 된 곳에 있다 착각하고 만다. 그런 자들이 제 정신을 차리게 되는 것은 언제인가? 강한 빛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눈이 아플 정도로 선명한 세상을 바라보며, 아 나는 한 번도 제대로 앞을 본 적이 없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바로 지금과 같이.
  상상해 보아라. 모든 기억이 회색으로 덮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을. 한 순간 온 세상이 총천연색으로 빛나고, 익숙하고 사랑스럽게 여기던 모두가 빛 바래고, 내가 온전하게 누군가의 손 위에서 놀아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사랑이 거짓이 되고, 호의가 기만이 되고, 웃음이 칼날이 되는 순간.
 
  사람은 어떤 감정을 품게 되는가?
 
  묘하게 붕 떠있던 몸의 감각이 돌아온다. 안주나 물 없이 싸구려 술을 진탕 퍼 마시고 일어난 아침 같아. 세상이 흔들리고, 머리는 둔하고 강렬한 통증을 호소하는데, 사고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밀도 높은 물 속에서 힘겹게 숨을 쉬는 고통. 느릿하게 숨을 몰아쉰다. 코를 통해 폐를 채우는 공기의 향이 낯설다. 기묘한 기분이다.
  기이할 정도로 이성적인 사고가 삐걱거린다. 합이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끼익끼익 소리를 내며 단어가 모여든다. 한 번도 바뀐 적 없는 집이 어째서 이토록 낯선가? 언제나 웃으며 살갑게 굴었던 사람이 어째서 이렇게나 어색한가? 어째서?? 나는 왜 이렇지? 의문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진실을 덮어두었던 얄팍한 껍질이 산산조각나며 온 몸을 난도질한다. 고통, 실체가 없는 이 고통. 인지를 뛰어넘은 무언가로 인해서 진실의 조각을 잃어버린 사람이 가지는 이 두려움.
  과거를 반추한다. 밀려드는 감정을 옆으로 밀어두고, 오직 사실을 되새긴다. 사랑에 빠지고, 집에 사람을 들이고, 꼬리를 빗어주고, 귀를 만지고, 술을 내어주고.
  아.
  사람에게 꼬리가 있던가? 사람에게 개과 동물의 귀가 달려 있던가? 문득 내 머리 위를 만진다. 부드러운 머리카락 위를 미끄러지는 손.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오는 검은 머리카락이, 붉은 기가 도는 털을 쓰다듬던 순간과 겹쳐진다.
 
  ‘네놈은 무르기 그지없어. 인간에게 모습을 드러냈다면 죽이면 될 것을.’
  ‘별로 괜찮잖아……? 처음부터 홀려서 제대로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사랑하고 있고. 게다가 이 아이, 꽤 높은 신령이랑 엮여 있던 걸.’
  ‘그러니까 무르다고 하는거다. 애초에 그런 인간이라면 손을 대지 않는 쪽이
  ‘마야마.’
  ‘뭐냐.’
  ‘내 사랑스러운 연인이 시끄러워 하니까, 조용히 해 주지 않겠어……?’
  ‘그러니까 너는 하아, 됐어.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하지. 네놈이랑 이야기하면 두통이 도져.’
 
  아홉 개의 꼬리가 보라색 기모노 아래로 살랑이던 순간. 입꼬리를 비틀어 웃는 얼굴이 지독히도 아름다웠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웃음이 난다. 그토록 불길한 얼굴을 그저 웃어 넘겼나? 무슨 말을 해도 사랑스럽다고 기뻐하며, 품에 파고 들었나? 대놓고 나를 기만하고 우습게 여기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내가 무지했나?
  고개를 들기 시작한 의문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진다. 내가 이리도 쉽게 사람을 곁에 두었나? 어째서 말 몇마디 나눠보지 못한 사람을 집에 들이고 열쇠를 내어줬지? 그가 내 허락도 없이 사람을 들였을 때 화내지 않은 이유는? 인간이 아니라고 밝혔을 때, ‘그런가요?’ 하고 덤덤하게 넘겨버린 이유는? 그와 함께한 시간 모두가 거짓이 된다. 의심이 추억을 집어삼킨다. 회색, 회색, 빛바래고 의미를 잃어버린 모든 기억들. 내 의지를 의심하고, 행동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거대한 명제 하나가 의문에 물든다.
  나는 어째서 그를 사랑한다고 확신했지?
  등 뒤의 기척을 알아차린다. 알아차린 순간 의식을 압도하는 거대한 기척. 척추를 따라 소름이 돋고, 당장 도망치고 고개를 박아야 한다고 절규하는 직감. 맹수를 마주한 초식동물처럼 벌벌 떨어대는 본능. 우습게도 거대한 두려움 앞에서 자존심이 고개를 든다. 거칠게 이를 드러내며 웃고, 두려움에 송곳니를 박으려 입을 벌린다.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돌린 몸에 현기증이 일어, 뱉으려던 말이 혀에 휘감긴다.
  언어로 막지 못한 불길함이 눈 안에 박혀든다.
  언젠가 닮은 것을 찾아 묘사해 주겠다던 머리색의 정체를 알아차린다. 불길함을 실로 엮어 붉게 물들여 놓은 것이 부드럽게 흔들린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건 얇은 유리가 미처 막아내지 못한 차가움. 깊고 어두운 죄악을 뭉쳐 곱게 다듬은 것이 안경 너머에서 야살스럽게 휘어진다.
 
  “이제 눈치 채 버렸다…… 일까?”
  “당신…….”
  “. 좀 더 놀고 싶었는데. 눈치 채 버렸다면
 
  나비의 날개를 떼어 장식하고 산 것을 좁은 곳에 가두어 감상하는 순진함이 짙게 묻어난다. 바람소리를 섞여 내뱉는 목소리가 지독히도 외설적이다. 이것이 바로 저것의 정체이다. 인간을 홀려 파멸로 이끄는 여우. 꼬리가 아홉 개가 될 때까지 제멋대로 인간을 휘두르고 질리면 버리기를 반복하던 요괴.
  그러니 문득 의문이 든다.
 
  “어째서 암시를 풀었어요?”
 
  등허리를 오싹하게 만드는 목소리의 허리를 끊어낸다. 의도를 숨기고 여기저기 비산하던 말이 끊긴다. 정적, 한 순간의 정적이 만들어내는 긴장감. 차갑게 얼어 붙은 분위기가 목을 조르는데, 의문이 꺾이지 않는다.
 
  “당신이잖아요? 이거.”
  “헤에,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
  “이런거, 제 힘으로 풀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확신에 찬 목소리네……? 그래도, 틀려. 켄쨩, 의외로 제압하기 어려운 편이라서 말이지……. 몇 번이나 실패할 뻔 했는걸……?”
  “하지만 결국 다시 절 휘두를 수 있었잖아요?”
 
  서로에 대해서 잘 아는 척 대화를 나눈다. 내가 아는 당신, 당신이 아는 나. 같이 지낸 시간이 신뢰를 쌓아 올린 척, 긴장한 몸을 숨기고 태연한 모습을 보인다.
 
  “나라도, 실패하는 일은 있어. 켄쨩도 그런 일 있잖아? 능숙한 일에 실패하는 것.”
  “, 그런 일이 있긴 하지만. 굳이 암시를 풀고 가르쳐 줬으면, 이제 발뺌은 그만 하는 게 어때요?”
  “눈치가 빠르다고 생각했지만……. 켄쨩, 의외로 감이 좋아……?”
  “, 그건 어떻게 되어도 좋은 일입니다. 저는 지금 묻고 있어요. 절 놓아준 건 당신이잖아요?”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의문을 입에 담는다.
 
  “왜 그 사실을 제게 알려 준 겁니까?
 
  사고의 끝에 당연하게 확신하는 사실.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고 직감으로 판단하지 못한 진실. 그럼에도 나는 사랑을 확신할 때와 같이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는다. 이는 분명 사랑과 같다. 사랑과 같이, 그가 머릿속에 박아 넣은 대명제.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대로 죽이면 될 사람을 놓아 준 이유에 의문을 품는다.
 
  “제 입으로 말하기도 뭐한 일이지만, 저를 가지고 노는 데 질렸다면 그대로 죽이면 되잖아요? 죽이기 아깝다면, 저를 노릴 만한 요괴에게 넘겨주면 됩니다. 그도 아깝다면, 완전히 이성을 제압하고 적당한 곳에 가둬도 될 텐데,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절 놓아주는 이유가 뭔가요?”
 
  말의 끝에, 공기가 일변한다. 지금까지 저를 짓누르던 무게는 아이 장난이라는 듯, 날카롭게 변해서 목을 위협한다. 몸짓 하나, 숨결 하나 잘못 되는 순간 그대로 죽어 버릴 것 같은 중압감. 문득, 오래 묵은 여우의 눈이 불길하게 번득인다.
  
  “위험? 재미있는 말을 하네, 켄쨩.”
 
  나는 무엇인지 모를 역린을 건드렸다.
 
  “누군가에게 말한다고 해서, 내가 위험할 거라고 생각해……? 후지시로 학원이 있는 이곳은 요괴와 요괴를 알고 호의적인 인간이 아니면 살지 않아. 그야, 나랑 마야마, 이치노세가 500년 전에 모두 죽여 버렸는걸.”
  “……?”
  “후후, 놀란 얼굴이네……? 하지만 진실이야……? 후와군은 마지막으로 남은 퇴마사 일족이면서 요괴 혼혈. 퇴마를 포기하겠다는 상징같은 거야. 게다가 완전한 인간이라고는, 너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교재거나, 장난감 뿐., 인간을 주식으로 하는 요괴들도 있으니까 완전히 내쫒을 수 없었다…… 일까.”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던 사실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 숨이 막힌다. 거대한 기만이 칼날이 되어 심장을 난도질한다. 경악과 희미한 공포, 자존심으로 억눌러 두었던 생명의 위협이 진실이 된다. 본능이 시키는대로 한 걸음 물러선 순간, 포식자의 눈이 번득인다.
 
  “저기…… 켄쨩, 무서워 하고 있어?”
  “차라리 죽이지 그랬습니까.”
  “여전히 재미있는 말을 하네. 두려워 하고 있는 주제에. 질려서 죽일 거라면 진즉 죽였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면,.”
 
  저를 풀어 준 겁니까? 차마 하지 못하는 말을 삼키는 순간, 저 여우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알아서는 안 되는 진실이 성큼 눈 앞으로 다가선다. 도망쳐야 해. 이 이야기를 들어서는 안 돼. 처절하게 절규하는 감을 알아차리는 순간, 와카사 이쿠토의 입이 열린다.
 
  “진심이 되어버려서…… 말이야.”
 
  무엇에?
 
  “처음에는 놀이였는데 말이지……. 의외로 이 연인 놀이가 마음에 들어서 말이야. 정신을 차려보면 정말로 켄쨩을 손에 넣고 싶어……라고 생각해 버려서 말이지.”
 
  그러니까, 지금 이 여우는 저와.
 
  “무심코, 말이야. 켄쨩의 진심이 궁금해져 버렸어., 그래도 지금 진심을 들을 생각은 없어……? 그냥, 다시 처음부터 관계를 시작하고 싶었을 뿐. ”
 
  올바른 관계를 쌓아올리기 위해서 내 의지를 돌려 줬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가?
  사고가 판단을 거부한다. 인지 바깥의 공포가 이성을 위협한다. 거칠게 살기를 품고 내려앉은 공기.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세상, 반추한 과거는 비합리로 가득 차 있고, 어째서 그를 사랑했는지 알 수 없다. 사랑이라고 착각한 감정들이 그려내는 거짓 추억, 공허한 웃음. 사방에서 쏟아지던 걱정이 떠오르고, 정상이라 착각했던 순간들이 떠오르고, 문득.
  먹이를 주면 침을 흘리는 개처럼, 그의 목소리와 몸짓에 두근거리는 심장이 있다.
  임계점을 넘은 감정은 반대가 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비이성과 불합리의 끝에서, 문득 이성과 합리가 고개를 든다. 그가 제게 한 일에, 악의가 있었던가? 저를 홀려 뜻대로 움직이게 만들었다고 하여서, 저 와카사 이쿠토라고 하는 요괴가 나한테 해가 될 짓을 했던가? 아니다. 그저 연인처럼 굴고, 내가 그를 사랑한다 착각하게 만들고, 곁에 두었을 따름이다. 그러면, 그것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큰 잘못인가?
  대답을 거부하는 머리가 있다.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오랫동안 기름을 칠하지 않은 톱니바퀴가 삐걱삐걱 소리를 내면서 굴러간다.
  괘씸하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그는 요괴이고, 인간의 기준으로 매길 수 없는 존재이며, 천 년이 넘게 유지한 삶의 방식에 가타부타 입을 댈 만큼 오래 본 사이도 아니다. 그저 평범하게 친해지는 방법을 몰랐다고 한다면? 와카사 이쿠토라는 요괴가, 그저 나와 관계를 맺고 싶었을 따름이라면?
  모든 인간은 공평하게 기회를 얻어야 한다. 인간관계에서 실수하고 용서받는 경험을 마주할 기회. 누군가는 악의 없는 실수를 용서하고, 잘못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조건 없는 호의를 제공해야한다. 거래로 규정할 수 없는 관계를 경험할 장소가 되어야 한다.
  와카사 이쿠토가 그러한 관계를 경험 한 적이 없을 뿐이라면?
 
  “, 켄쨩. 생각은 충분히 했어……?”
 
  나를 부추기는 저 요괴가, 내게 되돌릴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가? 이 모든 관계가 선의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매정하게 내칠 수 있는가?
 
  “다시 말해줘? 너는 어른이나 아이를 가리지 않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이야기 했었지……? 그러면 요괴인 나한테도 다시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쉰다. 공포는 여전하다. 등허리를 타고 돋은 소름은 여전히 그를 믿어서는 안 된다고 절규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본능을 억누르고 사고하였기에 발전했다. 이성이 본능위에 있음이 문명의 증거가 된다.
 
  “당신이 그렇게 말한다면, 그 말이 진실이라면, 그렇죠. 누구나 기회를 가져야해요. 저는 그 기회를 주고 싶은 사람입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죠.”
 
  진심은 보답받아야 한다. 진실은 상등한 가치를 지닌다.
 
  “다시 시작해 보죠. 처음 뵙겠습니다, 야나기 켄입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켄쨩. 잘 부탁해.”
 
  예쁘게 웃는 얼굴에 피식하고 웃음을 흘린다. 연인 놀이를 하고, 무릎에 눕혀 무언가를 먹이고, 잔소리하고, 진심으로 대하던 그때와 다름 없는 웃음이다. 결국 그를 두려워하는건 저와 다르다 생각한 탓이겠지. 요괴라고 해도 인간과 똑같은 말을 하고, 비슷한 모습을 취한다. 이 감정은 그저 내 편견이 불러낸 환상이다.
 
  “들어와요, 일단 뭐라도 해 줄테니까.”
 
  무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평소와 다름 없는 혼잣말이라 생각하고 넘겨버린다. 목을 조르는 불길함도, 결국 편견을 없애면 사라지겠지., 그러고보니까 아까 부채를 꺼내들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의식은 어둠 속으로 빠져든다.
 
*
 
  허리의 통증과 묵직한 두통이 의식을 끌어올린다. 푹신하고 따스한 무언가가 나를 감싸고 있다. 뭐지? 노곤노곤하게 풀어진 몸은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안락하고 따뜻하다. 이대로 계속 누워 쉬고 싶어.
  하지만 코 끝에 지독한 향이 스친다.
  무시하고 자기엔 너무나도 지독한 냄새다. 도대체 어디서 나는걸까? 푹신한 것을 밀고 땅에 선다. 마치 오랫동안 쓰지 않은 것처럼 몸이 삐걱삐걱 비명을 지른다. 늦잠을 잔 걸까? 학교에 지각하면 어쩌지. 추위가 스며든 몸을 작게 떨며 비틀비틀 걷는다.
 
  여긴 동굴 같은 곳이다. 습하지 않고 아늑하지만, 볕이 들지 않고 바닥이 흙, 벽이 돌이라는 사실에서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좋은 곳이네. 느릿하게 감상을 내뱉으며 푹신한 흙을 걷는다. 맨 발이 다치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흙. 저 너머에서 냄새가 난다. 일렁이는 불빛에, 문득 이 동굴이 그렇게 어둡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동굴의 입구로 다가가면 열기가 느껴진다. 일렁이는 불꽃에 흔들리는 그림자. 아홉개의 꼬리가 제멋대로 허공을 휘적거린다. 각자 의지를 가진 양 다른 방향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내려다보는 눈과 마주친다.
 
  “켄쨩……? 생각한 것 보다 일찍 일어났네. 좋은 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이상한 냄새가 나서 나왔습니다만, 도대체……?”
 
  희미하게 소음이 들린다. 비명소리 같기도 하고, 바람소리 같기도 한 무언가. 문득 아주 중요한 걸 잊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깨 위로 내려 앉는 기모노에 날아가버린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청소.”
  “드문 일이네요, 당신이 청소라니.”
  “헤에, 그거 무슨 의미? 나라도, 청소 정도는 해……?”
  “하지만 우리 집에서, 한 번도 한 적 없잖아요.”
  “그거라면 사과할게, 미안해……? 하지만 그 때는 켄쨩에게 진심이 아니었으니까.”
  “지금은 진심이라는 뜻입니까?”
  “그걸 네가 묻는거야……? 이제와서……?, 켄쨩에게라면 얼마든지 말해줄 수 있지만……. 나는 언제라도 진심이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
  “자연스러운 말이네요.”
 
  맨발로 걸어 온 길을 그에게 안겨서 돌아간다. 돌아가고 나서야 누워있던 곳이 푹신하게 꾸며진 잠자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따뜻하고, 푹신하고, 다시 누워 웅크리면 의식이 희미해질 정도로 편안한 곳이다.
 
  “, 좀 더 자……? 아침은 아직이야.”
  “밖은, 밝았던 것 같은 기분입니다만…….”
  “그건 불타고 있어서 드는 착각.”
 
  이부자리를 정리해 주는 손길에 수마가 몰려든다. 문득 저 뒤에서 야나기 켄! 하고 길게 부르는 소리가 난 기분이 든다. 팔을 쥐어 이불 속으로 넣어 주던 손에 힘이 들어가고, 붙잡힌 팔이 아파온다. 작게 표정을 찡그리면, 다시 유리를 쥐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손길로 돌아간다.
 
  “미안, 아팠어……?”
  “그다지,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다행이네.”
 
  이불을 덮으면 다시 어둠이 몰려든다. 지독한 향은 계속 맡고 있으면 익숙해진다. 이건 뭘까. 어디서 맡아 본 적이 있는데.
 
  “켄쨩.”
  “?”
  “악의가 없는 실수와 방법이 잘못된 호의에게는 기회를 줘야한다는 말, 아직도 그렇게 생각해……?”
  “물론, 진심이라면. 언제나 기회를 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만…….”
  “, 그걸로 됐어. 잘 자.”
 
  아 그래.
  이건 호의가 불타는 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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