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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줘

admin 2018.11.18 21:42 read.6

 

  흐드러지는 웃음이 피어났다. 독기를 피워 저도, 주변도 죽여가는 일에 지쳤다. 더 이상 버틸 힘도, 의지도 남아있지 않아. 이대로 죽어버린들 어떠냐, 내가 살아남아 할 일이 더이상 남아있지 아니한데. 그러니까,
 
  "날 죽여줘요, 카뮤."
  "무언가 잘못 먹기라도 한건가, 계집."
  "저는 멀쩡해요, 이미 죽어버린 영혼을 따라가지 못한 육신이 숨쉬고 있을 뿐."
  "우스운 소리를 하는군."
  "우스워 보일까요."
 
  자조적인 말을 던지자 당신은 굳는다. 상처 줬다고 생각했을까? 당신을 안심시키려 다시 말을 꺼냈다. 하하, 정말 우습기는 하네요. 건조하게 목을 울려 웃었다. 언젠가부터 익숙해진 웃음이다. 날카롭고 난도질당한 웃음. 지치고 지쳐 가면조차 쓸 수 없을 때 꺼내어놓던 그런 감정. 당신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진다. 연민일까? 아니면 혐오? 고개를 갸웃거리자 더욱 일그러지는 표정. 어느쪽이든 당신이 그렇게 상처받은 얼굴을 할 필요는 없는데. 저보다 더 상처받은 얼굴을 한 당신에게서 조금 위로받았다. 
  당신이 날 죽일 수 있다고 믿는데, 당신은 아니었을까. 총을 구해다 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조금 슬프기는 하였다. 나는 목에서 느껴지는 당신의 체온을 음미하며, 당신은 빠르게 뛰다가 천천히 멎어가는 맥박과 차갑게 식어가는 체온을 느끼며 그렇게 마지막을 맞이해야 했겠지. 당신에게 잔인한 일이 될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원래 사랑은 이기적인 감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옛날부터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죽고싶었어요."
 
  고백과 같은 애원.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매정할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 보이지는 않아도 참 상냥한 사람이니까. 당신의 그 소소한 상냥함과 뜨겁게 타오르는 불을 누구보다 주의깊게 바라보았던 제가 하는 말이다. 그러니, 당신은.
  혼란스러워 하는 손을 잡아 제 목 위에 대고 눌렀다. 제발. 간절한 애원의 말. 그는 놀란 듯, 아니면 상처입은 듯, 횡설수설하는 말을 풀어놓았다.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렸지만 설득은 언어가 되어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가 되지 못한다. 건조한 미소를 그저 얼굴에 띄우고, 고장난 태엽장치처럼 한마디를 반복한다.
 
  "어서, 절 죽여줘요."
 
  연약한 새처럼 뛰는 심장의 고동을 짓밟아 달라 애원하지만 당신은 결국 날 죽이지 못한다. 혼란스러워하며 목에 댄 손조차 떼지 못하고, 그렇게 눈을 마주한다. 찬란한 희망과 같은 당신의 눈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제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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