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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서

admin 2018.11.18 21:25 read.10

 

 
  시간이 우리에게 있어서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은 자명하였다. 허나, 내가 인간으로 지낼 수 있는 마지막 날 마저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면 슬프지 않을까? 그런 생각해서 시작한 칭얼거림이었다. 제 죽음을 확실하게 알아차린 자 만이 부릴 수 있는 어리광. 오직 저를 사랑한다 끌어안고 속삭이는 신의 목에 손을 두르고, 저는 조금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후티, 오늘은 놀러 나가요."
  "가고 싶은 곳은?"
  "당신에게 의미가 있는 곳으로."
 
  그는 부드럽게 제 머리카락을 쓸어넘겼고, 저는 웃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이들이 하기에는 어려운 행동이나, 영원의 고독을 끊어낼 신과 그의 칼에게는 꽤나 어울리는 행동이었다. 일단, 아름다웠고. 뭐, 그랬다.
  그에게 의미가 있는 곳이라 하면 많지 않은 법이다. 더군다나 모든 사제를 잃어버린 신은 어디로 가야 하겠나? 그의 신전마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인데 말이다. 그러니 그가 그녀를 데려간 곳은, 그에게 있어서 아주 뼈에 사무치는 곳으로 남은 곳이었다.
 
  "슬픔이 묻어나네요, 제후티. 아름다운 밤이에요."
  "말을 돌리지 마라."
  "하지만, 울지 말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하늘하늘 손끝을 뻗어가며 춤춘다. 사막의 밤은 차갑기 짝이 없고, 그의 눈길은 따스하기 짝이 없구나. 아아, 이 온도차에서 피어나는 안개구름. 나는 데워진 공기의 틈으로 흘러가는 냉기가 되어 하늘하늘 움직인다. 죽음 앞에서, 실로 즐거이. 어찌 제게 죽음이 즐거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영원한 고독이 마침내 나로써 끊어지게 될 것인데 내가 웃지 않을 이유가 있단 말인가?
  제 발이 그려내는 궤적을 한참 바라보던 그는, 느릿하게 말을 꺼냈다.
 
  "마지막 숭배가 이어진 곳이다. 그 놈은 결국 여기서 숨이 끊어졌지."
  "슬펐나요?"
  "그럴리가."
  "하지만 기억했잖아요."
  "나는 지혜의 신이다. 잊어버리는 일 따위 있을 것 같나?"
  "그렇게 말한다면야."
 
  저는 쉬이 그를 밀어내는 척 팔을 하늘로 뻗어올린다. 의미없이 그려내는 몸짓은 서서히 환상을 덮어쓴다. 그래, 나는 그저, 그의 기억 속에서 춤추고 있을 따름이다. 광기가 흘러넘쳐 모든 것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 드디어 내 길고 긴 서사가 마지막을 맞이한다. 마지막에서야, 나는 당신을 마주하고야 말 것이다.
  그의 시선이 미묘한 희열에 번들거리고 있음을 알지만, 무시한다. 수많은 것을 무시한다. 그가 숨기고 싶은 것, 숨기고자 했던 것, 내가 알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 사랑의 탈을 뒤집어 쓰고 자행했던 수많은 일들과 그 안의 불안감 모두를 무시한다.
 
  "제후티. 결국 당신의 마지막 신관은 여기서 죽게 되겠네요."
  "네 마지막 숨 마저 내 것이다."
  "아까부터 대화가 겉돌고 있잖아요."
 
  여튼, 당신은. 하고 웃어보였다. 서서히 몸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열일곱 이후로 변하지 않은 몸이다. 한계를 맞이하여 이제 버릴 육체다. 제 눈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아직도 온기를 가진 품에 안긴다. 신의 모습을 한 당신의 목에 팔을 두른다. 아, 시야 너머로 보이는 밤하늘은 아름답기 짝이 없구나. 나는 여째서 저 하늘에서 누군가를 떠올려야만 하는 의무감을 느끼고야 마는가? 알고 싶으나 앎은 또다시 내게 비탄이 될 것을 알아 무시한다.
 
  "입 맞춰 줘요, 제후티."
 
  눈을 감고 온기를 만끽한다.
  부드러운 조직이 짓눌리며 얇은 피부가 맞닿는 느낌이 선명하다. 느릿하게 뛰는 심장박동에 비해서 미약하기 짝이 없는 제 박동이 빨라지고, 허리를 휘감는 손에 중심을 내맡긴다. 누울 것 처럼 뒤로 넘어가는 몸. 입을 비집고 들어오는 물컹한 것. 익숙한 온기.
  늘 그는 이럴 때면 다급한 행동을 한다. 한 손으로 제 허리를 휘감고, 한 손으로는 날개뼈 즈음을 감는다. 마치, 내가 날개를 펴고 날아가기라도 할 것 처럼. 그의 앞에서 날개를 편 적은 별로 없는데, 우스운 노릇이지. 그는 내 날개를 억누르고 손에 쥐려는 듯 군다.
  혀와 혀가 얽히며 억눌리고 질척한 소리를 내고, 맞닿은 살이 서로의 체온이 다름을 알려온다. 서서히 식어가는 몸에 그는 온기를 불어넣으려는 듯 군다. 숨을 불어넣고, 식어가는 입의 구석구석을 훑고. 느릿하게 온기를 나누어주려는 듯 굴면서,
  마치 우리가 이대로 영원하기라도 할 것 처럼.
 
  입천장의 말랑한 부분 즈음을 혀를 세워 긁어내린다. 등골을 오싹하게 타고 내달리는 감각. 으응, 하고 밀어내는 듯한 소리를 내면 그는 허리에 감은 손을 더욱 단단히 한다. 도망가지 말라고 호소하면서 다시 혀를 얽는다. 느릿하게 예민한 부분이 쓸려나가는 감각이 소름돋는다. 
  작은 소리를 내면 그는 또다시 기민하게 반응하여, 척추의 어느 부근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고, 저는 또다시 뒤로 넘어갈 듯한 감각을 마주하고야 만다.
  문득 눈을 뜨면, 푸르게 빛나는 눈동자 부근이 번들거린다. 눈동자의 어느 부분이 금색으로 빛나고, 당신은 내 모습을 영영 눈에 담아두기라도 할 것처럼 굴며 나를 응시한다. 그래, 당신은 늘 날 놓치기라도 한 사람처럼 굴어. 서서희 희미해지는 의식을 부여잡으며 그리 생각했다.
 
  그러니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 당신은 그것을 탐욕스럽게 집어 먹고,
  나는 한 순간 눈을 감아 온기 없는 몸뚱아리가 된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에, 지혜의 신이 그 순간에서야 온전히 손에 넣은 제 연인을 끌어안고 웃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굳이 숨겨야 할 필요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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