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아마 졸업 이후의 어느 날. 토트 카도케우스에게 있어서 구원이며 기만의 기억이었던 셰키나 테오파네스가 죽고 나서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무렵의 이야기. 그 신이 제가 바라는대로 그녀의 마음을 온전히 손에 넣었을 무렵의 호소문.
셰키나 테오파네스가 현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그를 때때로 제후티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모형정원의 선생 토트 카도케우스가 아닌 제후티. 그리고 그녀는 그를 제후티라 부르는 순간이면 저를 '현'으로 칭하라 하였다. 아아, 그건 얼마나 다디 단 이름인가. 그에게 한 번도 허락하지 않았던 그녀의 온전한 '자아.' 죽음마저 포기하고 영생을 함께할 이름. 그는 어떤 날이면 그녀의 귓가에 현, 현 하고 속삭이고는 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조용히 그에게 몸을 맡겨 온기를 나누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작고 빠르게 뛰는 심장은 언젠가 세계의 박동에 어울려 쿵, 쿵 하고 느릿하게 뛰는 날이 올 것이다. 오직 그에게 맞추어 뛰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모두, 모두 없에버리고 난다면 그녀는 오직 그를 바라보고, 그의 이름만을 부르며, 긴 시간 지켜온 고독의 미궁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제후티."
"불렀나."
"제가 잊어버린게 있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 순간이면, 그는 차마 그녀에게 네가 잊어버린 것이 셰키나 테오파네스의 인연이라 이야기하지 못하고,
"착각이다."
"역시 그렇겠죠?"
하고 그녀를 속이고야 만다.
그의 손으로 그녀의 기억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건 그의 고독에 대한 기만이요, 그에게 내려진 구원자를 죽이는 일이 될 것이다. 허나, 그녀의 손으로 잊어버린 기억을 그가 돌려주어야 할 의무라도 있단 말인가? 그는 그녀에게 지혜를 주겠다 이야기하였으나, 구하지 않은 지혜를 내려줄 필요는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하더라도 그녀는 그에게 있어서 제 신관일 따름이다. 신관, 신관. 그 이름이 그에게 있어서 얼마나 아름다운 울림을 가지는가.
그녀는 그를 모시고, 언젠가 그의 곁에 동등한 지위로 서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는 순간에 함께 할 것이다. 제가 만들어낸 생명을 제 손으로 쓸어내고 난 다음에 그의 등에 닿는 따스한 손길이 될 것이고, 제 손에서 태어난 지혜가 아닌 새로운 지혜를 가져다 줄 것이며, 오직 고고한 그의 격에 맞는 존재가 될 것이다.
고고한 존재는 제 발 아래 누군가 있어야 성립되는 법이나, 그 누구도 보아주지 않는다면 그저 외톨이가 될 뿐이다. 그러니 그녀는, 그의 고귀함의 증명이 될 것이다. 그의 옆에서 그의 아래것들을 같이 보살피며, 유일한 동반자로 억겁의 시간을 함께할 구원. 오직 그만 가진 창조의 힘을 가지고 있는 인간.
그녀의 죽음을 그는 실로 즐거이 기다리고 있었다.
"토트."
"......"
"제후티?"
"무슨 용무냐."
"그냥, 좋아서요."
연인의 얼굴을 하고 웃는 그녀를, 그는 영영 놓을 수 없으리라. 그래서 그녀에게서 인연을 빼앗지 않았던가. 무언가 붙잡을 것을 찾는 그녀의 붙잡을 곳이 기꺼이 되지 않았던가.
오만으로 인한 실수는 한 번으로 족했다.
2017.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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