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기 켄은 의외로, 사람을 관찰하여 무언가를 알아내는 일에 능했다. 감정과 별개로 현실의 정보를 알아내고 분석해내는 능력은 켄이 자신하는 재능이며, 그의 인생을 한층 편하게 만들어주는 공신이었다. 이를 굳이 언급함은, 야나기 켄의 눈에는 이쿠사토의 피로가 지겨울 정도로 읽혔기 때문이다.
‘좀 더, 잠을 자면 좋을 텐데.’
며칠이나 되풀이한 생각이 다시 느릿하게 손끝에 감겼다. 하얗게 질린 얼굴, 누가 봐도 검게 죽어버린 안색. 지나가는 사람 열을 붙잡아 물어도 이쿠사토의 안색을 좋다 말할이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조금만 무리해도 쓰러지는 저보다 안색이 좋지 않다. 하긴, 그가 들은 요시와라의 일상을 생각하면 당연하지만. 그런 사람이 먹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으니, 건강한 게 이상할 지경이다.
‘이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쉬면 좋겠네.’
조금 건조하고 서늘해진 공기, 거실 창 너머로 푸르기만 한 하늘. 방금 걷어서 따뜻해지라고 넣어 놓은 이불의 뽀송하고 포근한 향. 볕 향기가 배게 하려고 노력한 시간을 떠올리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따스하고 평화로운 향이 배어있다. 쉬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며칠이나 계획한 일이다. 제대로, 되면 좋을 텐데. 부러 손난로를 몇 개 끼워 넣어두었던 이불의 온기를 확인하고, 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 좋아, 힘낸다.
이쿠사토는 제 지정석이나 다름없는, 거실의 소파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늘을 좋아하는 모양이라 소파를 옮겨준 게 그가 오고 열흘 뒤의 일이니, 그 때부터 질리지도 않고 시간만 나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가 지고, 해가 다시 떠오를 때 까지 움직이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아 같이 밤을 지새웠던 날이 두 손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많다. 그 속을 알만했지만, 야나기 켄은 부러 생각을 의식 아래로 밀어 넣었다. 과한 참견이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하늘이 아니니까. 켄은 시선을 어색하게 데록데록 굴리며, 이쿠사토의 옆에 앉았다. 같이 자자고 생각한 건 좋은데, 뭐라고 말할지 아직 못 정했다. 며칠을 내리 고민해도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는 건 변하지 않아서, 중요한 실행의 순간까지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뭐라고 말하지? 고민에 고민이 얽혀드는 순간, 화장기 없는 새하얀 얼굴의 이쿠사토와 시선이 겹쳤다.
“이쿠사토씨, 같이 잘래요?”
입에서 튀어나온 말을 자각한건 정확하게 0.5초가 지난 후. 어색한 침묵이 수습할 수 없을 만큼 길게 늘어진다. 아, 내가 지금, 돌아버리겠네. 어떻게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말을 내뱉고 나니 헛웃음이 치고 올라온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이불부터 깔았지! ─켄은 그 행위가 오히려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잊고는 거칠게 짜증을 쓸어 담았다.─ 이쿠사토의 눈에 깃든 경악이 경멸로 바뀌기 직전, 켄은 다급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뇨! 이게 그 뜻이 아니라, 그! 요즘 너무 피곤해 보이니까 하루 정도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자고 하려고 했거든요! 이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계속 고민하고 있었는데……. 할 말을 못 찾았는데 눈이 마주치니까 그만, 생각하던 게 그대로 나와 버려서…….”
자연스럽게 제안하려 머리를 싸맨 수많은 밤이 우스워진 순간, 켄은 제 경솔한 입을 처음으로 탓했다. 안절부절 못하는 손, 시선을 고정시키지 못하고 사방으로 굴려대는 모습에 이쿠사토는 내뱉지 못할 웃음을 삼켜냈다. 채 뭉치지 못한 경멸과 날카로운 실망이 부드럽게 풀어져 흩어진다. 야나기 켄은 그가 보아왔던 그대로, 그를 그런 식으로 보지 않는 사람이다.
“그, 이불 빨아서 말린지 얼마 안 됐으니까 거실에 깔아놓고 잘래요?”
이쿠사토는 그 즈음에,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들어올렸다. 제가 하늘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부러 정원을 하늘이 잘 보이게 정리한 이였다. 잠, 잠이라. 그는 의식을 잃듯 쓰러져 잠드는 일과, 깨어난 이후의 둔탁한 통증에 더욱 익숙한 사람이었으나 저리 간절하게 부탁하는데 듣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제가 같이 있는 게 어색하면 저는 같이 안─”
“좋아.”
“예?”
“네 부탁이라면, 들어줘도 좋아.”
기쁨이 물속의 잉크와 같이 번져나간다. 서서히 밝아지는 표정의 켄을 바라본 이쿠사토는, 제 반응이 한결같이 동요하는 켄을 신기하다 여겼다. 이 집에서 살게 되어 지옥을 벗어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 집의 주인은 그를 처음 주워온 날과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 무엇도.
이불을 꺼내 오겠다며 종종걸음을 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쿠사토는 필사적인 구석이 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결국 그에게 자신을 이용하고 떠나라 이야기 하던 순간과, 눈물 가득 고인 눈으로 돈이 필요하다면 쥐어 줄 테니 일단 내가 당신이 혼자 살아가는 일을 돕게 해달라는 말을 느릿하게 입 속으로 굴렸다. 처음만난 그 날부터, 야나기 켄은 이쿠사토에게 이상할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제 몸보다 큰 이불은 조금의 더러움도 묻어있지 않은 흰 색이었다. 이 집의 침구는 이리 기본적인 것들이 많았다. 켄과 같은 몸집의 사람이 셋은 누워도 널찍할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며, 이쿠사토는 기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베개를 팡팡 두드려 자리를 만드는 소리가 조용한 바람소리에 섞여든다.
평화로운 오후, 가을볕이 따스하게 비쳐드는 거실의 한 순간.
이쿠사토는 자리에 눕기 위해 다가가던 도중, 이상함을 발견했다. 제 몫의 베개를 베고 누운 켄이 애벌레처럼 얇은 이불을 온 몸에 돌돌 감고 있었다. 그를 보고 꾸물꾸물 자리를 비켜주고 있었지만, 이불을 풀지는 않는다. 이쿠사토는 묻기 위해 달싹이던 입을 다시 닫았다. 적당한 온기를 머금은 침구가 푹신하게 몸에 감겨온다. 푹신하고, 안온한 순간. 저도 모르는 피로가 아주 느릿하게 그에게 밀려든다. 그러고 보면, 일어날 시간을 생각하지 않고 누운게 얼마만이지? 언제든 나갈 수 있도록 안에서 열 수 있는 문과, 감시하는 사람이 없는 넓은 집. 그가 원한다면 월출부터 일출까지 볼 수 있는 자유가 아주 느릿하게 현실로 다가온다.
“으, 생각을 잘못했나.”
감상적으로 변해가는 생각은 꾸물거리며 이불을 벗어내는 기척에 깨어진다.
“역시 바닥에 이불을 바로 깔면 푹신하지는 않네요. 잠시만 기다려봐요.”
방에서 낑낑거리며 매트리스를 끌어내는 야나기 켄의 작은 인영을 바라보며, 이쿠사토는 기이하고 고요한 감상속으로 빠져들었다. 야나기 켄은, 진실로, 그에게 다정했다. 볕이 잘 드는 곳에 푹신한 매트리스를 깔아두고, 이불을 다시 깔아 그를 부르는 몸짓과 아닌 척 그의 안색을 살피는 눈,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는 성정이 그러했다.
벗어두었던 얇은 요를 꾸물거리며 감는 몸짓에 이유를 물은건, 기이한 고요와 같은 맥락의 일이었다.
“그 이불, 무슨 의미가 있어?”
문득, 더러운 그와 닿기 싫어 그리 했다는 말이 돌아오면 어쩌나, 하고 불안이 고개를 든다. 이쿠사토는 혹 그런 대답이 돌아온다 하여도 이 이불을 떠나지 않겠다는 생각을 그 뒤로 이었다. 그 자신도 자각하지 못한, 한 걸음 나아간 친밀감이 빚어낸 생각이었다.
“아, 이거요?”
이불을 벗어나지 않으려 꾸물거리는 몸이 뱉어낸 가벼운 말은, 이쿠사토의 예상과 전혀 달랐지만.
“제가 사람이랑 자면 품으로 파고드는 습관이 있어서요. 미안하잖아요. 이렇게 둘둘 감고 자면 안 그럴까 싶어서.”
빛 아래서 밝아지는 백금색 눈동자가 옅은 웃음기를 머금는다. 움직여서 신경쓰였어요? 하고 묻는 느릿하게 목소리가 유난히 귀에 박힌다고, 그런 생각을 흐릿하게 떠올린다. 가물가물하게 흐려지는 시야와 푸른 하늘, 조용한 바람소리와 부스럭거리는 작은 인기척. 서서히 몸이 아래로 내려앉는다. 이쿠사토의 의식은 얇게, 아주 얇게 늘어나다가 어느 순간 툭, 하고 끊어진다.
아주 오래된 피로가 벗겨질때까지, 이쿠사토는 삼일 간 잠시 일어나 무언가를 먹고 잠드는 일을 반복했다. 그 음식마저 야나기 켄이 억지로 깨워 먹였음을 생각하면, 그는 삼일을 내리 잠들어 있었다.
2018.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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