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이 떨어지는 날, 돌아올게요.”
야나기 켄은 그 말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와카사 이쿠토는 그 날 이후로 여름 축제를 피해다니기 시작했다.
야나기 켄, 후지시로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흔한 이름, 별 특별함도 없는 그 이름은 후지시로의 학생들에게 금기어이며, 청춘이며, 아픈 손가락이다. 모두의 첫사랑, 여름이 지독하게도 잘 어울리던 그 사람. 우수하고, 다시 없을 천재라는 이름으로 더욱 유명하고, 주식에 있어서는 행운의 신으로 불리던 사람. 와카사 이쿠토를 짝사랑하던, 평범한, 평범하지 않은.
어느 날 훌쩍 떠나서 생사도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람.
야나기 켄을 개인적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야나기 켄은 공평한 거리와 적당한 즐거움에서 학창생활을 찾았다. 도움의 손길을 내뻗는데 주저하지 않지만 자신을 돕게 내버려두지는 않고, 가장 약한 부분에 손을 내밀어 따스하게 웃는걸 좋아하지만 자신의 약한 부분을 누군가 쓰다듬는건 좋아하지 않는다. 유쾌함과 가벼움으로 냉정함을 포장한 인간.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아서, 실종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었던. 와카사 이쿠토는 그런 식으로 야나기 켄을 회상했다. 이미,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에게 켄은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사랑했던 사람, 이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이러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생각하면서도 정신차리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웃던 사람. 언제나 거리를 두고, 한 걸음 뒤에서 생각하던 주제에, 늘 그에게 다가서던, 이상하게도 무너질 것 같은 때에 손을 내뻗던.
행복하길 바란 사람.
야나기 켄은 행복에 걸맞는 사람이었다.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야나기 켄은 늘 아름답고, 환하고, 사람을 홀려서 시선을 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노을, 아름답죠? 하고 휘어지던 눈동자는 금빛으로 불타올랐다. 거절이 두려워요? 하고 묻던 눈은 옅은 상냥함을 담고 있었다. 날 바보 취급 하지 말라고 소리치던 눈은, 물기에 젖어서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았다. 흐르는 눈물을 차마 닦아주지 못했던 날을, 이치노세 가쿠의 품에서 절규하는 모습을 보며 차마 발을 떼지 못했던 날을 기억한다. 이치노세 가쿠는 좋은 치였고, 야나기 켄은 늘 그가 신랑감으로는 최고라 말하며 웃었으니 잘 어울린다 여겼다. 그 이는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와카사 이쿠토는 발걸음을 돌렸다. 거절의 말 한마디가 차마 나오지 않아서 고백에 대답하지 못했다.
야나기 켄이 그를 찾아온 건 여름방학이 시작하기 직전, 매미가 시끄럽게 울던 날이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게, 의미 없는 말을 늘어 놓으며 유쾌하게 웃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와카사 이쿠토는, 이 작은 행복이나마 잃지 않아 다행이라고 남몰래 안도했다. 야나기 켄과 이야기하는 시간은 그의 하루를 지탱하는 행복이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그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행복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날의 켄쨩은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가벼운 단어의 나열은 주제를 가리지 않고 계속된다. 주제를 바꿔가며 말을 늫어 놓기를 수 십 분. 여름의 더위에 대해 떠들던 켄쨩은 여름 축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본의 축제는 한국이랑 달라서 즐거워 한다던가, 작년에 와카센과 함께 갔던 축제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던가. 와카사 이쿠토는 문득 야나기 켄이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왔다고 생각했다.
“와카사 선생님.”
왠지 모르게, 지금은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지금 그녀에게서 이름을 듣지 못하면, 영영 듣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불꽃 지는 날에 돌아올게요.”
보건실 문을 붙들고 하는 말에, 어디로 가냐고 차마 이야기하지 못하고, 와카사 이쿠토는 침묵했다.
그 침묵이 그를 10년간 괴롭혔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야나기 켄의 행방은 묘연하다. 흔적도 찾을 수 없도록, 철저하게 사라져버렸다. 동창회에서, 선생님들과 가지는 가벼운 술자리에서, 야나기 켄을 아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날이면, 그 찬란한 청춘의 이야기는 어김없이 튀어나왔다. 그리 사라질 이가 아니었다 이야기하는 목소리에는 지울 수 없는 그리움이 담겨 있다. 지금이라도 어디선가 나타나서 뭐예요, 선생님. 절 기다렸어요? 하고 웃을 것같다는 말에는 아무도 부정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와서, 좋은 아침! 하고 소리칠 것 같은데.
그들은 몇 년이 지나도 소녀의 부재를 받아 들일 수 없었다. 그녀는 그들의 청춘 속에 그대로 박제되어서, 영영 그곳에 있다. 언제라도 돌아와서, 그들을 청춘으로 끌고가서, 그때와 다름없이 웃을 것 같은데.
와카사 이쿠토는 가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켄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오는 날이 있었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 날이면 그는 이르게 귀가해서, 집에서 진탕 술을 퍼마셨다. 안주라도 먹으라고 웃던 목소리가 떠올라서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과 함께 술을 마셨다.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싶어서, 조금 자라고 무릎을 빌려주던 그 차갑고 상냥한 향을 잊고 싶어서. 그런 날은 여름이었고, 어김 없이 귀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불꽃 지는 날에 돌아올게요.
와카사 이쿠토는 그런 날이면 늘 속으로 말을 삼켰다. 야냐기 켄은 죽었다. 10년의 실종은 그런 확신을 모두에게 안겨주었다. 가끔, 언제라도 돌아와서 웃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그녀는 살아있을리 없었다. 그녀가 사라지고 한 달이 지난 날, 와카사 이쿠토는 그녀의 죽음을 확신했다. 불꽃놀이가 시작되어도, 하늘에서 꽃이 피고 땅으로 비처럼 떨어져도, 야나기 켄은 돌아오지 못한다. 괜한 기대로 괴롭고 싶지 않아서, 아픈건 싫으니까, 와카사 이쿠토는 불꽃놀이를 피했다. 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귀를 막고, 술에 취해 잠에 들었다.
지독한 숙취와 함께 깨어난 날은, 늘 외로웠다.
10년 전, 사이온지 렌은 유난스럽게도 행사를 좋아했다. 본디 자잘한 학교 행사가 많은 후지시로 안에서도 유난스럽게 일이 많았다. 야나기 켄은 즐거워하였지만, 와카사 이쿠토로서는 귀찮기만 한 일이었지. 그래도 켄이 웃는 날이면 기분이 좋았다. 지루한 일상을, 즐길 수 있었다. 이미 추억이 되어버린 이야기다.
강산이 변해도 그 도련님은 변하지 않은 모양이지. 동창회라며 소란스러워진 학교를 보며 와카사 이쿠토는 조소했다. 귀찮은 일이 잔뜩 늘었다. 마야마 쿄이치로는 그에게 좀 더 선생으로서 자각을 가지라며 잔소리를 해댔지만, 적당히 책잡히지 않을 정도로만 일하면 충분했다. 그는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잘보이고 싶은 사람은 이제 없다. 퇴근이 늦어졌다는 사실에, 지독하게 짜증났을 뿐이다.
학교는 무언가를 꾸미기라도 하는 양 소란스러워서, 그 때를 떠올리게한다. 익숙한 얼굴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고, 야나기 켄의 이름이 간간히 들리고, 10년 전 그 때처럼, 그 때 있던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와카사 이쿠토는 도망치고 싶어졌다.
이미 해가 지고 어둠이 깔렸다. 동창회는 마악 시작되었고, 학교는 축제분위기에 접어들었다. 여름의 축제라니, 기분나빠. 와카사 이쿠토는 그런 중얼거림을 남기며 뒤돌았다. 검게 어두운 하늘이 작은 안도감을 안겨주던 그 때, 휘익이나 휴우욱에 가까운 바람소리가 들렸다. 무언가를 쏘아올리는 소리. 불안감이 온 몸을 덮치는 순간, 펑 하고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폭죽소리와 함께 하늘에 거대한 꽃이 피었다. 불꽃이, 비처럼 쏟아진다.
어둠 너머에서 소란스러운 말이 들린다. 익숙한 목소리, 쿠죠 키신이 소리치는 소리, 사이온지 렌의 즐거운 목소리, 어디선가, 그의 귓가에, 또다시. 그는 뒤돌았다. 건물의 창에 불꽃이 비친다. 여전히, 쏘아올리는 소리가, 펑, 하고 터지는 경쾌한 소리가.
홀린 듯이 걸음을 재촉한다. 느릿한, 평소와 다름 없던 걸음은 아는 얼굴을 마주하며 빨라진다. 거짓말, 10년이 덮쳐오고 있다. 지나가버린 시간이 그를 덮치고 스쳐 지나가서, 그 때로 돌아가고 있다. 변해 버린 학교가, 이미 변해버린 그를, 질책하면서 돌아가고 있다. 빨라진 걸음이, 달음박질이 되어서, 정신 없이 달려 보건실의 문을 열어 제낀 그 때. 창문 밖에서 다시 펑! 하고 불꽃이 터지고,
그 곳엔 아무도 없었다.
인기척 하나 없는 고요한 보건실. 불을 켜지 않아 어두운 교실은 어둠 속에서도 훤하다. 사람이 있을 만한 곳에, 그를 늘 기다리던 곳은 비어있다. 아무도, 없다.
“봐요, 또 기다리게 만들었죠.”
아, 익숙한 목소리다.
“말했잖아요?”
어둠 속에서 떨리는 발을 내딛으면,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몸을 억지로 이끌고 커튼 뒤 보건 실 침대를 바라보면.
“불꽃 지는 날 돌아온다고.”
10년 전, 그가 사랑하던 때와 다름 없는 소녀가 유카타를 두루마기처럼 걸치고 앉아있다. 환히 웃는 얼굴이 눈부시다.
마악 문을 열었을 때, 켄이 앉아있던 곳이 사각진 곳이라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보면, 그들은 자주 그곳에 앉아서 이야기했다. 야나기 켄이 아직 사랑을 자각하지 못하고 와카사 이쿠토가 그녀를 사랑한다 시인했던 때의 이야기다. 연인같은 행동으로 잠시나마 즐거워했던 때, 이정도는 괜찮다고 끊임없이 자신을 달래던 그 행복한 순간.
야나기 켄은 그때와 다름없다. 사라지기 전 여름, 둘이서 놀러갔던 여름 축제와 다르지 않은 유카타를 걸치고, 그가 매어주어야 했던 오비를 두르지 않아서 벌려놓은 채로. 그 안에서 보이는 옷은 후지시로의 하복. 재학시절과 다름이 없다, 변하지 않았다. 와카사 이쿠토의 마음과 같이, 우리 모두 생각하던 것처럼.
그때 그 시절 그대로, 박제되어서.
“10년이나 불꽃놀이를 피하다니, 좀 서운했어요. 제가 그렇게나 못미더워요? 와카센에게 한 말은 지키지 않은 적이 없는데.”
알고 있다. 그래서 피했다. 기대하게 되어버리니까. 야나기 켄이라면 그와 한 약속을 지켜서 어딘가에서 나와 줄 것이라고, 돌아와서 웃어줄것이라고 기대해버리니까.
“불꽃놀이, 예쁘죠? 저는 늘 이 순간이 좋아요.”
펑, 또 불꽃이 터진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윤곽이 잠시 선명해진다. 머리카락 위로 흩날리는 색색의 잔상, 마알간 볼 위로 기어다니는 불꽃의 조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는 와카사 이쿠토를 책하지도, 종용하지도 않고 그저 웃으며 바라보는 얼굴.
“사이온지 선배는 바뀌질 않네요. 다들 잘 있으려나? 뭐, 어련히 잘 지냈겠어요. 와카센도 잘 지냈나요?”
그럴 리가. 10년을 후회했다. 야나기 켄이 떠오르는 순간이면 한 번도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 때 그 고백을 받아줬다면, 더 큰 행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줄 수 있는 행복을 모두 주겠다고 맹세할 용기가 있었다면. 미래를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잡았다면. 그 거대한 가능성이 그대로 스러질 줄 알았다면, 늘 하던대로 욕심껏 움직일걸. 어째서 그는 하지 않던 짓을 해서, 그답지 않은 짓을 해서. 이치노세 가쿠와 결혼한다면, 그가 계속 볼 수 있다고 욕심부리지 말걸. 그냥, 제대로 거절이라도 해 줄걸. 받아줄걸. 우리가, 연인이 되었다면, 너는 와카사 켄이 되었을까? 내가 야나기 이쿠토가 되었을까?
“보고 싶었어요, 와카사 선생님.”
말간 얼굴, 다시 펑! 하고 큰 불꽃이 터진다. 조급함이, 그제야 돌아온다. 언제까지나 불꽃놀이가 이어질리 없다. 저 불꽃이 모두 떨어지면, 하늘이 어두워지면, 야나기 켄은 가버린다. 지금이라도, 붙잡아야.
“와카사 선생님.”
펑! 하늘이 붉게 물든다.
“정말 좋아했어요. 물론, 지금도.”
눈을 한껏 휘는 웃음. 다급하게 손을 뻗는다. 켄, 켄.
“나도, 너에 대한 걸……!”
불꽃이 졌다. 보건실은 다시 어둠에 잠기고, 야나기 켄이 앉아 있던 침대는 텅 비어버렸다. 온기 한 점 남지 않은 간이 침대, 그 위로 와카사 이쿠토는 무너져내린다. 그 자리에, 잠이 오지 않던 날이면 장난스럽게 빌려줄까요? 하고 묻던 무릎을 올려두었던 자리에 뒤늦게나마 얼굴을 묻는다.
정말 좋아해…….
닿지 못한 말이 불꽃놀이처럼 흩어졌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201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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