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그저 어느 순간 깨닫게 된 사실이다. 말 할 기운이 없다는 핑계로 보건실 구석에 앉아서, 무슨 말을 하는지 느릿하게 지켜보다가 알게 된, 한 순간의 습득. 초점을 잡고 들여다보면 더욱 확실하게 보인다.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던 말투는 의외로, 정직하다. 신기하네, 느릿한 생각은 보건실을 시끄럽게 만들던 여학생이 다 나가고 나서야 툭, 하고 튀어나왔다.
“와카사 선생님, 혹시 거절이 두려워요?”
느릿하게 고개를 기울여 갸웃, 머리카락이 흘러내린다. 와카사 이쿠토는 잠시, 기이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더니, 평소처럼 웃음을 얼굴에 건다. 대답을 기다리는 순간의 짧은 침묵, 웃음.
“후후……,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을까나……?”
아, 저질렀다.
“그냥, 감? 대충 그런겁니다.”
몇 단계나 건너 뛰고 입으로 흘러나온 생각을 정리하는 건 쉽지 않다. 정말로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당장 이야기하라고 하면 조금 삐걱이고, 중간중간 빠져있는 말이 나온다.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머리, 혀가 풀려서 조금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자각하며, 평소에 비해서 조금 어눌한 말을 내뱉는다.
“굳이 따지자면, 와카센은 말이에요, 말을 늘이고 뒤에 몇 자를 덧붙이곤 하잖아요? 옆에서 보고 있으면, 그거, 진심의 무게를 더는 것처럼 보여서요.”
평소라면 입 다물고 넘어갔을 이야기지만, 뭐. 이미 입 밖으로 내어버린 말을 수습 할 방도도 없고. 이대로 하하 웃고 넘어가고 싶은 이야기도 아니다. 여전히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해서 부르지 못하는 눈 색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여전히 읽을 수 없는 감정이 몇 개 일렁인다.
“후후……, 영광이네. 그렇게나 열심히 봐 주다니. 나에 대한 것, 관심이 있다는 걸까……?”
“굳이 따지자면, 그렇죠.”
찰나의 어색함. 문득, 이전에도 이런 식으로 떠나버렸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이미 저질렀지만, 여기서 수습하면 되지 않을까? 장난이었다고 말하면, 분위기가 좀 풀어지려나? 서준이는 이런 식으로 굴어도 신경 안 썼는데. 아, 아니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굴기를 바라지 말라고 했지. 미안, 까먹었어.
“그래도 조금 궁금한걸, 켄쨩.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지…… 라고 할까나.”
“그러니까, 이런 때에, 알게 된거예요. 와카센. 선생님, 그런 말을 하고 나서는 한 박자 쉬면서 상대를 바라보다가, ‘라고 할까’ 같은 말을 덧붙이니까요. 무거운 말에서 감정을 덜어내서, 가벼운 거절로 만들어버리는 느낌이 들어요.”
“그럴, 까나……?”
“뭐, 저는 감이니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느릿하게 어깨를 으쓱, 하고 추어 올린다. 깊게 코로 내쉬는 한숨. 너무 깊은 곳에 손을 뻗는 건 아닐까, 하는 가벼운 생각. 하지만 열쇠를 건네 줄 때도,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주제에 간호 할 때도,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온 날 받아 줄 때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어차피 늦어버렸다는 소리. 나중에 애들이 보면 분명히 잔소리 하겠지만, 그 전에 졸업할거 같으니까 괜찮아.
“2년째 보고 있으니까요. 와카센에 대한 걸, 모르기도 어렵고.”
걸터 앉아 있던 침대에서 내려오며 가벼운 탁, 소리가 울린다. 아무래도 교실에 돌아가서 좀 자야겠다. 마감이 급해서 새벽까지 글을 쓴게 문제인지, 현실감이 돌아오지 않는다. 침묵이 기꺼워서 입을 조금 다물고 있었더니, 쓸 데 없는 말이나 쌓아두게 생겼어.
“그냥, 말하고 싶었어요.”
이걸로는 조금 모자란가? 다시 갸웃, 고개를 기울였다 느릿하게 말을 덧붙인다.
“와카센이 정말로 거절하지 말라고 할 때는, 한 번 정도 따라 줄게요, 하고.”
랄─까나. 하고 말을 늘리고 있으면 역시 복잡한 표정이다. 건드리면 안 될 곳을 푹푹 찌른 느낌인데.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역린이나, 본인도 모르는 무의식 같은 구석. 뭐, 선생님인데. 어련히 알아서 수습할까.
“그럼, 안녕히계세요.”
탁, 하고 보건실의 문을 닫는다. 이상하게 아무도 없는 복도를 느릿하게 걷고 있으면 문이 닫히던 순간의 복잡한 표정이 아무래도 떠나지 않는다. 조금 더, 화내거나, 짜증내거나, 건방지다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그 표정은 뭐라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즐거워 보였지?
역시 이해 할 수 없는 사람. 가벼운 감상을 질겅이면서 발을 끌었다. 아, 역시 졸린 날은 컨디션이 좋지 않다.
2018.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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