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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지근한 호의

admin 2018.11.18 20:15 read.72

  서준아, 네가 나보고 호구라고 했을 때 화내서 미안하다. 맞는 거 같다. 깊게 한숨을 내쉰다. 그래, 그냥 아는 사람 얼굴이 안색이 안 좋다고 굳이 찾아와서 확인하는 게 호구지. 어차피 가는 길에 있으니까, 얼굴만 보고 가자. 그렇게 자신을 타이르며 최대한 조용히 발걸음을 옮긴다. 좀 전부터 쑤셔대는 머리가 묘하게 신경을 긁는다. , 먹었는데. 꼴을 보아하니 오늘은 내내 머리가 아프겠다. 빨리 끝내고 집에 가야지.
  이 학교는 의외로 방음이 좋단 말이야. 보건실 앞에서 데록데록 눈을 굴린다. 안에 사람이 있나. 조심스러운 손길로 문을 조금 열면,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니, 학생들이 두어명 있고 와카사 이쿠토는 그들과 수다를 떨고 있다. 여기까지라면, 평소답다고 하겠으나.
 
  ‘그래서 이쿠쌤은 우리가 놀자고 하면 와 줄 거야?’
  ‘후후……. 글쎄, 너희들이 날 만족시켜주는거야……?’
 
  음, 멀쩡한가보네. 쓰레기 같은 말을 하는 꼴을 보니 입은 아주 멀쩡하다. 대가리는 문제가 생긴 모양이지만.
  하아, 하고 깊게 한숨을 내쉬며 욕을 삼킨다. 안 봐도 뻔하지, 이 정도는 괜찮다며 사람을 들였다가 상태가 나빠졌고, 그대로 어떻게든 상대하고 있겠지. 저 인간, 자기 아픈거 티내기 싫어할거 아냐. 야나기 켄은 눈 앞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광경에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저대로 두기도 뭐하지. 모르면 몰라, 알고 무시하는 건 성정에 맞지 않는다.
  작게 열려있던 문을 부러 힘주어 노크한다.
 
  “실례하겠습니다.”
  “, 켄쨩……?”
  “사람이, 있었나요. 잠시 몸이 좋지 않아서 들렸습니다만.”
  “그래……? 잠시 기다려줘.”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아이들을 타이르는 소리가 들린다. 가벼운 장난과 칭얼거림이 오가는 걸 보니 친한 사이같네. 멍하게 저들을 바라보며 와카사 이쿠토가 그저 타인과 특별해 보이는 관계를 만드는 일에 능함을 다시 한 번 자각한다.
  선객들은 끝까지 소란스러운 말투와 함께 손을 팔랑이며 사라진다. 그에 맞춰 손을 흔드는 와카사 이쿠토의 등을, 빤히 바라본다. 기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맞지 않는 조각 투성이다. 왜 저러는걸까? 반 쯤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혼자 반복한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그렇게나 빤히 보고.”
  “별로, 그것보다 와카센. 괜찮습니까?”
  “으응, 별로 괜찮지 않을지도…….”
  “뭐 그럴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실례.”
 
  성큼 다가서 팔을 내뻗는다. 중심을 잡으려고 쥔 팔이나, 손에 닿는 이마나 다 불덩이같다. 아까부터 묘하게 창백한 안색이나, 자꾸 기대서는 모습이나. 아무래도 상태가 많이 안 좋은 모양인데. 자세히 살펴보면 눈도 약간 풀렸다. 이걸 미련하게 버티고 있었다고?
 
  “열이 있네요. 해열제는 드셨습니까? 아니, 그 전에 밥은 먹었고요?”
  “걱정해 주는거야……? 기쁘, …….”
  “그것보다, 대답부터 해 주세요.”
  “엄하네……. 약은 아직, 점심이라면 마셨어.”
  “물이라는 소리네요……. 어디 아픈 곳은 없습니까?”
  “좀 전부터 묘하게 한기가 들었지……? 몸은 무겁고, 머리는 아프고……. , 이거 설마 감기려나.”
  “감기려나, 가 아닙니다. 감기네요.”
 
  의사의 불섭생이라더니, 딱 그 꼴입니다. 하고 말을 덧붙인다. 아마 감기 몸살이겠지. 무리도 아니다. 저 인간, 밤은 자주 새우지 밥은 안 먹고 물이나 마셔대면서 위스키를 주구장창 속에 들이 붓고, 도무지 규칙적인 생활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고. 생각 하면 할수록 할 말이 넘치지만, 어차피 말해봤자 들을 사람도 아니다. 아픈 사람 붙잡고 잔소리 하는 취미도 없고.
 
  “몸은 쑤시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조금 그럴지도……? 그렇게 심하지는 않은 기분이 들지만…….”
 
  이대로 조퇴하는게 최고지만, 선생님이 업무 중간에 학교를 뜨는 것도 조금 그렇다. 그래도 너무 아파보이는데. 일단 쉬게 해야하나. 아까부터 머리가 욱신거려서 제대로 사고가 구르지 않는다. 보건실의 업무 정도는 볼 수 있으니까 괜찮겠지. 저대로 멀쩡한 척 두어도 제대로 일도 못하겠고.
 
  “일단 침대에서 쉬는 쪽이 좋겠습니다. ,”
  “……후후, 켄쨩 대담하네? 안아서 옮겨달라는 거야? 아프지 않았다면 기꺼이 응했겠지만
  “뭘 생각하는 겁니까. 휘청거리고 있으니까 부축하겠다는 소립니다.”
 
  빨리 안기라며 들어올린 양팔을 잠시 벌려보인다. 그러면 와카사 이쿠토는 어딘가 걸리는 것이 있는 얼굴을 해서,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린다. 저대로 두면 날이 세도 그대로 서 있겠네. 살짝 얼굴을 찡그리고는 와카사의 몸을 끌어당긴다. 평소보다 약한 저항과 함께 열감있는 사람 특유의 더운 향이 훅 끼친다.
  사실, 생각보다 무거워서 넘어질 뻔 했다. 제 체중을 지탱하지 못할 정도로 아픈건가. 휘청이는 몸을 겨우 끌어다가 침대 위로 올려 놓는다. 제대로 눕게 돕고, 이부자리를 보고, 커튼을 친다. 체온계를 찾아서 체온을 재고, 겉옷을 벗긴다.
 
  “켄쨩, 뭔가 익숙해 보이네……?”
  “, 자주 간호했거든요.”
  “자주……?”
  “서준이, 그러니까 친한 친구가 학교에서 아프면 간호는 제 몫이었으니까요. 저희 학교는 기숙사제였고.”
  “헤에……. 그 사람, 남자……?”
  “으응…… 그러네요. 남자입니다.”
 
  삑삑 소리를 내는 체온계를 꺼낸다. 꽤 고열이네, 진짜 병원에 가야 하는거 아니야. 누구에게 말해야하지. 가쿠 선생님이랑, 마야마 선생님이랑 친했지, 이 사람? , 마야마는 별로 안 내키는데. 사람 아픈데 내 자존심 세우는게 우스운건 맞지만, 그래도 좀.
 
  “목은 안 마릅니까? 물 드릴까요?”
  “부탁해도 될까……? 그 쪽의 냉장고에 차가운게 들어 있을 거야.”
  “, 목은 안 아픕니까? 열이 나는 걸 봐서는 웬만하면 말씀 안 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그러다가 내일 목소리가 안 나올지도 몰라요.”
 
  경험담입니다. 하고 나직하게 덧붙이며 냉장고 문을 연다. 아무리 크지 않은 냉장고라고 하지만, 이렇게 물로 꽉 채워 놓기도 어려운데. , 술이 없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저 선생 평소 하는 꼴을 봐서는 술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가장 안쪽의 물을 꺼내서 가볍게 뚜껑을 돌려 딴다.
 
  “, 물입니다.”
  “고마워.”
  “뭘요.”
 
  한 손으로 물 병을 내민 채로 빨대로 쓸만한 것을 찾는다. 나는 누워서 마실 수 있다지만, 와카센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네. 보건실에 빨대가 있는 것도 우습고……. 고무관을 주는 건 좀 미친놈이지? 한참 살피고 있으니 손에 뜨거운 것이 닿는다.
  의아함에 몸을 돌리니 물병을 잡은 손을 통째로 이마에 올려놓고 머리를 식히고 있는 와카사 이쿠토가 보인다. 그러고 보니까, 아직 거즈를 안 올렸네. 열이 날 때는 그게 제일 먼저였지.
 
  “……켄쨩의 손, 차가워서 기분 좋네…….”
  “뭐 하시는 겁니까…….”
  “열이 나니까, 켄쨩의 손으로 식히자고 생각해서……. 안 되는 걸까……?”
  “안 될 건 없습니다만…….”
 
  잡히지 않은 쪽 손으로 물병을 받아 옆에 올려두고, 손등을 이마 위에 올려준다. 땀에 젖은 앞머리를 옆으로 넘겨주는 동안에도 손목을 잡은 손은 떨어지지 않는다.
 
  “역시 열이 심하네요, 선생님. 사람을 불러오는 쪽이 나을 것 같아요.”
  
  가볍게 손을 당기며 몸을 돌리려는 참이었다.
 
  “어딜 가는거야……?”
 
  그러니까, 손이 안 빠진다. 시험삼아 잡힌 손목을 당겨보지만 미동도 없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하게 잡았지. 손목을 잡은 손이나 손가락에 닿은 이마는 이미 불덩이 같다. 아까보다 조금 뜨거운데, 한기가 들고 있다고 했으면 열이 오르고 있을테고.
  속으로 한숨을 내쉰다. 그래, 아픈 사람 상대로 열 올려서 뭐해. 열 오른 사람이 헛소리 하는 걸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의식적으로 부드럽게 푼다.
 
  “교무실에 갈 생각입니다. 가쿠 선생님이나 마야마 선생님을 불러오는 쪽이 나을 것 같아서요.”
 
  그러니 놓아 주세요.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며 몇 번 더 손을 당기지만 손목을 잡은 손은 더 꽉 쥐기만 할 뿐, 놓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한 손을 잡힌 상태로 전화기를 꺼낼 수도 없다. 가방에 넣어 둬서 일단 놓아줘야 전화를 하던지 말던지 하지. 그냥 뿌리쳐도 되겠지만, 간절함까지 느껴지는 손을 내칠 정도로 모질지는 못하다.
  드러내지 못하는 한숨이 또 속에 하나 쌓인다.
 
  “선생님, 손을 놓아 주셔야 제가 갈 수 있어요.”
  “……?”
  “왜라뇨, 조퇴를 하던 병가를 내던 저는 할 수 없으니까요.”
  “……별로, 안 가도 좋아.”
  “?”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어린아이의 보챔 같은 말투에 의아한 얼굴을 해 보인다. 아니, 어린아이의 보챔이지. 손 끝에서 올라오는 열이 아까보다 뭉그러졌다. 더 안 오르면 좋겠는데. 이미 차갑지도 않을 손을 굳이 이마에 대고 있는 모습이 묘하게 사람 마음을 무르게 만든다.
 
  “선생님 누굴 데리고 바로 올게요. 놓아주세요, ?”
  “괜찮으니까……? 그것보다도……, 켄쨩, 이쪽으로 와줄래……?”
  “가는 거야 문제가 아닙니다만…….”
 
  안 그러던 사람이 저러고 있으니 무시도 못하겠다.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고, 힘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도 아니고. 제 정신이 돌아오면 따져야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정말로 따질 생각은 들지 않으니. 이쯤 되면 나한테도 문제가 있겠지. 항복의 의미로 한숨을 내쉬고 몸을 돌려 침대에 가까이 선다.
 
  “이 정도면 됩니까?”
  “으응…… 좀 더, 일까.”
  “좀 더 말입니까? 어느 정도면
 
  발을 떼려고 균형을 옮긴 순간, 확 하고 몸이 끌어당겨졌다. , 하고 튀어나오려던 욕을 혀를 깨물어 참는다. 뭐하자는 거야, 자칫하면 둘 다 다칠 일을 왜. 아니, 그것보다 깔리면 어쩌려
  깔렸네?
 
  “괜찮아……? 어딘가 부딪히지 않았어?”
  “끌어당긴 사람이 할 말입니까……. 선생님은 괜찮습니까?”
  “나라면 괜찮아. 켄쨩이 부딪히지 않아서 다행이네.”
  “넘어뜨려놓고 할 말입니까.”
 
  한숨을 내쉬다가, 서로의 얼굴이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과하게 가까운 거리가 당황스럽다가도, 뺨에 닿는 숨결이나 겹친 몸이 뜨거워서 화가 녹는다. 열향이 후각을 지배해서, 짜증보다 걱정이 앞선다.
 
  “일단 일어나게 손 좀 놓아 주시겠습니까?”
  “으응, 모처럼 넘어뜨렸는데 그러면 조금 아쉽지 않을까. 괜찮은걸…… 이대로도.”
  “?”
  “조금만 더, 이대로 있어줘…… ?”
  “무슨 소리를 합니까.”
 
  잡히지 않은 손으로 밀어보지만 위에 올라탄 상태에서 밀어낸다고 밀릴리가 없다. 한 손이 붙잡힌 상태로는 일어 설 수도 없고. , 역시 그냥 놓아두고 집에 갈걸. 나도 멀쩡한 상태라면 몰라, 아플 때 상대하면 힘이 빠진다. 버리고 갈 수도 없고…….
  훅, 하고 귀에 숨이 닿아서 몸을 움츠린다.
 
  “켄쨩, 따뜻하네…….”
  “, , 귓가에 말씀하지 말아주세요……!”
 
  악! 차마 지르지 못한 비명이 머릿속에서 울린다. 그런 목소리로 내 귀에 속삭이지 말아주세요! 차마 하지 못할 말을 속으로 외친다. 저 사람에게 당신 목소리가 취향이라고 순순히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귓가에 속삭였을 때 아무렇지 않을 정도는 아니라고!
 
  “후후…… 켄쨩, 심장의 소리, 엄청 빨라.”
  “놀랐으니까 당연하죠!”
  “헤에, 그것뿐……?”
  “물론입니다…….”
 
  힘 없이 중얼거리는 동안 이미 와카사 이쿠토는 저를 안고 자세까지 잡았다. 아까보다 훨씬 눕기 편해진건 맞지만, 학교에서 이러고 있는건 아무리 나라도 조금. 하지만 한 손은 잡혀 있고, 한 손은 나랑 와카센 사이에 끼어있고, 발버둥을 치자니 둘 다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고. 진짜, 진퇴 양난이다.
 
  “와카사 선생님, 저는 베개가 아니에요.”
  “……알고 있어.”
  
  잠깐의 정적. 안경 너머로 마주친 눈이 묘하게 풀린 상태로, 눈 아래가 붉다. 열 떄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말을 잃는다. 와카사 이쿠토의 눈꼬리가 휘어지고, 조곤조곤한 말이 이어진다.
 
  “하지만 말이지, 아프면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지는걸? 게다가 켄쨩 따뜻하고…….”
  “선생님 체온에 비해서는 차갑지만요. 일단 어디 안 갈테니까 놓아주세요.”
  “으응, 이대로 안고 자도 괜찮지 않을까.”
  “안 됩니다…….”
  “켄쨩, 향수 같은 거 써……? 차갑고, 안심되는 향이 나…….”
  “안 씁니다. 체향이겠죠.”
  “흐응…… 체향이구나…….”
 
  이제 화 낼 힘도 없다. 내 목덜미에 얼굴을 대고 끌어안은 사람의 붉은 머리카락을 내려다보다가, 가만히 정리 해 준다. 아픈 사람을 상대로 진지하게 화 내서 뭐하겠어. 왜 이러는지 대충 감이 오니까 무시하기 힘들다. 젠장, 자꾸 쓸데 없는 기억만 떠오르고.
 
  “최소한 일어나서 간병 정도는 하게 해 주세요.”
  “으응, 켄쨩은 안겨있는게 간병인걸……?”
  “그럴리가요. 열이 안 떨어질겁니다.”
  “하지만 나, 술을 먹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는 체질이라서 말이지……. 하지만 신기하게도 켄쨩을 안고 있으면 조금 졸려지는 기분이라……. 이대로 안겨 줘……?”
  “제 덕분이 아니라 그냥 피곤하신거겠죠.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어떻게 들어도 애정결핍이잖아. 우울증에, 경미한 알코올 중독 증세. 정말로, 알아버린 이상 그대로 지나칠 수도 없다. 너무 깊이 손을 뻗고 있다는 자각은 있다. 그냥, 가벼운 관계를 즐기고 싶었다는 시작을 기억하고도 있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지.
  하아, 이어지는 생각을 다시 한숨에 섞는다. 일주일 치 한숨을 오늘 다 쉬는 느낌이네.
 
  “어제 늦게 주무셨습니까?”
  “일이 밀려서, 조금……? 정리에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서 말이지……. 정신을 차리니까 해가 뜨고 있었어.”
  “조금이 아니잖아요…….”
 
  꾸물거리며 자세를 바꾼다. 등 뒤로 팔을 넘기기 위해서 당기니, 잡혀 있던 손목은 우스울 정도로 쉽게 빠진다. 아까 놓아 줬으면 좀 좋아. 어차피 어디 가지도 않을텐데.
  마주 안은 자세로, 조용히 등을 토닥인다. 키차이 때문에 심장과 심장이 맞닿을 수는 없지만, 서로의 맥이나 숨소리가 들리기엔 부족하지 않은 거리. 언제나 조금 거리를 두고 대화하니까 알아차리기 어려웠지만, 품에 안으면 조금 버거울 정도로 꽉 차는 사람이다.
 
  “켄쨩……?‘
  “이러다가 감기가 옮으면 등교 거부 할겁니다. 완전히 나을 때까지 오지도 않을 거라구요.”
  “재워 주는거야……?‘
  “그러면 어쩌겠어요, 자장가도 불러드릴까요?”
 
  대답을 듣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선율을 흥얼거린다. 토닥, 토닥. 일정하고 느린 리듬으로 등을 토닥이며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걸 반복한다. 느릿하게, 평온하게. 심장 박동보다 조금 느리게 이어지는 토닥임. 제 목 부근에 닿아오는 숨이 점점 깊고 느려진다.
  사람을 재우고 있으면 평온한 기분이 되는 건 좋지만, 나까지 잠들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 느리고 평온한 분위기, 커튼을 닫아 조금 어두운 보건실. 밀어 두었던 피로가 밀려든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관성처럼 팔을 움직이다가, 욱신, 하고 강하게 치고 들어오는 두통에 잠에서 깬다.
  와카센은, 잠들었나?
  몇 번 시험 삼아서 꿈틀거려도 반응이 없는 걸로 봐서는 잠든 모양이다. 이제 슬슬 빠져 나가야 할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 보면 난감하고. 팔을 빼고 몸을 떼내려는 순간, 제 허리에 감겨 있는 팔이 더욱 단단하게 몸을 붙든다. 살짝 떨어졌던 몸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다. 깼나?
 
  “와카센?”
  
  대답은 없다. 무의식인가. 조금 뒤척이느라 베개 위로 흩어진 붉은 머리카락을 정리해준다.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머리카락이 의외로 결이 좋다. 안경을 벗겨 옆의 협탁에 놓아두면 열이 올라 머리가 아픈 모양인지 얼굴을 찡그린다. 주름이 진 미간을 손가락으로 살살 쓸어가며 달래고, 뜨거운 이마 위로 손을 올려준다. 그리 차갑진 않지만, 나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럭저럭 열 오른 사람의 체온 보다는 낮다.
  잠든 사람의 숨소리만 고요하게 울리는 시간이 서서히 흘러간다. 어딘가 필사적으로 보였으니까 이대로 있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아무래도 학교에서 이러고 있는 건 좀 아니지. 더군다나 아까부터 붙어있던 탓인지 자도 서서히 눈 앞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안겨 있다가 나까지 기절해버리면 두배로 난감하다. 이제 정말 깊이 잠들었을 즈음이니까, 슬슬 나갈까.
 
  몇 번이고 달라붙는 팔을 떼어가며 겨우겨우 침대 밖으로 기어 나왔다. 얼마나 몸싸움을 했던지 침대 밖에 서 있을 즈음에는 교복이 엉망 진창이 되어 있더라. 정말, 잠들어서든 깨어서든 난감하게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기실, 정석대로라면 이대로 가쿠 선생님이나 마야마 선생님에게 연락해서 와카센을 인계하고 나는 그대로 집에 가면 된다. 일개 학생인 내가 끝까지 책임 질 이유도, 의무도 없으니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몸이 그렇게 좋지 않아서 그렇게 하고 싶다. 그래도, 두고 갈 수 없는건.
  젠장, 몸이 안 좋으면 쓸데 없는 생각만 나.
  작게 욕을 내뱉고는 침대로 다가가 넥타이를 풀고 셔츠 단추를 두어개 풀어준다. 수돗물로 수건을 적셔 목과 이마에 대고, 나머지 거즈를 몇 개 더 적셔서 차갑게 식혀둔다. 적당히 열이 내릴 때 까지만 옆에 있어주면 되겠지. 깨어 났을 때 아무도 없는 건 정말로 더러운 기분이니까.
  보건실에서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서 몇 개 더 조치를 취했을 즈음에는 와카센의 표정도 꽤 편안해 보였다. 하아, 잠든 선생님의 얼굴을 내려다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건지. 의자를 끌어다가 침대 옆에 앉는다. 이왕 하는 건 제대로 해야지. 어설픈건 안 하느니만 못하니까.
 
  양호실 창문 너머로 노을이 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역시 사람과 친해지는 건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면서 하늘이 불타오른다. 푸른 빛이 완전히 물러가고 저녁 노을이 온 세상을 덮으며 땅거미가 지기 시작할 무렵. 학교가 정적 속으로 잠겨들고 하교방송이 길게 울리는 순간. 복도에서 작게 들려오는 방송을 배경음악 삼아 와카사 선생님에게 덮어 주었던 거즈를 치우고 이마에 손을 댄다. 아직 열감이 남아있긴 하지만, 여기보다는 집에서 쉬는게 낫겠지.
  거즈를 정리하고 부드럽게 그의 어깨를 흔든다.
 
  “선생님, 선생님.”
  “으응…….”
  “일어나셔야 해요, 해가 졌어요. 최소한 댁에 가서 주무셔야죠. 저녁이랑 약이라도 챙기지 않으면 안 돼요.”
  “…….”
 
  몇 번 느릿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걸면 눈을 뜬다. 막 잠에서 깨어난 눈동자가 창문 너머로 비쳐드는 빛 속에서 회색과 보라색이 섞인 빛을 띠길래, 묘하게 아름답다고 생각해버린다.
  잠기운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멍하니 손을 뻗길래 옆에 올려 두었던 물을 건넨다. 자는 동안 빨대를 찾아서 꽂아 뒀는데, 빼기도 애매해서 그냥 넘겼다.
 
  “여기 물입니다. 상태는 좀 괜찮으세요?”
  “상태……?”
 
  얌전히 병을 잡고 빨대로 몇 번 빨아마시더니, 빨대를 빼고 그대로 입을 대고 마신다. 땀을 그렇게 흘렸으니 목마르기도 하겠지. 빠르게 줄어드는 물의 양을 보고 새 병을 하나 따서 내미니 괜찮다며 손을 흔든다. 그래도 물을 마시니 좀 정신이 든 모양인지, 눈이 풀리진 않았다.
 
  “……아아, 그러고 보면, 상태가 나빠서 누웠지.”
  “, 열은 내렸을텐데, 머리가 아프진 않습니까?”
  “, 괜찮은 기분이야……. 켄쨩은 어째서 여기 있어……?”
  “어째서라고 해도, 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이니 의외라는 시선이 따라 붙는다.
 
  “설마, 계속……?”
  “, 아픈 사람을 두고 가는 취미는 없습니다.”
  “다른 선생님은……?”
  “누굴 부르는 건 안 내켜 보였으니까요. 간병 한 적이 많아서, 그 정도 눈치는 있습니다.”
 
  덤덤한 말투로 덧붙이며 조용히 주변을 정리한다. 젖은 거즈는 가볍게 빨아서 말리고, 물을 담았던 그릇은 물을 버리고 한 번 씻어서 말린다. 소독, 해야하나? 학교에서 그릇이나 거즈를 삶을 수는 없는 노릇인데.
 
  “이상하네…… 전혀 기억이 없어.”
  “열이 심하셨으니까요. 절 베개 대신 안고 주무시려던건 기억합니까? , 여기 안경입니다. 이건 넥타이. 열이 심해서 조금 단추를 풀었으니까 옷 정돈하시는게 나을거예요.”
  
  날 그렇게 고생시켜놓고 기억을 못한다니, 허탈한 기분이다. 나중에 일어나면 따지겠다고 다짐했는데, 우스워졌네.
  가방을 챙기고 걷어 올렸던 팔을 내려 단추를 채운다. 벗어 두었던 겉옷을 입고 있는 동안, 멍한 시선이 끈질기게 달라 붙는다. 아직 정신이 덜 들었나? 자차로 출퇴근 한다고 했으니까 돌아갈 때도 운전해야 할 텐데. 역시 지금이라도 마야마 선생님을 불러야하나? 택시를 태워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하지만 저 인간을 이대로 집에 보내도 밥을 먹는다는 보장이 없고.
  한참 생각을 하고 있으니 목소리가 날아든다.
 
  “저기, 켄쨩.”
  “?”
  “간호해 준 것, 고마워.”
  “, . 대단한 것도 아니었고, 그런 말 안 하셔도 괜찮습니다.”
  “으응, 역시 깨어났을 때 켄쨩이 있었던 건 조금 기쁠지도. 이런 말을 하면 어른이면서 애 같다고 웃으려나……?”
  “딱히,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누구든지 아프면 외로워지는 법이고, 어른이든 아이든 구별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도 않고.”
 
  기묘한 침묵. 무겁게 내려 앉은 침묵이 이상하게도 견디기 어려워서, 이것저것 부러 부산하게 움직인다. 다 먹은 물병을 버리고 와카사 선생님의 소지품마저 챙겨 정리하고 있을 즈음, 일부러 외면하고 있던 와카센이, 아주 묘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약해져있을 때, 이런 식으로 상냥하게 대해주면…….”
 
  문득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시선을 돌리면, 눈이 마주친다. 얽어맬 것처럼 바라보는 눈동자에 압도당해서, 그의 눈동자가 평소랑 다른 빛을 품은 듯한 느낌이 든다.
 
  “좋아해 버릴지도.”
 
  예? 하고 입 끝까지 올라온 말을 내리 누른다.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단지, 희미하게, 지금 그가 내뱉는 것이 가감없는 진심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랄까나, 농담이야. 진심이라고 생각했어……?”
  “……놀리지 말아주세요.”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의 페이스에 맞춘다. 저런 감정을 감당할 자신은 없다. 진실을 파헤치면 안 된다고 경종을 울리는 직감에 몸을 맡기고 슬쩍 시선을 피한다.
  하지만, 그 순간. 시야의 끄트머리에 걸린 와카사 이쿠토가 외로워 보여서.
 
  “그러고 보면 와카센, 집에 가시는 겁니까?”
  “, 그럴 생각이야.”
  “아마, 혼자 산다고 했죠?”
  “으응, 그렇지만……. , 말 했던가……?”
  “꽤 예전에 지나가듯이, 이야기 했습니다.”
 
  가볍게 어꺠를 으쓱이고는 주머니를 뒤져 열쇠를 꺼낸다. 분명 이건 너무 깊은 곳까지 손을 뻗는 일이다. 나는 분명 이런 행동을 한 걸 후회할지도 모른다.
 
  “, 받으세요. 저희 집 열쇠입니다.”
  “이거, 나한테 주는 거야……?”
  “, 정확하게 말하면 오늘 잠시 빌려주는 겁니다만.”
  “헤에, 이건, 유혹……?”
  “다릅니다.”
 
  슬쩍 넘어가려는 시선을 붙잡아 마주본다. 도망치지 않도록. 밀고 당길 기력은 없으니까, 한 번에 진심이 전해지도록.
 
  “그냥, 저녁 초대입니다. 와카센이 걱정되니까요, 어차피 집에 가도 제대로 식사 안 챙길 거잖아요? 심정같으면 선생님 집으로 가고 싶습니다만, 저도 그럴 체력은 없어서.”
  “그건…….”
  “저는 먼저 가서 재료 사서 들어갈테니까, 문 좀 열어 둬 주세요. 어딘지는 아시죠?‘
 
  가방을 챙겨 등을 돌리다가, 꼭 해야 하는 말을 떠올리고 돌아선다. 어딘가 멍해 보이는 얼굴의 와카사 이쿠토에게, 노을을 마주하고 피곤한 얼굴로 웃어 보인다.
 
  “아플 때 혼자인건 외롭잖아요?”
 
  역광으로 그림자진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딱히, 알고 싶은 기분도 아니다. 조용히 등을 돌려 복도를 걸으면서, 웬만하면 와 줬으면 좋겠네. 하고 조용히 중얼거린다.
  이건, 저 사람이 나쁘다. 꼭 내가 외로울 때를 떠올리게하는 얼굴을 하고 있던게 나빠. 입 속으로 변명을 읊어대면서, 울컥하고 치솟은 감정을 정리한다. , 정말.
  왜 외면할 수 없는 얼굴을 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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