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그로슐라라고 하는 인간은, 의외로 다루기 쉬운 종류의 인간이다. 어떻게 장관의 자리에까지 올랐는지 알 수 없는 인물. 오직 그 자신의 인망이 두텁기에 사람의 눈을 끌어당기고, 위에 올라서고, 통치자가 되는 인간. 그런 인간은, 릴리움과 정 반대다.
애초에 그로슐라의 목표는 단순했다. 국민을 위해, 나라를 위해. 더 좋은 나라를 만들고 국민의 삶을 조금 더 향상시키고. 이상, 미래. 오직 그것만을 위해 살아가는 자. 좋은 정치인의 표본이라고 할 수도 있고, 이 시대의 호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인간이 ACCA 5장관의 자리에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단 두 가지였다. 그 본신의 능력과-
충실한 개.
그에게는 그의 앞날을 위해서 모든 사람의 목을 물어뜯고 그를 왕의 자리에까지 올릴 수 있는 충실한 개가 있다. 그가 이름을 주지 않았기에 이름이 없다고 저를 지칭하고, 오직 그가 원하지 않기에 얌전히 살아가는 개. 권력욕이 없는 그로슐라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충실한.
그녀가 실로 개였다면 차라리 그가 더 편했을 터다.
기억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그로슐라가 장관이 되어 취임했던 그 때. 그는 내내 건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자리까지 어떻게 올랐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한 자. 그는 그 자신이 록스 구의 구장으로 있던 때 보였던 그대로 ‘더 나은’ 나라를 꿈꾸고 있었다. 권력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5장관의 자리에서도. 그러나 릴리움에게 그로슐라가 쉬이 무시할 수 없는 사람임은 역시 그녀의 탓이었다.
당당하게 그 해 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하고 들어온 소녀. 얼어붙은 눈으로 장관을 한가롭게 내려다보며 ‘저는 그로슐라를 위해 이곳에 존재합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나른한 인간.
그로슐라를 이곳까지 올린 사람은 실로 그녀임이 자명했다.
네르기. 록스구의 전통에 따르면 이름이 없다는 뜻이라며 그녀는 나른하게 읊었다. 5장관만이 들어올 수 있는 담화실에 들어와서, 여전히 딱딱한 얼굴인 그로슐라의 앞을 보호하듯 막고는 선전포고처럼 그들에게 일렀다.
“오직 그가 이름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제게 이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로-가 원하는 게 제가 원하는 것. 부디 제 존재를 신경 쓰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굳이 따지자면, ‘그로슐라의 개’이니 말입니다.”
느른하게 웃는 얼굴은 분명 맹수의 것이었다.
개를 길들이는 방법은 먹이를 주는 것. 동물은 먹이를 줄 수 없는 주인을 공격하고, 버리는 법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야생성이 살아있는 맹수라면 더더욱. 릴리움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저 개에게 이름을 주고, 제 손 아래 놓는다면 그녀는 제게 최고의 길을 제시해 줄 것이다.
그 예감이 확신으로 변한 것은 아주 사소한 계기였다.
그로슐라는 늘 주변을 섬세하게 살피는 편이었고, 직원의 복지에도 꽤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어느 날, 그는 언젠가 ACCA 본부를 둘러보고 나서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했다. ‘조금 더 데이터 관리가 효율적으로 됐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 날 네르기는 사라졌다. 작은 방에서 주어진 것은 컴퓨터 하나. 3일의 실종.
그 다음 날 ACCA 본부의 시스템은 모두 효율적인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로슐라가 원하는 것은 그녀가 원하는 것.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어조로 또다시 이야기했다. ‘제 능력은 최고의 길을 찾아내는 것. 그가 원한다면 데려다 주지 못할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릴리움은 네르기에게 이름을 주고자 하였다.
“자네도 알고 있겠지. 무릇 개는, 먹이를 줄 수 없는 주인을 따르지 않는 법이지.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지 않나?”
“으응, 글쎄요.”
얼음장 같은 눈을 옆으로 굴리면서 말을 흐리는 모습에, 그는 생각보다 일이 쉬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찔러본 것일 뿐이지만, 정말 그녀가 제게 넘어온다면. 그의 오랜 꿈은 우스울 정도로 쉽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녀가 최고의 자리로 그를 데려다 줄 것이기 때문에.
허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그가 계획한 일이 소소하게 틀어졌다는 전보와, 네르기의 나른한 목소리 뿐.
“아쉽게도, 저는 개를 흉내 내는 인간입니다. 제게는 의리와, 사랑이 있답니다.”
그 자리에서 그로슐라를 사랑한다고 고하는 그녀는, 우습도록 매력적이었다. 어떤 의미가 되었든 간에,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보석이라는 사실 하나는 자명했다.
그 날 릴리움은 그로슐라를 흔들었다.
언젠가, 그로슐라가 참으로 다루기 쉬운 인간이라고 새삼 깨달았던 날에, 네르기는 그를 찾아왔다. 그로슐라를 버려두고, 여전히 느른하기 짝이 없는 웃음을 짓고서, 광포한 눈으로 그를 마주하고 이야기했다.
“당신, 거슬려요.”
“장관에게 하기에는 꽤나 폭력적인 언사군.”
“방해꾼. 그로슐라가 당신을 돕기로 정했으니 저는 그로슐라를 최고의 길로 안내하겠지만, 그게 당신에게도 최고가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당당한 선전포고와, 배려하나 없이 뒤돌아서는 등. 릴리움은 그 모습을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문을 열고 나가는 모습도, 그로슐라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도.
‘현.’
‘아, 그로-? 데리러 왔어요?’
‘아니겠나.’
릴리움은 그로슐라가 이름을 주지 않은 이유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5장관 회의가 있던 날. 개는 인간의 법에 구애되지 않는 법이라며 당당하게 그로슐라의 옆에 시립한 네르기의 눈을 마주하고, 릴리움은 문득 떠올렸다. 분명 처음 방해꾼이었던 사람은 네르기였으나, 현재의 그가 방해꾼으로 여기는 사람은 그로슐라가 되었다.
대관절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2017.02.19 첫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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