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끝났다. 소리 높여 울던 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되찾았고, 이 세계에 더 이상의 비탄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들 그리 이야기한다. 드디어 전란의 시대가 끝났으니, 태평성대의 시대가 왔다고. 토오우치는 문득,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천진난만한 아이에게 을러주는 동화.
*
옛날 옛적, 신아라고 불리는 세계는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무서운 액마, 끊임없이 땅과 명예를 노리고 들고 일어서는 무장들, 그 틈을 타서 돈을 긁어모은 상인들. 사람들은 모두 소리쳤습니다.
‘살려줘, 도와줘, 이 전쟁을 끝내줘!’
아아, 그 외침이 하늘의 신불에게 닿았던 걸까요. 전쟁은 끝났습니다. 오직 평화를 위해 검을 들던 의장도, 싸움을 사랑한 비운의 무장도, 마왕을 거스르고 변화를 추구한 총대장도. 모두모두 베어버리고 천하를 손에 넣은 것은.
‘제육천마왕’ 오다 노부나가.
그에게는 유능한 가신과, 충성스러운 병사들이 있었습니다. 하늘의 도움이 함께 했고, 운이 함께 했습니다. 어디 그 뿐이었을까요? 노부나가님은 타고난 것에 만족하지 않고 노력을 즐기셨지요. 실로 모든 군주의 귀감이 되실 분이 아닙니까? 하늘은 노력하는 자를 배신하지 않는 법이라고 합니다. 결국, 오래 지나지 않아 그분은 천하를 손에 넣는데 성공하셨지요.
그 뒤로는 잘 아시는 이야기입니다.
노부나가님의 옆자리에 서고 싶어 하는 분은 하늘의 별만큼, 땅의 모래만큼이나 많았습니다. 어찌 아니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분은 인간을 벗어날 정도로 아름다운 용모와, 타인을 압도하는 당당한 기백을 동시에 지닌 분이 아니셨습니까. 그러나 이미 노부나가님의 옆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통일 된 신아를 볼 사람은 정해져 있었답니다. 예전부터, 점 찍어두셨지요. 그리하여 영광스러운 통일의 날. 노부나가님은 가신들의 앞에서 ‘오다’의 성을 지닐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토오우치를, 처로 들이겠다.’
모두들 예상하였던 이야기였습니다. 아, 물론 토오우치님에게는 조금 당황스러운 이야기였던 모양입니다. 허나, 무슨 문제가 있었겠습니까. 이미 노부나가님은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으신 분. 토오우치님에게 있어서 조금도 손해될 것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토오우치님은,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며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이내 대답하셨지요.
‘주군이, 원하시는 대로.’
그렇게 성혼의 날이 잡혔답니다!
*
이리 들으니 얼마나 낭만적인 이야기인가. 진실을 떠올리며 토오우치는 조용히 손을 놀렸다. 흰 비단 위를 수놓는 금실이 그려내는 것은 가문의 문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습을 조용히 몰아내려 노력하여도, 그 순간 제가 보였던 추태가 잊히지 않는다.
동화 속에서 사라진 자신은, 어땠던가. 돌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고, 당연히 저는 헌신의 대가로 귀환을 약속 받았다 믿었으며, 더 이상 전쟁이 제 인생에 끼어들 일이 없다 생각했다. 그렇기에 저 말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했는가.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진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과 설움, ‘또’ 저만 모르는 계획에 놀아났다는 배신감. 그리고 이미 완벽하게 짜인 판 위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절망감까지. 그 모든 감정이 어지러이 생각을 흩뜨리고, 얽어매어서. 결국 저는 어렵사리 고개를 들고 대답하였다.
‘가신의 도리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하고. 그 일도 이미 먼 옛날의 일이다.
*
천하를 손에 넣은 자의 혼인은, 얼마나 화려하였는지 아십니까. 본디 기품이 넘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분이셨습니다. 더군다나 이례적으로 ‘사랑하여’ 하는 결혼이 아니었습니까. 하늘 아래 숨 쉬는 것 중 혼인을 축하하지 않은 자가 없었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축하의 표시. 평소보다 더욱 당당한 모습의 노부나가님. 흰색의 우치카게에 휩싸여 평소보다 아름다운 모습의 토오우치님.
검은 머리카락을 흰 천으로 가리고, 곱게 치장한 모습은 노부나가님마저도 넋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아십니까!
“정말로 어머님이 그렇게나 아름다우셨습니까?”
“에에, 물론이지요. 지금도 아름다우신 분이지만, 그 날은 태양조차 빛을 잃을 정도셨습니다.”
‘오다’의 성을 받은 토오우치님은 처음에야 어색하셨지만, 지금에 와서는 야지리마루님이 아시는 그대로입니다. 후계자를 걱정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이리 총명한 분이 태어나시지 않으셨습니까. 더군다나 노부나가님은 그 이후로도 측실 하나 들이지 않으시고 토오우치님의 처소를 쉬지 않고 찾으시니, 가신들과 종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갈 날이 없습니다.
‘어쩜 저리 두 분이 사이가 좋으실까!’
하고 말입니다.
허나 노부나가님이 토오우치님을 총애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지요. 본래도 뛰어난 지략으로 이름을 날리셨던 분입니다만, 토오우치님이 ‘가장 뛰어난 가신’으로 이름 받은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토오우치님은 특별한 힘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는 야지리마루님도 알고 계시지요?
“예, 알고 있습니다! 어머님은, 아주 오래전 사라지셨던 히메미코님과 같은 힘을 가지고 계시다고.”
“맞습니다. 노부나가님은 그 힘을 알아보고 토오우치님을 가신으로 맞아들이셨지요. 그 뿐이십니까. 혼약을 올리시기 전에도 ‘통일에 있어 가장 큰 공을 세운 자는 토오우치다.’ 라며 치하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답니다.”
이 어찌 아닐 수 있었겠습니까. 이국에서 와 이 신아에 알려지지 않은 신비한 지식으로 오다군 을 개편한 것은 물론, 새로운 전술과 무기, 그리고 ‘각성’을 가능케 하는 신비한 피까지! 토오우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아마 통일은 더욱 늦어졌을 것입니다. 그럼 더욱 많은 피가 흘렀겠지요.
*
헛소리, 토오우치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보았다. 참으로 고즈넉한 곳이다. 더 이상 다급하게 출전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필요도 없고, 누군가 목숨을 잃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을 필요도 없다.
문득 천에서 시선을 돌려 벽을 바라본다. 여전히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무기들. 활이며 석궁, 조총과 검에 이르기까지. 저 모든 무기는 직접 하사받았던 것이고, 제 손으로 무기고에서 꺼냈던 것이며, 만들어 휘둘렀던 것이다.
유난히 눈에 띄는 이 건물은 혼인 이후 제일 처음으로 받았던 선물이다. 제가 직접 사람을 부려 고향의 양식으로 지은 건물. 이국적이고 이질적 이기로 유명한 오다의 성 안에서도 특이한 건물은, 이리 오랜 시간이 지나고도 이 곳에 적응하지 못한 제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느낌이 든다. 문득 뒤편의 정원을 내려다보면, 어김없이 쿠로가 몸을 길게 펴고 누워있다. 저 아이도 전장에 나가지 않은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던가. 태평성대요, 낙원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시대다.
천하를 손에 넣음은 통과점일 뿐이라 이야기하던 제 주군을 떠올린다. 그 얼마나 거대한 오만인가. 분명 그 이야기를 들은 저는 그리 생각하였다. 그러나 결론은 어찌 되었나. 제가 주군으로 모셨던 자는 당당하게 천하를 제 손에 넣어, 가지고 있던 이상을 그대로 실현해 보였다. 낙원을, 평화의 시대를 만들어냈다.
“어머님이 그리 대단하신 분이었습니까? 아버님이 무용은 익히 들었습니다만, 어머님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토오우치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 많이 하시는 분이 아니니까요. 어떤 이야기가 궁금하십니까?”
“어머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오랜 시간이 흘렀다. 돌아갈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이 곳에서 살아야 함을 수긍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가. 아이가 생기고, 가정에 정착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에 익숙해진 자신이 있다. 저 건넛방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저 아이가 제가 낳은 ‘내’ 아이다.
“토오우치님은 무용으로도 대단하셨습니다. ‘오다의 쿠로카미’라고 한다면 모두들 도망치기에 바빴으니 말입니다. 검은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전장의 기세는 모두 뒤집어지고, 액마들마저 도망치기에 바빴지요.”
“어머니는, 검을 잘 못 다룬다고 하셨습니다. 아버님도 가르치다가 그만두셨다고 하셨습니다. 한데 어찌 그리 높은 무명을 가지게 되신 것입니까?”
“확실히 토오우치님은 검은 서투르셨지요. 하지만 그 분의 장기는 활과 총이었습니다.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 분이 날린 화살은 빗나간 적이 없고, 총알은 목표물을 꿰뚫지 못한 적이 없지요. 아무리 멀리 있어도 적중하고, 아무리 단단한 갑옷이라도 뚫어버리니 적들은 도망치는 것 말고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 그건 들은 적 있습니다! 어머님은 특히 말 위에서 무기를 다루는 것에 능숙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예. 실로 그러셨지요. 검은 늑대와 함께 전장을 종횡무진하실 때면, 노부나가님도 한 수 접어주시고는 하셨습니다.”
아이에게 들려주는 전장의 이야기는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더 이상 분쟁이 일어나지 않는 세계. 남아있는 소수의 액마마저 줄어들고 있으니, 아이에게는 정말로 전장이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혀 들뜰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어딘가 목소리에 열기를 띠고 이야기를 재촉한다. 전쟁을 모르고 자라 저렇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분명 그저 뿌듯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가슴 한 구석이 묵직하게 떨어져 내린다.
아이는 속도 모르고 활기찬 목소리를 낸다.
“아버님을 뛰어넘는 승마술이라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도 가지 않습니다! 어머님은 제 앞에서 좀처럼 말을 타지 않으시니 저는 알 수 없습니다. 저와 함께 승마를 하시면 좋을 터인데…….”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야지리마루님. 야지리마루님이 조금 더 성장하신다면 토오우치님도 같이 어울려 주실 겁니다. 토오우치님의 승마술은 아무래도 거친 구석이 있으니, 아마 그것을 염려하셨을 겁니다.”
“거칠다니요? 저토록 온화하신 어머니가 거칠게 말을 모신다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야지리마루님은 상상하시기 어려울 것입니다. 토오우치님은 주로 전장에서 말을 달리셨고, 그 속에서도 거친 편이셨으니 말입니다. 막는 것은 부수고, 부술 수 없는 것은 뛰어넘는 분이셨습니다. 낙원이라 불리는 지금의 신아에서는, 보기 어려운 방식이지요.”
“언젠가, 어머님이 꼭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방식을 보여줄 곳은 전장 외에는 어디에도 없건만,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제가 다시 전장에서와 같이 날뛰기를 바란다. 무지함은 이러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고개를 숙이고 다시 자수에 열중하고 있으면,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무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사람을 압도하는 구석이 있는 기척. 부러 더 빠르게 바늘을 놀리지만, 제 앞에서 멈춰선 기척에 저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들어 얼굴을 마주한다.
“오셨습니까, 주군.”
은은한 미소를 유지하려 애를 쓰지만, 그의 얼굴을 마주하면 어딘가 삐끗, 하고 흔들림은 어쩔 수 없다. 몇 년이 지나도 인간을 벗어난 것만 같은 저 아름다움에 익숙해지기는 어렵다.
“그 호칭은 그만두라고 하였을 터인데.”
대답을 침묵으로 대신한다. 어쭙잖은 반항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으나, 그를 이름으로 부르는 일은 할 수 없다. 애초에 이름을 부르고 싶지 않아 택한 호칭이다. 같은 성을 쓰게 된 지금, 성으로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저는 이렇게나마 반항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차라리 이대로 목을 친다면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라고 조소하며.
그의 심기를 더 이상 거스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친다. 무언가, 주제를 돌리기 위해서라도 입을 연 그 때. 복도에서 가볍고 경쾌한 발걸음소리가 들린다.
“어-머-님-!”
낮게 묶은 긴 흑발이 햇볕을 받아 금빛을 띈다. 반짝이는 눈동자는 분명 제 아버지를 닮아 연한 보라색으로 빛나며 은색에 가까운 기운을 띄고 있었으나, 확실히 그의 것보다는 어둡다.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나는 귀여운 소년. ‘야지리마루’는 토오우치를 향해 뛰어오다가 문득 노부나가를 발견하고는 자세를 정돈한다.
“아버님도 계셨습니까!”
어린아이다운 반가움을 숨기지 못하는 목소리에 노부나가는 입가를 느슨하게 만든다. 야지리마루는 사랑받고 자란 아이다운 태도로, 애교스럽게 노부나가와 토오우치의 사이로 끼어든다. 토오우치는 익숙하게 아이를 안아 올려 무릎 위에 앉히고, 아이는 어머니의 품으로 파고들며 머리를 부비적거린다.
“야지리마루, 오늘은 무엇을 배웠습니까?”
“역사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통일되기 이전의 신아는 어땠는가, 앞으로 제가 다스려야 할 이 나라는 어떤가를 배웠습니다.”
“어려운 내용을 배우셨군요. 그럼 야지리마루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더 이상 전쟁이 없어 다행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아버님과 어머님이 천하를 통일하신 덕분이지요? 아들로서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저는 그렇게 대단한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토오우치는 애정 어린 손길로 야지리마루의 머리카락을 상냥하게 쓰다듬는다. 야지리마루는 그 손아래서 헤실 거리는 웃음을 짓다가, 문득 무언가 생각난 것처럼 ‘아’ 하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오늘은 어머님의 과거에 대해서도 들었습니다! ‘쿠로카미’ 토오우치라 불리는 유명한 무장이라고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활과 총에 있어서는 아버님도 한 수 접어 줄 정도로 대단하셨다고,”
진위를 묻는 야지리마루의 시선에 노부나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아, 확실히 토오우치는 활과 총에 있어서는 따를 자가 없었다.”
“아버님이 접어주실 정도의 실력이라니, 궁금합니다! 언젠가는 제게도 가르쳐 주세요, 어머님.”
“물론입니다, 야지리마루. 조금 더 자라 활을 잡을 수 있게 된다면 그 때는 제가 직접 궁도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 때까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의 과거에 대해서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듣게 된 것은 역시 섭섭합니다. 승마에 있어서도 조예가 있으심을 어찌 제게 말씀해주지 않으셨습니까!”
“때를 놓쳤을 뿐입니다.”
상냥하게 이마에 입을 맞추고 이야기하고 있으면, 소년은 제가 실망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굳게 했던 표정을 풀고 어머니에게 어리광을 부린다. 그 모습을 풀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노부나가는, 문득 제 아들을 부른다.
“야지리마루,”
낮고 위압적인 음성이 방을 가득 채운다. 야지리마루는 그 목소리가 저를 질책이라도 할까 걱정하는 얼굴로 노부나가를 올려다보지만, 그의 얼굴에는 보기 드물 정도로 온화한 웃음이 떠올라있다.
“수업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다. 앞으로도 오다가의 후계자로서, 힘껏 노력해 보여라.”
혼날까 두려워했던 것이 거짓말인양, 아이는 봄날의 꽃처럼 활짝 만개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네, 아버님!”
경쾌한 목소리에 듣던 이 모두가 웃음을 짓는다. 단란한 가족의 한 때. 사랑하여 결혼한 다이묘와 아내, 그리고 그들이 애지중지하는 뛰어나고 사랑스러운 후계자. 그림으로 그려낸 행복이 이런 모습일까. 근심을 모르고 웃던 소년은 문득 어머니의 무릎에서 뛰어내려 꾸벅, 하고 인사를 한다.
“그럼 저는 훈련이 있어 이만 먼저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몇 번 품에 얼굴을 부비적거린 아이가 뛰어나가는 모습을 토오우치는 꽤 오랫동안 눈으로 쫓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노는 아이는, 평화의 상징이라고 했던가. 아까부터 느슨해져 있던 입가에서 결국 웃음이 터진다. 둑이 터지기라도 한 양 한참 지속되는 웃음을, 노부나가는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웃던 토오우치는 문득, 야지리마루가 뛰어나간 쪽을 쳐다보며 말을 꺼낸다.
“태평천하, 지상낙원. 모두 주군의 통치하에 있는 세계에 붙은 말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문득 꺼내는 말의 함의를 모를 사람은 이 자리에 없다.
토오우치는 문득, 아이의 아명에 붙은 뜻을 떠올린다. 화살을 검으로 베어낸 ‘화살촉.’ 그렇기에 ‘야지리’마루였다. 아이의 아명부터 그리 지은 이름이다. 저토록 사랑스러운 아이의 이름이 그렇다. 사랑하지 않으리라 생각한 적도 없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이였다. 그럼에도 아이의 이름을 저 자가 부를 때 마다 이유 없이 가슴 한 구석이 무거워진다.
“애초에 멀다 생각하지 않은 통일입니다만, 이리 가까운 시일에 이루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아아, 토오우치, 네 공이다.”
어딘가 만족스러운 노부나가의 말을 들은 토오우치는, 복잡한 표정을 하다가, 문득 여상스럽게 말을 꺼낸다.
“주군, 아직도 제가 필요하십니까.”
“필요를 논하기 이전에, 네놈의 남은 생은 모두 내게 바치라 이야기 했을 터인데.”
“그저 내뱉어 본 말입니다. 이미 돌아갈 방법은 없지 않습니까.”
당신이 제 앞에서 직접, 제 선택으로 부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입술 끝에 걸린 말을 집어 삼킨다. 아무리 무지했다고 하나 제 선택이었다. 아니, 그리 생각하지 않으면 저 자신이 비참해서 견딜 수 없다. 돌아가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그 모든 순간, 저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비위를 맞추고자 했다. 그 선택이 이제 와 제 목을 조이고 있을 따름이다.
“네 손으로 선택했을 터다.”
“하하, 역시 그랬지요.”
히메미코의 단서를 잡았다는 사실도, 제가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던 제가 한 선택이지만, 그런 어리광이나 부리기에는 이 세계가 너무 냉혹했다.
토오우치는 문득 그 순간의 기억에 사로잡힌다. 두렵고 또 두려워서 필사적으로 호감을 얻고, 돌아가려고 발버둥 치던 순간.
귀한 것을 하나 부숴 원하는 이를 얻을 수 있다면 어찌 하겠냐는 물음에, 저는 제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려 아무런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부수겠다고. 단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보물이라 할지언정 사람보다 귀하겠냐며.
노부나가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제 앞에서 무언가를 부수었다. 그 만족스러운 표정의 어딘가가 불길하다고 느꼈음에도 입을 다물었고, 천하가 그의 손에 굴러 떨어져 저도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가 되어서야, 저도 천하와 함께 그의 손 안에 굴러 떨어졌음을 깨달았다.
“야지리마루는 분명 좋은 군주가 될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를. 이 노부나가의 아들이고 네 아들이다. 오히려 그렇게 되지 않으면 곤란하지.”
토오우치는 대답할 말을 잃고, 그저 웃음 짓는다. 그 모습을 내려다 본 노부나가는 문득, 여상스럽게 말을 꺼낸다.
“다음에 올 때는 이름을 내리겠다. 생각해 둔 글자가 있나.”
“역시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까. ’토오우치‘의 이름은.”
“당연한 이야기를.”
“이름의 글자라면, 늘 그래왔듯 딱히 없습니다.”
노부나가는 대답 없이 밖으로 걸어 나간다. 토오우치는 그의 등을 쫓아 시선을 밖으로 돌린다. 이 건물의 바깥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평화를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 같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 저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전쟁으로 가득 차 있던 시기를 떠올리면 이 세계는 마치 다른 곳처럼 바뀌었다.
그래. 이 세계는 실로 아름답고, 안정되어 있다. 그저, 내게 지옥일 뿐.
2017.12.27 첫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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