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온전히 위하며 사는 일은 어떤 느낌일까. 언제나 환하게 웃고 있는 카키자키씨를 보면, 늘 그 감각이 궁금해진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길, 모셔야 할 주군과, 걸어 나갈 미래가 정해져 있는 삶은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아오이에게 물었을 때는, 분명한 혐오의 빛을 읽었지만. 글쎄.
나의 친구, 나는 어쩌면 그런 삶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카키자키나 나오에, 아마카스의 성을 붙인 ‘토오우치’ 라는 이름은 퍽 어울리지 않는다. 어차피 본명이 아니니 상관없다, 라고 둘러대지만 꽤나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이왕 누군가의 가족이 되어야 한다면, 잘 아는 사람이 좋다고 생각했으니.
언젠가 깊은 밤, 돌아갈 수 없어 우는 날에는 새로운 성을 받아 가신의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주, 오래전. 어딘가 기억의 끝이 있는 그 즈음부터, 누군가 인정해 섬길 수 있는 사람에게 이 일생을 바치는 것을 동경해 왔다.
라고 이야기해도, 나는 내 꿈과, 이상과, 사랑한 것들을 놓을 수는 없는 인간이다. 이 생각이 평화의 시대에 태어난 산물이라고 한다면, 전쟁을 겪지 못한 아이의 어리광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래도 좋다. 어지러이 움직이는 감정이 생각을 산산조각내고 있다.
어느 날은, 군의가 열리던 큰 방에서, 한참 우에스기의 문장을 들여다 본 적이 있다. 진즉 문장학을 공부해 두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면서, 저 문장은 무슨 의미일까, 하고.
미닫이문이 드르륵, 하고 열린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면 카키자키씨가 있고, 나는 평소와 같이 웃어야 한다는 사실을 까먹고야 만다.
“오오, 토오우치. 이곳에 있었나. 마침 찾고 있던 참이다. 이전, 밭에 심었던 야채들이─”
“카게이에씨.”
“음? 뭐냐. 갑자기 이름으로 부르다니. 뭐, 예전부터 불러달라고 부탁했던 것은 내가 맞다만─”
“당신은 꿈이나, 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무례하고, 뜬금없는 질문이다. 그러나 문득, 저 우에스기의 문장을 보고 있으면 궁금해지고야 만다. 과연 이 전쟁이 끝나고 나면, ‘군신’ 우에스기 켄신은, 다른 무장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으음? 뜬금없는 질문이구나. 뭐어, 길게 생각해 본 적이야 없지만, 나는 켄신님의 검이 되어서 이 우에스기를, 켄신님을 지키고 같이 싸워나가고 싶다. 그 뿐이야.”
“카키자키씨다운 말이네요.”
“뭐, 당연한 일이다. 우에스기를 섬기는 가문에 태어나서,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왔으니까 말이야! 더군다나 켄신님은, 켄신님이기 때문에 섬기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지.”
“그건 그렇죠.”
“입에 담기도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카키자키의 사람으로 태어나서, 켄신님을 섬기는 것 이외를 생각 해 본 적은 없어.”
나는 그의 흔들림 없는 말에서, 평화가 찾아오고 난 이후의 우에스기령을 본 기분이 들었다. 분명 그 때가 되어서도 도적이나 산적, 액마 등은 잔뜩 남아있겠지. 그러면 ‘의장’ 우에스기 켄신으로 켄신님은 검을 휘두르고, 그 뒤를 따르는 자들은 에치고의 두 하늘일 것이다. 카게카츠와 카네츠구도 언젠가 그들의 뒤를 이을 것이고, 그러면. 켄신님은 언제나 나와 술을 마시면 이야기하던 것처럼 우메보시에 어울리는 술과 함께, 언제까지나 평화를 누리며 술을 입에 머금을 것이다.
나는 그 곳에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가 떠오르지 않게 된다. 어디서 시작했던 생각인지, 누구에게 털어놓아야 하는 말인지 모두 잊어서, 그저 입을 다물고 울음을 참고 있는 일 밖에 할 수 없다.
“우, 울지 마라! 내가 뭔가 잘못한 건가? 그렇다면 내가 나빴다! 그, 그러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억지로 풀어내는 목소리는 내가 들어도 형편없다. 긴 사유의 끝에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그저 감당하기 힘든 감정만 찾아낸 나도 꼴불견이고, 집이 그립다 이야기하지 못하고 눈물 흘리는 꼴도 우습고, 새삼스럽게 평화로 가득 찬 노을 아래 아무런 불안 없이 흔들리는 황금빛 평원을 떠올리고, 그 곳에 있지 못함을 서러워하는 내가 싫다.
“그저, 평화가 찾아오고도 우에스기군은 약자를 지키고 도의에 어긋나지 않는 일을 위해 검을 들겠지요.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 자리에 저는 없을 테니까요. 구태여 그런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내가 왜 우는지 정도는 알아차렸을 인랑이다. 불편하게 이어지는 어색한 침묵. 침묵. 눈물에 흐려진 우에스기의 문장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을 즈음, 카키자키씨의 어색한 목소리가 들렸다.
“언젠가, 네가 돌아가고 나서 편지를 보내겠다! 문자에 대해서는 서투른 편이지만, 카게모치의 도움을 받아 쓴다면 그리 나쁘지 않은 편지가 될 것이다. 우에스기의 아름다운 곳과, 평화로운 정경을 제일 유명한 화가에게 그리게 한다면, 너도 볼 수 있겠지.”
어떻게, 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세계로 편지를 보내는 방법 따위는 없다. 어차피, 나는 돌아가면 이곳에 남긴 흔적과 함께 서서히 지워질 사람이다. 내가 그러기를 바랐고,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아아,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네요. 하지만 카키자키씨는 악필이지 않습니까.”
“그, 그렇지만 말이다!”
파앗, 하고 밝아진 얼굴로 와하하 웃어버리는 모습이 그다워서 따라 웃어 버렸다.
“이런, 두 사람, 여기 계셨습니까.”
“카게모치! 무슨 일이냐, 너도 밭에 대한이야기를 물어보러─”
“아뇨, 그것도 물론 흥미로웠습니다만, 이번에는 켄신님의 부름입니다. 새로운 보고에 대한 건으로 할 말씀이 있으시다고.”
“오오, 켄신사마의 부름인가! 그렇다면 기다리시게 할 수야 없지. 먼저 가겠다!”
카키자키씨는 데리러 온 아마카스씨를 두고 먼저 가 버린다. 그런 뒷 모습을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네요, 하고 웃어버린 아마카스씨는 내 쪽을 바라보며 말을 건다.
“토오우치씨, 너도 같이 가겠습니까?”
“가도 되는 자리라면, 예.”
“물론입니다. 자, 부디.”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없다만, 그저 지금은 우에스기의 총대장인, 우에스기 켄신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냥, 그러는 것만으로도 고민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017.11.19 첫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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