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의 이야기인지, 굳이 이야기 할 필요 없는 기억이다.
“그러니까, 견우나 직녀 같은 건 저하고 딱히 어울리지 않는다니까요, 켄신님. 사랑하는 이와 노는 재미에 일을 버리지도 않겠지만, 그렇게 헤어지라고 한다면 죽어버릴 것 같고.”
별 밝은 칠석 밤, 술잔을 기울이며 나눴던 이야기. 돌아갈 방법을 찾은 토오우치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았다. 켄신은, 좋은 술친구를 잃었다는 생각도 했지만,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기울이던 술잔을 더 이상 즐길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씁쓸했다.
그러나 토오우치는 평소와 똑같이, 속 모르게 웃을 뿐이다.
“뭐, 그냥 해 본 소리입니다. 어찌 되었든!”
파핫, 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밝게 웃은 토오우치는 저 멀리 어딘가, 수풀 너머 즈음을 향해 소리를 높인다.
“아오이! 오작교라도 만들어주지 그래! 어차피 카게카츠는 출전 나갔으니까!”
“아, 지랄맞은 소리 하지 말고!”
“할- 수- 있-잖-아!”
부러 길게 늘어뜨리는 소리가 제 머쓱함이나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알아 볼 정도로, 켄신은 토오우치를 오래 보아 왔다. 아니면, 오래 알아왔다고 이야기해야 할까. 술잔을 기울이는 밤이나, 둘이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면 토오우치나 켄신은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아니면 주제를 가리지 않고 담소를 나눴다. 저 자신도 모르는 저를, 상대방이 알아차릴 때 까지.
결국 켄신은 술잔을 기울이다가 말고 웃음소리를 내었고, 토오우치는 아오이에게 말을 걸던 일을 그만두었다. 그러다가, 켄신이 웃는 얼굴을 보고 잠시 멍한 얼굴을 하다가, 다시 소리 내어서 웃는다. 그 변화무ᄊᆞᆼ한 표정을, 켄신은 늘 질리지 않고 바라볼 수 있었다.
“아, 정말로 아름다운 별밤입니다! 정말, 정말로.”
“새삼스럽군, 뭔가 걸리는 일이라도 있나?”
“에에. 아무래도, 돌아갈 길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심란해서요.”
“남고 싶다면 남아도 괜찮다.”
“켄신님도, 제가 그러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애초에 토오우치라는 이름이 그렇습니다. 라고, 평소처럼 이야기하는 대신 토오우치는 입을 다물었다. 그저 눈을 감고, 뭔가 하면 안 되는 말을 골라내듯이 입을 몇 번 우물거릴 따름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눈을 뜨고는, 화려하게 웃는다.
“자, 이제 이별의 이야기는 그만해요. 일단 재회의 밤이잖아요?”
저는 더 이상 마시지 않겠다고 이야기 한 주제에, 술을 따르는 손은 익숙하기 짝이 없다. 조금 비어있는 술잔에 넘치도록 따르는 술은 맑고, 귓가에 쟁쟁하게 울리는 토오우치의 목소리도 맑다. 둘 모두 삼키면 그대로 궤적이 남는다는 점에서도, 켄신에게 있어서는 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게 술잔을 기울이기를 몇 시간, 하늘 가득한 은하수를 바라보며 툇마루에 드러누운 토오우치는 마시시도 않은 술에 취한 느낌이라며 느리게 숨을 몰아쉰다. 깊게, 마치 이 순간을 잊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처럼.
“켄신님.”
눈치 채지 못한 동안, 토오우치의 눈이 켄신을 향했다. 햇볓 아래서는 금빛으로 반짝이는 눈이, 달빛 아래서 기묘한 따스함을 가지고 그의 눈을 마주한다.
“저는 돌아가고 나서도, 한 번은 당신을 만나러 올 겁니다. 그 때는, 토오우치라는 이름을 쓰지 않겠죠? 집에 돌아갔으니까요, 먼 곳의 집이라 말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생각만 해도 기대된다는 어조로, 속없이 지껄이는 말. 그러나 그 말에 담긴 것이 망설임과, 아쉬움과, 억지로 가리는 슬픔이라는 사실을 아는 켄신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토오우치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계속하면서 웃는다. 하하 하고 길게 늘어지는 목소리가 공허하게 부서진다.
침묵.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여름밤. 벌레 우는소리가 사라져 적적한 공기. 누군가 소리 없이 눈물 흘리는 기척만이 켄신의 신경을 끊임없이 건드렸다. 그리고, 또 시간이 하염없이 지나서.
토오우치는 어딘가 비어버린 목소리에 억지로 웃음기를 불어넣어서 이야기한다.
“제 본명은, 야나기 켄입니다. 뭐, 그렇게 읽지야 않습니다만. 제 나라의 발음은 분명 켄신님에게 어려울 테니까요.”
그리고 다시 정적. 토오우치는 아무 말 하지 않다가, 숨을 고르고 퍽 어색한 어조로 목소리를 낸다.
“원래는, ‘현’이라고 합니다.”
그 날 이후로 토오우치가 돌아가고 나서, 켄신은 몇 번이고 ‘현’이라는 발음을 연습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꿈결처럼 머물렀던 사람의 자취가 지워지기에 충분한 시간. 켄신에게도 결혼 이야기가 들리고, 토오우치의 방은 이미 체취가 지워져 빈 방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럼에도 켄신은, 달이 밝은 밤이면 툇마루에 앉아 달을 올려다보곤 했다. 언젠가 이야기했던 그대로, 술을 마시며. 다시 만날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어느 칠석 밤도 똑같았다.
그 날과 똑같은 은하수의 밤. 만작을 즐기기에 좋은 날씨라며 툇마루에 모여 앉은 우에스기의 무장들은, 몇 년 전을 회상하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군을 휘젓고 다니던 토오우치나 아오이의 이야기. 떠나며 웃던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없으니, 성이 심심하다고 느꼈습니다만.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군요.”
“아아, 그렇군.”
“아무래도, 자주 소리쳤지 않습니까. 켄신님! 하고.”
그런 이야기가 오갈 무렵. 익숙한 새 날갯짓 소리가 하늘을 꽉 채운다. 검게 휘날리는 깃털. 은하수를 가로지르는 긴 선은 모두, 까마귀.
누군가 아오이를 떠올리기 무섭게, 켄신의 옆에서 늑대가 길게 울부짖었다.
“자, 칠석의 밤이니까!”
익숙한 목소리가 밤하늘을 가른다. 몇 년 전에 사라진 목소리가 우에스기 성에 울리고, 늑대가 달려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굳어 움직이지 못하는 자와, 놀라 일어선 자. 그리고 소리치는 말.
“만나러 왔습니다!”
유쾌한 목소리가 웃음소리에 섞인다.
“거 봐, 된다고 했잖아, 아오이!”
“내 까마귀들이 고생하는 건 안 보이냐!”
“그래도 즐겁잖아! 자, 시로! 착지준비 부탁드리겠습니다!”
늑대가 위로 뛰어오른다. 토오우치는, 아니 켄이라고 불러야 했던가. 떠날 때와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늑대의 목을 끌어안는다. 거칠게 구르며 이루어진 착지. 달려 나가 아오이를 받아드는 카게카츠와, 잘도 돌아왔다며 소리치는 카네츠구. 소란의 주범이 된 토오우치는, 현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약속했던 대로, 만나러 왔습니다. 칠석의 밤이잖아요?”
파핫, 하고 웃는 얼굴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되돌아가 그 때에 서 있는 기분. 그러나 확연히 여유가 넘치고 안정된 분위기는 그녀가 정착했음을 알려준다. 완연하게, 자신의 세계에서.
그렇기에 우에스기 켄신은 연습했던 대로 이름을 부르는 일 말고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현.”
“아, 아? 켄신님, 방금?”
“‘현’이라고 불러달라고,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아니, 분명 그랬지만, 그, 발음하지 어렵지는.”
당황한 얼굴로 이런 저런 말을 늘어놓던 현은 결국 얼굴을 양 손에 묻고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짧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얼굴을 가리고, 무언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건 켄신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으나, 그는 그저 웃으며 기다릴 따름이다.
“약속대로, 만나러 왔어요, 켄신.”
그리고, 그녀도 그가 그 때 부탁했던 대로. 제대로 이름을 불러주었다.
2017.11.12 첫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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