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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

admin 2018.11.18 19:52 read.9

  우스운 이야기를 조금 해 보자면, 저는 한 번도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이름을 사랑한 적이 없었다. 그건, 결국 그녀의 사랑해 마지않던 어머니가 사라지고 나서야 얻을 수 있었던 이름이니까. 그리고, 그녀는 한 번도 최고를 바라지 않았다. 그녀는 늘 두 번째가 되기를 바랐다. 그녀 말고는 아무도 그녀의 어머니와 듀엣을 할 수 없도록. 그녀의 퍼스트 바이올린을 받치는 세컨드는 꼭 그녀만이 어울릴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늘 두 번째 바이올린이었다. 우스운 이름을 한 가득 짊어지고, 그녀의 어머니가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을 즐기면서, 제멋대로 달려나가는 선율을 떠받쳤다. 그건 그녀의 쌍둥이라고 할 수 있는 에드워드와는 다른 길이었다. 애초에 그녀는 어머니가 보는 곳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지 않은가. 닿을 수 없는 곳에 닿고 싶지는 않았다. 그걸 위해서 인생을 희생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녀의 인생은, 어머니를 사랑하기에도 모자라서, 그렇게 절망할 시간은 없었다.
 
  가장 처음의 기억은 어린 아이였던 어머니의 모습이다. 처음에는 부모로 여길 생각은 없었다. 우리는 어렸고, 어머니도 어렸다. 아주 아기 때 부터 봐와서,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가족. 호칭을 정한 적도 없는. 그래도 어머니라면 분명 어머니의 어머니. 그러니까 지금은 외조모로 생각하는 그 분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아니었다.
 
  외조모는 애초에 우리를 그녀의 가족으로 만들기 위해 선택했다. 그들은 다른 아이를 기를 자신이 없었고, 제 아이가 외롭게 자라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이해할 수 있다. 외조모도, 외조부도 제대로 된 가정에서 성장하지 못했으니까.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게 최선이었겠지. 그래서 나랑, 에드워드가 선택되었다. 저는 눈이 어머니와 닮아서, 에드워드는 그냥 느낌이 와서. 
  질투하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이유없는 선택은 정말 운명이나 가족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난. 겨우 이 눈 하나 때문에. 어머니처럼 다른 색을 가지지도 못하고, 그저 갈색의 농도가 조금 다를 뿐인 눈. 그 눈이 어머니와 저를 엮었다. 그러니 싫어한 적이 없다고 말 할수는 없다. 허나 사랑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할 수도 없다. 저는 어쩔수 없이 어머니를 사랑했으니까. 그녀의 그 무심하기 짝이 없는 애정을, 떠나지 않게 묶어두는 애정을 갈구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지호'. 제 이름을 이유없이 중얼거린다. 그래, 이게 내 이름이었다. 어머니가 주었던, 지금까지 애정을 가지고 불러주는 그 이름이다. 
  어머니가 떠나지 않게 세상에 묶어두는 끈이다.
 
  지호는 늘 제 안에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를 한 명 데리고 있었다. 그건, 여섯 살의 기억이다. 어머니의 세계가 유일하게 열렸던 날. 차갑기 그지 없는 눈으로 어머니를 갈구하던 그 청년의 기억. 어머니의 반려자, 연인. 그 빌어먹을 이름을 가진 카뮤. 그를 처음 봤던 날의 기억이 여전히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는 그 날이 되어서야 어머니를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그 빌어먹을 새끼가 어머니를 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꺠달았다.
  한 번도 다른 이에게 틈을 허락한 적 없던 어머니. 그녀는 늘 무심했으니까 다른 이에게 모두 그러리라 생각했다. 외조부모가 사라지고 나서 무너져 내렸다는 사실을 어린 아이는 몰랐다. 마지막 조각이 간절하게 필요했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그저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원망스러웠다. 다 원망스러웠다. 이제 어머니는 우리를 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래서. 도망가려고 했다. 버려지기는 싫어서. 내가 버리려고. 그러면, 그러면. 혹시 돌아봐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거리 하나도 다 가지 못하고 붙잡힌 나를 안고,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버리지 않는다고. 이제 세상에 남은 유일한 가족이니까. 버릴 일은 없다고 이야기 해 줬다. 
 
  그 날, 나는 바이올린을 받았다. 어머니가 쓰던, 그렇게나 아끼던 바이올린이었다.
 
  그리운 기억을 마치 점자처럼 더듬다가, 문득 깨달았다. 유일한 가족. 그 이름에 좀 더 매달려야 했구나. 에드워드와, 내가 유일한 가족이 아니게 된 날. 그 날 저는 이해하는 척 했다. 열 살의 어린이는 그저 어머니가 예뻐서 좋았고, 아버지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에드워드처럼, 어머니를 뺴앗아 가지 말라고 붙잡아야 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어머니가 죽지 않았을텐데.
  어머니는 늘 죽지 않을 것 처럼 보였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소녀의 모습. 시간과 세계 속에서 유리 되어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괜찮을 줄 알았다. 근데, 근데. 그 망할 새끼가. 한 때 아버지로 여기고자 했던 사람이. 어머니를 세계랑 이어줘 버렸다. 어머니는 영영 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야 말았다. 그래서, 그래서. 그 사랑해 마지않는 반려자를 쉴 수 있게 하려고.
  최고의 날에, 둘이 훌쩍 사라졌다. 마치 외조부모처럼. 그게 그들 식의 죽음이었다. 핏줄을 타고 내려오는 죽음의 방식이었다.
 
  우리는 세계에 유일하게 남은 상속자가 되어서, 각자 이어받을 것을 이어받기로 했다. 에드워드는 백작이 되었다. 여왕의 검이 되지는 않았으나, 여왕의 왕권을 떠받쳐 주었다. 나는. 그리고 나는. 
  유명한 자산가, 아이돌, 작곡가, 배우, 오페라 싱어, 가수, 뮤지컬 배우, 모든 음악적, 예술적 분야의 권위자. 뮤즈의 사도, '파르바네'의 대외적 후계자가 되었다.
  에드워드는 뒤에서,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을 모두 책임졌다. 대외 활동은 제 몫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어머니를 떠나보내야 했다. 수없이 울고, 술을 마시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받아들이지 못할 죽음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우리에게 그렇게 안배했다. 
  그래서 더 처참했다. 나는 어머니를 잃고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만 어머니를 사랑해서.
 
  어느 날, 에드워드가 말했다. 
 
  "어머니, 분명 많이 고민하셨겠지?"
  "물론이지."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는 말은 삼켰다. 응, 삼켜야만 했다. 
  이제 쓰지 못하는 작은 바이올린을 쓰다듬는다. 여전히 그 때랑 다르지 않다. 

 

  나도, 울고 매달렸다면. 그랬다면. 의미없는 후회를 술과 함께 털어넣는다. 타는 듯한 쓰라림을 삼키고, 웃는다. 어머니는 호상을 당했다고. 그렇게 여겨주기를 바라면서. 
 
 
2016.11.19 첫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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