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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스타] 관계 속 안타까움

admin 2018.11.18 19:48 read.11

  안타까움은 존재하는 걸까? 그냥 그런 질문을 툭 내던졌다. 흘러가는 강물 위에 돌을 툭 내던지는 어린아이의 심정이었다. 오늘의 고민거리는 이 것. 동정과 안타까움의 경계가 존재는 하는가. 나는 안타까움이라는 명목아래 동정이라는 모욕을 그에게 던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석양이 지고 있다. 석양이 지며 세상이 주황색으로, 붉은색으로, 노란색으로. 석양의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거울을 보고 싶어. 내 눈동자 위로 서서히 지나갈 그 노을의 색을, 밤하늘의 색 위에 덧씌워졌을 그 노을의 색을 가만히 관찰하고 싶었다. 하지만 거울을 보면 눈동자에 노을이 비치지 않을 테니까, 대신 옷을 내려다보았다.

 

 

  오랜만에 입은 흰 옷은 도화지가 되어있다. 학원 지정의상이라고 했던가. 푸른 재킷 아래의 흰 티가 노을 졌다. 그래, 이대로 색을 뽑아 옷을 지을 수만 있다면 다음 라이브는 필시 역사에 남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색이다. 노을이, 노을빛의 천이 온 몸을 쓰다듬고 있다. 내뻗은 손 위로 노을이 조금 고인다.

 

  아아, 내가 왜 이런 시답잖은 배려나 하고 있담. 그런 생각이 들어서 풀 위에 털썩, 하고 주저앉았다. 이대로 앉아있으면 풀물이 들지도 모르지만, 뭐 어때. 빨래는 내가 하는 게 아닌데. 상관없어.

 

  등에 닿는 잔디는 푹신푹신하다. 느낌 좋아. 복잡한 생각 같은 거, 정말 할 일이 없었으면 하고 간절하게 바랬는데. 어째서 지쳐서 도망 온 여기서 더욱 지치게 만드는 일들이 넘치는 걸까. 프로듀싱이니, 라이브니 하는 일들 말이야- 아마추어랑 같이 뛰는 프로라니. 분명 선배들이나 애들이 비웃을 거고. 그렇다고 빨리 일 년이 지나가는 건 싫어.

 

  고요한 주변, 장엄하게 사라지는 해. 전설적인 배우가 사라진다.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보이던 그 전설적인 배우가 장엄하게 마지막을 맞이한다. 무대의 막이 내린다. 그 속에서 나는 공기로 화한다.

 

  눈을 감았다.

 

 

 

 

  “히비키씨, 다 보여요.”

 

 

 

 

  이번에도 돌을 던지는 아이의 심정이었다. 아마 마시로 토모야, 그 마시멜로를 떠올리게 만드는 아이의 공연을 보고 왔겠지. 한없이 상냥하고 또 상냥한 사람. 박애주의자. 제게 있어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숨겨진 상처조차, 모두 보였다. 우습도록 잘 보였다. 희극적으로 극화된 인생. 무대 뒤에서 춤을 연습할 배우.

 

 

 

 

  “아앗, 들켜버렸습니다☆ 이번에도 변장은 완벽했는데 말이지요! 이 히비키 와타루의 변장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역시 여제의 눈은 속이지 못한다는 걸까요? 다음에는 들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완벽한 어조, 근심 걱정 따위 한 줌도 쥐지 않고 살아갈 듯한 어조. 희극의 배우로 단련된 얼굴. 가면 너머에서 웃고 있을 얼굴. 그리고 그 안의 가면은? 그 너머와 너머에서 웃고 있을 가면은? 나는 그 너머를 어쩐지 짐작할 수 있는 기분이 되어, 다시 그를 말갛게 응시했다. 지금 내 심장 위를 맴도는 이 감정이 안타까움인가, 동정인가. 나는 당신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끼는가, 아니면 누군가를 투영하여 동정하고 있는가.

 

  진지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관계에 진지함이 섞여 들어갔다. 그 때부터 나는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밝은 ‘척’하는 사람. 가면 너머에서 썩어 들어갈 주제에, 자신은 썩지 않으리라 주장하는 배우. 평생을 배우로 살겠다는 그의 말이 제게 아픔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적이 언제였지? 더 이상 인간관계로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자 한숨이 흘러나왔다.

 

  후한을, 슬픔을, 동정과 안타까움을 담아 내쉰 숨이 뜨겁고 한심했다. 뜨거운 공기가 빠져나가는 느낌, 혀 위로 굴러다니는 지독한 느낌이, 너무나 차가워서.

 

 

 

 

  “여제라니, 그런 귀찮은 호칭은 그만둬 주세요.”

 

  “그러면 히비키 현은 어떻겠습니까☆ 울려 퍼뜨리는 겁니다, 아름답고 압도적인 사랑의 노래를! 저는 황제의 광대입니다만, 저의 여제님이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춤추도록 하지요! 질려서 ‘이제 떠나줘.’ 라고 말씀 하실 때 까지 웃고, 떠들고, 재주를 선보이는 겁니다!”

 

  “아뇨, 히비키 현 보다는 여제가 더 마음에 드네요. 게다가 제가 질릴 때 까지라니, 평생 옆에 있겠다는 말씀인가요? 데릴사위는 곤란한데.”

 

 

 

 

  저는 당신만의 히비키 와타루이니 괜찮습니다! 라고 외치는 목소리에서 가시를 읽어내었다. 비단결 같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목소리 위에는 가시가 돋아있다. 당신은 모두에게 ‘당신만의’ 히비키 와타루라며 소리를 치지. 그러면 그 히비키 와타루는 도대체 몇 명이 되어야 하는가. 그 가면 너머에서 무슨 생각이 흘러가는지, 익히 짐작할 수 있어서 더욱 처절했다.

 

 

 

 

  “마시로 토모야, 였나요? 히비키씨가 그렇게 챙기는 연극부의 1학년.”

 

  “그렇습니다☆ 너무 평범하고도 평범한 아이라서 아이돌이라는 사실이 신기할 지경이죠! 연극부에 들어올 때 ‘평범함을 탈피하고 싶어요!’ 라고 소리치던 귀여운 아이랍니다! 그래서 전심전력으로 도와주고 있지만, 슬프게도 토모야군은 ‘저리 꺼져, 변태가면!’이라면서 저를 멀리하지만 말이에요☆ 보답 받지 못하는 사랑, 이뤄지지 않을 짝사랑! 이라고나 할까요~♪”

 

  “애틋한 사이네요. 질투 날 정도로.”

 

  “물론 여제님이 원하신다면 이 히비키 와타루의 사랑을 드릴 수 있답니다☆ 자자, 사양하지 마세요♪”

 

  “관용어구적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아주세요, 히비키씨.”

 

 

 

 

  시시덕거리는 동안 해는 더욱 장엄하게 마지막 빛을 뽐낸다. 의미없고 시시한 언어들. 전하고자 하는 말은 철저하게 숨겨버린 채 서로 하고 싶은 말만 실컷 떠들고 있다. 희극을 연기하는 가면 아래 어떤 표정이 숨겨져 있는지 이토록 궁금한 적이 또 있었을까. 허나 그까지 손을 뻗으면 나는 그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지탱해야한다. 그럴 자신은 없으니까 다시 한 발 뒤로.

 

 

 

  오늘따라 유난히 그가 힘이 없어보인다. 이게 부디 착각이길. 광대에게서 인간적인 면을 발견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만들어낸 착각이길. 그렇게 간절히 바라보아도 머리는 사실 답을 알고 있다. 제 통찰력이 무뎌지지 않았다면 그는 분명, 피곤해하고 있다.

 

  차라리 눈이 나쁘거나 머리가 나빴다면 좋으련만. 그런 생각을 잠시 했다. 어둠이 져서 내 눈이 나빠지면, 그의 피곤과 어둠 같은 남의 사정에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멋대로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 그러기에는 아직 너무 밝다.

 

 

 

 

  “히비키씨의 사랑을 받아주지는 못해도, 고민이나 마음에 걸리는 일 정도는 괜찮아요. ‘삼기인’보다는 제가 보통 사람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겠죠.”

 

  “오야, 그 ‘여제’에게서 이런 호의를 얻다니, 천지가 놀라서 비극이 희극으로 바뀔 일이군요! 하지만 과도한 호의입니다☆ 이 히비키 와타루에게 위로는 필요 없습니다!”

 

 

 

 

  어쩌면 저게 가면을 모두 벗은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가면을 써서 가면이 그의 성격이 되어버리지 않았을까.

 

  나는 그에게 대답처럼 상처 입힐 말을 꺼내놓는다.

 

 

 

 

  “저는 위로 해 준다는 말은 한 적 없어요.”

 

 

 

 

 

 

 

 

  장난스러운 말로 진심을 가려버렸다. 장난스러운 어조, 무시당한 무안함을 감추기 위한 말. 그러나 그 말을 하는 도중에도 나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과연 나와 그의 관계 중에 안타까움은 존재하는가.

 
 
2016.06.16 첫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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