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키나 테오파네스는 기본적으로 구원을 가벼히 여기는 자였다. 저 자신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뻗는 사람은 모두 밀어내는 주제에, 그녀가 남을 구원하고 다니는 일은 서슴치 않는다. 제 앞에 있는 사람 모두를 끌어안으려고 들고, 제 앞에서 괴로워하는 이를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는 그녀를, 어찌 그저 인간이라고 낮잡아 볼 수 있다는 말인가?
인간에 대해서 배우는 일은 늘 놀라움의 연속이다. 그가 살고 있는 시대와 다른 생활양식, 다른 양상. 그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가치관.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아가는 일은 즐거웠다. 본디 하데스라는 신은, 외로움을 탈 뿐만 아니라 지적 욕구도 높은 신이라. 그에게 주어지는 모든 정보는 경이롭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그 경이의 정점에 선 사람이. 셰키나 테오파네스. 그녀였다.
그에게 있어서 빛을 꼽으라고 한다면 분명 그것은 쿠사나기 유이이다. 두려움에 도망치던 그를, 어디론가 사라지려던 그를 이끌어 이 곳으로 데려온 사람은 분명 그녀이다. 그럼에도 그녀를 구원으로 여기지 않음은, 그녀는 결국 빛이었기에 닿지 못한다. 제가 감히 손 잡으면 더럽혀질까 두려운 사람. 허나, 셰키나는. 그에게 있어서,
문이었다.
환한 빛이 있음을 알리고, 어둠 속에 태양을 끌고 올 수 있는 문. 그녀는 그 문을 만들 수 있는 문지기가 되어 끊임없이 그에게 속삭인다. 그 곳은 외롭지 않냐고, 어서 나와 함께 나아가자고. 허나 그는 그 세상이 두렵다. 이 곳으로 나가면,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잃었던 것을 손에 쥐고, 웃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희망을 가지게 만드는 그녀가 두렵다. 그녀는 그 두려움을 알고, 그의 옆에서 그저 웃는다.
'괜찮아요, 하데스 씨. 저는 여기 있어요.'
상냥한 한 마디로 그를 뒤흔들면서.
그는 빛에 이끌리는 종류의 신이었으나, 결국 사랑한 것은 빛이 아니었다. 빛으로 향하는 문 앞에서, 그에게 희망을 속살이는 그 문지기를 사랑하고야 말았다. 그, 사랑이. 하여금 그를 앞으로 이끌었다. 거대한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던 그녀에게 말을 꺼낼 용기를 주었다. 그리 털어놓고나서, 문득 두려움이 돌아온 그는, 결국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
"알겠나? 너도 이제 더이상 내게 다가오지 마라. 불행은, 신이라도 피해가지 않아."
그는 후회했다. 그러나 문득 마음 한 켠에서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이걸로 되었다. 더이상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고, 빛을 마주할까 말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는 이제 고민없는 삶을 얻은 것이다. 사랑을, 멀리 함으로써. 그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끝나면, 명계로 돌아갈까. 그의 치하를 받아야 할 곳으로 돌아가, 불행의 왕으로 또다시 군림하면 된다. 그가 떠남으로써 그녀가 행복해 진다면, 그것을 행복으로 삼아 살아갈 수 있을테니까-
"하데스 씨. 저는 셰키나 테오파네스입니다. 걱정 마세요. 저를 믿지 못하나요?"
환히 웃는 모습은, 실로 아름다워서. 그는 홀리듯 대답하고야 만다.
"아니, 그런 것은 아니다만."
"그럼 됐습니다. 무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나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그녀는 또다시 구원이 된다. 그의 고민이, 걱정이 아무것도 아니었다 증명하는 살아있는 증거로. 또다시 벅차오르는 감정을 삼켜낸다. 쿠사나기 유이가 그에게 빛이 되었다고 이야기 했던가. 어둠은 무지를 상징한다. 빛이 내리쬔 어둠은, 무지에서 벗어났다. 그는 이제 알고 있다. 저리 말하는 그녀에게 정인이 있다는 사실을, 그 상대가 매일같이 보는 지혜의 신이라는 사실을. 쿠사나기 유이로 하여금 알게 된 그 사실을, 그는 무시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는 사랑을 한 입 베어내어 또 삼키는 것이다. 이리 삼키고, 또 삼키다보면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녀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우리는 친구다. 소중한 친우다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 날이오면, 그녀를 끌어안으리라. 친우로서, 제 문지기를 아프도록 끌어안으리라. 그 날만을 바라며 그는 사랑을 또 한 입 베어낸다.
허나 이토록 빠르게 불어나는 사랑을 언제 다 먹어치운단 말인가? 짧은 시간이 지나가고, 그와 사랑만이 남겨진다면 그는 어찌해야한단 말인가?
모형정원에는 열하나의 별이 더 있다.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이 곳에는 원래 없는 성좌가 있다. 그는 그 별들에게 남몰래 클래스메이트의 이름을, 여기서 만난자들의 이름을 붙였다. 오직 그만이 알고 있는 별. 다른 이들은 이름을 알지 못해 그저 별로 알고 있을, 그. 아름다운.
그녀의 별은 거대한 변광성이다. 어느 날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다가, 어느 날은 환하게 빛나며 다른 빛을 모두 퇴색시켜버리는 변광성. 하데스는 그 별에 남몰래 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녀가 그에게 허락하지 않은 이름, 그가 넘쳐나는 사랑으로 괴로울 적에 아무도 몰래 중얼거리는 그 달디단 한 마디.
현의 별 옆에는 제가 있다. 희게 빛나는 별 옆의 붉은 별. 그의 별은 그저 그 자리에 있다. 허나, 날이 갈수록 밝아지기에, 마치 그녀의 빛을 나누어받는 모양새라- 그는 늘 남몰래 그 별자리를 눈에 담는다. 언젠가, 그도 그녀의 옆에서 빛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허니 그의 앞에 그녀가 보인 순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아, 하데스 씨."
"셰키나."
"별을, 보고 있나요?"
환히 웃는 모습은 작위적이기 짝이 없어서, 그는 문득 그녀의 발 아래를 쳐다본다. 풀잎위로 이슬이 지고있다. 이 밤에, 내릴 수 없는 이슬이 뚝뚝, 떨어져 풀잎을 흔들고 있다. 그러면 그는 입을 다문다. 그녀가 울음을 티내고싶지 않아함을 알기에, 그저 모른척 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일에 익숙하다. 참는 것도, 기다리는 일도. 그에게는 익숙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서.
가슴을 찌르는 고통마저 모른척 할 수 있다.
"하데스 씨, 저는 사랑을 하면 안 되는 걸까요?"
그래도, 이것은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자신이, 없어요. 저는 왜 살아있을까요? 제가, 행복해야 할까요? 원망하진 않을까. 아니, 사실 외로워요. 제가 너무, 약한가봐요. 모른척 하는 일도 이렇게 못해서야."
"무슨 일이라도 있는건가."
"그냥, 저는 사랑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아, 이래서는 안 되었다. 그에게 이래서는 안 된다. 그는 문득 떠올리고야 만다. 자신의, 불행을. 그의 불행을 떠올리고는 절망한다. 다른 이에게 돌아가지 않은 그 저주는 이제 그를 다시 속박한다. 그의 사랑마저, 그에게 남아있는 한 줌의 가능성마저 모두 불태운다. 어찌 그는 기대하는 일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셰키나는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옆모습을 그저 바라본다. 문득, 그녀의 눈물이 보였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보였다. 그는 침음성을 흘리고, 그녀는 모른척한다. 그래, 그녀는 늘 그를 모른척했다. 그녀가 제 사랑을 모르리라 생각한 적은 없다. 언젠가 돌아봐주리라 생각한 적도 없지만, 이리도 잔인해서는 안 된다.
어찌 짝사랑하는 이가 사랑에 상처받고 돌아와 그의 앞에서 절규한단 말인가. 저 조용한 절규를 그가 어찌 대해야 한다는 말인가.
"하데스 씨."
"......"
"하데스."
"...무슨 용건인가."
"저는, 글이 좋아요. 로망도, 충동도 좋아해요. 그런 작은 것들이 나를 '나답게' 만들거든요."
문득 읊어내는 이야기가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는, 그녀의 조각을 하나 더 손에 쥐게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지독히도 괴로워지겠지만, 그녀는 이리 이야기하고 또 모른척 하겠지만. 그는, 결국.
현을 알고 싶었다.
"근데 이제 제게는 로망이 없어요. 충동도 생기질 않아요. 그래서, 하기 싫은 일을 해요. 그냥, '그래야 한다'라고 규정된 모든 것들을. 보통 로망으로 생각하던 것들을."
그녀는 이제 털썩 주저앉았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가리지 않는다. 흘러내린 앞머리는 왼쪽 눈을 보이고, 드러난 옆얼굴은 어쩐지-
"사랑을 해 보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사랑하라고 해서 했는데. 제게 그건 구원을 허락하는 일이고, 구원을 바라는 일이 되었나봐요. 제 세계가 그래요. 구원 해 줄 사람을 정하고, 구원할 사람을 정하죠. 그건 사람이 아니라 신이라도 변하지 않나봐요."
지금 그녀는, 무슨 말을 하는가.
"저를 절대 구원하지 않을 사람을, 변하지 않을 사람을 정해서 사랑하기로 했어요. 근데, 근데 말이에요. 변하더라구요. 저 때문에, 변했어요. 그게 두려웠어요. 나는 구원받아서는 안 되는 사람인데."
지금 그녀는 그의 사랑에 대해 대답을 주고 있다. 그녀가 말하는 사실이 그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수는 없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말한다. 그는 그저 그녀에게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다. 그저, 그녀가 빛의 세계로 데리고 나와야 할 사람인 것이다.
"모른척을 그만둬야 하는데, 무지하고 싶었어요. 제게 무지가 사라진다는 건 너무 무겁거든요."
그녀는 그를 응시했다. 그리고, 그리고. 말간 웃음을 지어보였다. 언젠가 그가 저승에서 보았던 달과 같은 웃음을. 달이 뜨지 않은 그믐밤에 그녀는 달이 되어 웃었다.
"언젠가, 달빛 속에서 사라지고 싶었어요. 우습죠? 저는 이제 달의 신을 아는데. 무지가 사라진다는 건 이런 의미예요. 도피처가 하나하나 사라지고, 글의 신비가 무너지죠. 저는 가능하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싶어요."
그는 이제 안다. 저것은 그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겠다는 의사의 표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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