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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었다

admin 2018.11.18 19:04 read.5

  나는 가끔 갈망했다. 불행하고 슬퍼해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순간을.

  지금은 꿈이다. 허니 괜찮지 않은가.

 

 

  늘 삶이란 그렇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알 수 없는 곳에 홀로 떨어져있기 일쑤야. 그 때가 되어 돌아갈 길을 찾으면 그 어느 곳에도 없지. 나는 늘 혼자 남아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말아. 허망한 말은 별이 되어 스러져간다. 귓가에 맴도는 소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한 때 언어였던 무언가는 이제 가벼운 웅웅거림이 되어서, 내 영혼의 근간부터 흔든다. 조용한 순간은 외롭기 마련이라, 나는 이 웅웅거림을 사랑해 보기로 마음먹는다.

  흥얼흥얼.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을 노래를 허밍한다. 가사 없이 맴도는 음률. 형체를 가지지 못하고 스러져가는 기억들. 시야의 끄트머리에, 의식의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리는 기억들. 나는 괴로워해야하나? 세간의 상식. 제가 글을 쓸 때 주로 엮어 넣고는 하던 감정. 그 모든 것을 뒤엎어도 이런 감정을 정의할 언어는 없다. 허나 저는 어떻게든 답을 찾으려고 처절하게 발버둥치고 있다. 푸후. 작은 웃음소리를 낸다. 우스워.

 

 

 

  기숙사의 창가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본다. 별이 떠 있다. 달도. 어둠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날 가려줄 어둠이, 보이지 않아. 조금 심통이 났다. 어린아이의 장난 같은 심통이다. 장난스럽고 가벼운 '척'을 하는 감정이다.

  별은, 너희들 같아. 나를 지켜보고 있어.

    도망치고 싶다고 문득 생각한다. 더 이상 무게를 짊어지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고 살아왔다. 물론 내던질 생각은 없다. 나는 그렇게 교육받지 않았으니. 허나, 잠시 정도는 내려놓고 싶지 않겠나. 너무 무거운 짐이 나를 살아가라고 계속 떠밀고 있다면, 잠시 내려놓고 싶어 질 수도 있는 일 아니겠는가.

  꿈을 꾸자. 영원히 끝나지 않을 꿈을 꾸자. 마치 세상이 다시는 빛에 감싸이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을 바라자. 영영, 아침이 오지 못하게 막아버리면 된다. 별의 눈을 가리고 나는 그 아래서 울면 된다.

 

 

  모든 빛을 가려버렸다.

  모형정원의 하늘은 어둠에 빠져든다.

  이런 날이면, 아무도 날 찾지 못해.

 

 

  훌쩍 바깥으로 뛰어내린다.

 

 

  날씨는 꽤 쌀쌀하다. 지금이 무슨 계절이었더라? 기억하지 않는다. 어차피 계절 감각이란 의미가 없으니까. 최고신의 흥미와 기분에 따라서 변하는 계절. 주사위가 굴러가면서 정하는 날씨. 아무리 잘 만들어졌다고 하여도 이곳은 정원이다. 상자 속의 정원이요, 인형들이 놀아나는 모형이다. 언제부터 제우스에게 창조의 힘이 있었더라? 제가 아는 신화와는 다른 세계. 내 상식과 지식은 모두 종이쪼가리가 되어버린다.

  행복해지라는 말을 들었다. 그건 아마, 유언이다. 이제와 나는 알아차린다. 그들은 내게 유언을 남겼다. 내 속에서 하여금 내 기억으로 살아가고자 하였다. 잔인하기도 하여라. 나는 너희들이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조금 많이 서글퍼. 웅얼웅얼 말을 씹는다. 종이 위에 올리지도 못하는 어설픈 단어다.

  행복, 행복이란 무엇일까. 나는 행복을 몰라. 사랑도 몰라. 인간에 대해서도, 평범한 삶에 대해서도 몰라. 사실, 아무것도 몰라.

  노래 가사처럼 말이 돈다. 글을 쓰는 일은 그저 사고를 종이 위로 옮기는 일일 뿐이다. 모든 사고는 문장을 통해 이루어지고, 문장은 실이 되어 베를 엮어낸다. 아라크네가 아무리 베 짓기에 능했다고 하여도 나를 이길까. 아테나의 앞에서 자랑스럽게 내보일 수 있는 베를 언젠가 나는 지을 수 있을까. 글쎄. 나는 아무것도 몰라. 아무것도, 그 무엇도 몰라.

 

 

  오직 나 혼자만 남았다는 감각은 늘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평생에 걸쳐서 억압받아온 사람이라면 더욱. 자유라는 이 거대한 보물을 어떻게 다룰지 몰라, 안절부절 못한다. 지금, 내가 그렇다.

  내게 허락된 것이 무엇이었지? 행복이라는 것이. 언제 허락되었나. 이리 웅얼거리는 것은 설의법이다. 나는 여기서 감탄사를 넣어 영탄법으로 바꾸어볼까 고민한다. 아니, 이건 글을 쓸 때는 하지 않는 고민이다. 내가 지금 글을 쓰지 못하기에 장난을 치고 있을 뿐이다. 그래, 가끔 내게는 하면 안 되는 생각이라는 게 있어. 그 쪽으로 생각을 밀어버리면 정말 죽을 것 같은 생각이, 있단다. 허나 당신은 모르지. 영영 모르지.

  너희도 알잖아. 내가 왜 이리 처참한 운명 속에 내던져졌는지. 과거를 돌아보면 나는 고통밖에 없었다. 부모님은 날 사랑하셨다. 사랑하셨지. 허나 구할 힘이 없었다. 우리의 상대는 나라였고, 단체였고, 분노한 민중이었다. 내 능력은 일개 시민이 지키기에는 너무 강대했다. 비밀로 부칠 수도 없다. 그렇기에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셨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내게 사랑을 주었다. 허나 지키지는 못했지.

  어릴 적의 기억은 실험과 병원이 대부분이다. 나는 몸이 조금 약했고, 능력을 버티지 못할 우려가 있었다. 아니, 그런 핑계에 어울리는 몸이었다. 연구원들은 나를 좋은 실험체로 대했다. 유감은 없다. 아프지는 않았으니까. 그저 괴로웠을 뿐이다. 나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었고, 가끔 괴물처럼 바라보는 눈을 마주했다. 그러나 나는 인간이다. 능력에 걸맞은 몸을 갖추고, 신체구조가 완전히 다르더라도 인간이다. 나는 그들과 자식을 낳을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 같은 종이다.

  가끔 내게 주어진 이런 가혹한 운명에 대해서 불평한 적이 있다. 나는 운명을 감지할 수 있다. 알 수 있다. 바꿀 수 있는 기회는 내게 오지 않았다. 나는 파도에 쓸려가고, 바닷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아주 가끔 단 공기를 폐 속에 채웠다. 왜 세계가 내게 이럴까. 부단히도 울었고 부단히도 고민했다. 허나 이제는 알고 있다. 우리를 버린 신에 대한 복수를, 내게 했다는 사실을. 나는 평생 불행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는 사실을. 그건 인간의 복수고, 꿈이었다. 감히 신의 영역에 닿고자 하는 꿈의 결정체였다.

  그러면서도, 감히. 내게 행복해지라고 말 할 수 있었니.

  닿지 못할 말은 허망하다. 죽은 이는 말이 없다. 나는 무슨 염치로 날 살리기 위해서 죽은 이들에게 말을 거는 걸까. 내 손으로 죽인 이들인데. 죄책감은 늘 목구멍을 틀어막는다. 기도를 틀어막고 폐포 하나하나에 그득히 들어찬다. 밤이면 늘 이래. 사라진 시간감각은 빛과 어둠에 반응한다.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게 참 두렵다. 무언가 보일까봐. 보인다면, 그건 정말 견딜 수 없는 광경일 테니까.

  그럼에도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이 내게서 이성을 앗아가 버린다.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다. 아무에게도 혼나지 않는 꿈을 꾸고 있다.

  아주, 지독한 악몽이다.

 

 

  나는 늘 행복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이룬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스러운 사람을 사랑하고, 친구를 만들었고, 누군가를 구원했다. 그에게 행복을 선물했다. 허나, 이것이 진정 행복인가? 나는 알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알려 달라 절규하고 싶다. 허나 그렇게 한다면, 나는 지금 행복하지 않다 인정하는 꼴이 아닌가? 그럴 수는 없다. 그들의 희생을 허무하게 만드는 일이다.

  …….

  뭘 기대했어.

 

 

  하면 안 될 생각을 하려다가, 참는다. 한참 기다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하다. 이제 내가 절망하고 있을 때 찾아와서 끌어안고 울어 줄 사람은 없다. 조금 이르게 죽으려고 시도했을 때 달려와서 날 치료해주던 사람은 없다. 내가 돌아갈 장소도, 돌아가야 할 사람들도, 지켜야 할 사람들도 모두 사라졌다. 그런데 나는 어린아이처럼, 관심이 그리워 장난을 친다. 언젠가 날 꾸짖어 주기를 바라면서. 언제부터 이렇게 어리광이 늘었지.

  사실, 가끔 사랑을 부정한다. 내가 정말 토트 선생님에게 설레는지 모르겠다. 사랑이 이런 감정이 맞을까? 진실로, 사랑인가. 묻고 싶어지지만 참는다. 나는 아주 못된 장난을 기획하는 아이처럼, 혼자 킥킥거린다. 눈물 섞인 킥킥거림이다. 허나 그것도 웃음인데, 왜 슬퍼 보인다고 이야기하지? 인간의 뇌는 거짓 웃음을 판별하지 못한다. 멍청이처럼 그 조차 진짜 웃음과 똑같은 생리적 반응을 보이고 마는 것이다.

  그럼에도 다들 나를 동정하고, 안타깝게 여기고, 위로하려고 들어.

  내게 필요한 게 위로였던가?

 

 

  직감은 많은 것을 알려준다. 사실 신의 범주에 들어선 직감은 마치 예언과도 같다. 나는 예전부터 감이 좋았고, 지금도 좋다. 알 수 있다.

  내게 안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All the stars have same faces. No, I can't find yours.

 

 

  잘 만들어진 모형정원. 이곳은 만들어진 곳. 인간 대표로 불려온 유이. 아마 그들의 의도가 아니었을 나. 나는 쫓겨날까 두려워 그들에게 필요를 매었다. 나는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다. 구원하고, 손을 뻗고, 행복을 준다. 마지막 부탁이라는 변명을 조금 해 보고, 눈에 보이는 존재를 어찌 내칠 수 있냐고 항변해본다. 허나 우리 모두 답을 알고 있다. 내가 하는 종류의 구원은, 내가 사라지면 사라지는 종류다. 나는 이렇게 사랑을 갈구하는 방법밖에 모른다. 내 필요 속에 너를 묶고, 내가 떠나지 않게 사랑해달라고 애원한다. 이게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지?

  날카로운 물음은 답할 수 없다.

  나는 답을 모른다. 행복하라고 해서, 하고 싶은 대로 했을 뿐이다. 뒷일 따위, 생각하지 않았어.

 

 

  등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나는 애써 무시한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 내가 저질러 놓은 일의 뒷이야기를 보고 싶지 않아.

 

 

  "……셰키나."

  "아, 하데스 씨입니까. 이 시간에 무슨 일인가요?"

  "별이 사라졌다. 이런 일은 네가 아니면 하지 못해. ……괜찮은가?"

  "이 정도 능력은 무리가 가지 않아요. 그저 가렸을 뿐이니까."

  "……그걸 말하는 게 아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

  "글쎄요. 언제, 제가 고민이 없었던 적이 있나요?"

 

 

  웃어 보이면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알고 있다. 당신이 내게 죄책감을 가졌다는 사실 정도는. 하데스, 하데스 아이도네우스. 성은 인간의 것이요, 이름은 신의 것. 그는 불행을 지고 갈 운명이었다. 그래서 내가 뒤틀었다. 그에게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고, 불행이 닥칠 때 쥘 수 있는 면죄부를 주었다. 이게 내 능력이다.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삶에 행복이 있다고 하였지. 허나 이건 이기심이잖아? 이타심이, 언제부터 온전히 선이 되었니? 너희가 내게 준 이타심이 어찌 내게 선이라고 할 수 있는가. 선과 악의 경계는 어디에 있고, 인간과 사랑의 정의는 어디 있는가. 어찌 내가 당신들에게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인가.

  나조차 알지 못하여 이리 헤매는데.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네 감정이 흔들리고 있어서."

  "벌써 그 정도로 당신과 연결되었나요?"

  "평소엔 느껴지지 않아. 지금은, 울고 있나?"

  "설마요. 아무리 저라도 이렇게 대규모로 능력을 펼치고 또 덧씌우는 일은 못해요."

  "……괴롭, 겠군."

  "그래 보여요?"

 

 

  설핏 웃는다. 당신은 혼란스러운 얼굴을 한다. 외면했다. 어차피 내가 당신을 신경 쓸 이유 같은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가넷 빛의 눈동자. 그는 남들과 다른 왼쪽 눈을 가리고 나를 응시한다. 그래, 잘생긴 사람이다. 만약 내가 저 사람을 사랑했다면, 조금 더 비극적인 서사가 되었을까? 흔한 이야기처럼, 사랑의 힘으로 희생하여 당신의 불행을 떠안고 죽음에 이르는 스토리. 나쁘지 않잖아.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고,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었을까?

  조용히 가능성을 저울질한다. 허나 알 수 없다. 그러면, 지금이라도 저 신을 사랑해 볼까? 아주 쉬운 일이다. 나는 그에게 호감이 있고, 사랑이라고 여기는 일은 가볍다. 그럼에도 그러기 싫음은 무엇인가. 어울리지 않게 배려라도 하고 싶어졌나?

  아니, 답은 알고 있다. 나는 지쳤다. 죽음을 위해 발버둥치는 일에 지쳤다. 그리고, 행복에 지쳤다.

 

 

  나는 사실 아주 불행해.

 

 

  나쁜 짓을 하는 김에, 제대로 해 보기로 했다.

 

 

  "하데스씨."

  "……. 왜 부르지."

  "저는 사실, 아주, 아주 불행해요."

 

  나는 무슨 얼굴을 하고 있을까?

 

 

 

*

 

  어설픈 웃음이다. 마치, 아이가 혼나기 위해서 장난을 쳐 놓고 후환을 두려워하는 듯 한 웃음이다. 하데스는 그리 평가했다. 뭐라고 답해야 하는가. 그는 불행이라면 아주 잘 알고 있다. 허나 내가 너보다 더 불행하다 대답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그녀는. 그에게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쥐어준 이가 아닌가.

  그는 제가 할 수 있는 말을 고르고, 보드랍게 다듬는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위로뿐이니, 위로를 하면 된다. 입을 연다. 허나 그녀가 더 빠르다.

 

 

  "행복해야 해요. 행복하지 않으면, 다들 슬퍼할 거야. 화내고, 힘들어 하겠죠. 그러니 저에게는 행복할 의무가 있어요. 그렇게 말 했으니까."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는 그녀의 기억을 허락받은 얼마 안 되는 존재이고, 그녀의 모든 기억을 보았다. 마지막까지. 그녀가 돌아갈 장소가 산산조각 나고 이곳으로 오는 것 까지 보았다. 그러니 저 말의 무게를 안다. 지금 그녀는,

  저를 살리기 위해 해왔던 모든 희생을, 견디지 못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어느새 그녀의 화법에 익숙해진 하데스는 잘 포장된 말 너머의 진심을 볼 수 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그러나 알아듣지 못하는 척 하는 이유는, 들어주기 위함이다. 그녀는 제 입으로 인정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부정하고 있던 사실을 제 입으로 언어화 시킨다. 그러면서 제 세계 속으로 받아들이고, 성장한다. 하데스는 가끔, 그녀의 성장을 지켜보고 싶다고 감히 바란다.

 

 

  "이거, 사실 들고 다니고 있었어요."

 

 

  그녀가 꺼내든 물건에 새겨진 문양은 익숙하다. 지금도 그의 가슴 위에서 그를 불행하게 만들고자 발버둥치는 문양이다. 그녀가 그에게서 분리해낸 저주. 그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저주다. 분명 그녀가 처음 가져간 그의 불행이다. 가장 큰 조각을 떼어내어 버리겠다 하였던 그 불행이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목숨이 위험할 그것을, 어찌 그녀가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어이, 너……!"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습니다. 괜찮아요. 잘 포장해 두었으니까. 이건 제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해요. 그저 '불행'이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모르겠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행복하기 위해서 뭘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렇게 불행을 몸에 지녔어요. 이건,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증거예요. 모든 불행은 여기 가둬져 있으니까, 나는 불행하지 않아. 불행하지 않은 건 행복이야. 이렇게 나에게 이야기하기 위한 표식.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하데스는 그녀의 감정이 미안함으로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차마 말로 하지 못하는 사과가 흘러넘쳐서, 그의 심장을 적신다. 아주 오랜 시간, 그가 가지고 있었던 죄책감. 누군가 그에게 가지지는 않았던 그 감정이, 선명하게 닿아온다. 그녀는 제가 원망 받으리라 확신한다. 그녀의 삶이 그랬으니.

 

 

  "행복은 무엇이고, 사랑은 무엇이며, 꿈은 무엇일까요. 나는 알 수 없어요. 정말 알 수 없어요."

 

 

  그녀는 노래하듯 중얼거린다. 가려진 별빛을 찾는 듯 하늘 위를 올려다본다. 허나 그 곳에 존재하는 것은 무저갱의 어둠. 그가 다스리는 명부에도 존재하지 않는 아주 깊은 어둠. 탐욕스럽게 빛을 집어삼키는 어둠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흘러나왔다. 그녀가 생각한 이미지다. 어쩌면, 그녀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색일지도 모른다. 하데스가 안고 있는 어둠과 같이, 깊고 어두운 것.

  그녀는 그 아래서 편안하다는 듯 웃는다.

 

 

  "저 별이 죽은 자라면, 제 친구들도 있겠죠. 그래서 늘 행복하게 행동하고, 하고 싶은 대로 했어요. 보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이제 지쳤어요. 쨘. 그래서 빛을 가렸답니다."

 

 

  위태로워 보이는 그녀 앞에서, 그는 침묵한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들어주는 일 뿐이다. 감히 같이 짊어지겠다 말 할 수 있는 짐이 아니다.

 

 

  "관측, 방해해서 미안해요."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는 미약하고, 물기 젖었다. 그녀는 갑자기 제가 아주 큰 잘못을 한 양 자신의 세계 속으로 숨어든다.

  하데스는 그녀가 조각조각 부서져 내리고 있다고 느낀다. 분명 희미한 웃음을 짓고 있는데, 그녀는 사라지고 있다. 그 앞에 실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서,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굴고 있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해 보았기에 그런 분위기를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손을 뻗는다.

  손 안에 들어차는 팔은 가늘다. 온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더 꽉 쥔다. 분명 고통이 느껴질 법도 하건만, 그녀는 그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의 너머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

  제 혼자만 보이는 세계를 보고 있다. 그녀의 능력이 제 속에서 날뛰고 있다.

 

 

  "슬픈 행복이 있겠죠? 저는 사랑을 하고 있어요? 글을 쓰고, 그 책을 선물하는 건 꿈을 이룬 거죠? 그러면, 죽어야겠죠. 죽을 수 있어요. 비로소. 그래요, 저는 당신들을 모두 이용하고 있는 거예요. 죽기 위해서. 근데 이걸 왜 이야기 하고 있을까요? 이제 와서 죄책감이라도 느끼고 있는 걸까."

 

 

  그는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그를 구원한 일이, 다른 모든 이를 구원한 일이 모두 이기심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그를 이용하고 모두를 이용했다 이야기하고 있다. 분명 분노해야 할 내용이지만, 그는 그럴 수 없다. 마치 막혀있던 둑이 터지기라도 한 듯, 그녀의 감정이 어지럽게 그에게 쏟아져 내린다. 고통, 괴로움, 슬픔, 상냥함, 절망, 눈물. 압도적인 감정의 파도.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그녀에게 어떤 말이 위로가 되고, 무슨 말이 안정감을 줄 수 있는가.

  그는 그래서 그녀처럼 속마음을 모두 쏟아내기로 한다.

 

 

  "너는, 나를, 우리를 구원했다."

  "당신은 구원을 바랐나요? 그는 구원을 바랐나요? 나는, 당신이 자력으로 일어 설 기회를 망친 게 아닐까요?"

  "나는 행복해지고 싶었어. 그건 확실하다."

  "다른 운명이 있었어요. 제가 없다면 이루어질 운명은 잔뜩 있었죠. 제가 다 망쳤을 뿐이니까."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렇게 행복해 질 수 없었어. 아니, 감히 행복을 바라지도 못했다. 네가, 네가 있었기에 이리 행복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어."

  "거짓말."

 

 

  그녀는 중얼거린다. 하데스는 이해할 수 없다. 그녀의 진심은 이렇게나 절절히 그에게 닿아오는데, 그의 진심은 어째서 그녀에게 쉬이 닿지 않는다는 말인가. 실로 그에게 있어서 그녀의 구원은 희망이었다. 그의 영생에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그는 영영 혼자 살아가야 하였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떠나는 일을 반복해야 하였다.

  그녀는 그 구원이 일시적이라며 자책하고 있다. 허나 그 구원이라도 없었다면 그의 삶은 영원히 어둠에 물들어 있었을 테다. 빛을 품었다면, 어둠을 버틸 수 있다. 어째서 그 사실을 모르고 저리 자책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녀는 여전히 영혼 없는 목소리로 그에게 자책을 이야기한다. 그의 심장은 눈물로 가득 찬다. 그녀의 눈물이다.

 

 

  "저는 당신을 제게 매었어요. 그리고 곧 죽을 예정이죠. 행복하고, 사랑을 하고, 꿈을 이루면. 졸업하면."

  "……."

  "당신은 졸업 자격을 얻었어요. 다들 얻었죠. 조금 있으면 졸업식이에요. 그리고 식이 끝나면 저는 아무도 모르게 죽을 예정입니다."

  "……."

  "거 봐요, 할 말 없잖아. 나는 이기적이에요. 죽고 싶어서 이야기를 만들고, 죽기 무서워서 이리저리 도망 다니죠. 그러면서도 사랑받고 싶어서 모두를 속여요. 나조차도."

 

 

  웃음은 건조하다.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하데스는, 문득 왼쪽 눈이 시큰거리는 것을 느꼈다. 드러내지 못하는 눈이 시려왔다. 그 앞에서 셰키나는, 그에게 제 치부를 드러내 보인다. 오직 그의 앞에서.

 

 

  "저는 사실 불행해요."

 

 

  그 말은 죽기 싫다는 말로 들렸다.

 

 

 

*

 

  밤이면 꿈을 꾸었다.

  불행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아주 지독한 악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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