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creative

키스

admin 2018.11.18 19:02 read.5

  섬세하고, 유리조각 같아서, 아름다우며 부서지기 쉬운 사람. 억겁의 시간을 버텨내면서도 변하지 않은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당신이 신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곤 한다. 시간에서 벗어나, 영원을 살아갈 신이라는 사실이. 그럼에도 당신은 너무나 섬세해서,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부서져 이렇게 마모되어 돌아오고야 만다.

  전쟁, 전쟁이라. 당신이 나갈 필요 없던 곳에서 왜 피를 묻히고 돌아와야 했는가. 외면하라 이야기했다. 저와 함께 도망가자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허나 당신은 너무 올곧은 사람이라서, 검을 들고야 말았다. 아이도네우스와 함께 전장을 누비던 당신은, 늘 혈향을 풍기며 돌아와 나를 보지 않았다.

  상처 입었던 내가 눈을 뜰 때 당신이 옆에 있었던 것처럼, 당신이 눈을 뜰 때도 내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

 

 

  "하데스 씨."

  "……."

  "거기 있죠?"

  "……."

 

 

  정적이 익숙하여 그 너머의 기척을 읽어낸다. 이대로 당신이 일어설 때까지 내가 옆에 있는 게 옳을까? 아니면, 당신의 품속에서 온기를 나누어 주는 것이 좋은가? 확신할 수 없어서, 나는 눈을 감는다. 미안해요, 용서 해 줄래요?

 

 

  "들어갈게요."

  "잠시, 기다려……!"

 

 

  다급한 목소리에 묻어있는 물기를 무시하고 열쇠를 돌린다. 정말로 제가 들어오지 않길 바랐다면 당신은 제게서 열쇠를 가져갔어야 했어요. 처연한 웃음으로 언어를 대신했다. 결국 먼저 용기를 내야 할 사람은 나다. 당신에게 계기를 주어, 어둠을 헤칠 힘을 줘야 하는 것은 나뿐이다.

  의자에 걸터앉아있는 당신의 얼굴에는 피가 말라붙어있다. 어딘가 처연한 눈을 하고, 당신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제 주변인 중에는 이리 쉬이 눈물 흘리는 이가 없어, 저는 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는 사람에게 하는 위로는 몰라. 그래서 나는 늘 내 멋대로 이야기한다.

 

 

  "울지 말아요."

 

 

  손수건으로 닦여나가는 피, 도망치지 않고 제 허리를 감아오는 손. 저는 시종일관 부드럽기 위해 노력하며 그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낸다. 붉게 물들어가는 손수건, 희게 질린 당신의 얼굴. 두려움밖에 받아보지 못하여, 두려워하는 법 밖에 모르는 신아.

  허리께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잘게 떨리고 있다. 제가 손을 두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여, 그의 팔을 잡으면 놀라서 떼어낸다. 꾹 눌러 쥐는 주먹이 손바닥의 온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모양이라, 저는 그의 손등을 부드럽게 누른다.

 

 

  "하데스 씨,"

  "이제 괜찮으니, 나가봐도,"

  "하데스."

  "……."

  "괜찮지 않아도 돼요."

 

 

  허리를 숙여 그의 이마에 입술을 눌렀다. 얇은 피부 너머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온기를 의식하며, 저는 그대로 느직하게 속삭인다. 뭉개지지 않은 발음으로, 더운 숨이 그에게 닿을 것을 알면서도.

 

 

  "괜찮지 않을 일이니까."

 

 

  그리고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입맞춤. 당신의 표정을 볼 수 없어, 나는 가벼운 입맞춤을 퍼붓는다. 이마에, 당신이 늘 가리던 왼쪽 눈가에, 신의 색을 가진 오른쪽의 눈가에, 눈꺼풀에, 볼에, 가볍고 상냥하게. 나는 여기 있다 고하듯 가벼운 입맞춤을 퍼붓는다.

  그리고 마침내 왼쪽 뺨에 손을 가져다 대고, 조심스럽게 그와 눈을 맞춘다. 몇 초 쯤 되는 짧은 시간. 당신의 숨이 내게 닿고 내 숨이 당신에게 닿을 시간 동안, 당신의 흔들리는 눈을 마주하면서.

  분명 당신의 무언가가 녹아내렸다.

 

 

  "입, 맞춰도 괜찮겠어요?"

  "……."

  "뭐, 이건 과하려나요. 미안했어요."

 

 

  정적. 그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저를 응시한다. 선명한 금색과 금빛의 막이 씌워진 눈이 맞물린다. 허나 당신의 답은 없어, 돌아가려고 했다.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할 입맞춤은 폭력밖에 되지 않을 따름이라, 내가 이리 행동하는 건 당신을 망치리라 생각하여.

 

 

  "그런 게 아니다……!"

 

 

  다급하게 팔을 잡아끄는 손, 허리를 휘감는 팔. 조금 다급하게 겹쳐진 입술.

  목을 덮은 손은 크고 따뜻해서, 당신을 조금 안타깝게 여기고야 만다. 어지럽게 흔들리는 눈동자를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다. 다급하게 파고드는 당신을 묵인한다. 

 

 

  작게 벌린 입술사이로 침입해서는 간원하듯 두드린다. 저는 애초에 막을 의지도 없었던지라, 그가 파고드는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이다. 신의 육체도 인간과 다르지 않구나. 멍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 입 속에 술과 비슷한 무언가의 맛이 감돌기 시작한다. 넥타르의 독특한 향이 입 속을 가득 채우고, 결국 술인 그것은 제 정신마저 몽롱하게 만든다.

  열로 달뜬 정신 너머 뺨 위로 물방울이 흐른다. 제 것이 아닌 눈물이 문득 저까지 서럽게 만들고 있다. 신들의 음료 너머로 느껴지는 달큰한 향에서 저는 당신의 보드라운 부분을 떠올려버리고, 결국 상냥할 수밖에 없는 자에게 연민 비슷한 것을 느껴.

  결국 고개를 조금 더 꺾으며 당신이 편하게 만드는 일 밖에 하지 못해.

 

 

  숨결과 소리마저 집어 삼키고 양껏 온기를 들이마신 당신이 더 이상 다급해하지 않을 때, 상냥함으로 저를 푹 적시고 거칠어진 숨이 진정될 때 까지 제 허리를 말없이 끌어안을 때. 저는 또다시 나직하게 속삭이고야 만다.

 

 

  "하데스."

  "……."

  "우리 어디 멀리 도망가서 살까요?"

 

 

  시간의 틈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영원 속으로 영영 도망치고 싶어진다. 

7 노을진 하늘 2018.11.18 2018.11.18 4
> 키스 2018.11.18 2018.11.18 5
5 우천 2018.11.18 2018.11.18 3
4 [ 드림 평일 전력 ; DOLCE ] ❥ 제 77회 주제 : 만약에 2018.11.18 2018.11.18 8
3 시각 상실 (1) 2018.11.18 2018.11.18 11
2 드림전력 [당신의 수호천사] 167회 주제 '목도리' 2018.11.18 2018.11.18 5
1 기억 2018.11.18 2018.11.18 8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