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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네."

 

  여기도 계절이라는 게 존재했지. 새삼 공기에서 겨울 향이 나기 시작하니까 실감이 난다. 너무 평화로운 곳이다, 여기는. 모형 정원. 그래, 말 그대로 모형. 이곳은 만들어져서 격리된 세계. 그리고 나는 이방인.

  사실, 원래 있던 곳이 아닌 이상 어디든 상관없긴 하다. 애초에 이레귤러라는 존재가 그런 위치 아닌가.

 

 

  "수업 들어가기 싫다……. 근데 이번에도 땡땡이치면 도서관에서도 쫓겨나겠지? 싫다……."

 

 

  도서관에서 죽치고 살 수는 없을까- 물론 천문부의 활동도 좋아하지만. 조금. 그래. 그렇게나 책이 많은데 겨우 1년 만에 다 읽으라는 건 좀 너무하다. 사탕을 줬다가 뺏는 것도 아니고 뭐야. 평범한 인간으로는 볼 수 없는 책들이 대부분인데, 못 본다니. 차라리 고문을 하라고 그래.

 

 

  도서관을 지키는 성격 나쁜 선생님을 떠올렸다. 확실히 잘생기고, 수업을 들을 때는 목소리가 좋아서 집중하는데 별로 불편함도 없다. 근데 거기까지야. 정말 빈 말을 하고 아부를 떨어도 별로 성격이 좋다고 할 수는 없는 인물이다. 극존대를 쓰지 않으면 끝장이라니, 내 학년 부장도 그러지는 않았어.

 

 

  "아, 쉬는 시간 끝나간다."

 

 

  언제부턴가 늘어난 혼잣말은 이제 거의 사용하지 못하는 모국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말을 중얼거린다. 아, 집에 가고 싶어.

 

*

 

 

 

  방에서 털실과 대바늘을 찾았다. 도대체 왜 있는 걸까, 이거. 심지어 색도 검은색과 회색. 참 누군가가 떠오른다고 해야 하나? 일단 주저앉아서 코를 뜨기 시작했다. 정말, 정말 오랜만에 하는 취미활동이다. 여기서는 글 밖에 할 게 없었으니까. 숨만 쉬고 사는 건 지옥인데, 아무도 몰라준단 말이야.

  오랜만에 하는 일이지만 딱히 속도가 느려지진 않았다. 금세 늘어나는 천. 뭔가 무늬를 넣고 싶었는데 바늘이랑 실만 가지고 도안을 짜기도 애매해서 그냥 줄무늬로 뜨고 있다. 색이 괜찮아서 이렇게만 떠도 꽤 볼 만 하니까.

 

 

  "두 개 정도 만들 수 있겠네. 선물할까?"

 

 

  단순 노동은 늘 머릿속에 많은 생각을 가져온다. 다음 소설의 주인공은 운명의 여신으로 해볼까? 아니면 세계관을 그 쪽으로 짜던가. 운명의 실로 베를 짜는 종족. 그리고 그 속에서 유일하게 실을 끊을 수 있는-

  아. 너무 길어져버렸다.

  눈대중을 해봐도 이건 내가 두르기에 너무 길다. 젠장, 이건 둘렀다가는 푹 파묻히게 생겼네. 하나 더 떠야겠다. 어차피 실은 넉넉하니까.

 

 

  그 날 밤은 내내 뜨개질을 했다. 새 소설의 아웃라인은 해가 뜰 때 대충 윤곽이 잡혔고, 내 목도리는 커플 목도리가 되었다.

 

*

 

 

 

  "이거 어쩌지."

  "선물하는 게 어때요?"

  "그럴까?"

 

 

  쿠사나기에게 주려고 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이야기한다. 에에, 딱히 줄 사람 없는데. 어차피 내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 (신)이 얼마나 있겠는가. 같은 인간인 쿠사나기, 그리고. 어……. 하데스씨? 같은 천문부니까. 아니면……. 어,

  딱히 없다. 나도 양심이라는 게 있어서 토트 선생님이랑 친하다고는 말을 못하겠다. 그건 좀 일방적인 갈굼관계지 딱히 친한 건 아니야.

 

 

  "마침 다음 시간이 부활동이니까 가서 말 해 봐요."

  "어, 그래야지……."

 

 

  내 목도리를 두른다. 거의 새벽까지 밖에 서 있는 천문부의 부활동은 옷을 잘 챙겨 입지 않으면 얼어 죽기 딱 좋다. 저번에는 춥다고 결국 하데스씨 옆에 달라붙어서 별을 관찰했지. 그 다음 날 내가 쪽팔려서 그를 보지를 못했다.

 

 

  마치는 종이 울린다.

 

*

 

 

 

  "하데스씨."

  "……불렀나."

  "혹시 목도리 하실래요?"

  "네가 두르고 있는 것 말인가……? 딱히. 춥지는 않아."

  "어, 그건 아니에요. 어제 뜨다가 길이 조절에 실패해버려서, 똑같은 목도리가 하나 더 있거든요."

 

 

  쨘. 입으로 효과음을 내 가면서 목도리를 들어보였다. 나름 이런 수공예 종류에는 자신이 있다. 저거 색이 단순해서 그렇지 나름 따뜻하다고. 예전에는 팔아서 용돈벌이도 한 적 있는데.

 

 

  "내게, 주는 건가?"

  "네. 저 아무래도 친한 사람이 하데스씨 밖에 없어서요. 그거 너무 길어서 제가 하면 푹 파묻혀요."

 

 

  말하면서 어제 잠깐 내가 둘러보았던 모습을 내 위에 덧씌웠다. 너무 길어서 코 까지 다 덮였지. 눈만 빼꼼 내놓은 모습은 이 날씨보다는 극지방에 더 어울릴 모습이다.

 

 

  "……."

  "아니, 웃기기는 하지만. 그렇게 웃음을 참는 얼굴이시면 제가 좀, 쪽팔려요."

  "……아니다."

  "이런 얼굴이었거든요?"

 

 

  방금 그의 얼굴을 허공에 띄워 보여주니 시선을 피한다. 진짜 웃겼다는 거 아냐. 아마 그러고 도서관에 갔으면 쫓겨났겠지?

 

 

  "어차피 천문부 활동은 춥잖아요. 커플 목도리인 셈 치고 같이 하고 다녀요."

  "……커플?"

  "딱히 남녀 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들은 반친구끼리도 보통 그런 거 맞추니까요. 제가 하데스씨랑 친구라고 하기에는 좀 어색하지만."

 

 

같은 반은 맞잖아요? 웃어보였더니 하데스씨는 조용히 시선을 하늘로 돌린다. 뭐, 거절하지 않았으니까 됐다. 억지로 떠넘기듯 해치우기는 했지만 목도리도 해결했고. 실 남은 걸로는 장갑이나 떠 볼까?

 

*

 

 

 

  도서실. 안온한 정적도, 사방에 가득한 책도 마음에 든다. 여기서 기숙사 대신 살 수는 없을까? 일주일에 오 일 정도만 머물 수 있어도 소원이 없는데. 늘 하는 생각을 중얼거린다.

  아, 머리 복잡해. 내가 방문 안 잠그고 나왔던가? 푹 하고 책상에 늘어졌다. 아니, 도대체 왜.

  실, 왜 늘어났지.

  그렇다. 어제 방에 돌아가니까 실이 또 늘어나있었다. 또 검은색과 회색. 볼 때마다 누구누구 머리색이 생각나서 환장하겠다. 아니, 애초에 그 색이 아니기는 하지만. 왜 이러지.

 

 

  잠을 못자서 이러는지, 아니면 글을 오래 못써서 그런지 사고방식이 자꾸 어긋난다. 어제 실을 담은 상자가 화수분인가 싶어서 공책을 넣어놓고 기다렸는데 그건 아니더라. 그러면 누가 넣었다는 소리 아니야. 방 청소 해야 하나?

  아- 몰라.

  쫓겨날 각오를 하고 선생님의 위에 목도리의 영상을 덮어씌워 보았다. 늘 목에서 가슴까지 훤히 드러내고 다니는 거, 너무 추워 보였단 말이야. 그는 괜찮을지 몰라도 내가 춥다. 시각적 추위 유발자.

  앞모습은 모르겠지만 뒷모습은 꽤 괜찮다. 머리색에 어울리는 거 같고.

 

 

  "토트님."

  "……무슨 용무냐?"

  "혹시 목도리 받으시겠습니까?"

 

 

  아니, 표정만 봐도 알겠다. 저 표정은 분명 경멸이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마라. 여기는 도서실이다."

  "하데스씨도 드렸는데, 그 겨울이니까."

 

 

  표정이 안 좋다. 아니, 좋게 말해서 안 좋고, 저건 분명 더러운 표정이다. 내가 저 신에게 호감이 있어서 이러는 것도 아니고 뇌물 좀 먹여보겠다는데. 저런 표정이냐.

 

 

  "싫으시다면 죄송합니다. 실례했습니다."

 

 

  이번 시도도 실패다. 도대체 학교 마치고 여기 머물 수 있는 호감도를 얻으려면 내가 뭘 해야 하지? 젠장.

 

*

 

 

 

  이후 하데스씨는 꽤 자주 목도리를 하고 다녔다. 뭐, 이걸로 미묘한 유대감 같은 게 생겨서 다행이지만.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선생님이 날 갈구기 시작했다. 특히 목도리 하고 온 날에. 아니 자기만 안 하면 되지 왜 내가 하는 것도 갈군다는 말인가.

 

 

 

  야자가 없다는 것 빼고는 더 힘든 것 같은 학창시절이다. 내 인생 왜 이럴까.

 

2016.12.01 첫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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