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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글

admin 2018.11.18 01:19 read.2

  가거라

 

 

  망설이느냐

  무엇을 꿈꾸며 서성이느냐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야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욕지거리 같은 천박한 언어가 나를 가리고, 너를 가리고, 세계를 가리어도. 꼭, 옮겨야 할 때가 하루는 오고 만다. 웃음소리를 흘리면 네가 안심할까. 무슨 말을 해야, 네게 내 마음이 닿을까. 어리고 미숙한 내 사랑스러운 사람. 내가 당신보다 어리다고 하여도, 어린 사람을 안타까이 여기지 못할 이유는 없다.

  당신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허겁지겁 달려와 나를 붙잡으려하는 소리가 들렸다. 붙잡혀 줘야 할까. 내가, 내가 당신에게 붙잡혀줘야 할까. 그렇다면, 그렇다면.

  아아, 다 부질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카뮤.”

 

 

  어색한 이름이다. 어색하다. 하지만, 나는 너를 살리기 위해서 내 기억을 내어줬는걸.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내놓으라 하였다. 손을 내어주고, 글을 내어주고, 음악을 내어주겠다 하여도 굳이 당신의 목숨을 원하였다. 그리하여 내 기억을 내어줬다. 조각나고 단편적인 기억이, 내 안의 당신을 죽여 버렸다.

 

 

  “무어라, 변명이라도 해 봐라. 들어주도록 하지.”

  “…….”

  “평소처럼, 그 세치 혀를 놀려 듣기 좋은 말이라도 해 보라고 하고 있지 않나!”

 

 

  망설이느냐, 무엇을 꿈꾸느냐. 노을이 진득하게 내린 하늘, 숨을 막는 모든 공기가. 아아, 나는 이대로 사라져야 할 운명이라고 모두가 고하고 있는데.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원해 여기서 망설이느냐. 마지막 한 발이 남았는데.

 

 

  “제발,”

 

 

  내가 운명을 당신에게 쥐어줬던가?

 

 

  “가지마라.”

 

 

  말 하지 않아도 모두 알아차리는 꿈을 꾸었던가? 우스운 이야기를 꿈꾸고 있구나. 기묘하게 가라앉은 생각, 또 다른 내가 존재한다면 이 이야기를 희극이라고 규정할까. 이건 당신의 성장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카뮤.”

  “그 이름이 아니라, 다른 이름을 네가 주지 않았나!”

 

 

  미안, 까먹었어요. 기억이 나지 않는걸. 날 욕해도 좋아, 그러니까 당신도 날 잊어줘. 내가 함부로 규정해버린 당신을 내버려. 괜찮아, 당신은 아직, 한참 시간이 있잖아. 내가 감히 엿 볼 수 없는 빛나는 운명이, 시간이 있잖아.

  웃었다. 나는 소리 없이 웃었다.

  뒤돌아 걷는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떠오르려나. 그럼 오늘의 이 저무는 해는 내 것으로 하자. 내일의 여명을 당신에게 쥐어주고 나는 이 죽어가는 노을을 손에 쥐자. 가거라, 내 무거운 납과 같은 망설임 다 등에 지고 뛰어들겠다. 무엇도 의미가 없어졌으니, 내 생에서 홀로 찬란하게 빛나는 하나의 미련을 안고 나는 가련다. 저 멀리, 당신이 나를 영영 찾지 못할 곳으로.

  하늘이 맑구나. 구름 하나 없는 하늘이, 평원이, 저물어가고 있다. 나는 저물어가고 있다. 죽음과, 삶과, 음악과, 가사 모두를 떠안고. 내가 당신의 썩은 부분 모두 지고 갈 테니 당신은 내내 고고하게 빛나소서. 그 냉정한 눈으로 내 죽음을 훑어 장례식 한 번 치러주면 내게 남은 미련은 없습니다. 

 

 

2016.08.10 첫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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