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이 아닌 대립 AU입니다.
*드림주는 오너 이입입니다.
*전투신이 있지만 묘사가... 매우... 조잡하답니다...
아, 귀 아파. 건조한 생각을 하면서 총알을 갈겨댔다. 수많은 사람이 일시에 총을 쏘는 소리라니, 짜증나다 못해서 다 불이라도 질러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럼에도 지겹도록 울리는 이 총소리가 익숙하다. 비명소리, 절규와 명령을 위해 소리치는 소리. 부질없는 짓을 하면서 발악하는 꼴. 그러게 왜 먼저 도발을 했을까?
뭐, 저들에게 죄가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상부의 명령에 까라면 깔 존재들 아닌가? 그건 알고 있으니까. 알고만 있다.
“어차피 죽을 거 그냥 죽어주세요, 귀 아픕니다. 총알 낭비해봤자, 한 방도 맞추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냥 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발악하면서 총을 쏠 줄은 몰랐다. 어차피 몸을 살짝 돌린 정도로 날아오던 총알은 제게 박히지 못한 채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 그는 다시 절망 속으로 빠져든다. 거 봐요, 내가 낭비라고 했지?
“왜 제 손으로 명을 단축합니까? 어차피 살려 줄 생각도 없었지만.”
“괴물새끼가…….”
“괴물은 맞는데 새끼는 아닙니다. 절 언제 봤다고 그렇게 욕이에요? 점잖지 못하게 말이에요.”
이미 사지가 못쓰게 되어 바닥에서 바르작거리는 주제에, 입만 살아서는. 투덜거리면서 입에 총구를 쑤셔 넣었다. 곧 죽을 놈이 눈만 살아서 흉흉하다. 짜증날 정도로. 어차피 죽으면 저 눈도 죽고 썩어버리겠지.
“살려달라고 빌지 않은 건 좀 대단하네요. 그 정도는 인정해 주겠습니다.”
이유모를 짜증과 변덕. 방아쇠를 당겨버리면 날아가는 머리, 비산하는 액체, 질척하게 변한 땅. 신발이 진흙으로 변해버린 흙을 밟아 질척하고 젖은 소리를 낸다. 아, 이래서 전투할 때는 아스팔트나 포장 된 곳이 좋다. 흙은 이렇게 질척해져서 별로야.
몸에 밀착한 청바지와, 가볍고 움직이기 좋은 소재의 웃옷. 흔히 볼 수 있는 가벼운 가격의 브랜드. 오면서 산 옷을 감흥 없이 훑어보았다. 정장을 차려 입고 오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버리려고 산 옷인데, 꽤나 마음에 든다. 이미 피와 다른 액체로 범벅이 되어서 다시 입기는 글렀지만. 나름 안 찢어지게 신경 썼는데. 나중에 가서 태워야지.
처음에는 끊임없이 달려들더니, 이제 제 목숨 아까운 줄은 아는지 달려들지 않는다. 빨리 끝내고 싶은데. 더 안 오나. 그럼 내가 가야지.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죄도 없고, 연약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죄가 없지야 않겠지만 내 원한에 대한 죄는 없다. 그래도 나도 사람을 잃고 바보처럼 있으면 좀 그렇지 않은가? 이 모든 피는 죽은 동료의 복수를 위해서! 라고 말하면 죽은 부하들이 저승에서도 호흡곤란으로 다시 죽어버릴지도 모르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소리를 지르며 어설프게 달려드는 사람의 다리를 걸어버렸다. 제대로 자세도 잡지 않으니까 그렇게 균형을 쉽게 잃어버리지. 게다가 그 이상한 기합은 뭐야? 뒤지려고 환장했냐? 왜 이렇게 머저리들이 가득한지 모르겠어. 그러면 대가리 수나 작던가. 뭐, 이제 이곳에 남아있는 사람은 얼마 없지만.
다 죽인 건 아니다. 아무리 나라도 이런 짧은 시간동안 다 죽이는 건 무리. 반 정도는 돌아가게 두었다. 이렇게 사람을 놓아줬으면 누구 하나 지원군을 요정할 만도 한데, 더 오는 사람이 없다. 부러 누군가 저를 저격할 수 없는 위치를 골라서 시비를 걸었는데 보람도 없게. 아, 진짜 그만둬야하나.
쎄한 느낌에 급히 몸을 피했다. 발을 치우고 몸을 돌림과 동시에 제가 서 있던 자리에 총알이 박힌다. 치솟는 카타르시스. 반응이 몇 초만 늦었더라도 저 총알은 몸에 박혀 있었겠지! 그 사실이 주는 스릴에 절로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질척이는 땅을 밟고 오는 구두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고, 그 사이로 심장소리가 크게 치솟는다.
이제야!
입술 밖으로 터져 나올 듯 부푸는 웃음을 억지로 내리 눌렀다. 굳이 웃어서 이 분위기를 깨뜨릴 이유가 하등 없다. 얼마나 기다리던 사람인가! 그를 만나기 위해 제가 얼마나 발버둥 쳤던지! 그를 위해 죽인 사람들의 피를 모으면 호수를 만들 수 있다. 그를 위해 사용한 탄피로 성을 쌓을 수 있겠지! 그토록 소심하게 굴속에 숨어 나오지도 않던 인간이, 어쩐 일로 이리 친히 행차하셨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전장이나 전투와는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는 외양이다. 피로 젖고 이리저리 더러워지는 이 바닥 위에서 이질적으로 흰 정장. 마피아나 뒷 세계의 인간보다는 오히려 아이돌이나 신에 가까운 외모. 이 일보다 다른 일을 찾는 쪽이 저 얼굴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뭐, 저 안에 든 알맹이가 다른 인간들에 비할 바 없이 잔인하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지만.
대화의 서두를 떼는 말을 아무리 고민하여도, 그에게 어울리는 조롱을 찾을 수가 없다. 확실히 저 얼굴 앞에서 심한 말을 하는 건 별로 내키지 않으니까. 그런 의미로 보호색이라도 되는 건 아닐까 싶다. 반반한 얼굴로 방심하게 만들고 총을 탕! 같은 전개로.
저렇게 차갑게 생기면 방심도 못하겠지만, 정신을 빼놓는 외모라는 사실은 변함없지 않은가?
“웬일로 고귀하신 분이 이곳까지 행차를 다 하셨습니까?”
“네놈이 이렇게나 사람을 죽였으니. 오기를 바라고 일을 벌인게 아닌가? 설마 모르고 하는 말은 아니겠지, 계집.”
“계집이라, 그리 기분 좋은 호칭은 아니군요. 제 이름을 뻔히 알면서 그러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네놈 따위에게 불러줄 이름 같은 건 없다.”
“너무한 말씀이네요, 카뮤. 저는 당신에게 불러드릴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나름 줄 수 있는 최고의 상냥함을 담아서 그에게 웃어보였다. 정말 저 얼굴을 마주하면 제대로 짜증을 내던지 도발을 할 수가 없다. 저렇게 예쁘게 생긴 건 반칙 아닌가? 정말 지독히도 전장에 안 어울리는 사람.
최대한 상냥하게 말하는 척 하기는 하였으나, 비꼬는 말투가 역력한 단어들이 그의 신경을 긁는다. 당장 보이는 대로 저렇게 발끈해서 어조부터 바뀌는 꼴이, 어찌 저런 이가 협상을 할까. 여전하네. 저리도 반응이 보기 좋으니 건드리지. 그 자신이 놀려먹기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영영 모를 인간 아닌가. 낄낄거리는 저속한 웃음이 뱃속에서 돌아다닌다. 결국 저는 그 웃음을 입술 밖으로 날카롭게 내던진다. 쓸모없는 일이지. 어차피 이대로 웃음을 터뜨려 봤자 돌아올 것은,
그래. 이렇게 총알뿐이다.
“대화 도중에 총을 쏘는 것은 어느 나라의 매너입니까? 아, 혹시 당신의 조국으로 유명한 그 실크팔레스의 매너인가요?”
“그 입 닥쳐라, 우민!”
“아이쿠, 이러다가 정말 맞으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쇄도하는 총알은 날카로우나, 으르렁거리는 꼴이 우스워 더욱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제 나라를 찌르면 저렇게 격하게 반응한다는 소문이 있더니, 진실이었던가. 어차피 총알은 좀 있으면 떨어진다. 그 때 까지만,
젠장. 팔을 스쳤다.
전투를 한지 몇 시간이나 됐더라? 그 수많은 총알 속에서도 생기지 않았던 상처가, 겨우 몇 분 만에. 상스러운 욕이 날카롭게 뇌 속을 난도질한다. 흘러내리는 피, 익숙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고통. 짜증스러운 생각이 확 밀려나온다.
마지막 총알이었는지 제게 더 이상 총알은 날아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상처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오갈 데 없는 분노는 욕으로, 짜증스러운 몸짓으로 표출된다. 조준조차 하지 않고 총을 갈긴다. 망할 새끼, 한 발이라도 맞아라. 그 재수 없는 흰 옷이 더러워지는 꼴을 봐야 제대로 분이 풀릴 양 싶다. 허나 마구잡이로 쏘아대는 총알에 맞을 리가 없다. 그렇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얄밉게 한 발도 맞지 않는 꼴을 보니 부아가 치미는 건 사실이다.
“이게 네놈이 보여주는 재주의 끝인가?”
“그렇게 도발해도, 근접전에서 제가 불리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여전히 겁 많은 우민이로군.”
“생존을 꾀하는 것은 겁이 많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현명하다고 하는 법입니다, 아름다운 백작님?”
“한심한 말이다, 네놈이 오지 않겠다면 내가 가도록하지.”
괜찮은 척 꾸몄지만 평정이 깨졌다는 사실은 이미 선명하게 보이고 있다. 썅, 짧게 욕을 내뱉는다. 도발이 심했나, 여기서 도망쳐봤자 뼈도 못 추릴게 뻔한데, 아, 적당히 해야 됐어.
검의 날이 몸을 파고들기 직전에 틀었다. 빠르게 쇄도하는 검이 이상적인 라인을 그린다. 가까스로 몸을 숙여 피하지만 머리카락은 잘려나간다.
망할,
피지컬의 차이가 너무 커서 기교를 부릴 시간이 없다. 아, 이래서 전면전으로 가기 싫었는데. 손에 익숙한 나이프를 쥐고, 저도 달려들었다. 아무리 답이 없어 보인다고 하여도, 일단 장검은 안쪽으로 파고들면 답이 없는 법이다.
달려드는 검의 궤적을 피해서 더욱 안쪽으로 파고들고, 가까스로 검의 진로를 피한다.
“총과 폭탄이 난무하는 시대에 검이라니, 구시대 적, 이네요!”
아, 혀 깨물 뻔 했어! 짜증스럽게 몸을 굴리고, 멀어지면서 그의 옷을 찢어놓는다. 카뮤의 어깨 위에 걸쳐져 있던 마이는 이미 저 멀리 날아가 버린 지 오래. 본디 뒤에서 싸우던 이라 그의 전투 패턴을 파악하지 못했다.
다시 검을 피하고, 공격을 시도하고. 이미 한 번 드러난 패턴은 그에게 먹히지 않는다. 욕설이 혀끝에서 간질거리고, 내뱉을 시간조차 없다. 다친 팔이 욱신거린다. 아, 이거 잘못하면 당할지도 모르겠는데.
애초에 죽일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게 불리하기 마련이다. 서로 죽일 수 없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기는 하고 있으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없는 상태에서는 그에게 불리하다. 아무래도 피지컬의 차이가,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는 고통, 순간 풀려버린 다리. 망할.
“우스운 꼴이군, 계집.”
“상처를 그렇게 쥐어버리면, 불리하지 않겠습니까.”
팔에서 올라오는 고통이 절로 이를 악물게 만든다. 어이없게 끝나버린 싸움, 이대로 제압당하면 인질이 될 뿐인가? 그럴 바엔 죽는 게 좀 더 나은데. 제가 죽으면 조직이 엉망이 되겠지. 엿같은 상황. 자결을 할 수도 없다. 아, 돌아가서 진이한테 뭐라고 하지.
“싸움과 살육의 대가는 알고 있겠지? 자세한 이야기는 돌아가서 하도록 하지.”
“이대로 죽여라! 라고 하고 싶네요, 당신과 할 이야기는 없습니다. 카뮤.”
“유감스럽게도 이쪽은 할 이야기가 많아서 말이지. 네놈이 죽인 내 직속대만 몇인지 알고 있나?”
“그런 거 일일이 세지 않은지 아주 오래 됐습니다. 죽인 사람이 몇인데 그걸 세고 앉아 있습니까?”
당당한 척 하고 앉아 있지만, 상황을 타파할 방법을 찾아서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굴리고 있다. 이대로 끌려가면 정말 크게 엿되는건데. 뭔가 답이, 나와야.
높고 날카로운 소리가 새 소리를 가장하여 울렸다.
지원인가? 저 쪽의? 아니, 우리 쪽인가. 또 바꾼 거야? 어떻게든 알아듣기야 하겠지만, 이렇게 자주 바꾸면 어색한데.
카뮤의 시야 너머, 제 시야의 마지막에나 들어올 위치에 우리 쪽 사람이 보였다. 아슬아슬하게 움직이는 걸 보니까 많은 사람은 오지 않은 양 싶고, 저도 빼내기 위험한 인원이다. 제가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카뮤? 잠깐 이 쪽 봐 줄래요?”
“무슨 속셈으로 하는 짓이지?”
“이런 속셈이요.”
피가 잔뜩 묻은 손으로 그의 볼을 쓸어내렸다. 희고 아름답던 얼굴에 엉망으로 핏자국이 새겨지고, 미끄러진 손이 백정장을 더럽힌다. 결벽증이 도진 그의 표정이 팍 구겨지고, 순식간에 빈틈이 생긴다. 이때가 기회다.
“먼저 시비 걸고 떠나가는 건 취향이 아니지만, 잘 있어요.”
가벼운 입술의 접촉.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는 소문을 듣고 저지른 일인데, 반응이 아주 우습다. 굳어버린 순간이 저를 놓아줄 틈을 만들고, 상처를 감수하고 탈출했다.
욱신거리는 팔과 피가 흐르는 다리.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다친 게 얼마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결국 저는 거의 쓰러지듯 탈진해 버리고, 대기하던 조직원이 저를 챙긴다.
“빨리, 저 인간이 움직이기 전에 돌아가야 합니다.”
흐지부지 끝나버린 전투에 아쉬움이 남기는 하나, 이대로 붙어 있어봤자 이쪽의 피해만 더 크다. 짜증스럽게 얼굴에 튄 피를 닦아내고, 흐릿해지는 의식을 부여잡는다. 다시 만난다면, 기필코 그 반반한 얼굴에 칼집을 하나 내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