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생일 축하라는 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을 진지하게 물어보는 눈동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파르바네는 나름대로 진지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그 고민인 즉슨, 어떻게 해야 카뮤에게 가장 와 닿는 생일 축하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지극히도 단순한 고민이었다. 1월 23일. 새로운 1년이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은 겨울. 선배의 나라가 이 때 겨울인지 여름인지 알 수 없지만, 겨울이리라 생각했다. 그는, 겨울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니까.
1월이 되기 전부터 파르바네는 생일을 축하할 방법을 고민했다.
처음에는 그를 본국에 데려다 주려고 생각했다. 분명 고향이 그리울 테니까. 하지만 그녀는 카뮤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야 말았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마치 후회해야 할 일처럼 들린다. 아냐, 나는. 파르바네는 울컥 치솟는 눈물을 가리려고 얼굴을 손에 묻었다.
그녀는 그가 본국에 가서 떠올릴 이야기가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이아몬드 더스트가 아름답던 날 태어난 아름다운 소년. 파르바네를 온전히 믿고 털어놓은 이야기는 덤덤하게 이야기해서 더욱 아팠다. 그의 20년을, 지금까지 살아온 빛나 마땅했던 시절을 그녀가 어떻게 보상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녀가 보상해야 하는 시절이 아니라고 하여도 그녀는 보상하고 싶었다. 카뮤에게, 행복에 잠겨 죽을 만큼의 행복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녀의 길지 않은 삶을 되짚어 보았을 때, 그녀는 가족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했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 연주가, 인정과 칭찬이 가장 행복하였고, 빛나는 기억이며, 파르바네의 근간을 이루었다. 그러나 카뮤의 생일을 같이 축하할 가족은 누가 있지? 그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며 쫓아낸 어머니, 후계의 자리를 위협하던 배다른 형, 그의 어머니가 진정으로 사랑한 아버지 다른 동생, 존경해 마지않았지만 병으로 죽어버린 아버지. 그리고 충성의 대상이며, 그의 삶을 바치고자 마음먹었던 사슬인 여왕. 그 누구도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선배가 원한다면 마땅히 갈 수 있게, 데려올 수 있게 만들 수 있지만. 그는 분명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그녀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는가?
파르바네는 그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인생에 존재하는 몇 개 되지 않는 행복한 기억은 모두 가족으로 인한 것이었고, 그 다음으로 존재하는 것은 음악으로 인한 것이었다. 음악이라면 그에게 언제든지 선물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은? 파르바네는 문득 에드워드와 지호를 떠올렸다. 그들은 물론 제 가족이다. 슬픔에 매몰되어 보지 못했던 저를 받아들여준 상냥한 가족이다. 하지만, 그들은 카뮤의 가족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선물처럼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저 자신이 역겨워서, 파르바네는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버렸다.
“정말, 무엇을 선물해야 하는 거야……."
온 세상의 재화를 모두 모아다가 선물하고 싶다. 명검이라고 불리는 것들. 이름 높은 장인의 갑옷. 마구, 알렉산더가 좋아할만한 간식. 돈으로 해결 할 수 있는 것들이라면 얼마든지 선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로 전해질 수 있을까? 몇 번이고 선물해도 결과는 똑같았다. 카뮤는 그 안에 들어있는 제 마음을 기뻐했지만, 물건에 대해서는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늘 제 기쁨에 기뻐했다. 그 사실이, 얼마나 서러웠는지.
어떻게 하면 당신이 가장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생일은 그 사람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날이다. 카뮤는 마땅히 그의 인생 전체에 걸쳐서 가장 빛나는 주역이 되어야 하지만, 저와 만나고 보내는 생일만은, 연인이 되고나서 만나는 첫 생일만은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런 저런 방법을 궁리하다가, 결국 파르바네는 미궁에 빠져버렸다. 그녀는 ‘일반적인’ 형태의 축하를 알지 못했다.
고민하기를 며칠. 몇 번이고 생각하고, 찾아보고, 구상하다가. 결국 주변인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물어보는 거예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카뮤는 한국인도 아니고.”
“글쎄, 바네씨가 받았던 대로 하면 되지 않습니까?”
“저는, 부모님과 보냈던 기억밖에 없어서. 선배의 부모님은 축하해 줄 사람도 없고.”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래도, 역시 답은 안 나오네요. 중얼거리는 말에 다시 죄송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괜찮다고 말해도 늘 저랬다. 저 사람은. 매니저라고 말하기엔 조금 가까운 거리면서, 늘 존댓말을 쓰고 있는 사람. 새삼스럽게 운전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끊어진 대화를 마저 이어갔다.
“보통 뭐 했어요, 생일에는?”
“보통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거나 했습니다. 진탕 마시고 집에 들어가면 생일이 지나 있거나 한 경우도 많고.”
“그런가요. 확실히 선배는 술을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제가 같이 마시기는 애매한데. 저는 바로 24일 아침부터 스케줄이 있으니까.”
“아침 일찍부터 있으니까 그 전날 밤이라면 바로 티가 나겠죠.”
“아니면 생일이라고 때린다거나, 케이크를 얼굴에 엎어버린다거나, 머리에 엎고 초를 꽂는다거나…….”
“……생일 이야기 맞죠?”
“예…….”
어색한 침묵이 차 안에서 맴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지만 괜찮을까. 하는 생각과 190이 넘는 현무씨의 머리 위에 케이크를 꽂아 넣다니 상대방도 엄청 키가 크겠구나 하는 생각이 어지럽게 섞인다. 술, 일까. 확실히 술은 생일에 마시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까. 그럼 오늘은 사 들고 가야지. 선배는 양주나 보드카 같은 것들을 좋아했으니까.
조용히 머릿속의 리스트에 술을 추가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촬영장 속에서, 겨우 짬을 내어 핸드폰을 들었다. 본국에 돌아갈 시간은 없지만, 전화를 할 시간 정도라면 어떻게든 만들 수 있으니까. 일 이외의 이야기를 하는 건 오랜만이라고 생각하면서, 사장님의 번호를 누른다.
“……라는 이유로 물어보는데, 사장님은 보통 생일에 뭐 했어요?”
[바쁘니까 제대로 챙긴건 잘 없고 보통 국수 먹었지.]
“아, 국수.”
[생일날에는 다 먹는 편이니까.]
“까먹고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까 매년 먹었네요.”
[말 나온 김에 올해는 한국 와서 다 같이 국수 먹으러 가자. 네 남자 친구도 데리고 와서.]
“좀 있다가, 스케줄 비면요.”
[어차피 네 스케줄 내가 관리하는데 뭘.]
“그렇긴 그렇네요. 그럼 로건, 귀국하면 봐요.”
길게 이어지지 못한 통화를 끊고 가만히 생각했다. 그러게, 국수를 까먹었네. 다른 나라에서도 생일날에 국수를 먹나? 매년 부모님은 내게 어느 나라에서라도 먹이려고 하셨는데. 괜히 우울해지는 기분이라 한참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본다. 하늘이 푸르다. 겨울 하늘은 늘 시리도록 푸르다.
국수 재료를 사 들고 가자.
선배는 단 음식을 좋아하니까, 육수를 달게 우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둬야 했는데. 국수류는 만들어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잘 만들지 못하지만, 최선을 다하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한다. 안 되어도, 마음만이라도 전해지면 좋겠다. 그래도 나름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것이니까.
머릿속의 리스트에 국수를 추가했다.
그리고, 물어볼 사람이 없어졌다. 평소에 좀 더 인간 관계를 넓혀두어야 했나,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어차피 지금 와서는 늦었다. 선배의 생일은 내일. 괜찮다면 저녁부터 들어가서 준비해야 하지만, 슬프게도 오늘은 일정이 꽉 차 있다. 저녁의 촬영이 제 시간에 끝나기만 하면 비행기를 탈 수 있을텐데, 비행기를 놓치면 정말 꼼짝없이 이번 생일을 전화로 축하해야 한다. 그런 상황이 오게 된다면, 아니, 애초에 오기 전에 촬영을 캔슬해 버릴테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비행기 시간을 다시 확인한다. 정말 아슬아슬한 시간이다. 꼬이는걸 어느정도 감안했지만, 잘못하면 제 시간에 들어갈 수 없을지도. 가능하다면 꼭, 12시 정각에 축하해주고 싶다. 생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24시간 정도는 내내 옆에 있고 싶다. 어쩌면 이건 그냥 내가 받고 싶은 것을 그에게 해 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그에게 선물하고 싶다.
그러니까 오늘 촬영은, 제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원래 일은 가장 중요한 날에 꼬인다. 잘 알고 있다. 예전부터 나는 한 번에 일이 제대로 풀리는 법이 없었고, 그래서 일부러 꼬일 것을 대비해서 일정을 준비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꼬이고 싶지는 않았는데.
촬영은 예정보다 한참 늦게 끝났고, 비행기는 연착이 되었고, 사려고 했던 것들은 모두 제대로 된 것을 파는 곳이 없었고, 차는 밀렸다. 나는 울 것 같은 기분으로 간절하게 기도했지만, 마음 먹은 대로 풀리는 일은 없었다.
결국, 11시 57분. 나는 숲길을 정신없이 달리고 있다.
달리지 않은지 얼마나 오래 됐더라? 문득 내가 신고 있는 신발이 그나마 편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이힐이었다면 분명 제대로 뛰지 못했을테니까. 하지만 좀 더 일찍 도착할 수 있었을 텐데. 차라리 촬영을 미뤘다면 좀 나았을까? 아니면 그냥 어제도 통째로 비워버렸다면? 이뤄질 수 없는 의미없는 가정들을 잔뜩 떠올린다. 시간 은 11시 58분 이미 턱 끝까지 숨이 차올랐지만 억지로 달린다. 넘어질 뻔 하고, 비틀거리면서, 11시 59분. 아슬아슬하게 선배의 집 문을 열고 들어선다.
정신 없이 계단을 뛰어 올라가서, 3층에 있는 방에 뛰어 들어가면, 12시를 알리는 종이 온 집에 울린다. 대본을 읽고 있던 카뮤는 놀란 눈으로 이 쪽을 쳐다보고, 발치에서 잠들어 있던 알렉산더는 이 쪽으로 뛰어와 낑낑거리는 소리를 낸다. 일순 정적으로 가득 차는 공간. 저는 가쁜 숨을 가까스로 가다듬고, 소리치듯 말했다.
“생일 축하해요, 크리스자드!”
이 말은 제 시각에 하고 싶었다.
“늦은 시각에 무슨, 아니,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뛰어온건가?”
“그야, 물론이죠. 선배의 생일은, 시작부터 함께 하고 싶었으니까.”
아직 가다듬어지지 않은 숨을 몰아쉰다. 놀란 눈, 가벼운 옷을 걱정하며 자연스럽게 다가와 겉옷을 건네주는 손길. 어느것도 상냥하기 짝이 없다. 당황하지 않고 저를 맞이하는 것이며, 걱정하는 말까지 모두 저를 위하는 것 뿐이라서, 갑자기 울컥 서러움이 몰려들었다. 생각한 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를 위해서 이것저것 준비하고 싶었는데, 결국 또 작년과 같이, 무엇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미안해요, 선배. 축하할 것들을 잔뜩 가져오고 싶었는데, 시간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고, 케이크도 만들어 주지 못했고, 술도, 국수도, 이것저것 듣고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두서없이 말이 흘러나온다. 이것저것 섞인 말이 감정에 묻혀서 엉키다가, 뭉게지다가, 결국 미안함밖에 남지 않는다. 나는, 당신에게.
“선배에게 행복을 잔뜩 가져다 주고 싶었는데, 나는 결국, 또 서툴러서, 세상 모든 행복을 안겨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어버려서.”
미안해요, 라고 웅얼거리는 목소리는 단호한 카뮤의 목소리에 묻혀버렸다.
“필요 없다.”
“무슨,”
“네가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니까 필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네가 뛰어와서 축하해 준 것 만으로도 이미 행복한 생일이다.”
“그런 말을 해도.”
나는 좀 더 당신이 욕심을 부렸으면 좋겠어요. 그런 말을 중얼거려도, 제대로 닿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서. 정신 없이 뛰어 나오면서도 챙겨나온 유일한 하나를 손에 들었다.
“이거, 선물이에요. 준비한 다른 것들은 모두 시간에 쫓겨서 하지 못했지만, 이건 몇 달 전부터 시켜 뒀으니까.”
저택을 닮은 건물이 들어간 스노우 볼. 백작저를 닮은 건물의 모형이 들어간 스노우볼은 눈 대신 반짝이는 결정들이 흩날린다.
“선배의 생일은 반짝이는 날이라고 했으니까요. 실크팔래스에서는 길조라고 했고. 언제까지나 선배의 생일은 즐겁고 행복한, 좋은 일들의 시작으로 기억됐으면 해서.”
은색과 푸른 색의 보석함도, 붉은 벨벳도, 문양도, 재료도, 어느 것 하나 고르지 않은 것이 없다. 최고로 좋은 것들만 당신에게 선물하고 싶어서. 서투르게 준비한 생일이지만, 가장 즐거운 기억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다시 한 번, 생일 축하해요. 선배.”
"아아."
그는 대답대신 숨 막힐 정도로 강하게 끌어안았다.
2017.01.23 첫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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