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숨을 쉬고 있나요, 선배?"
양 손으로 목을 부여잡고 있던 그녀는 그렇게 물었다. 왼 눈을 가렸던 앞머리가 흘러내린다. 제 발치에 무릎 꿇고 앉아서, 그녀는 그렇게 그에게 확신을 구했다.
우습게도, 카뮤는 그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생각해 버렸다.
*
아주,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아니, 그리 오래되지야 않았으나, 카뮤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퇴색되어 버린 기억이다. 어느 날의 기억, 벚꽃 잎이 하염없이 흩날리던 그 날의 그녀.
검은색, 진청색. 모두 그녀에게 지독히도 잘 어울리는 색이었으나, 분홍색은 한 번도 가져다 댄 적이 없었다. 그녀가 언젠가 그런 옷을 입고 활동한 적이 있었음에도 그랬다. 그러니, 카뮤는 그 날 처음으로 제 연인이 얼마나 허망하게 아름다운지 실감했다.
그녀는 늘 공허했고, 그렇기에 아름다웠다. 인간 같지 않은 아름다움. 잘 세공된 보석 인형과도 같은. 어쩌면 그 인형을 뛰어넘는 정적인 아름다움. 그런 인형이 살아 움직일 때의 경이로움과, 그 애정이 오직 저 만을 향한다는 기묘한 만족감. 그리고 그 모두를 뛰어넘으며 그에게 아프게 다가오던,
"시체를 밟고 서 있는 기분이네요. 선배는 어떤가요?"
"아름답다."
"그렇죠, 허망하기 짝이 없어요."
그 아름다움의 주체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으나, 알고 있다. 그녀는 그가 저를 녹아내릴 듯 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름답다 말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제 아름다움이 덧없음을 알고 있다. 아주, 아주 허망하다. 어차피 썩어 문드러질 육신에 깃든 아름다움이 얼마나 강력한가.
제 속의 가장 소중한 무언가는 이미 난자당해 죽어 버린 지 오래다. 저 멀리 깊은 심해에서 익사체로 남아, 물고기에게 뜯어 먹히고 물속에서 스러져갈 운명이다. 그럼에도, 몸은 죽지 않는다. 영혼이 아무리 죽어버려도, 인간성이 사라져도 인간은 죽지 않는다.
내가, 살아 있는 게 맞는가.
"선배, 저는 늘 헷갈려요. 이 순간이 꿈은 아닐까."
"……."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당신 잘못이 아니니까."
"사랑하고 있다, 현."
"그렇게 말하면, 제가 어떻게 대답해야 해요."
순진하기도 하지, 당신의 사랑으로 어찌 내가 살아날 수 있는가. 죽어버린 이에게 쏟는 사랑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모르지도 않을 이가.
어쩌면 당신은 내가 아직 살아있다 믿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스운 착각이 어디에 있다고.
"나도 사랑해요, 크리스자드."
그러나 그 착각에 장단을 맞춰주며 웃는 저도 우습기 짝이 없음을 알고 있다. 사랑스러운 사람아, 내 어찌 너를 사랑하지 않고 이 죽음 너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
"선배, 내가 숨을 쉬고 있어요?"
"물론이다, 네 심장은 뛰고 있어. 여기, 이곳에서."
"나는, 나는 지금 어떤가요? 크리스자드, 내가 우스워 보이지는 않아요?"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여전히 사랑스럽다."
"키스해줘요, 날 안아줘요."
그는 입을 맞췄다. 그녀에게 닿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그녀를 제 품 속으로 끌어들였다. 빈틈없이 끌어안고 싶었으나 그녀가 너무 작았다. 틈이 생기고, 냉기가 스민다. 그녀가 그 냉기에서 안정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카뮤는 그녀를 더욱 가까이 끌어안았다. 오직 온기만을 주고 싶었다.
혀와 혀가 섞이고, 타액이 오가는 소리가 질척하다. 성적인 느낌을 조금도 담지 않은 키스임에도, 그 어떤 때보다 외설적이다. 작게 흐르는 신음과, 질척한 액체의 소리. 그러나 본인은 느끼지 못한다.
파르바네는 울고 있다. 아무리 카뮤가 이름을 불러도 닿지 못한다. 본디 세계를 가지고 태어난 자의 숙명이란 그런 것이다. 그 속에서 영원히 혼자, 혼자 살아가야 한다.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그 누구도 세계로 들이지 못하고.
그러니, 그 속에서 죽어버린 그녀의 시체는 누가 수습 해 줄 수 있다는 말인가?
"사랑해요, 사랑해 카뮤."
"나 또한. 이 생이 끝나는 날 까지, 이 영혼이 사라지는 날 까지 너를 사랑하겠다."
"죽음, 죽음 이후도 맹세해줘요."
"당신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My Precious"
"생은 너무 덧없어요."
그래서 아름다워. 당신은 살아있어서 아름다워.
울지도 못하고 그녀는 그리 말했다. 이미 죽어버린 생명이 그리 말했다. 카뮤는, 그 고고한 얼음 백작은 그녀의 눈 속에서 시체를 보았다. 아주 어린 아이의 시체가, 소녀의 시체가 그 속에 널브러져 있었다. 수습해 줄 사람 하나 없이, 겨울의 눈 속에 파묻혀서 조용히 그 곳에 있었다.
늘 사랑이야기는 우습게 끝난다.
카뮤가 그 시체에게 반했다는 사실은, 우습기 짝이 없다.
*
"나는 죽을 수 있을까요?'
조용한 한 마디에, 카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이제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보여, 자란다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했으니.
죽음이 그렇다. 모두를 멈춰버린다.
그런 그의 눈을 바라보며, 그녀는 처연하게 웃었다.
"사랑해요."
"나, 또한."
그래, 이걸로 족하다.
2016.10.30 첫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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