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웃음이 어두운 방에 어울리지 않게 울렸다. 차갑고 상냥한 웃음. 저보다 한참 큰 남자의 얼굴로 손을 뻗어 다정하게 쓰다듬는 소녀의 모습이 퍽이나 처연하다. 푸른빛이 감도는 차가운 조명 아래서 가련한 소녀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남자는 비극의 가해자로 보인다. 소녀의 입술이 떨린다. 가녀린 말소리가 흘렀다.
"도망 갈 생각없다니까 왜 믿질 못해요. 정말 발목이라도 끊어보여야 믿을건가요?"
"그저, 확실한 쪽이 더욱 안심되니. 허면, 불만이라도 생긴건가?"
"그럴리가요. 단지, 족쇄마저 화려한게 꼭 선배다워서요. 그 누가 도망갈지 모르는 연인의 발에 사파이어로 장식된 족쇄를 선물하나요? 더군다나 직접 무릎을 꿇고."
"다시 묻지, 혹여 싫기라도 하였나?"
"그런 사소한 일을 물을 이유가 있나요? 그저 당신이 원하면 절 취해요. 저 또한 제가 원하는대로 당신을 취할테니."
"분부대로, My Precious."
작은 고소가 공기를 날카롭게 난자하고, 비극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다. 둘 모두 사랑스러운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불타오르는 감정에 땔감으로 제 몸을 던진다. 사랑이 언제 광기를 동반하지 않은 적 있던가. 이미 미쳐버린 사랑이 연인의 눈과 귀를 틀어막는다.
언제나처럼 달콤한 호칭이 소녀의 귀를 간질이고, 늘 그래왔던대로 소녀는 꿀이 떨어질 미소를 짓는다. 늘 이래왔다. 어긋나기 이전에도, 어긋난 이후에도.
카뮤,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백작. 그의 인생에 있어 나비는 구원이고 가장 빛나는 조각이니, 잃고싶지 않았다. 그러니 어찌 놀랄일이었겠나, 그 사랑스러운 나비가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어딘가 외진 곳이라는 사실이. 그 고귀한 백작은 가시밭길을 걸어 보물을 손에 넣는 심정으로, 비난과 눈물마저 각오했다. 그녀라 무어라 애원하든 그는 그녀를 떠나보낼 생각이 없었다. 몇 년이고, 몇십 년이고. 허나 그 사랑스러운 연인이 물은 한 마디는 무엇이었나.
"이제, 떠나지 않을거죠? 선배."
그가 본 웃음 중 가장 환하고, 아름다우며, 사랑에 가득 차 미쳐버린 웃음이었다. 그 모습이 가슴저리게 아름다워, 백작은 소리내어 크게 웃었다. 전능한 운명이 어찌 이리 될 줄 예상못했을까. 그 나비의 인생에 있어 가장 빛나는 조각 또한 그였으니, 소녀는 상황을 인지하고 가장 기쁘게 웃었다. 이리 저를 가두어 놓으면, 그는 영영 떠나지 못할게 아닌가!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흘러넘친 어긋남과 사랑이 그들의 어두운 방을 아름답게 물들였다.
그들은 세상과 교류하지 않았다. 사라진 연인에 대한 속보도, 사망설도. 모두 무시하며 그들의 세계에서 살아갔고, 살아가며, 살아갈 예정이다. 오직 당신만을 위해 가꾸고, 노래하고, 숨쉬고. 흘러가는 시간은 시시각각 목을 조여오고, 숨막히는 고통은 당신의 사랑스러움에 감미롭게 변한다. 묶이고 갇히고 서로에게 견디기 힘든 애정표현을 퍼부어도, 당신이기에 행복하다. 온전히 당신의 체향으로 숨쉬는 기분이 얼마나 아름다웠나. 눈동자에 담을 사람이 오직 당신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큰 만족감을 주었나.
집착과 광기없는 감정은 연정도, 사모도 되지 못한다. 얽어매고 수렁으로 기어가며 사랑이라는 이름의 배덕에 빠져, 영원을 살아가면.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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