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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2018.11.18 01:07 read.1

  잔뜩 몸을 웅크렸다.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가사도, 악상도, 그 무엇도 떠오르지 않는다. 정적이 저를 집어삼켜서 무엇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미 흘릴 눈물이 모두 떨어져서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다. 그냥, 그렇게 몸을 웅크렸다. 무릎이 심장에 닿을 때 까지. 눈물이 더이상 느껴지지 않을 때 까지. 

  서서히 해가 져서 방에 어둠이 내리는 모습을 그냥 응시했다. 어둠이 온 몸을 적시고 방에 가득찼지만, 그냥 두었다. 검은 죽음이 숨통을 틀어막을 수 있게 내버려 두었다. 이렇게 괴로워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죽음은 좀 더, 좀 더. 마땅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고개를  무릎 사이로 묻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그냥 잠결에 들리는 환청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방에는 어둠이 가득 차 있다. 어둠같은 슬픔과 공허도 가득 차 있다. 심장에서 흘러나와 온 몸을 도는 충동을 당장이라도 버리고 싶다. 정말 간단한 일인데, 저는 여전히 겁쟁이라서 무엇도 하지 못하고 그냥 눈을 감는다. 어둠이 문 사이로 흘러나간다.
  흘러나간 어둠은 남자의 발을 적셨다. 한 줄기 새어든 빛이 어둠으로 가득 찬 방을 비춘다. 소녀는 그 안에 보이지 않았다. 가장 어둠으로 가득 찬 침상 위에서 한껏 몸을 웅크리고 그 곳에서 사라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남자는 그 모습을 말 없이 응시하였다.
  달칵. 문이 닫혔다. 눈물이 울컥하고 치솟는다. 그녀는 남자가 저를 내버려두고 간 배려에 고마워해야 할지, 아니면 달래주지 않았음에 서러워 해야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에게 부담주기 싫어 달래지 않았으면, 하면서도 외로워하는 제가 지독히도 싫었다. 더 웅크릴 구석이 없지만 몸에 다리를 좀 더 잡아당겼다.
 
  구두소리가 났다. 
  침상이 흔들린다. 가장자리에 걸쳐진 무게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아니, 착각일지도 몰라. 늘 그래왔던대로, 잠에 빠져들어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내가 너무 비참한데. 눈을 감아도, 떠도 어둠이다. 감았는지 떴는지 느껴지지 않는다. 몸이 부유한다. 아니, 육신을 버리고 정신이 부유한다. 
  등에 온기가 닿았다. 잔뜩 웅크린 몸을 그는 그대로 끌어안았다. 차마 몸을 펴지도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런건, 정말. 예상하지 못했는데.
 
  토닥이는 손이 따뜻하다. 사각거리는 옷감의 소리, 갈아입지 않았나? 어쩌면 일정을 끝내고 인사하러 왔다가 그대로 이렇게 누워버렸는지 모른다. 제가 다시 한심해졌다. 너무, 지독하게 한심해졌다. 울컥하고 치솟는 울음을 입술을 깨물어 막았다. 
 
  "울어도 괜찮다."
 
  거짓말. 문득 치솟은 생각이 입술 끝에 걸렸다. 그 말을 물어 부수고,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우울 속에 그냥 그대로 있고 싶었다. 더 이상 우울 밖의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다른 일들을.
  돌려진 몸은 그의 품속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강하게 고정된 몸은 그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일할 때나 뿌리는 향수의 향. 그리고 그 뒤에서 느껴지는 그의 체향. 싸하고, 차가운 향. 달큰한 향 뒤로 느껴지는 차가운 냉기. 저는 온기속에서 기어코 냉기를 찾아내었다. 

 

  그의 옷이 젖어든다. 여전히 어둠은 숨통을 막고 있다. 그의 달빛같은 머리카락을 적시고, 흰 피부를 적시고, 우울로 가득 찬 내 눈동자를 적신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방 속에는 천과 천의 마찰음만이 있다. 그의 셔츠는 젖어들고, 옷은 쓸린다. 온기는 따뜻하게 몸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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