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엿됐네. 짜증스럽게 머리를 흔들었다. 주변을 돌아보지만 빠져나갈 구멍은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구멍이 있어도 움직이질 못하겠지만. 작은 틈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겠지만, 그 하나가 없다. 간부를 납치할 때 부터 직감해야 했었나. 무기도, 옷도 제대로 없다. 뒤로 돌려 묶인 팔은 여러 방법을 써 보아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거 아주 작정하고 납치했잖아? 젠장.
이게 무슨 우스운 꼴인지. 무력하게 무릎꿇은 꼴이 우스워 뒤지겠네. 아주 대대로 회자되겠지? 간부 주제에 묶여있다니. 누가 보면 웃는 수준을 떠나서, 아예 조직 자체가 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물론 플뢰르의 명성이 이 정도로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확실히 내 명성 정도나 이번대의 명성은 흔들리겠지. 그리고 진이가 두고두고 비웃을게 뻔하다. 아, 걔 얼굴 어떻게 보냐. 납치가 뭐야, 납치가.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파르바네 이 새끼는 자나? 제 대신 튀어나와보라고 재촉해도 일어나지 않는 걸 보니 아무래도 잠든 양 싶다. 그렇다면 이곳에는 능력을 억제하는 장치가 되어있다는 뜻인데, 그럼 얘를 불러내는건 글러먹었단 소린데. 망했다. 제 능력이나 성격이 협상을 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은 제가 제일 잘 안다. 다 말아먹었어, 이제 글렀어.
거의 포기하면서 몸의 긴장을 풀었다.
구두소리가 울린다.
누구 어설픈 자라면 들어오자마자 죽일 수 있다. 어떤 새끼든 만만한 새끼 하나만 들어와라.
허나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은 익히 알던이다. 그래, 지독하게도 잘 알고있다. 샤이닝의 고문담당, 협상 간부 카뮤. 여기서 제일 만나고 싶지 않은 인간. 이거 잘 하면 빠져나가기 전에 피의 연못에 담금질 당할 판인데? 그게 아니라도 뭐 하나는 쥐어주고 나가게 생겼다. 씨발,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 파르바네 새끼는 잠들어서 내 기억을 어떻게 하지도 못할 테고.
"일어났나."
"빌어먹게도 말입니다."
"호오, 아직도 말이 거칠군. 네놈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고는 있는건가?"
"상황 파악 못하면 지금 자리 내어놓고 뒈져야죠. 게다가, 말투에 대해서는 네놈이 고상떤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까?"
극에 몰린 상태로 상냥한 대답이 나올리 없다. 어차피 저 인간에게 상냥하게 말 할 생각도 없었다 만은, 평소에 비해서 날카롭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허나 짜증나게도 신경질적인 대답을 듣고도 저 인간은 그저 웃을 뿐이다. 그래, 여유롭겠지. 저건 누가봐도 승자의 웃음이다. 저는 지금 패자가 될 운명에 놓여있는데 말이다. 아, 진짜 자존심 상하네. 마지막 발악을 한다고 해도 저 새끼를 죽일 수는 있을까? 상처를 입힐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저 새끼 저렇게 곱상해도 육체파다. 제일 잘생긴 새끼가 제일 몸 쓰는데 익숙하다니, 우스워 뒤지겠네.
짜증을 있는 힘껏 내도 저 새끼 얼굴이 찡그려지는 걸 못보겠다. 확실히 웃고 있으니 잘생기기는 하였다. 물론 그래서 더 짜증난다. 저 더럽게 잘생긴 얼굴을 왜 뒷세계에서 사람 죽이는데 쓰고있는지. 곱상한 얼굴이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겠지만, 귀족 주제에 인간 백정 노릇이나 하다니. 알다가도 알 수 없는 새끼다. 덕분에 심리를 파악을 못해서 협상할 때 마다 고생하는건 나고 말이야.
"시발, 왜 안 죽이고 왜 여기 가뒀습니까? 그냥 죽이는 쪽이 제게 여러모로 이득인데."
"쓸모가 있으니 말이다. 경쟁자에게 이득이 되는 일을 내가 할 필요는 없지. 네놈 하나로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이득이 얼마나 큰지 알고는 있나?"
"모르면 제가 무뇌충이지 간부질 해먹고 있겠습니까? 진작에 어디서 뒈졌지."
"그럼 답도 알고 있겠군."
빌어처먹을 새끼. 재수없기로 점수를 매기면 저 새끼 이겨먹을 놈이 한 놈도 없을게 분명하다. 어디 걸어가다가 뒈져버려라. 쪽팔리게 복상사 하거나. 지금 내 눈 앞에서 뒤지면 한이 없겠네. 짜증스러운 언어를 몇 개 더 떠올렸지만,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제대로 입 닥치고 있지 않으면 당장 고문실로 끌려가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괜히 지금 소모전으로 가 봤자 제가 진다. 시발, 감정이라도 좀 부추겨볼까? 능력이 억제되었다고 하여도, 한 명 정도는 능히 움직일 수 있다. 파르바네 놈이 있어야 좀 더 깔끔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어차피 그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간단했다. 호기심, 증오, 비웃음, 알 수 없는 질척한 감정. 그 가락의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색은 쉬이 알 수 있다. 그럼 여기서, 호기심을 당겨볼까. 희미하게 깔려있던 감정에 바람을 불어넣어 크게 부풀린다. 이성을 좀 먹을 정도로. 강하게.
능력이 제대로 먹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눈이 변했다.
"예전부터 꽤 멍청한 놈이라 생각은 했다만, 이리 붙잡힐 정도일 줄은 몰랐군. 우매한 것, 도망가는 길을 택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지?"
"대가리가 도망하면 누가 전투합니까? 저희는 전투부대가 아닙니다. 대가리가 튀면 다 튀라고 교육 받았어요."
"호오. 꽤나 그럴듯한 이유로군. 허나 부족해. 혹시 그 같잖은 능력을 믿었나?"
"예?"
"어리석을 따름이군. 이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네놈이, 한 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를 억지로 일으켜세우고는 턱을 붙잡는다. 얼굴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시리도록 차가운 눈 색. 깊게 가라앉은 눈이 번들거린다. 시발, 도대체 어떤 부분이 이 새끼에게 믿음을 준 거지? 모를 거라고 생각은 안했으나, 그저 소문이라고 생각할거라 믿었다. 다른 이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헛 소문을 흘린게 몇 개였나. 당연히 그 중 하나라고 생각했어야 할 터인데! 그가 진실을 알고있다면 과거에 접근하는 것도, 제 약점에 관해서 알아내는 것도 금방이다.
씨발.
"파르바네, 현. 네놈은 어느 쪽이지?"
"네놈 새끼가 알, 바는, 아닙니다!"
발악하듯 능력을 증폭시킨다. 허나 억제가 순간 강하게 들어온다. 젠장, 능력의 크기에 비례해서 가해지는 억제였나. 혼란스러움과 지루함을 건드리려던 능력이 제 멋대로 튀고, 그 질척한 타르와 같은 감정을 건드린다. 최대로 끌어올린 능력이 그의 감정을 범람시킨다. 확하고 끓어넘치는 감정. 씨발. 이 정도면 나도 통제 못하는데. 이런 검은색은 종류도,
저 치의 눈이 지독하게 가라앉았다. 이건 위험하다. 척추를 타고 뱃속까지 쎄한 냉기가 번진다. 경종을 울리는 감이 도망치라 명한다. 그게 되면 좋겠는데. 눈이라도 피하고 싶지만 단단히 잡혀 고정된 턱은 고개를 돌리는 일 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호오, 꽤나 건방진 말이로군. 이 내가 알지 못할게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지? 더군다나 지금 네놈의 처지에서는 고분고분하게 구는 게 좋을텐데."
"제 지위에 건방진 말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고분고분하게 굴어봤자 뒤지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그 입이 언제 다물어지겠나?"
"아마 그런 일은 없,"
푸른 얼음이 눈 앞에 가득 찬다.
씨발, 지금 무슨 상황이지? 입술이 겹쳐졌다. 턱이 아프도록 들린다. 까치발을 해야하는 제 키가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하였으나, 제 눈 앞의 눈동자가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둡게 가라앉아서 위험할 정도로 번들거리는 눈. 도대체 무슨,
입술이 깨물린다. 아랫 입술을 아플 정도로 깨문 덕분에 잠시 이를 악문 힘이 약해진다. 그는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억지로 입을 열고, 친절하게 고정시키기까지 한다. 입 속으로 파고드는 혀, 물컹하게 얽히는 감각.
지금 제 자세에 꽤 불편하셨는지 고개까지 틀어가며 파고든다. 어깨와 목을 간질이는 머리카락, 눈 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아이스블루의 눈. 얇게 뽑아낸 귀금속같은 백금발. 타액이 어지럽게 오가고, 입을 가득 채운 이질적인 촉감이 빌어먹게도 따뜻하다. 이를 샅샅히 훑어내리고 볼을 쓸어올리는 감촉. 비웃음마저 띠고 있는 눈동자. 등골을 타고 올라온 소름이 뱃속을 간질인다.
이 망할 새끼의 혀라도 깨물고 싶었으나 단단하게 고정한 손은 제 치악력 정도로 저항하기는 무리였다. 오히려 제 시도를 알아차리고 혀 끝을 세워 입 천장을 긁어내린다.
흐읏, 작은 신음이 입 속에서 울렸다. 그걸 탐욕스럽게 혀로 긁어 삼키고는 웃음을 흘린다. 씨발, 진짜 이렇게 무력하기는 처음이다.
질척한 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제 혀를 감아 장난치다가, 끌어당겨 잘근잘근 씹다가, 장난치듯 강하게 물어온다. 그 내내 넘어오는 타액은 온전히 제가 삼켰다. 기분 더럽지만 어쩌나, 흐르는게 더 꼴 보기 싫은데. 수치스럽지는 않으나 모욕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씨발 저 새끼는 성적 취향에 문제가 있나?
유린에 가까운 움직임은 쉬이 끝나지 않았다. 다시 혀를 감아올리고, 거의 삼키기라도 할 양 달려들고, 장난치듯 유린하고. 한참지나 더 이상 숨을 쉬기 힘들 지경이 되어서야 그는 떨어져나갔다. 길게 은사가 이어졌다 늘어져 끊어진다. 씨발, 이거 진짜 좆같네.
"뭡니까, 쓰레기야."
"꽤 서투르군. 의외야."
"처음인데 능숙해야합니까?"
얼굴이 달아오른게 느껴진다. 숨이 모자라서 그런가. 아마 입술도 좀 부어올라 있겠지. 저 새끼가 얼마나 가지고 놀았는데. 씨발. 저 망할 새끼는 처음이라는 말을 듣고는 짧게 웃기까지 한다. 어울리지 않게 유쾌하고 깔끔한 웃음소리. 잘생기기는 더럽게 잘생겼네.
"처음이라, 의외로군. 우민."
"지랄하고 자빠졌네요, 넌 익숙한가 봅니다?"
"당연하지 않은가, 네놈이 서툴 뿐이다. 이 곳에서는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해야하지."
"뭐가 당연합니까. 그 정도는 저도 압니다."
"우매한 것."
아, 듣는 인간 진짜 기분 나쁘게 하네. 묶인 손만 풀리면 넌 뒈졌다. 이를 벅벅 갈았지만 입 속에 아직도 어색한 감각이 남아있다. 다시 감정을 건드리려고 훑어봐도 저 새끼는 어울리지 않게 만족감만 느끼고 있다. 도대체 건드렸던 감정이 뭐였기에.
"카뮤,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이 지랄입니까?"
"현, 네놈은 알 필요 없다."
그는 그 한마디만 남기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개새끼야, 묶은 손은 풀어주고 가야 할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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