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깨어나기 전의 이야기다. 나는, 그래. 아마도 당신의 과거와 미래 중에서 선택하라는 말을 들었던 거 같아. 어떻게 해서든 바꿀 수 있는 미래. 우리가, 어쩌면 당신이 행복하게 바꿀 수 있을 미래. 내 성격은 분명 그걸 선택해야 옳았다.
"과거, 를 보고싶어요."
그럼에도 이미 알고 있는 길을 걷고자 함은, 내가 우매하기 때문이었나? 나의 사랑, 뮤즈. 내가 선택한 이유를 당신은 알까요?
모르겠지.
꿈이 역변하고, 쎄한 냉기 속에 나는 서 있었다. 그 누구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작은 어른' 앞에. 동그란 하늘색의 눈. 얇고 부들부들해 보이는 머리카락, 전체적으로 둥글고 하얀 인형같은 아이.
"안녕."
웃었다. 아이의 앞에서, 나보다 작고 여린자의 앞에서 우는 법을 알지 못했기에 웃었다.
인사를 받은 아이의 눈은 혼란스럽고, 그 소란스러움을 온전히 받아내는 사람은 나다. 우주가 흔들린다. 너무 먼 곳에 있는 우주가, 내 속으로 스며들어서 흔들리고 있다. 당신 이름의 반을 닮은 폭풍이 몰아치나봐. 카뮤, 크리스자드. 글쎄, 내가 이러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을거 같습니까?
꿈 속의 여러 날이 지났다. 나는 당신을 응시하고, 또 응시하며, 당신이 내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까지 기다렸다. 한참을, 아주 한참을 기다렸다. 허나 외롭지 않았다. 사랑하는 당신이 있기에 외롭지 않았고, 당신이 외롭지 않아 하기에 나도 외롭지 않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 당신이 마침내 내 눈을 마주했을때, 나는 아주 오랫동안 준비한 말을 가까스로 꺼낸다.
"내가 널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잠시 머뭇거린다. 다시 몰아치는 폭풍, 블리자드. 그 바람의 세기는 폭풍과 같고, 몇날 며칠을 쉬지 않고 몰아친다던 당신의 이름. 어째서 당신은 그 이름을 쉬이 꺼내지 않는가. 동그란 푸른색이 사정없이 흔들린다. 그저 꿈이라고 생각하였나, 어째서 아이의 눈을 마주하며 내 눈도 일렁이는 기분이 드는가.
미소는 여전히 짙어지고 있으나 나는 그 미소를 거두는 방법을 모른다. 우는 법을 당신에게서 배우지 못했으니 내가 알 턱이 있나. 허나 당신은 내게 우는 법을 가르치기에는 너무 어리고, 나는 너무 완성되어있다.
그저 꿈이건만.
"아버지는 나를 '아들'이라 부르신다. 가신들은 '도련님', '소가주님', 이라고 부른다. 하인들은 '도련님'이라고 불러."
"이름은요?"
"그건 불릴 필요가 없는 이름이다. 어차피 버릴 이름에 가치를 둘 이유는 없어."
아아, 작고 여린 나의 연인아. 아주 작고, 작고, 작아서. 존재조차 하지 않는 연인아. 이름이 없기에 당신은 아직 존재하지 못했다. 아무도 당신의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아서 당신은 그저 후계자였나.
이런 이가, 제 존재를 준 이를 어찌 사랑하고 섬기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나의 사랑하는 연인은 이렇게나 불우하게 살아왔는데, 빛 한 줄기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나.
"이름이 무엇인가요?"
"... ."
" . 예쁜 이름이네요."
웃었다. 나는 당신 앞에서 우는 법을 아직 모른다. 이 이름이 내게 이해할 수 없는 말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설프게 발음해 보았다. 아아, 어쨰서.
차갑게 표정을 굳히는 당신이, 작고 여린 과거가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당신도 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누군가의 앞에서 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열 살 남짓한 어린아이면서. 세 살에 말을 타고 다섯 살에 첼로를 배웠다는 당신은,
태어날 때 부터 주어진 사슬을 '긍지'로 여겨야만 살아남을 이유를 찾을 수 있던 당신은,
눈물이 흘렀다.
당황하여 더욱 표정이 굳어진 당신을 보고 나는 무너져 흐느꼈다. 제가 상냥한 이는 아니었으나, 인간의 도리는 아는 사람이다. 사랑한 이에게는 세계를 쥐어주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어찌 울지 않을 수 있겠나.
당신의 세계가 변하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으로 존재를 인정받은 아이가 피어나고,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알아차리는 모습을, 그게 당신을 날카롭게 찌르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울지 못하는 아이가 이 곳에 있다. 아이로 존재할 수 없었기에 울지 못하는 아이가.
" . . 예쁜 이름이에요. 정말."
"아무도 부르지 않는 이름이다."
"허나 당신의 이름이에요."
"쓸모 없을 뿐인 감정이다."
"아름답고, 찬란하잖아요."
"거짓말."
눈물은 끊이지 않는다.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당신이 안타까워, 이 기억이 모두 잊히리라 직감하는 제가 얄미워, 손을 뻗을 수 없는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여.
"울지마라. 네가 울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웃음이 울음 뒤에서 터져나왔다. 10년이 지난 후의 당신도 그런 말을 했다. 아주 오랫동안 외로워했던 당신도 그런 말을 했다. 당신은 결국, 10년 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구나. 지금이 당신의 영원한 외로움이 되었구나.
"울어도 괜찮아요."
당신대신 흐느끼는 내가 그리 말했다. 그는 무언가 말을 하려했다. 말을,
눈을 가린다. 발작적으로 깜빡인다.
얼음이 녹아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는, 10년이 지나고 나서야. 제가 열 살이 되어서야 울어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당신의 울음에 씻겨내려가는 나는 환상인가. 외로움인가. 사랑을 빙자해서 당신을 달래기 위해 태어난 감정의 응어리인가.
2016.10.29 첫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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