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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

admin 2018.11.18 01:05 read.3

  변화는 어느 날, 문득 깨닫고 만다. 아주 일상적인 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계기를 통해서 그 사실을 깨닫고야 만다.

  작은 사실을 알게 되어버린 내 세계는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비명 한 번, 짧은 단말마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종말을 맞이한다. 흰 색의 눈이 질척하게 녹아내려 눈사태가 일어나고, 눈이 아프고 악취가 날 거 같은 초록빛 잎이 펄럭인다. 아아, 나는 차마 움직일 수 없다. 무너져 내리는 세계가 나를 집어삼키려고 달려들지만 움직일 수 없다. 목 아래까지 차오른 감정이, 나를 죽이려고 들어도.

  내가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울고 있지는 않았다. 그와 비슷한 상태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숨이 막힌다. 지독히도 숨이 막힌다. 허나 숨을 쉴 수 없다. 제 손으로 틀어막은 숨구멍 속으로 공기가 들이쳐서, 더 이상 얼어붙을 수 없도록 엉망진창으로 휘저을지도 모른다. 내가 더 이상 나로 남아있을 수 없게 만들지도 모른다.

  죽을 것만 같아.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지?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나 변해버렸지? 아니, 이게 변한 게 맞기는 한 걸까? 어지럽게 생각이 날뛴다. 멈추고 싶은데, 생각이 멈추지 않아 괴롭다. 소리치고 싶은데,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아주 가늘고 미약하다. 숨을 쉬지 못한다. 두려움이 나를 숨 쉬지 못하게 막는다. 크게 소리치고 싶은데, 소리치면 이 상황이 더욱 가속될 거 같아서, 나는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그저 눈을 감는다.

  어째서 이리도 멍청한가.

  희게 질린 손이 차갑게 얼어붙는다. 온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차갑게, 더욱 차갑게. 이대로 얼어붙어라. 희게 질리고 온기를 잃어버려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도록. 그러면 괜찮은데, 또다시 번민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거대한 눈사태가 밀고 온 눈은 질척하게 사방에 달라붙는다. 녹아내린다. 아직도 추운 주제에, 눈이 녹을 온도가 되어간다. 이런 걸 바라지 않았어. 이렇게, 변하고 싶지 않았어.

  그럼에도 지금 떠오르는 사람이 누군지 생각하면, 끝끝내 웃음을 가장한 비명을 내지르고야 만다. 지독한 변화에 괴로워하다가, 그 목소리가 지독히도 이질적이라 또다시 소름이 돋는다.

  저 멀리서 달려오는 발소리는 당신의 것인가? 내가 이리도 괴로워 할 때면 나타나던 당신의 것? 허나 지금은 간절히도 당신이 아니기를 바란다. 지금 나를 위로하기 위해 뛰어올 사람이, 나를 죽이고자, 확인 사살 해 버릴 사람이 당신이 아니기를. 나는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소망을 들어 줄 신을 믿지 않으면서 그리 빌었다. 제발, 지금 내게 들이칠 사람이 구원이 아니기를. 나를 그대로 나락에 내던져 두기를. 끝없는 어둠 속에서 고통조차 사라질 수 있게.

 

 

  "어이, 괜찮은 건가!"

 

 

  그러나 이리도 감미로운 구원이라니. 어째서 당신은 내게 이리도 잔인한가.

  그의 목소리에 몸을 떨었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는 더욱 빠르게 다가와 제 등에 손을 올린다. 허망하게 주저앉은 몸을 아무렇지 않게 들어 올린다. 그리 작은 몸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그의 품에서는 한 없이 작아진다. 맞닿은 곳에서 옮겨오는 온기가 뜨겁다. 너무나도 뜨거워서, 그 날의 여름을 떠올리게 만든다.

  열기는 날 숨 막히게 만들어.

  아아, 어째서. 어째서. 나는 이리도 고통스럽게 번민해야만 하는가. 나는 어째서 당신에게 이리도 고통 받는가. 그럼에도 고통을 사랑하고야 마는 나는 진실로 어리석은가. 수없이 몰아치는 생각이 더욱 몸을 웅크리게 만든다. 추위가 필요하다. 추위가, 아주 강한 추위가 필요하다. 정신을 또다시 얼릴 수 있는 추위가.

  아플 정도로 꾹 감은 눈을 억지로 떠 보였다. 내가 당신의 눈동자에서 찾곤 하던 그 냉기가 너무나 간절하다. 제발, 내게 그 냉기를 줘.

 

 

  "어디 아픈가? 아니, 물음은 필요 없겠군. 당장 병원으로 가겠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라."

 

 

  다급한 걸음이 잠시 멈춘다. 그의 눈이 오직 저를 응시한다. 따뜻하다. 문득 그렇게 생각해 버렸다. 그의 눈이, 따뜻하다. 제가 언제나 기억하고 있던 그 냉기가 이미 산산조각 나 사라져 버렸다. 어째서, 내가 무엇을. 어째서 그 마저도 아름다운가. 어째서 당신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 세계를 침범하는가.

  미지근한 온기가 겨울을 초봄으로 바꾸어버린다. 목련이 필 계절이 되어버렸다. 꽃이, 필 계절이 되고야 말았다.

 

 

  "몸이 식었다. 긴장했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애써 말할 필요는 없다. 괜찮다, 내가 있어."

 

 

  大丈夫だ。 俺がいる。 그 한 마디가 당신의 입에서 나오리라 생각한 적이 없다. 허나 그 한 마디가 내게 이리도 위안이 되리라 생각한 적도 없다. 제발, 제발 날 두고 가 줘. 울 거 같은 기분인데, 울 수 없다. 나는 지금 차마 울 수도 없다. 당신의 눈동자가 너무나 상냥해서, 내가 운다면 당신은 또다시 안절부절 못하고 제가 잘못한 일이 있나, 내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있나 고민하겠지.

  도망치고 싶은데, 이제 거부하고 싶은데, 그렇게 한다면 당신이 크게 상처받는다는 사실을 안다. 다 버리고 떠나고 싶지만 당신이 이미 내 세계 속에서 너무 큰 의미를 차지해 버렸다.

  공허 속에 그득하게 들어찬 애정이, 너무 무겁다. 나는 당신이 주는 애정에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겨울 속에 머무를 수 없다고, 그리 깨달았다.

  날 믿어달라 말하던 그에게, 나는 믿는다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절 믿어 줄 수 있나요, 카뮤? 차마 말하지 못한 말이 애정의 바다를 깊게 휘젓는다. 또다시 크게 일렁인 바다에 나는 입을 막았다. 조금이라도 방심한다면, 당신의 애정이 흘러나가 사라질 거 같아서.

 

2016.10.11 첫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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